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74화 (174/244)
  • 174- 말로만 개혁이라 생각했냐?

    의대를 인수한 뒤로, 고양 명진병원의 스태프들 일부를 강릉으로 옮기고, 의대 내에 있는 교직원들 역시 부속병원을 강릉시립병원으로 돌리는 식으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최근 대학교 재단 문제로 바쁘던 재환은 집 안에서 아들과 놀아주면서 말했다.

    “한 달 정도 강릉에 있으려고 하는데 괜찮아?”

    “아직도 남은 게 많아요? 병원이나 대학교 문제는 시숙 어른이 다 하신다면서요?”

    “어, 그렇긴 한데 그래도 실소유는 나니까. 게다가 병원 운영이니까 좀 더 신경을 쓰고 싶네.”

    재환의 말에 미연은 아이를 안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요새 아이 맡기는 것도 어머니가 다 해주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자주 비우는 것 같아요.”

    “미안해. 할 수만 있다면 다 같이 강릉 가 있으면 좋은데.”

    “차라리 그럴까요?”

    “음?”

    “거기 바다랑 가까워요?”

    재환은 얼떨결에 회장 가족 전체가 바다가 보이는 호텔로 한 달간 떠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둘째 태교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단순히 오더를 내린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회장이 직접 와서 하나부터 열까지 지휘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원래 이 역할을 해야 할 신희지 이사장은 현재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유명한 의대 교수들과 스타 의사들을 영입하러 다니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강릉캠퍼스에 도착한 재환은 하나하나 지적했다.

    “의학 건물이 좀 협소한데··· 부지 남는 곳에다가 새로 지어야겠어요.”

    “아, 예. 회장님.”

    전 명진대 의료원장이었던 이우길 교수는 지방의 낙후된 의대라는 이미지를 전부 벗겨내려고 하는 재환의 의욕적인 모습에 충실히 따랐다.

    “그리고 병원 증축 말입니다. 별관 지으면서 소음 같은 거 잘 막을 수 있겠죠?”

    “네, 그렇지 않아도 건설사가 강원도 내에서 아성병원을 지었던 곳인지라 그쪽에 대해서는 노하우가 많습니다. 일단 기존 환자들 불편하지 않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환은 최종적으로 800병상이 된 경한대혜성병원을 두고 곧바로 음압병실 설치, 의사 증원, 신생아&소아 전문시설, 각종 고급의료장비 도입을 차례대로 할 것이다.

    그나마 박터지는 경쟁이 아닌 영동/영서 합쳐서 2-3곳 남짓할 강원도의 상급종합병원 경쟁일 것이니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지정받는 것은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최종적으로 닥터헬기 하나 지원받으면 강원도 전역 커버 가능인데···’

    재환의 머릿속에는 이미 3D 시뮬레이션처럼 그림이 그려져 갔다.

    일단 이 강원시립병원을 인수한 부지는 굉장히 접근성이 좋았다.

    10년 뒤에 개통할 KTX 강릉 신역 근처이면서, 조금만 더 가면 경포 해수욕장이 있다.

    거기에 인구 23만의 도시 치고 어느정도 인프라도 갖추고 있어서 지금이야 돈지랄 한다고 느껴지겠지만, 향후 의료관광용으로 쓰이기 충분한 부지에 지금부터 투자해둬서 미래를 보기에는 안성맞춤인 사업이었다.

    게다가 강릉역 앞에 혜성쇼핑이 대형마트를 하나 설치한다면 이쪽 상권은 확실히 잡을 수 있었다.

    옛날 같으면 타당성이 어쩌구, 이사회가 어쩌구, 거기에 회장 결재가 어쩌구, 지역사회 인허가가 어쩌구 하면서 고구마 100개는 먹을 답답함 속에서 기다려야 했지만, 전권을 잡고 휘두르니 이리도 쉬웠다.

    “자, 그럼 일단 공사현장은 다 둘러봤고, 안으로 들어갈까요?”

    “네, 회장님.”

    재환은 의료원장을 데리고 집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서류 몇 가지를 요청했다.

    “의사들 월급 명세서가 좀 필요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입니까?”

    “던트, 펠로우등의 전공의들 다 포함해서요.”

    “알겠습니다.”

    전공의들의 급여표 서류와 그들의 근무 상황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나간 재환은 하나하나 읽다가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거··· 이거···.”

    “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혀를 차고 있는 재환을 보고 설마 심기를 거슬렀나 싶어 의료원장이 잔뜩 긴장했다.

    “주 120시간은 어느 나라의 노동법 기준입니까?”

    “아, 그것은 부족한 의사 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기다가 만성 적자를 면치 못하던 명진병원 사정으로 인해서 의사는 늘리지 못하고, 결국 밑에 있는 전공의들만 죽어라고 뺑뺑이를 치다보니 1주일 120시간 근무, 심하면 130시간을 초과한 의사도 있었다.

    그러면서 최저시급 겨우 받는 수준이니 이래서야 정예 의사를 양성하려고 해도 그 전에 속이 곪아갈 것이다.

    “생각 같아선 절반 줄여서 60시간 하고 싶지만, 갑자기 그러면 공백이 생기겠죠.”

    “그, 그렇습니다. 이건 병원 운영 사정상···.”

    “그러니 80시간으로 줄이세요.”

    “네?”

    “부족한 의사 수는 제가 보건복지부에 말해서 영입 더 하겠습니다.”

    어차피 의과대학 인허가는 떨어졌고, 규모도 2배 이상으로 늘렸는데, 그만큼 의료인들도 늘려야 했다.

    “이렇게 사람 갈아 넣어가면서 꾸역꾸역 운영하는 거··· 제가 제일 싫어하는 방식입니다. 최소한의 휴가는 있어야 실수가 없죠.”

    본인 또한 워커홀릭으로 유명했지만, 그만큼 쉴 때는 쉬어야 한다는 지론의 재환이다.

    그렇게 회장의 결정으로 혜성재단 내 레지던트 등의 전공의들은 주 80시간을 보장받게 되었고, 나머지는 지금 전국을 도는 신희지 이사장이 영입해서 충원시킨다.

    재환은 하나하나 바꿔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 공지가 올라왔을 때, 수련의들은 그야말로 환호했고, 내부의 복지 또한 늘려준다는 말에 열악했던 지방 의대에서 대기업 자본 맛을 보고 모두가 꽃길을 걷게 될 거라고 희망에 찼다.

    ***

    “애가 얼마나 바다를 좋아하는 지 몰라요. 덕분에 나도 편해.”

    미연은 출장 따라와서 리조트에서 푹 쉬고 있는 지금 상황이 편한지 아이를 재우고 옆에 앉았다.

    “둘째도 편한가 봐?”

    “호호호, 애기 태명을 바다라고 지어야 할 거 같아요.”

    하루종일 일하고서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재환은 이른 시각 가족들을 재우고 밖으로 나왔다.

    “부쩍 잠이 늘어났단 말이지. 11시 밖에 안 됐는데.”

    재환은 시계를 보다가 술도 안 마셨으니 차를 준비했다.

    김 기사도 잠들고 아무도 자신을 호위하지 않을 때, 홀로 드라이브나 해 볼 셈이었다.

    “가끔은 이런 것도 좋네?”

    혼자 운전을 하면서 강릉 밤바람을 맞으면서 한 바퀴 돌던 재환은 내친김에 낮에 시찰했던 병원이나 한 번 가볼까 해서 돌렸다.

    아마 지금쯤 응급실만 불이 켜져 있을테고, 야간 당직의들이 있을텐데 격려라도 해주려고 에너지 드링크를 잔뜩 준비했다.

    밤이 되었을 때, 병원은 한산했다.

    그리고 한 바퀴 돌았을 때, 재환은 병원 건물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병원 옥상 위에서 인기척이 있으면서 불이 번쩍이는 것이다.

    “뭐야? 병원 옥상에서 무슨 공사하나?”

    재환은 어리둥절 하면서, 에너지드링크 박스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뒷문으로 들어올 때 경비원들이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재환은 조용히 에너지 드링크 한 상자를 올려놓고, 자신의 신분증과 명함을 보였다.

    “우웁!?”

    “회, 회장니···.”

    밤에 몰래 찾아온 회장을 보고서 놀라던 경비원들을 향해 재환은 손가락을 입에 대면서 잠깐 돌아보겠다고 그들을 격려하고 들어갔다.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까지 올라갔을 때, 점점 더 소리가 커졌다.

    그런데 재환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야 이새끼들아, 똑바로 안 뻗쳐?”

    퍽- 퍽- 퍽-

    “!?”

    욕설과 누구를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재환이 흠칫해서 문 밖 너머로 그것들을 계속 들었다.

    “후우우- 인턴들! 니들 일산에서 강릉 넘어왔다고, 정신도 일산에 놓고 왔냐?”

    “아닙니다!!!”

    “강릉은 꿀 빨수 있어서 정신 풀어졌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죄송!”

    퍽- 퍽-!

    그리고서 다시 구타 소리가 들렸고, 재환이 달려갔을 때 그 앞에서는 각목을 들고 하얀 가운 입은 수련의들을 줄빠따 치고 있는 스탭 들이었다.

    재환은 그 광경을 보고 순간 열이 받아 외쳤다.

    “야, 임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갑자기 옥상에 올라온 재환을 보고 줄빠따를 치던 의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뭐야?”

    “이 자식들, 당장 그 빠따 안 내려놔?”

    그때 큰 덩치에 건들거리는 의사가 다가왔다.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는지 앞머리가 벗겨저 빡빡 민 머리였다.

    “아저씨, 뭔데 병원 들어와서 난리에요?”

    “뭐?”

    “아저씨가 뭔데 의사들 있는 자리에서 이 지랄이냐고?”

    재환은 기가 막혀서 웃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누구냐고? 내가 누군데 여기서 난리냐고?”

    재환은 그대로 그 의사에게 외쳤다.

    “내가 니 고용주다 이 새끼야!”

    황급히 재환을 따라 올라왔던 병원 경비들은 재환의 외침을 듣고 수련의들의 줄빠따 현장에서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상황 파악 못 한 선배 의사들은 뒤늦게 경찰이 오고 특수폭행으로 긴급 구속이 된 다음에서야 모든 상황을 알아차렸다.

    ***

    다음날 대노한 재환 앞에서 의료원장 포함, 각 과의 과장들이 와서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특히 의료원장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어제 빠따질 한 놈들 합의 없습니다. 만약에 맞고서도 합의한다는 친구 나오면 같이 병원 내보내세요.”

    “네, 네. 회장님.”

    당근을 먼저 주고 덕으로 운영하려 했더니만 의대 내에서 벌어진 단체 기합과 똥군기로 인해서 재환의 머리는 차갑게 식은 상태였다.

    “그리고 펠로우 이상 과장급들도 한 번 전수조사할겁니다. 지금 자수하면 사퇴로 끝내겠지만, 아니면 내가 고소장 준비할거에요.”

    재환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게다가 더 무서운 것은 재환이 이 상황으로 인해서 증축공사 일시 중단하고서 그동안의 복지 혜택까지도 모두 무효화 시키겠다고 내걸었다.

    “의사뿐만이 아니에요. 간호대도 전수 조사할 겁니다. 만약 손톱만큼이라도 숨기는 거 있다면··· 이 자리에서 매각 공고 올리고 그냥 손 떼렵니다.”

    재환은 단호했다.

    의대의 집합, 간호대의 태움 등의 각종 부조리와 구타, 그리고 군기잡이 등 학부생부터 의료원장까지 전부 불러놓고 하나라도 숨길시 이 의대는 그 자리에서 해체라는 것을 천명했다.

    그리고 수백명의 의대와 간호대 학생들은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익명으로 보냈고, 그중 20%가량을 전부 징계위원회에 올려버렸다.

    이 정도 규모는 상상 이상이어서 냄새를 맡고 서울에서 메이저 언론사들이 강릉까지 찾아왔다.

    재환은 그 상황에서 그동안 의대와 간호대에 대한 각종 가혹행위들을 보도할 때도 그것을 막아줄 의지가 전혀 없었다.

    [폭언에 구타에 피멍드는 백의의 천사들.]

    [가운 입은 군대였다! 점점 더 폭로되는 의대 내의 수련의 대우.]

    [백의의 천사인가, 악마인가? 갈수록 심해지는 의대와 간호대 군기.]

    처음에는 혜성재단 하나였지만, 이내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나는 문제들이 보도되었고, 급기야는 의협과 보건복지부까지 나서서 사태 조사를 하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재환은 단호하게 외쳤다.

    [신재환:우리 병원 이번에 구타, 가혹행위 한 의사 간호사들 전부 경찰서로 보냈습니다. 내부에서 덮기 급급한 감싸기? 저는 그런 거 없습니다. 아예 의료인들을 해외에서 데려오는 한이 있어도 죄다 쓸어낼 겁니다.]

    재환의 단호함 속에서 혜성의 경한의대 내부는 엄청나게 바뀌기 시작했다.

    각 학과의 과장들이 와서 먼저 고개 숙여 학부생과 전공의들에게 사과하고, 밑에서의 부조리 방치 시 곧바로 의사 자리 날려버리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뿐만 아니라 직업 면허로 이뤄진 작은사회와 같아 평생 볼 사이라면서 당해도 신고를 못 하는 분위기도 없애기로 했다.

    [신재환: 다들 결정을 해야 할 겁니다. 평생 가혹행위에 시달리는 사람과 함께 갈 것인지, 아니면 그걸 다 쓸어버릴 나와 함께 갈 것인지.]

    ‘니 위에 선배가 더 무섭냐?’ 아니면 ‘혜성그룹 회장인 내가 더 무섭냐?’라는 택일을 하게 하여서 손찌검 한 방으로도 곧바로 제적시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였다.

    가장 먼저 재환이 봤던 폭행을 일삼던 말차 레지던트와 펠로우급의 의국장과 강사들은 의사 명찰 떼고 합의 없이 특수폭행으로 감방 행.

    게다가 간호사들 역시도 여럿 목이 날아가서 태움 일삼다가 진짜 자기 커리어를 모두 태워버린 이들이 넘쳤다.

    덕분에 재환이 예상한 3차병원 진급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연쇄고리를 끊어버리고, 경한의대, 간호대의 문화 자체를 바꿔버리고 새 인력 수급으로 인해서 아예 싹 갈아치워버렸다.

    그리고 이것은 장기적으로 입결이 올라가면서 내부의 부조리를 일체 날려버리는 재환의 존재감이 점점 더 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