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65화 (165/244)
  • 165-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재환은 아내와 아이를 한 번 안은 뒤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이미 외교부 직원들이 재환을 모시기 위해 차를 대절했고, 경제특사의 대우로 모셨다.

    그때 희경이 떠나려는 재환을 불렀다.

    “이거 가져가라.”

    “뭡니까? 골동품?”

    금으로 장식된 회중시계였다.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물건이었는데, 내부를 열어보니 안에는 혜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우리 회사에 이런 모델은 없는데?”

    “삼신시계 인수할 때, 이건호 회장이 나한테 준 거다. 한때 한정품으로 만든 거라고 하는데, 이제는 네가 써야 될 것 같다.”

    손목시계야 많이 있지만, 회중시계는 멋은 좋아도 번거로운 물건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혜성 회장에게 물려준 보물.

    재환은 품 안에 넣고서 그걸로 현지의 시간을 맞추기로 했다.

    “잘 쓸게요.”

    “몸조심하고, 손주는 걱정하지마! 내가 업어키울거다!”

    “아따, 사돈 걱정하지마쇼잉. 저도 같이 가니께 좋은 사업 많이 딸수 있으니까요.”

    걸걸한 사투리로 희경과 악수한 오현우는 재환과 함께 비행기에 올라탔다.

    퀸 알리아 국제공항은 한국에서 온 경제사절단을 성대하게 맞아줬다.

    반이준 장관이 선두에 서고, 그 뒤로 재경부와 외교부의 고위 간부들이 내린 다음, 재환과 문영 등의 기업인들도 차례대로 내려왔다.

    “와따, 아랍이래서 시커먼 베일 두르는줄 알았드만, 그건 또 아닌갑네?”

    “쉿, 사돈!”

    마이더스 오현우가 무심코 한 말에 재환은 황급히 그를 제지했다.

    레드카펫이 깔리고 요르단의 외교부 장관이 반 장관가 악수를 나누고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가 울렸다.

    재환은 요르단까지 왔으니 여기서 제대로 된 사업 한 번 크게 벌리기 위해 움직였다.

    “أهلاً ومرحبًا بكم حفظك الله!(알라신의 가호가 있기를,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요르단 왕궁으로 초대받은 경제사절단을 첫 인사를 아랍어로 들은 뒤 영어로 대화가 시작됐다.

    요르단 장관의 소개로 총리가 나왔고, 모두가 그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총리 다음으로 온 것은 정복을 입고 당당하게 들어온 요르단 국왕 하심 2세 내외였다.

    세속적인 국가라 히잡대신 서양식 양장을 입고서 인사하는 국왕과 왕비.

    하심 2세는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체구에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패션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온 사절단 인원들과 하나하나 인사하면서 악수를 했고, 재환의 차례가 되었을 때, 싱긋 웃어보였다.

    “미스터 체어맨 신?”

    “네, 그렇습니다.”

    “꼭 와 주길바랬는데, 잘 됐군요!”

    유창한 영국식 발음으로 말하는 하심 2세.

    재환은 그와 악수를 하면서 일국의 국왕이 자신을 꼭 만나고 싶었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이후 반 장관과 외교부 장관 사이에서 회담이 있었고, 경제사절단으로 온 재경부 간부들과 기업인들은 요르단의 수도 암맘 일대에 있는 공장들을 돌았다.

    한껏 준비했지만, 제조업이 부실하여 지방 공단 수준 밖에 안 됐다.

    ‘개발이 많이 필요하긴 하겠네.’

    한 바퀴 돈 다음 마이다스 건설은 요르단의 신도시 사업을 위해, 효령그룹은 중고차 사업단지를 위해서 각각 움직였다.

    그리고 재환과 혜성그룹 임원들이 안내를 받은 것은 암맘 인근의 농지였다.

    임창훈은 요르단 농지를 보면서 설명했다.

    “밀, 감자, 배, 올리브 등이 현재 요르단에 주력으로 짓는 농작물입니다.”

    “그렇군요.”

    “특히 올리브와 밀은 가공처리해서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남유럽으로 수출을 합니다. 그쪽의 올리브유 수요가 엄청나거든요.”

    재환은 이들이 왜 이곳을 안내하면서 설명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혜성바이오에서 국산 농작물을 연구할 때, 과일이 중동에서 아주 각광받는다는 소식을 미리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한테 요구하는게 뭔가요?”

    “포도, 사과, 오렌지 등의 종자를 원한다고 합니다. 특히 포도를 말입니다.”

    “포도라···.”

    “이번 한국 초대는 지난번 일본에서 거봉품종을 원했으나, 협상이 안되서 혜성을 부른거라 합니다.”

    같은 거봉이라는 종자를 가져도 당도와 품질 등이 달라서 원조인 일본산이 안된다면, 한국산을 선택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재환은 그것을 보고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게 과일 씨종자 몇 개 파는 거로 끝날 사업이 아닐텐데 말이죠.”

    아까 국왕을 만나서 따로 언급을 할 정도면 분명 많은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에는 요르단 총리 이하 외교부와 경제부의 고위 공무원단과 한국 사절단의 식사 자리를 가졌다.

    요르단 요리는 처음 먹어봤지만, 대부분이 소와 닭 위주라 먹기에 괜찮았다.

    “제법 괜찮은데?”

    문영은 닭요리 한 점을 먹고는 추가로 주문했다.

    재환 역시 음식이 입에 안맞을까 싶었는데, 이 정도면 충분했다.

    “첫날부터 대접도 좋고, 거기에 각자에 필요한 인프라를 요청하고 거기에 대해서 노동력과 토지 제공이니까.”

    앞으로 며칠간은 정부 관계자들끼리 논의를 하는 가운데 각자의 사업 파트에 대한 협상이 계속될 것 같았다.

    이곳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중동, 서쪽으로는 지중해가 있는 유럽이니 무역 허브로는 그만인 곳이니 말이다.

    “아따, 술이 없는 것이 쪼까 아쉽네잉.”

    오현우는 아랍 국가에서 술을 찾았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제공되지 않았다.

    암만의 럭셔리 호텔은 웬만한 구미 선진국에 비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었다.

    각자의 배정받은 고급 객실에 쉬고 있을 때, 재환은 국제전화로 아내에게 걸었다.

    “아, 그래. 승윤이는 잘 있고?”

    재환이 지어준 이름 신승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인 희경, 희수, 희지라는 희짜 돌림.

    그리고 재환, 기환 등의 환짜 돌림.

    그리고 다음은 승짜 돌림이어서 승윤, 승규, 승준 등의 이름 중에서 미연이 고른게 승윤이었다.

    [아직 미소도 못 지어요. 한 달은 지나야 한 대요.]

    “어, 그래. 태어난지 얼마 안됐으니까.”

    [아버님하고 어머님이 매일 오셔서 아기 사진 찍고 가세요.]

    재환은 아내의 목소리만 들은 뒤로 오랜 통화를 했다.

    그때 갑자기 알림벨이 울렸다.

    “음?”

    룸서비스 시킨 거 없었는데, 누군가 싶어 밖을 보니 정복을 입은 군인들이 있었다.

    “뭐야, 이거?”

    그 옆에는 한국 외교부에서 같이 온 직원도 있었다.

    “다음에도 또 전화할게.”

    재환은 통화를 마친 뒤로 문 밖에서 물었다.

    “뭡니까?”

    [신 회장님? 저 김 영사입니다. 혹시 지금 시간 되십니까?]

    “무슨 일로요?”

    [요르단 VIP께서 뵙기를 청한다고 합니다.]

    “음?”

    재환이 문을 열자 두 명의 요르단 장교가 정중히 경례했다.

    “VIP라니? 누구길래요?”

    “요르단 국왕이십니다.”

    “!”

    재환은 이 시간에 국왕이 부른 다는 말에 일단 옷을 갖춰 입었다.

    그리고 밤늦게 리무진에 탑승해 암맘 궁전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국왕을 뵙기 전 기본 조사와 함께 영사에게 대략적인 정보를 들었다.

    “VIP는 영국군사학교 출신이라 그쪽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슬람교 보다는 세속적인 문화를 즐기시는 분입니다.”

    “으흠, 네.”

    혹시라도 실수가 있을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런저런 조언을 영사에게 들은 재환은 수색을 끝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한 수라상을 차려놓은 하맘 2세가 반갑게 재환을 맞이했다.

    “어서와요! 내가 너무 늦게 불렀나?”

    “아닙니다. 국왕 폐하께 인사 드립니다.”

    폐하라고 극존칭을 쓰면서 인사를 하자 그는 웃으며 앉으라고 안내했다.

    “맥주가 그리웠죠? 한 잔 하시죠.”

    이슬람 국가의 군주가 직접 차가운 맥주를 꺼내 따라주는 모습에 재환은 상당히 파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하, 이거 마실 수 있는 겁니까?”

    “요르단은 미국의 맥주사 크레이프의 기술 이전을 받은 맥주 양조장이 세 곳이나 됩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대놓고 못 마십니다. 하하하! 이렇게나 따로 까는 거죠.”

    재환은 그렇게 야밤에 몰래 국왕과 같이 술자리를 하는 영광을 가졌다.

    이전부터 자신이 꼭 요르단에 와달라는 요청, 그리고 막상 오니 자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걸던 사람이었다.

    “이번에 못 오실 것 같다는 말에 섭섭했는데, 이리 뵈서 반갑소.”

    “사실··· 아이 출산일 때문에 사양을 했었던 겁니다.”

    “저런~ 내 그 사실을 알았다면, 내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그래도 이 만남을 위해서인지 기특하게도 일찍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아주 건강하고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건 좋은 일이죠.”

    재환은 자신보다 7살이 많은 이 사람도 국왕 이전에 아버지이고,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를 그렇게 찾으신 이유가 뭡니까?”

    “경제 문제지요.”

    “한국에는 많은 기업이 있는데, 굳이 저를 말입니까?”

    “세계적으로도, 한국에서도 현재 재계에서는 당신이 가장 유능한 오너라고 하더군요. 하하하!”

    하심 2세는 크게 웃으면서 이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한국과는 많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선왕께서 나라를 다스릴 때, 풍력발전소 공사를 맡겼던게 아성그룹의 정형주였습니다.”

    ‘아, 왕회장···’

    “그 다음으로 백색가전과 통신기기등은 삼신그룹의 그 이건호라는 사람과 내가 직접 협의를 했지요.”

    80년대는 아성, 90년대는 삼신, 그리고 2000년대에 요르단 국왕의 픽은 혜성이었다.

    “국책사업으로 많은 것을 해 보려고 합니다. 일단 전체 경제비율의 6%밖에 안되는 농업부터 개선해서 식품 물가를 낮춰야 합니다.”

    재환은 첫 단추는 일단 혜성바이오의 농산물이라고 직감했다.

    “어떻게 오늘 농지 일대를 보시면서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도운다니요. 경제협력으로 왔으니 그 정도는 당연히 실무진들과 협상하는 거지요.”

    “하하하, 그렇군요.”

    재환은 그 논의 속에서 일단 판교에 짓는 제2연구소 정도의 규모로 요르단농업연구소를 짓기로 협의했다.

    MOU는 MOU인데, 국왕 앞에서 한 말이니 확실하게 지켜야 할 계약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저희 역시 제안드릴게 있습니다.”

    “오호, 뭔가요? 거래이니 서로의 상황을 다 들어봅시다.”

    “중고차 중개무역으로 한국 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요르단 내에서 굉장히 좋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향후 연 20만대 이상의 거래량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중고 말고 새 차는 어떻습니까? 트럭과 천연가스 버스 등을 말입니다.”

    “으으음, 그것은 내가 어떻게 도와야 할지···.”

    재환은 하심 2세에게 자신의 제안을 말했다.

    “군용 트럭, 그리고 각 지역의 시내/시외 버스로 이용하시는 겁니다.”

    “흠.”

    “국책사업이니 폐하께서 승낙만 해주신다면 곧바로 협상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혜성자동차 임원까지 대동했으니 협상도 쉬울겁니다.”

    “군용과··· 지자체용으로 말이죠?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안 그래도 군용 차량 하나하나를 대당 수백만 달러대의 미군 장비로 써서 국방비 지출이 만만치 않았는데, 요구 조건만 맞춘다면 못할 일도 아니었다.

    “내친김에 이 자리에서 더 사업 논의를 해 보죠. 폐하를 앞에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할 말이 많습니다.”

    “하하하! 내가 원했던게 바로 이런겁니다. 역시 오너랑 직접 이야기해서 내 귀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하심 2세는 크게 웃으면서 수많은 사업 논의를 했다.

    먼저 재환은 버스와 트럭 사업을 꺼낸 다음으로 내친김에 신도시를 기획한 마이다스와 협업해서 레미콘과 시멘트 역시도 수출하기로 했다.

    그 다음으로 지난번 KTX개통 이후로 이란과 베트남, 중앙아시아 등에 수출하고, 이후로 박물관까지 지어도 한참 남은 구형 통일호 객차들과 저항 전동차 역시도 수선해서 덤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신형 전기기관차를 구매하는 조건이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논의하자 하심 2세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

    “오늘 이 자리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가는군요.”

    “과찬이십니다. 저도 못 왔으면 어쨌을까 싶습니다.”

    “아, 참고로 이 이야기들은 모두 공식적으로는 드러나는게 아닙니다. 물론 제가 총리에게 언질을 주겠지만 말이죠.”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고, 꽤 늦은 시간 때문에 품 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어이구, 벌써 시간이···.”

    그때 그 회중시계를 본 하심 2세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오, 오랜만에 보는 물건이군요. 시계를 그걸로 쓰십니까?”

    “아, 네. 해외 출장용으로 시간을 맞춰쓰는 용도라서요.”

    하심 2세는 그것을 잠시 달라고 한다음 면밀히 살펴보다가 물었다.

    “나도 개인적으로 회중시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건 브랜드는 아니어도··· 상당히 잘 만든 물건이군요.”

    “아버지께 선물 받은 겁니다.”

    “그래요? 아쉽군요. 개인 컬렉션 중에 하나랑 우정의 증표로 교환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재환은 그것을 보고서 미소를 짓다가 마지막으로 제안 하나 던졌다.

    “그럼 이런거 만들 공장 부지도 한 번 제공해주시겠습니까?”

    “네?”

    “시간을 알리는 것을 넘어··· 공예품으로 한번 시계공장을 만드는 건 어떨까요?”

    그 말에 하심 2세는 무릎을 탁 쳤다!

    “그거 괜찮겠군! 그렇지 않아도 우리 요르단군 내에서 한국산 전자시계를 쓰는 경우가 많소. 군인들 중심으로 한번 시계공장! 내 그거 투자 하겠소!”

    “개발 시간 오래 걸릴텐데요?”

    “우리가 하루이틀 만나고 끝날 사이는 아닌 것 같소만?”

    재환은 요르단 국왕이 알아서 술술 거래를 요청하자 크게 웃으면서 악수했다.

    “여러모로 혜성을 애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그날 이후 재환은 1주일간의 요르단 경제협력기간에서 총 15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사장단을 보내서 다시 한번 만날 것을 국왕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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