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80화 (180/244)
  • 180- 벌금 6천만원, 사회적 가치 6천억원.

    김대준에 이어 노현우 정권도 이제는 임기가 끝나갔다.

    17대 대선에서는 여당이 이름을 바꿔서 통합우리당, 그리고 야당인 한민국당의 진검 승부.

    그리고 서울시장이었던 이상명이 한민국당으로 출범해서 과반수가 넘는 투표율로 압살했다.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허허허, 오늘 축하 전화중에서도 가장 기다리던 분이 오셨군요!]

    이상명 역시도 시장 시절 축구장 2개 기부채납으로 인해서 스포츠 도시 서울을 만들어주는데, 재환도 그 인연으로 간간이 만나던 사람이었다.

    미래는 알지만, 그래도 앞으로 정치 잘 하시라고 형식적인 덕담을 나누면서 통화를 마쳤다.

    대선을 마지막으로 재환은 2007년도 마치고, 두 아이와 아내와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2008년은 엄청난 폭풍과 함께 시작했다.

    ***

    초상집이 된 혜성그룹.

    TV에서는 연신 전국에 있는 혜성그룹에 있는 계열사들을 공무원들이 탈탈 털고 있었다.

    거기에 기전실에서 행안부 쪽에 전화를 걸었지만, 이번 일은 어떻게 빠져나갈수가 없다고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대노한 재환으로 인해서 사장단은 숨죽이면서, 살얼음판을 걸었다.

    “후우-”

    회의실 안에서 연신 담배를 뻐끔거리던 재환은 마흔살이 된 두 번째 삶에서 이번 일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내뿜었다.

    “뭐예요. 이거? 다들 장난하자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회장님,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습니다. 전부 저희 잘못입니다!”

    부회장 셋과, 사장단 모두가 일어나 고개숙여 사죄했다.

    재환은 신경질 적으로 담배를 비벼 끄고 옆에 있는 분무기로 물을 뿌려 껐다.

    “자, 봐요! 하다못해 업무실에 있는 재떨이도 담뱃불 때문에 이런거 구비했어요!”

    “···.”

    “근데 뭐? 유동인구 100만, 200만 넘는 동네에서··· 마트하고 백화점이 스프링쿨러가 안 돌아가? 소화기 분말이 굳었어? 에라이!”

    혜성그룹이 이번에 정부에서 털린 일은 어이없게도 ‘소방법 위반’이었다.

    정권 말기에 안전불감증에 대해 보도한다고 전국적으로 유통업부터 대형시설 등을 맡았는데, 특히 걸린 것이 마트와 SSM등의 슈퍼마켓이었다.

    그중에서 샤를로트 그룹이 백화점 1개, 마트 4개, 슈퍼 7개가 걸려서 과징금만 억대로 물었다.

    문제는 그 뒤로 다른 유통업체들도 조사 결과 신누리나 혜성 역시도 걸렸고, 광주점과 대전점, 그리고 조치원점에서 소방법위반이 걸려 각각 과징금 2천만원씩 문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재환은 극대노해서 전 지점 전수 조사를 했고, 단순 소방 방재시설 외에도 누전 위험 등으로 지적사항이 한가득 나왔다.

    유통이 이럴진데, 혜성전자나 혜성자동차 등의 공장은 어떨지 조사하라고 했고, 컨테이너 건물로 임시 휴게타운이나 흡연실을 지하 주차장에 설치하는 정신 나간 행위들이 전부 드러났다.

    “책임자들 싹 다 잘라버려요. 그리고 의무적으로 소화기 사용법하고, 화재 안전 교육 철저하게 합시다.”

    “네, 회장님!”

    “말로만 그러지 말고 지금 당장 손대고 있는 조직에 전부 달려가서 숙지 시키라고요.”

    재환의 외침에 임원들이 인사 이후 후다닥 물러났다.

    아버지가 빙의해서 헐크가 된 재환을 보고서 임원들은 그동안 편했다가 한 번 줄빠따 맞을 일이 생기자 발에 불나도록 뛰었다.

    ***

    재환은 사촌의 사돈집에 가서 소화기 테스트를 했다.

    치이이이이익-

    시원하게 흰 가루를 뿜어내는 소화기를 보고서 재환은 만족스러운지 붉은 쇳덩이를 쓸어내렸다.

    “아따, 어쩌다 그런 일이 생기신겨? 혜성이 일처리 을메나 시원시원했는디.”

    오현우는 담배 한 대를 태우면서 사돈총각에 대해 키득거렸다.

    “마이다스그룹이 이런 소방장비업 제조를 했는데, 그동안 신경도 못썼네요.”

    “긍게 말이여. 난 기존에 있는 장비들로 잘 하는 줄 알았제.”

    오현우 회장이 말한 대로 마이다스 그룹 내, 마이다스 소방은 소방방재청에게도 우수 품질로 인정받은 소방장비 전문 업체였다.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우리 직원들이 이렇게나 안전불감증이 심한지 몰랐습니다.”

    “사실 몇 백개 지점 중에서 네 개 걸린건 양호한 편이에요.”

    “양호라고 하셨습니까?”

    “아따, 귀에걸면 귀걸이고 코에걸면 코걸이라고, 통과 될 것도 안되고 그런게 있다니께?”

    오현우는 껄껄 웃으면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 액땜 한 셈 치라고 재환을 위로했다.

    물론 재환은 품질관리와 사내 시설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니, 그런 위로따위 필요없고 A급으로 소방장비 싹 바꿔버리고 시설도 대대적으로 개량할 셈이었다.

    “대공사가 될 거 같네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거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안전장비 시공 A급 미만 지점은 전부 다 소방장비 싹 바꿔버리기로 했다.

    예산이 엄청나겠지만, 이렇게 해 둬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아따, 뭐 그럽시다. 우리 사이도 있고 설마허니 내가 눈탱이를 치것소? 올해 6월이면 혜성 신사옥도 열리는구만.”

    “네, 알겠습니다. 테스트 해보고 전 계열사에 필요한 수량 마련하죠.”

    재환은 말 나온 김에 쿨하게 계약 준비를 하고, 저녁에 식사나 가볍게 곁들이기 위해 움직였다.

    “짜장면 하나 먹는데, 용산까지 가야것소?”

    “진짜~ 진짜~ 맛집이에요.”

    과거 혜성이 남영동에 본사가 있던 시절, 처음으로 이 삶을 살게 되었을 때 아버지와 가던 곳이었다.

    “저도 와이프랑 연애하던 시절에 몇 번 가봤는데, 코스요리가 기가 막혀요.”

    “함 가보기는 하겠는디, 나중에 광주 내려오실 때 내가 진짜배기 코스요리집 한 번 초대하것소.”

    대형 세단에 트렁크 안에는 강북에서 테스트를 했던 마이다스 소방의 장비들을 가득 채워놓은 상태였다.

    “회장님,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트렁크에 넣어 놓은 소방장비들이 덜커덩 거렸지만, 재환은 신경쓰지 않았다.

    “됐어요. 그냥 갑시다.”

    김 기사에게 말하자 그는 안전하게 차를 운행했다.

    강북에서 서울역 지나 회현동 쪽으로 가는 길.

    그때 재환의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잠깐만, 저거 지금 뭐야?”

    “음? 뭐요?”

    옆에 앉아있던 오현우가 볼 때 재환이 문을 열고 가리켰다.

    “저거 지금 어디 불 난 거 아니에요?”

    재환이 가리키자, 정말 회현동 뒤쪽의 찻길에서 연기가 났다.

    “이잉~ 그렇네잉? 어디 차사고 나서 불붙었나?”

    DHL 노란 간판 아래서 나는 연기.

    재환은 뭔 상황인지 가까이 가 보라고 했다가, 오래된 기와에서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야, 저거··· 저거저거 숭례문이잖아?!”

    “음마? 뭐여, 시벌? 진짜 숭례문에서 연기나네?”

    그때 재환의 머릿속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숭례문 방화 대화재.

    그리고 지금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

    “김 기사! 차 세워요! 저기 바로! 바로!”

    재환이 황급히 외치자 숭례문 앞에서 대형 세단이 멈췄다.

    빠아아아아앙!

    별안간 찻길에서 멈추고 내리는 재환을 보고 뒤에 운전자들이 멈춰섰다.

    “아저씨 뭐해요? 왜 거따 차를 대?”

    씩씩대는 운전자들.

    그때 재환이 숭례문을 가리켰다.

    “이 양반아, 저기 지금 불 난거 안보여?”

    “뭐? 무슨 불이 나··· 뭐야 X발?! 저기 왜 불이 나?”

    뒤에 있던 차량들도 경적을 울리다가 숭례문에 불이 난 것을 보고서 황급히 차에서 내려 휴대폰들을 꺼냈다.

    “이게 뭔 일이여? 신 회장, 빨랑 119부터 불러야제!”

    오현우도 당황했다.

    그때 재환은 황급히 트렁크를 열어 안에 있던 소방장비들을 꺼냈다.

    에프킬라 사이즈의 누르기만 하면 분사되는 소형 소화기부터 기존 제품보다 사거리가 두 배 이상 길다는 소화기까지.

    재환은 소화기 하나를 꺼내서 황급히 불길이 치솟은 숭례문 안으로 달려갔다.

    내부에는 안전요원 하나 없었고 뻥 뚫려있는 개방된 공간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도 화재 현장에 접근할 수 있었다.

    매캐한 연기가 뿜어질 때 재환은 곧바로 소화기를 뿌렸다.

    치이이이이익- 치이이이익-

    연기와 흰 가루가 마구 흩뿌려져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뒤로 황급히 달려온 오현우가 소화기 두 개를 들고 올라왔다.

    “신 회장! 신 회장 어딨는겨? 거 위험하니까 빨랑 내려 오쇼!”

    오현우는 그렇게 외쳤지만, 눈앞에서 재환이 소화기를 뿌리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 숭례문 일대에서 장사를 하는 소상공인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고, 너나할 것 없이 소방서에 전화를 하고, 양동이에 물을 담아서 숭례문으로 향했다.

    누가 뭐라 지휘할 것도 없이 눈 앞에서 소화기를 뿌리며 미친 듯이 진화 작업에 열중하는 두 회장님을 보고 저절로 움직인 것이었다.

    그리고 소방차들이 도착했을 때, 숭례문 일대는 교통체증으로 꽉 막혔지만, 신속한 진압으로 인해서 현판까지 태워버릴뻔한 거대한 화마는 다행히 금방 제압당했다.

    ***

    [다음 소식입니다. 어제 오후 9시경, 숭례문 내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네, 경찰은 CCTV 내에서 신나통과 라이터를 들고가는 용의자를 추적하는 가운데, 자칫 대참사가 될 수 있었던 상황을 막아낸 신속 대처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숭례문은 현재 단청 부분의 화재로 인해서 부분 복구작업을 진행할 것이며, 정부는 경찰 병력을 늘려 문화재에 대한 경계를 철저히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자칫하면 과거의 삶처럼 홀라당 타 버릴뻔한 것을 미래의 지식을 알고 온 재환이 전부 막아 버렸다.

    물론 5%쯤 손상이 되어서 그것만 해도 복구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초기 진압으로 인해 ‘헤프닝’ 정도로 끝난 것은 기적이었다.

    인터넷상에서는 ‘어떤 정신나간 인간이 국보를 태우냐?’, ‘초기 진압 안했으면 홀라당 탈 것이다.’, ‘저거 대중공개 한 인간 처벌해야 된다!’라는 여론이 가득했다.

    그리고 재환은 아침 뉴스부터 정부의 연락을 받았다.

    “네, 아, 네! 아닙니다. 진짜 우연이었어요. 지나가다가 하필이면 거길 봤잖아요?”

    경찰서에 가서 진술까지 하고, 우연찮게도 트렁크 안에 있던 소방 장비 이야기가 나와서 재환이 행동한 것이 그대로 보도되어 있었다.

    이 건은 정권 말기의 노현우 체제에서 퇴임전 마지막으로 혜성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오현우: 아따, 세상에 연기가 막 자욱한데, 갑자기 옆에있던 신 회장이 말하더라고요. 차 멈추라고, 지금 저기 불난거 안 보이냐고···]

    오현우 회장은 아예 방송까지 나와서 그 일을 알렸다.

    [네, 최근 소방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던 혜성그룹이었는데, 회장님은 철저한 준비를 하셨나 봅니다. 바로 소방장비 구매건으로 샘플을 가져가다가 화재를 발견했다고 하는데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이런 회장님이라면 그래도 고쳐서 다시 시작하겠죠?]

    아나운서나 앵커들이 뉴스 생방송 중 농담에도 재환은 그저 웃었다.

    당연히 집 안에서는 난리가 나서 전화가 막 왔지만, 재환은 다친 곳 하나 없으니 됐다고 했다.

    “암튼 오늘 출근 진짜 빡세겠다. 안 그래?”

    “세상에, 바깥에 저 기자들 봐요.”

    미연은 괜찮겠냐고 연신 물었지만, 이미 그래서 타워팰리스 안에 거주하던 혜성그룹 임원들이 자신을 경호해 다같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자~ 아빠 다녀온다!”

    “아-빠! 다녀와요.”

    “다녀오세요지!”

    재환은 3살짜리 아들을 한 번 안아주고 아내 품 안에 있는 딸에게도 뽀뽀 한 번 해준 다음 밖을 나섰다.

    삶은 불혹부터 시작이라더니, 두 번째 삶이 딱 그 상황이었다.

    1층으로 나오자 아니나 다를까 도곡동 일대에서 수많은 기자들이 기다렸다.

    “신 회장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라의 국보1호를 지키셨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현재 혜성유통이 소방법에 걸린 뒤로,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의 말에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손을 들었다.

    “회장님!”

    “회장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너무 많은 인파에 재환은 잠시 멈춰서 말했다.

    “뭐, 이 참에 소방장비 싹 다 갈아치울거니까 그렇게 아시고요. 그러니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친 상황에서 다시 소를 들여와야죠. 특급으로!”

    유쾌하게 한 마디 해주면서 숭례문 이야기에 대해 한 마디 더 했다.

    “아, 그리고···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나같이 움직였을거에요. 나 말고 그때 도운 사람 모두가 영웅이니까.”

    그러면서 마지막 한 마디는 빼지 않았다.

    “그래도 나한테 용감한 시민상 하나는 나라에서 주겠죠?”

    기자들이 전부 폭소하자 재환은 훈훈한 분위기속에서 차에 올라탔다.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미소 짓는 재환 옆에는 오늘 아침부터 그를 호위해서 같이 탄 준호가 있었다.

    “김 실장, 우리 소방법 벌금이 얼마죠?”

    “6천만원 정도 됩니다.”

    “6천억 짜리 선행으로 그걸 메꿨네···.”

    재환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준호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어떤 재벌 회장이 화재현장에 들어가서 소화기 들고 그걸 껐으며, CCTV에 모두 찍혀 영웅적인 행동으로 언론에 찬사까지 받을까?

    덕분에 정부에서는 이번 벌금 무효로 해주겠다는 말까지 했으나 오히려 보란 듯이 재환은 6천만원 벌급 납부식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혜성에는 역시 신재환이 있어야 한다는 오너버프가 아주 긍정회로로 돌아가는 2008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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