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하드는 정리하고, 소프트로.
랜드에버 그룹은 계속되는 여론의 압박.
그리고 같은 배를 탔던 까푸르 역시도 검찰에 구속되고, 삼킨 돈을 죄다 토해냈다.
“네~ 어떻게 잘 되셨습니까?”
[아이고~ 신 회장님이 외화유출 막는데, 큰 일 해주셨습니다. 카푸르 그 친구들이 백기를 들었어요.]
까건 카건 어느쪽으로 발음해도 알아듣는 그 프랑스 회사가 한국 정부에 백기를 들었다.
그들은 97년 외환위기 시절 불법으로 수령받은 지원금과, 용도변경을 해서 지자체 규제를 벗어났던 일.
그리고 랜드에버에 전 지분 매각이라 하면서 실제로는 드러나지 않게 배후 조종을 하면서 다국적 사모펀드에 마트를 팔려는 목적까지 드러났다.
그로 인해 엄청난 추징금이 나오겠지만, 기욤 피에르 이사부터 국제변호사들은 자신들이 숨겨놓은 지분이 추징금과 엇비슷할테니 이걸로 합의를 하자고 한국정부에 알렸다.
“뭐, 저는 제보만 한 거니, 처벌을 어떻게 하실지는 총장님이 결정하셔야죠. 법은 그쪽 전공 아니십니까?”
[아이고,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뒤로 이제 협상은 끝났다.
얼마 후.
혜성그룹에는 두 가지 경사가 일어났다.
혜성쇼핑은 에버홈마트 40개 지점을 총 1조 7천억원에 사 들였다.
부채 포함 2조 2천억을 제안했지만, 까푸르가 추징금으로 자기 몫 떼내고, 거기에 주가 역시도 폭락에 폭락을 거듭해서 몇 달만에 주식이 반 토막 나니 버틸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줄이라고 한 재환의 오더에 혜성 임원들은 정말로 노력해서 그 정도까지 깎아냈고, 재환은 그들에게 연봉 인센티브로 보답해줬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연일 혜성의 인수에 대해 보도했다.
[혜성그룹이 기존 카트 노동자인 에버홈마트의 부당해고 고용자들까지 모두 채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에버홈 노동조합이 해체를 선언했습니다. 단, 전 직원이 정규직으로 채용됐다는 것인데요? 에버홈 노조는 혜성의 이름으로 근무하면서 노조 설립은 추후 다시 고려하겠다고 합니다.]
부당해고 600명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
물론 그러면서 기존에 혜성에 있던 무기계약직들 문제도 있었는데, 재환이 전부 해결했다.
일단 마트 내에 우수 지점들은 선별해서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고, 무기계약직들의 기본급을 내년부터 10%씩 올려준다고 약속했다.
최저시급도 잔뜩 오르니 슬슬 올릴때도 되었는데, 딱 맞춘 것이었다.
기존 무기계약직들의 불만이 만만치 않았으나 재환의 복지시설 확대와 무기계약직에 대한 혜택을 하나 제공했다.
“역시, 한국 부모들은 절대 이걸 포기 못해요.”
“회장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찌보면 이게 급여보다 클 텐데요?”
재환이 기존 혜성쇼핑의 무기계약직에게 제안한건 ‘자녀 학자금 지원’이었다.
전액은 아니어도, 자녀가 대학에 가면 지원을 해준다는 말에 대다수의 직원들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재환은 그 예산에 대해서 따로 사내기금을 마련했다.
‘딱 2년만 기다리면 되지, 정권바뀌면 국장의 시대니까.’
일단 그쪽 예산에 대해서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고, 재환은 에버홈 인수하면서 선금 융자를 해준 미금저축은행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둘째가 태어났다.
아주 귀여운 2.9kg의 딸아이였고, 이번에도 순산이었다.
양가 부모님들은 아들 승윤이에 이어 딸까지 태어나자 입이 귀에 걸렸다.
특히 아버지 희경과 장인어른 한수호는 서로를 얼싸안고서 방방 뛰는 모습까지 보였다.
재환은 제일병원에서 태어난 둘째를 보고, 아내와 같이 산후조리를 지켰다.
***
“자~ 아들턱에 이어 딸턱도 내가 거하게 쏩니다!”
“둘째 태어난 신회장님, 축하를 위하여!”
육공회 멤버들은 이번에도 많이 참여해줬고, 제일병원 근처의 신누리호텔에서 연회를 가졌다.
“이름은 뭘로 지었어?”
현규의 물음에 재환은 이번에도 몇 가지를 두고 결정했다.
“아들은 와이프가 골랐지만, 딸은 내가 골랐지. 승아야.”
“오, 신승윤, 신승아? 딸도 돌림자 쓰게?”
“그게 편하거든.”
현규는 건배를 하면서 피식 웃었다.
“상황이 절묘하네, 첫째 아들에 돌 지나니 둘째는 딸.”
“그러게? 너랑 똑같구나?”
과거의 삶에서도, 현재의 삶에서도 이 녀석은 아들 하나 낳고, 둘째 딸로 가졌다.
왜 셋째가 안 나왔냐고 하면 이 녀석의 사생활이··· 있었는데, 재환은 그 말은 아꼈다.
‘실제로 요새 맨날 말없이 술먹자고 하는 것도 있고.’
어쨌건 재환은 둘째 태어나고 술자리를 하면서 장난식으로 말했다.
“그래서 둘다 아들딸 하나씩 가진 부모끼리 앞으로 공유할게 많겠어?”
“많지~ 앞으로 유치원부터 교육시키는 거까지 다 도와줄수 있다.”
“아~ 그건 필요하지.”
재환과 현규는 그렇게 말하다가 갑자기 급발진을 했다.
“혹시 아니? 나중에 자라서 같은 학교 가다보니 우리 아들딸들끼리 만날지.”
“크~ 어린시절 애들끼리 결혼약속이라도 한다냐?”
우스갯소리로 넘어갔지만, 실제로 된다면 아주 재밌는 상황 볼 것이다.
자기 아들이 현규 딸과 결혼하던, 딸이 현규 아들과 결혼하던 말이다.
그 말에 자기가 말해도 웃겼는지 피식 웃는 현규와 재환 역시도 딸아빠가 되어서 배를 잡았다.
“아이고~ 뭘 그렇게 재미나게 이야기해?”
“냅둬요. 저때가 가장 좋을때지.”
이미 자식들이 중학교다 고등학교다 입시 준비하는 대현이나 정인은 이제 갓난아기들 기르는 초보 아빠들을 보고 키득거렸다.
“야, 나는 지금 내딸 입시 문제로 죽을 거 같다. 아이고~ 언제 그렇게 컸는지.”
대현의 말에 재환은 진짜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다고 생각했다.
KS가 경선이라 불리던 시절 최대현 부사장 딸이 딱 유치원 다닐 때 나이였으니 말이다.
그 외 다른 육공회 오너들도 각자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주 건전한 육아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아이들 보러 가는 삶이 계속 될 때였다.
“아, 진짜 미치겠네!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혜성게임즈 내에서 길길이 날뛰는 신기환 이사를 보고 재환은 피식 웃었다.
“야!”
“!?”
기환을 포함해 혜성게임즈 임직원들이 재환을 발견하고, 모두 벌떡 일어났다.
“아, 왜 그래? 일하다가 뭐가 그리 막히길래.”
기전실 직원들이 봉투에 가득 담긴 커피와 간식거리를 나눠줬고, 재환은 기환과 같이 업무실로 들어갔다.
그 자리에서 기환은 최근 혜성게임즈의 수익이 악화되는 상황에 대해 말했다.
“형,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졌다.”
“너 내가 말했지? 예시 언급할 때 혜성을 새우라고 말하지 말라고.”
“진짜 그렇게 돼서 그래! 소니아랑 마이크로 컴퍼니 두 놈들때문에!”
뭐 그 둘을 비교하자면 아직까지도 혜성그룹이 쪼~끔 밀리긴 하지만, 그래도 속담이래도 그 표현은 정말 싫었다.
아무튼 담배 한 대 태우면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뭐가 문제인데? 마이크로 같은 경우는 거위츠 회장하고 재단 관련으로 저번에도 서로 만났어.”
“작년에 M-BOX 우리가 독점권 가진 뒤로 혜성전자에서 생산했잖아? 소니아에서는 올해 6월에 PS-3 정식 출시되고.”
“그래서? 우리는 계약한 회사 물건하고, 게임 잘 팔면 되잖아?”
“게임사 담합 의혹이 들어, 제작사들이 각 플랫폼 잡느라 서드파티 애들 움직임도 심하고.”
“흐으음.”
“거기에··· 알지? ITD 뒤통수 맞은거.”
“그걸 뭐 통수라고 할 만 한가?”
재환은 과거 자신이 직접 혜성쇼핑과 합의를 했던 ITD 문제에 대해서 떠올렸다.
‘이름이 사토 미나미였나? 그 아줌마 퇴직한지도 꽤 됐다만.’
한국 백화점과 마트 등의 게임매장에 독점적으로 유통을 누렸다.
그래서 꿀 거 하게 빨았고, 그걸 중심으로 혜성게임즈를 만든 건데, ITD가 결별을 선언했다.
이유는 아예 현지 법인을 만들겠다면서 한국ITD를 설립했다.
다만 자회사였던 프리크게임만 한글화 유통을 남겨서 덕분에 ‘푸키먼 시리즈’ 국내 판매는 아직 혜성 몫이었다.
“사실 휴대용 게임기 때문에 요새 시장이 다시 바뀌고 있지.”
“오락실도 그놈의 바다 이야기~ 작살나더라.”
여러모로 위기인 사업이었다.
“그래서 뭐야? 지금이라도 말 갈아타야 한다고?”
“아니, 소니아랑 마이크로 둘이 싸우는데, 우리가 일방적으로 한 쪽을 들면 안 될 것 같아.”
“음?”
기환은 자신의 준비한 이야기를 재환에게 말했다.
하지만, 재환이 경영은 알아도 게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몰라서 일단 듣고 있다가 사업 기획서 준비하라고 말했다.
***
얼마 후.
재환은 생각난 김에 자신의 1협력사인 라이트 컴퍼니로 향했다.
김명우 사장은 재환을 보자마자 곧바로 달려와서 고개를 숙였다.
“김 사장, 요새 일은 할 만 해요?”
“전부 회장님 덕분입니다.”
초면에는 우스꽝스럽게 시작됐지만, 지금은 훌륭한 1계열사가 되어서 혜성게임즈의 홍보통이 되었다.
게다가 결국 자기 와이프인 미연 친구랑 결혼을 해서 참여도 해 줬다.
“뭐, 일상 이야기는 이쯤 하고, 제안 하나 하려고 합니다.” 재환은 기환이 몇날 며칠 만들어서 가져온 기획서가 담긴 가방을 쓸어만지면서 말했다.
“요새 라이트 컴퍼니가 곧 있으면 중소기업 딱지 떼죠?”
“아직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정부 지원을 받아서 새 먹거리 사업을 만들어야겠죠.”
“네~ 그래요. 그래서말인데 제조업 한 번 해보실래요?”
“제, 제조업··· 네?”
IT기업에서 제조업을 한 번 해볼 생각이 없냐는 말에 명우는 갑자기 긴장했다.
“이번에 저희가 정리하려는 공장이 하나 있는데, 염가로 넘겨드리죠.”
“무슨 공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이크로 컴퍼니의 M-BOX 공장.”
“!!!!”
명우는 그 말을 듣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마이크로 컴퍼니하고 협상을 하는데, 협력사들 통해서 OEM으로 가기로 했어요. 필요하다면 가져가시겠어요?”
공장 하나를 넘기겠다는 말에 명우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자신도 게임 업계에서 오랜기간 있었지만, 게임기를 생산한다는 공장의 인수제안은 큰 건이었다.
“이번에 혜성게임즈가 한 가지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뭐지요?”
“소니아와 마이크로컴퍼니 산하의 게임들을 모두 유통하게 되었습니다.”
“네?!”
비디오게임기를 양분하는 양대 거불의 핵심 컨텐츠들을 모두 국내에서 혜성이 가지게 되었다.
이로써 게임기로 굴리는 웬만한 게임들은 전부 혜성 산하로 들어가 완전한글화와 더빙까지 맡게 된다.
“근데 조건이 이거였습니다. 그동안 혜성전자가 독점적으로 게임기를 생산했는데, 소니아가 그건 정리해 달라더군요. 마이크로하고도 그 말은 했습니다.”
즉 혜성게임즈는 소프트웨어 게임 유통으로 소니아와 마이크로를 모두 포섭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하드웨어 생산을 하던 게임기는 애석하게도 다른 곳에 넘겨야 했다.
근데, 아무에게나 넘기기는 그랬고 게임기 생산 공장은 어느정도 기술력만 갖춘 강소기업 정도면 가능했다.
중견기업을 바라보는 라이트 게임즈는 거기에 딱 들어맞았다.
“원하신다면, 전문 융자회사도 소개해 드리죠.” “하, 하하···.”
“악연도 인연이라고, 팔은 안으로굽는다고 생각 있으시면 말해주세요.”
“시간을··· 좀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열흘이면 되나요?”
재환은 그의 요청에 승낙해주고, 비디오게임기 라이선스 생산에 대한 문제를 정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