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60화 (160/244)
  • 160- 정책을 파토냈습니다, 네 또 제가요.

    재환은 현규와 청담동 와인바에서 만나 가게를 점거하고 둘만의 이야기를 나눴다.

    “GH카드를 먹으려고 했어?”

    “지난번 신용카드 활성화 이후로··· 결국 마구잡이로 현금서비스 남발하던 GH가 결국 매각을 선언했지.”

    “아, 카드대란···.”

    한때 재환이 지하자금의 쩐주들을 잡기 위해서 살짝 움직였던 신용카드 버블.

    거기에서 GH는 전자에서 삼신과 라이벌을 가지면서 금융업까지 진출해서 마구잡이로 카드를 뿌렸다.

    삼신이야 재환의 경고로 웬만한 신용 아니고서는 자제하라고 요청했고, 삼신의 프라이드도 있어서 양반장사만 했지만, 다른 카드사는 아니었다.

    결국 대학생, 비정규직, 은퇴 직장인 가릴 거 없이 마구잡이로 현금서비를 풀어준 결과 업계 1위의 점유율을 가지고 내부에서 터진 빚더미로 법정관리가 되었다.

    정부가 채권단을 만들고 신용카드 대출로 인한 신불자 250만명을 넘어서 뽑아든 칼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여기에서 또 엉뚱한 짓을 했다.

    “원래였으면 삼신카드가 인수하는건데, 그걸 어깃장 놔서 SH에게 준다··· 네 말은 그거 아니야?”

    “그러니까! 이거 너무하잖아. 썅!”

    E-삼신을 적자 없이 가까스로 이끌어나간 뒤로 여기저기에서 삼신그룹 내에 해결사로 움직이게된 현규였다.

    마음의 짐을 털어내니 나름의 경영능력으로 소방수가 되었고, 이번에 금융업 쪽으로 자신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 GH카드 인수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았다.

    결국 이렇게 해서 삼신과 혜성은 다시 손을 잡았다.

    “그럼 쉽게 가자고, 너희가 노리는 건 GH카드 먹으려는 SH 막는거지? 우리 역시 조아은행이 SH에게 먹히는거 용납 못해.”

    “그렇지.”

    “좋아. 그럼 한 번 이야기를 계속 해 보자고.”

    두 재벌 오너 친구는 의기투합해서 다음날부터 좀 더 크게 움직이려고 했다.

    ***

    [정부의 은행 길들이기? 멋대로 인수합병을 부추긴다.]

    [GH카드 매각, 일방적인 입김만 가득해.]

    [조아은행 ‘우리는 인수될 정도로 작은 곳이 아니다!’]

    신문사들이 너나할 것 없이 정부의 SH금융지주 만들기 프로젝트에 재를 뿌리는 기사를 마구 갈겨댔다.

    그로 인해서 뉴스에서는 ‘왜 SH-조아의 합병이 문제인가?’ 등으로 이번에도 전문가들을 초빙했다.

    재환은 회장실에서 그 기사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정부가 어떻게 움직일지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이현찬(국무총리): 단호하게 말하겠습니다!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하고, 한국 자체의 대형 금융지주가 있어야 국제 자본에게 휘둘리지 않습니다.]

    이전에 오다가다 한 번씩 봐서 인연이 있던 이 의원이 국무총리에 올라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모양새였다.

    거기에 과반석의 여당이 된 열린평화당 역시도 ‘대형금융지주’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정책을 지지했다.

    조아은행은 연일 파업을 하면서 여의도 증권가에서 시위하는 모습이 경제/사회면 메인 단골 기사로 나왔다.

    재환 역시도 뒤쪽으로는 조아를 도와주고 있었고, SH에 움직임에 대해서 계속 예의 주시했다.

    그때 정부가 보다 못해 혜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

    “세무조사요?”

    “이, 이런 식으로 기습적인 세무조사라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기전실의 임원들과 사장단이 모여서 새벽까지 긴급 회의를 해야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재환은 이번에 대해서는 담담했다.

    “한 번쯤은 이렇게 들이받을 거라고 생각했죠.”

    “회장님,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세무조사 들어오면···.”

    “우리가 뭐 탈세했습니까? 아니면, 제가 비자금 금고열쇠를 여러분에게 맡겼습니까?”

    물론 둘다 아니었다.

    재환이 회장에 즉위한 뒤로 언제나 ‘정권 차원에서 기습적으로 기습 세무조사에 언제나 대비해라!’라는 오더를 내렸고, 거기에 대해서 철저한 자금 운용을 위해서 혜성의 재전은 탄탄했다.

    “절세다, 탈세다 애매하다 싶으면 그냥 내라고 했어요. 다들 기억하시죠?”

    모든 사장단과 기전실이 고개를 끄덕였고, 재환은 여기에 대해서 어디 한 번 먼지가 나올지 털어보라고 몸을 펼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국세청에서 조사를 할 때, 직원들은 아주 차분하게 업무에만 매진했다.

    프린터를 열라고 해도 그러려니, 하드를 개봉하라고 해도 그러려니 하면서 진짜 막아내는 모습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반응에 되려 국세청이 ‘얘들 얼마나 당당하길래, 이렇게 무반응이냐?’라고 당황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혜성을 건드릴 패가 세무조사 하나만 있는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재환이 유니콘 재단 후원식에 왔을 때 참여한 정치인들을 통해 알려졌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살짝 벗겨진 머리에 금테 안경이 빛나는 인물은 국무총리 이현찬.

    현 정권의 최대 실세라 불리는 자였다.

    재환은 재단의 밤에서 정치인들 한 둘 오는 건 시큰둥한 일이었으나, 국무총리가 직접 온 것에 대해서는 매우 놀란 얼굴이었다.

    “자, 악수나 같이 하시죠? 하하하!”

    오히려 먼저 손을 내밀자 재환은 수많은 카메라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손을 잡았다.

    물론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숙이는 사진 따위는 절대 남지 않게 빳빳한 모습으로 말이다.

    “세계적으로 인재를 유치하고, 기존의 취업률을 위해서 청년들 후원해주는건 역시 혜성이 제일입니다.”

    “과찬이십니다. 모두 기업의, 그리고 나라의 밑거름이 될 프로젝트이지요.”

    “젊은이를 거름이라고 표현하신거요?”

    “?!”

    이현찬이 슬그머니 말을 걸고 기자들이 뭔가 쓰려고 하자, 재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제 말을 잘 못 이해하셨군요. 사람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밑거름이라고 표현한겁니다.”

    혹여라도 딴 소리 안나오도록 부연 설명을 해주자 이현찬은 여전히 능글거리는 웃음으로 재환과 동행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현재 나라 지원이 얼마나 갔습니까?”

    “유감이지만, 작년부터 받은 게 없습니다. 어떻게 지원해 주신다면 감사히 운영하겠지만 말입니다.”

    “허허, 나랏돈이 이런데 쓰이기는 힘들죠.”

    이현찬은 집요하게 재환의 말에 꼬투리를 잡으려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비서진들은 조금의 자제도 요청하지 않았다.

    아예 대놓고서 ‘나 너랑 싸우러 왔다.’라는 분위기를 보이는 이현찬을 보고서 재환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대응했다.

    그리고 행사가 절반쯤 진행되어서 흡연실로 털레털레 향했을 때, 그 안에는 뜻밖에도 이현찬이 있었다.

    “어이구, 회장님도 애연가셨습니까?”

    “아, 네.”

    “이리 앉으세요. 같이 피시죠.”

    나이차가 15살이 넘었지만, 별로 신경은 안쓰는지 의자를 건네며 앉으라고 한 다음 디스플러스 한 대를 연달아 문 이현찬이었다.

    서로 불을 붙여주고 한 대 피는 자리가 될 때 이현찬이 조용히 말했다.

    “요새 나라에서 금융기관 문제로 시끄러운데, 혜성도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본인이 세무조사 오더를 내리고서도 놀리듯이 말하는 것을 보고 재환이 대답했다.

    “시끄러울 것도 없습니다. 애초에 걸릴게 없으니까요.”

    “허허, 정말 그럴까요?”

    “총리님께는 실례되는 말이지만, 마치 혜성그룹이 뭔가 하나 걸리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재환의 돌직구에 이현찬은 허허 웃으면서도 눈 옆에 실핏줄이 돋아나고 있었다.

    “뭐 국내야 깔끔하다면, 해외쪽에 대해서도 깨끗하겠죠?”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냥 뭐··· 홍콩 쪽에서 투자은행 여러개를 대주주로 두셨던데, 그건 금산분리가 어떻게 걸리는지 궁금해서요. 아이고, 내가 금감원장하고 저녁약속이 있는데 그때 물어봐야겠네?”

    “!”

    재환은 이 자리에서 100% 확신했다.

    최근 일본에서 크래프트를 포함한 육공회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홍콩 증권사 지분들을 노리고 있다.

    자칫하면 혜성그룹 뿐만 아니라 그 지분을 나눠서 투자한 육공회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인간이 정말 목줄을 잡으려고 하는구만?’

    재환은 속으로는 끓어도 태연한 얼굴 속에서 담배를 태웠고, 이현찬은 조용히 일어났다.

    “읏차, 이만 가보겠소.”

    문을 열고 대기하고 있는 국무총리 비서관들에게 가려던 이현찬은 넌지시 한마디했다.

    “젊은 나이에 좋은 성과를 거두신거 잘 알지만, 국책사업에 재뿌리는 짓은 그만 하시길 바라오.”

    “네?”

    “아, 장인이 한민국당 출신이셔서 더 그런건가? 그럼 내 그분하고도 식사를 해야겠군.”

    교묘하게 선을 넘으면서 자신을 긁어대는 이현찬을 보고서 재환은 진짜 저 양반 저렇게 날뛰다가 큰 코 다칠 거라고 분노했다.

    그리고 남은 행사를 이사장인 김범준에게 맡기고 저녁 모임 다 취소한채로 회사로 돌아갔다.

    ***

    “확실해요?”

    “그렇습니다. 이미 일본 현지에서 여러번 연락을 하고, 그쪽 상황을 교차검증까지 해서 가져온 겁니다.”

    일본에 수많은 증권사들이 홍콩 금융사를 노리고, 목적은 육공회의 지분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이었다.

    이러면 재환이 구상한 한국-홍콩 금융 허브는 무너지고, 일본이 역으로 홍콩과 대만을 넘어 싱가포르까지 이어지는 금융 벨트를 만들 수 있었다.

    “이놈들이 일본에 돈을 받았나···.”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제 생각에는···.”

    “음?”

    “일본이 아니라 민단 같습니다.”

    임창훈의 말에 재환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이제껏 받은 수많은 명함들 중에서 하나를 찾아 꺼냈다.

    “역시 이런건 오래 가지고 있을 일이군.”

    과거 서울역 민자역사 사업때 샤를로트와 같이 들어왔던 민단의 거두, 김희철 회장의 명함이었다.

    재환은 국제전화를 걸어서 반갑게 인사를 했고, 몇 년이 지났지만 반갑게 인사해주는 김희철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아주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나 민단에서 물러나 이빨빠진 호랑이 된지 오래요.]

    “아이고,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어둠의 쇼군’이라는 별명이 있으시다면서요.”

    [옛날 일이지··· 지금은 픽서 놈들 농간에도 할 수 있는게 없소.]

    “픽서··· 그게 누굽니까?”

    재환은 일본에서 통용되는 음지의 로비스트, 해결사들을 칭하는 ‘픽서’의 존재를 들으면서 그중에서 어떤 픽서가 이걸 관여하는지 떠올렸다.

    [이 정도 큰 그림은··· 많긴 하지만 리 회장이나, 고 회장이려나?]

    “둘 중 하나가 유력하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재환은 전화를 마치고서 다음에는 일본 가서 직접 인사를 드리기로 한 다음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민단 낀거 확실하고··· 그때의 임원들 물러난거 확실하고··· 거기에 픽서가 껴서 홍콩 증권사 노리고, SH은행 대주주인 애들 움직이는거 확실하고···.”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몰라도 참으로 영악하게 움직이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제 재환이 그 설계 상황을 이해했으니 이제 반격이 있을 차례였다.

    “재밌네? 그럼 어디 대답을 해 줄까?”

    ***

    재환은 지난번 김낙진 국장이 말했던 언론계 거물들이 모이는 자리에 넌지시 참여했다.

    “아이고, 신 회장님을 이제야 만나게 되니 정말 영광입니다.”

    “지난번엔 제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결례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한국방송공사 사장부터 해서 CBM사장, 대한일보 사장, 삼우일보 사장 등의 인물들이 모였고, 국장급 인물들이 술따르고, 음식 주문하는 자리였다.

    “저만 유일하게 비 언론인이긴 한데··· 이 분위기 보면 묘하네요?”

    “하하하, 오늘은 저희가 초대한 것이니 마음껏 손님으로써 드시면 됩니다.”

    KBC사장의 말에 재환은 술자리가 어느정도 무르익었다고 생각했을 때, 넌지시 입을 열었다.

    쨍-

    일부러 젓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기면서 흥얼거리던 재환은 그 속내를 털어놓는 ‘시늉’을 했다.

    “요새 정말로 힘든일이 있어 죽겠습니다.”

    “네?”

    다른 사장단이 어리둥절할 때 재환은 손사래를 쳤다.

    “아~ 이거 오프 더 레코드에요. 오프더 레코드!”

    재환은 그러면서 떡밥을 살포했다.

    “여러분 요새 일본이 또 난리잖아요?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하고 말이야.”

    “아이고, 일본애들 그러는거 한두번입니까? 요미우리나 산케이나··· 같은 언론인이지만 걔들 너무해요.”

    신문에서부터 다케시마라고 표현해서 반일감정이 극대화된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재환은 소주를 글라스에 가득 채우고 말했다.

    “땅 가지고만 뭐라고 하면 말이라도 안하죠. 일본 자본이 우리나라 은행을 먹으려고 하는데 말이에요?”

    “네?”

    “아, 그거 설마··· SH은행 말하시는겁니까?”

    하나둘씩 뭔가 엄청난 기사거리라 생각하고 슬금슬금 관심을 가질 때, 재환이 말했다.

    “민단이고, SH고 뭔 잘못이겠습니까? 배후에 픽서라는 놈들이 홍콩하고 한국 금융시장 먹고서 트라이앵글 만드려는게 문제지.”

    “누, 누가요? SH가요?”

    “에효··· 정부가 통합 추진을 하려고 하니 일개 기업인이 뭘 어떻게 할수도 없고, 그저 씁쓸할 뿐입니다. 조선시대때부터 한국의 상징인 은행이 일본자본에 먹힌다니···.”

    알만한 건 다 아는 언론인들이지만, ‘픽서’라는 배후존재와, ‘홍콩 금융사 지분 매수’라는 엄청난 떡밥에 대해서는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그리고 재환은 그 분위기 속에서 글라스에 담긴 소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말했다.

    “아~ 이거 분명히 말했어요. 오프 더 레코드라고, 오프 더··· 구두 계약도··· 효력 있다니까.”

    재환이 그렇게 말하면서 술 좀 깨겠다고 나갔을 때, 각 신문사와 방송국 사장들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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