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64화 (164/244)
  • 164- 출장불가:일신상의 사유.

    “못 가겠어요.”

    “야 임마, 너 미쳤···.”

    “여보! 말 좀!”

    재환의 거부 선언에 뚜껑이 열린 희경이 한마디 하려다가 명숙에게 제지당했다.

    희경 역시 만삭의 며느리를 보고는 헛기침을 하면서 쩔쩔맸다.

    “아이고, 미안하다. 내가 또 옛날 성격이 나와서···.”

    “아니에요. 아버님.”

    “아니야. 너도 그렇고 손주에게도 미안하구나. 허허허!”

    며느리와 뱃속의 손주를 두고서 사과한 희경은 곧바로 재환의 귀를 잡아당기고 속삭였다.

    “정신 나갔냐? 외교 관계에다가 사돈까지 간다는데, 네가 뭐가 잘났다고 안 가?”

    “아, 상황을 보세요. 상황을!”

    재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안 가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지하자원의 개발과 수출 증대 목적으로 중동과의 외교를 확장했다.

    그 배경에는 2004년 이라크 전쟁과 자이툰부대 파병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쪽과의 외교가 최악으로 치닫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다른 중동국가들을 달래기 위한 경제 협력으로 이란을 시작으로, UAE, 사우디, 쿠웨이트 등의 많은 국가와 순방을 나눴고, 다음 목적지는 요르단이었다.

    그리고 정부가 혜성그룹에 요청을 했다.

    요르단 국왕이 한국과의 경제 교류에 굉장한 관심을 가졌고, 주 사업등에 혜성그룹에 관심을 많이 가져서 경제사절단에 혜성그룹 회장이 와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환은 그 제안에서 ‘직접 참여 못 하니 사장단을 보내겠다.’라고 말했는데, 요르단 측에서도 ‘국왕이 오는데, 경제협력을 논하려면 회장이 직접 와 줘야 한다.’라고 발표했다.

    재환은 요지부동이었고, 결국 외교부와 정치권에서 희경에게까지 요청해서 아들을 설득해달라고 했지만, 이 상황이었다.

    “출산일하고 겹칠 게 뭡니까? 거기 가면 애 태어나는 거 못 본다고요.”

    재환의 그 이유에 희경 역시도 차마 그 이상 말을 못 했다.

    어디까지나 가정에 관련된 일이고, 최근에는 그래서 장기 출장도 가지 않는데, 첫 아이 보기 전에는 안 간다고 선언한 것이다.

    “게다가 효령그룹은 조문영 사장이 간다고 하는데, 왜 여긴 회장이 가요? 우리도 사장급 인물 보내면 그만이지.”

    “규모가 다르잖냐. 그리고 단순히 수출 문제가 아니라 공장 증설까지 있다고!”

    혜성그룹에게 있어서는 아주 큰 건이었지만, 오너의 개인 사정하고 엮여서 이뤄지지 못할 일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듣고 있던 미연은 손을 들면서 재환에게 말했다.

    “저는 괜찮으니까 다녀오세요. 어차피 출산 때는 시부모님하고, 친정에서 다 같이 계실테니까요.”

    “응, 아니야. 내가 안 괜찮아.”

    지난 삶에서 일에만 차여서 아들 출산은 물론이고, 돌이나 입학식때도 제대로 참여 안 했었고 언제나 고립되어 지냈었다.

    다시 한 번 이 삶을 살고 혜성그룹을 반석 위에 올려놓고서 가족들의 관계도 돈독해졌는데, 최근 바쁘게 움직이다가 와이프 임신 사실도 몰랐었다.

    그래서 가족간의 돈독한 관계를 위해 좀 가정적으로 움직이겠다고 생각한 재환이었다.

    적어도 두 번째 실수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 말이다.

    “나 걱정하지말고 출산 준비나 잘 해.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옆에 있어줄테니까.”

    산달이 이제 한 달 남았으니, 이거에 대해서는 재환이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재환은 아내를 챙기고 방으로 데려갔고, 희경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속이 탔다.

    “아이고, 손주 문제다 보니 내가 어떻게 강제로 보낼 수도 없고···.”

    “여보, 당신이 간다고 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요?”

    명숙의 말에 희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빨 다 빠진 내가 가 봐야 소용도 없어. 그 요르단 왕인가 하는 사람이 무조건 재환이 저 녀석을 만나겠다는 거야.”

    어떻게 해결책이 없을까 생각에 잠긴 희경, 그리고 혜성그룹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며칠 뒤. 육공회 모임에 오랜만에 참여한 재환은 다음달 출산 선물로 배넷저고리부터 이것저것 한가득 받았다.

    “결혼부터 출산까지 집 하나 빼고는 전부 알아서들 챙겨주네. 고맙습니다. 형제들이여!”

    “결혼이고, 출산이고 네가 제일 막차잖냐!”

    대현은 멤버장으로써 재환을 챙겨주면서 외쳤다.

    “자~ 이제 진짜 다들 애딸린 아빠들 됐어! 박수!”

    육공회의 규모도 그만큼 커졌고 여기에 있는 오너들만 합쳐도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선물 주는 자리라서 오긴 했지만, 저 오늘은 딱 한 잔만 먹을 겁니다. 와이프 지금 천호동 집에 있어요.”

    재환은 평소에는 좋아하던 술도 가볍게 입술 축이는 정도만 있으면서 식사만 즐겼다.

    그리고 옆에 앉은 문영이 넌지시 물었다.

    “이번에 요르단 가는 거 어떻게 됐어?”

    “나는 못 간다고 전했다. 다른 임원들 보내기로 했어.”

    “쩝, 그렇게 된 거냐?”

    사우디에는 아성차그룹이, UAE에는 삼신그룹이 참여했고, 다른 기업들도 초대를 받아 차례대로 갈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픽한 기업 중 육공회 내에서 요르단 초대를 받은 인원은 효령그룹과 혜성그룹이었다.

    “근데 요르단에 무슨 사업인데?”

    현규의 물음에 문영이 답했다.

    “중고차. 우리가 명색이 국내 5대 종합상사 아니냐? 거기서 필요하다는 거 바리바리 싸들고 간다.”

    국내에서 15만대의 중고차가 중동을 통해 수출되는데, 그 중에서 효령그룹 혼자서 매년 4-5만대를 넘기는 물량이었다.

    그래서 효령그룹은 중동 내에서 큰 손으로 유명했고, 그 중에서도 중고차 시장 허브로 유명한 요르단은 이번에 정식으로 사업을 해서 현지 법인과 함께 투자를 제안했다.

    “그리고 내가 이 녀석들 물건도 팔아주는데, 아예 제작사를 부르잖아?”

    “중동에서 니들 도움이 크긴 했어.”

    재환 역시도 그것은 인정했다.

    특히 중동에서 잘 팔리는 혜성의 상품은 에어컨과 내비게이션, 그리고 시계였다.

    카시G를 뛰어넘는 튼튼한 전자시계를 만들라고 한지도 수 년이 지났는데 어느 정도 쓸만한 제품을 만들어 내서 중동 쪽에 많은 수출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혜성의 앤티크 풍의 벽시계가 그쪽 사람들에게 취향인지 선물용으로 많이 각광받는다고 한다.

    “이번에 가면 시계공장 하나에다가 다른 공장 증설 이야기도 나왔을 거야. 규모가 무려 5억 달러라고.”

    그 정도면 확실히 갈 법했지만, 재환은 고심 끝에 반려했다.

    “아예 안가는 것도 아니고 사장단 보냈으니까 협상자리를 마련했어. 그 사람들 엄청 유능하다고?”

    정 안되면, 재환이 직접 아이 낳는 거 보고, 하반기에 직접 움직여서 그 정도의 규모를 다른 나라에서 따 내보려는 계획까지 가졌다.

    “에휴, 상황이 꼬여서 뭐라고 말도 못하겠네.”

    문영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고, 현규는 그 심정 아주 잘 안다는 듯이 재환에게 잔을 채워줬다.

    생각해보면 저 녀석도 E-삼신 프로젝트로 고생했하다가 첫 아이 태어났을 때, 제대로 지내지도 못하고 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아빠와 아들이 따로 살았으니 말이다.

    “딴 사람은 몰라도 난 진짜 그 심정 이해한다. 게다가... 너라면 시간 충분히 가져서 다른 사업으로 그 정도 스케일은 만들 수 있잖아?”

    재환은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듯, 따라준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때였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에 재환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재, 재환아! 당장 병원으로 와!]

    어머니였는데, 숨 넘어갈 정도로 다급한 목소리였다.

    “뭐예요? 설마?”

    [천호동 처가에 있다가 갑자기 진통이 왔대!]

    “아니, 예정일이 다다음주인데 왜···”

    원래였으면 오늘도 거기서 쉬게하고, 천천히 병원과 산후조리원 준비하려고 했는데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젠장!”

    예정일보다 훨씬 빠른 진통에 급하게 병원으로 갔다는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전화를 끊자마자 재환이 외쳤다.

    “아, 썅!! 나 당장 삼신의료원 간다!”

    “!?”

    “야, 왜 그래?”

    다른 육공회 멤버들은 별안간 외치면서 일어난 재환을 보고서 어리둥절했다.

    그 순간 요새 한약먹는다고 혼자 술 안 마시던 진용이 다가왔다.

    “···야! 설마 제수씨 산기 있다냐?”

    “젠장!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는데!”

    “야, 뭐야? 진짜 지금 태어난대? 야, 당장 가자!”

    대현 역시도 바로 프런트에 연락해 차 준비하게 한 다음에 달려갈 준비를 했다.

    그렇게 KS호텔에 있던 재벌가 오너들은 각자의 차를 준비하게 한 다음에 곧바로 삼신의료원으로 향했다.

    차에 탄 뒤로 재환은 옆에 있는 친구들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미친 것들아. 왜 다들 따라나오고···.”

    “그래도 명색이 혜성그룹 3세가 태어나는건데 다 가줘야 하지 않겠냐?”

    현규가 대쉬보드에 있는 구강청정제를 꺼내서 입에 뿌렸고, 그러면서 한 마디 했다.

    “차라리 큰아버지 댁인 제일병원을 안내할걸. 거기가 원래 산부인과 전문이라 지금 시간까지 의사 많을텐데.”

    “아, 지금 와서 그런 말 필요 없고. 기사양반! 무조껀 밟으쇼! 여기서 일원동까지 얼마나 걸려?”

    “바, 바로 가겠습니다!”

    다급히 대현 손에 이끌려 재벌들 탄 차량을 운전하게 된 KS호텔의 호텔리어는 밤 10시에 미친 듯이 엑셀을 밟았다.

    끼이이이익-

    삼신의료원 앞에서 스키드마크와 타이어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밟은 뒤로 문이 열리면서 재환이 황급히 뛰쳐나왔다.

    삼신의료원 내 산부인과로 달려가자 황급히 달려온 담당의와 가족들이 보였다.

    “아이고, 왜 인제 오냐?”

    “너 이자식··· 아이고···.”

    희경 내외와 장모님이 모인 자리에서 재환은 고개숙여 사죄하면서 의사에게 물었다.

    “어, 어떻게 됐습니까?”

    “네, 지금 지금 출산 전에 산모 척추에 마취주사 접종이 끝났고요. 이제 분만실로 갈 겁니다.”

    “후우···.”

    “분만실 가기 전에 산모 분 보시겠습니까?”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고, 마스크를 쓰고 소독을 한 다음 들어왔을 때 안에서는 배를 움켜쥐고 식은 땀에 온몸이 젖어있는 미연이 있었다.

    “괜찮아?”

    손을 잡고 물을 때, 미연은 재환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얼굴은 보고 들어가네요. 몇 시간 걸릴줄 모르는데··· 크으읏!”

    어금니를 꽉 깨물고 진통에 몸부림 치는 아내를 보고 재환은 손을 잡아줬다.

    “그런 거 생각 말고 순산해야 돼.”

    그 말에 미소를 지은 미연이 분만실로 들어갔고, 밖에는 육공회 멤버 전원과 재환의 가족들이 기다렸다.

    “아이고, 그래도 여기까지 어떻게들 다 와주셨어요?”

    “아닙니다. 저희가 애아빠를 붙잡아서···”

    현규가 상황 설명을 해주면서 인사를 나눴고, 뒤늦게 헉헉거리며 한수호 의원도 뛰어왔다.

    “어, 어떻게 됐어?”

    “지금 막 분만실로 들어갔어요. 외손주 볼 양반이 인제 와서!”

    “아, 그래? 휴우우-”

    모두가 기다리는 동안 초조해졌고, 그 자리에서 수 시간이 걸려 새벽까지 되는데도 누구 하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렸고, 의사가 나왔다.

    “축하드립니다. 3.3kg의 아주 건강한 아드님입니다.”

    그 말을 들은순간 명숙이 입을 막고 주저앉았고, 희경과 재환은 바로 물었다.

    “산모는요?”

    “네, 아주 건강합니다. 지금 치료실로 들어갔습니다.”

    재환은 그 말을 듣고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았다.

    “와! 아들이라네. 박수! 박수!”

    대현이 박수를 치고, 현규가 쓰러진 재환을 일으켜줬다.

    “고생했다.”

    “아이고, 기어이 남아줘서들··· 다들 고맙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아들이 태어났고, 양가 부모님들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 얼싸안았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서 신생아실에 있는 아이가 간호사의 품에 안겨 유리창 밖으로 드러났고, 재환은 휴대폰을 들어 카메라로 찍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출생신고부터 각종 서류 정리하고, 치료 후 예약된 산후조리원 준비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현규는 아침에 의료원장까지 불러서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했고, 육공회 멤버들이 준 베넷저고리와 영양제 등의 선물을 전해줬다.

    “후우-”

    재환은 아들 한 번 안아본 뒤로 진이 빠져서 병실에 주저앉았다.

    누워있던 미연은 웃으면서 재환의 손을 잡았다.

    “다음주면 거의 다 회복된다고 하니까 퇴원 준비 하려고요.”

    “산후조리원이 중구라는데 괜찮겠어?”

    “거기가 우리나라 제일이라면서요? 푹 쉬고 돌아올게요.”

    “아무튼 고생했어.”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병을 온 일행이 있었다.

    “아이고, 우리 딸!”

    장인어른이 한수호 의원과 같이 온 사람들이었다.

    한 의원 옆에는 단정한 인상에 노인이었다.

    “신 회장님. 득남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 장관님이시군요.”

    외교부장관 반이준.

    훗날 UN 사무총장까지 되는 거물이었는데, 소식을 듣고 바로 찾아와 직접 선물을 가져온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장관님이 직접 오셔서···.”

    “동향사람이거든. 같은 충북 동지지.”

    재환은 일단 자리를 안내해줬고, 반 장관은 미연에게도 축하 인사를 하면서 돌미역과 같이 꽃바구니를 선물했다.

    재환은 외교부 장관이 직접 온 것을 보고 설마 이 자리에서 또 요르단 말을 하겠냐 싶었다.

    반 장관 역시도 그 상황을 아는지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득남에 대한 축하 이야기를 하면서 혜성그룹도 넌지시 언급했다.

    “앞으로 혜성그룹의 미래가 될 건강한 아드님이라 들었습니다.”

    “아, 네.”

    “앞으로 세계적으로 상장할 혜성그룹에 정말 영광이 아닙니까?”

    “네···.”

    결국 보다 못한 한 의원이 말했다.

    “이번 사업 규모가 크다고 들었는데, 미연이는 나랑 아내가 돌볼 테니까 그 요르단 건 다녀와도 되지 않겠나? 그룹 일인데 회장이 쉽게 포기 못할 일 아닌가?”

    “···으음. 100일까지는 활동 안 하려고 하는데요.”

    “그때 미연이 재환의 손을 잡고 말했다.”

    “다녀와요.”

    “내가 어딜···.”

    “우리 아기가 기특하네요. 아빠 사업 때문에 못 가니까 이렇게 먼저 태어났잖아요?”

    이제는 됐다면서 담담하게 말하는 아내를 보고 재환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이나 신경 쓰지 당신이 회사 일을···.”

    그렇게 말은 했지만, 걱정 말고 다녀오라는 말에 재환은 고심끝에 결국 결정했다.

    5억 달러 규모의 사업이라고 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첫 아이 태어난 선물로 좀 더 크게 놀기로 했다.

    돌아올 때 선물로 해주려고 10억 달러는 넘게 사업을 추진하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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