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54화 (154/244)
  • 154- 갑자기 든 생각.

    “위에서 뛰어난 오너가 모든 걸 개혁하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야 한다.”

    재환의 중얼거림에 옆에서 듣고 있던 육공회 친구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놈이 포커하다가 깨달음을 얻었나?”

    “하나부터 열까지 뭘 시키려고?”

    정인과 현규의 말에 재환은 조용히 카드를 덮으며 말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요새 개혁! 개혁!을 외쳐도 진짜 이게 실무진에게는 와닿나 해서.”

    “혜성그룹 잘 하고 있잖아?”

    현규의 말대로 혜성그룹은 97년 재계 25위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해서 지금은 탑 5(삼신, 아성, KS, GH, 대화)를 위협하는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 모든 것이 신재환의 입사 이후로 벌어진 성장세였다.

    게다가 현재 재계 1위의 삼신 이건호 회장까지도 ‘내 친아들이 아니라 아쉬운 녀석’이라는 한탄을 할 정도로 인정한 경영자였다.

    하지만 재환은 아직도 뭐가 부족한지 홀로 중얼거렸다.

    “내가 오더를 내려도 전체가 바뀌지 않아.”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역사는 바뀌어도 문화가 바뀌진 않는다는 말이다.”

    “!?”

    재환의 말에 포커를 치던 정인과 현규 뿐만 아니라 다른 육공회 멤버들도 귀를 기울였다.

    “뭐 재미난 이야기 같은데, 다 들어도 되냐?”

    대현의 말에 재환은 조용히 카드를 섞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우리 야구팀 혜성 타이거즈의 신구장착공식 이후로 오랜만에 야구팀 관여 좀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직도 심하더라고요. 운동선수가 후배들 패는 일이요.”

    재환의 말에 각기 스포츠 구단을 가지고 있는 재벌가 사람들이라 한마디씩 했다.

    “나도 야구부 있던 신일고 출신인데, 어우··· 애새끼들이 빠따로 공을 치는게 아니라 후배들 궁둥짝만 갈기더라.”

    “그래도 요새는 빠따 안치더라고요. 정강이 때리는 그 쪼인트인가? 일단 무기는 안 써요.”

    대현이나 정인 같은 40대 넘어가는 사람들은 야구부뿐만이 아니라 일반 학생들도 선후배 사이에 군대놀이하던 곳이었으니 더 심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강남 고교생들 패싸움으로 칼부림도 있던 ‘말죽거리 잔혹사’ 시절이니 말이다.

    “나랑 현규도 같은 학교 나왔으니 그런 분위기 잘 알죠.”

    그때 진용도 껴들었다.

    “야! 생각해보니 나도 같은 재환이 너랑 현규랑 같은 학교인데?”

    “어, 그래? 근데 너는 왜 기억이 없지?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 말은 그거에요.”

    재환은 담배 한 대를 물고 불을 붙이며 말했다.

    “내가 구단주 즉위한 후로 프로선수들끼리 줄빠따니 원산폭격이니 가혹 행위 하면 다시는 야구계에 발 붙일 생각 하지 말라고 했죠. 근데··· 안 걸리게 몰래 애들 패는 게 나오더군요.”

    스타 플레이어 출신 코치 한 명이 숙소에서 똑바로 하라면서 선수들 집합시키고 발길질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시즌 중에 바로 경질해버렸다.

    갑을관계가 너무 심한 체육계 선후배 사이라고 넘기기에는 재환의 심기를 거스른 일이었다.

    그리고 재환은 전체적으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혜성의 시대. 혜성 2기의 시작, 퀄리티 유지하는 BQ시스템, A급 협력사 모임으로 상생경영··· 전부 제가 했거든요?”

    그러자 육공회 멤버들은 재환이 뭘 그렇게 신경 쓰는지 알 것 같았다.

    “과연··· 이게 지금 제대로 지켜지긴 할까요?”

    눈으로 보이는 매출은 높아지고, 불량률은 낮아진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원론적인 의문에 빠진 재환이었다.

    재환의 그 고민에 현규가 카드를 받으며 말했다.

    “그런거 확인하라고 감사팀이랑 비서실이 있는거 아니야?”

    삼신의 미전실, 혜성의 기전실 같은 단순 그룹 회장의 보좌 말고 전체 계열사를 컨트롤 타워 역할의 존재가 그것을 잡아내는 이야기다.

    “근데 그 감사팀은 믿을 수 있을까?”

    “그거 못 믿으면, 경영하지 말아야지.”

    “그건 나도 알아.”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

    일단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말며,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

    재환 역시도 믿은 사람에게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야구 이후로 갑자기 생긴 의문에 대해서 한 번 쯤 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회장 직권으로 고삐가 얼마나 조여졌는지, 전 계열사를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

    재환은 기전실 전 임직원을 동원해서 전 계열사에 대대적인 감찰을 시작했다.

    각기 본사팀, 혜성전자팀, 혜성유통팀, 혜성자동차팀으로 나뉘어서 대대적으로 실시한 감찰에 강남 본사는 등대와 같이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재환 역시도 집에서 검토 서류들이 담긴 노트북을 가져와 하나하나 세밀히 면밀히 따져봤다.

    그 모습을 본 미연은 새벽까지 일하는 남편을 뒤에서 안아주며 조용히 속삭였다.

    “무슨 일인데, 집까지 가져와서 처리해야 돼요?”

    “전 계열사 감찰. 그래도 정리가 잘 돼서 보기 편하네.”

    재환은 일하면서 뒤에 안긴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새벽 2시쯤에 업무를 끝냈다.

    한 달 동안 꼼꼼히 살펴본 결과 대부분이 아주 양호했다.

    다만 재환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건, 지방 계열사에서 몇몇 불미스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혜성 쇼핑의 영업 백마진, 혜성 자동차 계열사에서 거래처에 접대, 법인카드 남용.”

    “죄송합니다. 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이런 암덩어리들이···.”

    임창훈이 기전실 전 직원을 대동해 탈탈 털어내서 나온 결과들이었다.

    그래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사례여서 징계위원회에 모두 회부하기로 하고 이 정도에서 끝내기로 했다.

    “회장님, 그런데 갑작스럽게 이렇게 전 사 감찰을 하신게··· 혹시 정부에서 세무 조사 예고 들으신 겁니까?”

    “그건 아니고요.”

    드르륵-

    재환은 서랍을 열어 묵직한 노란 봉투 세 개를 꺼내 책상위에 올려놨다.

    “가장 우수한 1.2.3위 팀도 있군요. 여기 세 팀은 이거 상여금으로 전달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렇게 혜성그룹 전 임직원을 탈탈 털어서 비리는 잡아내고, 우수 팀원들에게는 상여금과 인사평가에서 승진 점수를 잔뜩 주어서 사기를 북돋았다.

    그로 인해 회사 내에서는 회장님이 직접 개입해서 ‘잘하는 직원들 상주고, 못하는 인간들 다 쳐냈다.’면서 호의적인 분위기를 이끌었다.

    재환은 그 뒤로도 업무를 보다가 가끔 생각나면 본사나 계열사를 돌면서 불쑥 나타나 금일봉을 주고 가거나, 야근하는 직원들 야식 시켜주고 격려 하는 등으로 점점 아랫직원들과 동화되고 있었다.

    그렇게 움직이던 재환이 오늘도 한 번 계열사 방문을 위해 본사에서 떨어진 구로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곳은 혜성쇼핑과 혜성 코멧닷컴, 혜성홈쇼핑 등의 수많은 온/오프라인 마켓에 고객 상담을 하는 곳이었다.

    복도만 걸어도 각종 전화벨 소리와 여직원들의 상담 내용이 울렸다.

    “다들 고생하는데 격려라도 해 줘야 하는데···.”

    그때 갑자기 사무실 한 곳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울렸다.

    “꺄아아아악!”

    “뭐여, 이거?”

    재환은 소리가 난쪽으로 달려갔다.

    문을 연 순간 비명을 지른 당사자로 보이는 여성이 졸도해 있었고, 다른 텔레마케터들은 다급히 통화를 정리하면서 걱정스럽게 지켜봤다.

    그리고 화가 잔뜩 난 팀장이 그 전화기를 받으며 말했다.

    “아줌마! 대체 몇 시간째에요? 전화 끊습니다!”

    수화기를 거칠게 집어던지며 고객 응대하고는 전혀 거리가 먼 아사리판을 본 재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들은 회장님이 그 모든 광경을 봤을 때, 다시 한 번 경악했다.

    ***

    [야 이 미친X아! 내가 누군지 알아? 혜성쇼핑 사장이 내 전화 한통으로 너 짤라버릴 수 있어!]

    [이 썅x아! 학교다닐 때 공부를 못했으니, 이딴 상담원이나 쳐 하지! 네깟게 미안하다고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아?]

    [나 같은 VIP 응대 아주 개같이 하지? 너 어디야? 니네 콜센터 찾아가서 확 찢어죽여버릴라!]

    듣는 사람이 주먹을 쥘 정도로 폭언이 난무하는 녹음이었다.

    재환은 그것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으면서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았고, 콜센터 담당 임원과 팀장급들은 달군 불판위에 있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3번째로 반복해서 듣던 재환이 녹음 파일을 껐다.

    “···.”

    그리고는 컴퓨터 마우스를 잡아서 그대로 바닥에 내리쳤다.

    빠각-

    쿠당탕탕탕!

    순식간에 임원들이 공포에 질려 고개를 숙였고, 대노한 재환이 외쳤다.

    “도대체가! 콜센터 직원이 무슨 감정 쓰레기통이야? 이딴 게 VIP? 혜성사장을 불러서 짤라? 정신나간 게 죽고싶어서!”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저희가 당장 조치하겠습니다.”

    “담당자!”

    “네, 넷!”

    콜센터 슈퍼바이저 팀장 김 이사는 겁에 질려 대답했다.

    “이딴 진상 폭탄에도 그냥 놔 뒀습니까? 내 파일을 보니까 두 시간동안 욕설을 하는데 그걸 그냥 놔 둬요?”

    “죄, 죄송합니다. 매뉴얼이 갖춰있지 않아···”

    “사람 하나 죽어야 매뉴얼 만들거지? 그때 되면 댁도 짤릴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모든 걸 다 처리하겠습니다!”

    “격려하려고 왔다가 내 별 꼴을 다 보는구만! 어디 감히 혜성 사람들을 건드려!”

    재환은 갑질에 당해서 신경쇠약으로 실려간 여직원을 보고 진심으로 분노해서 외쳤다.

    “김 이사!”

    “네, 넷! 회장님.”

    “퇴근 전까지 연락한 그 인간 신상 나한테 보내고 당장 경찰 신고 때려요.”

    “아, 알겠습니다.”

    재환이 씩씩대며 돌아갔고, 최악의 분위기 속에서 혜성콜센터 직원들은 이제 다 죽었다고 한탄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바로 혜성쇼핑유통 김만국 부회장과 기전실 임창훈 사장이 다급히 달려와 상황을 말했다.

    “회장님. 이 사람입니다.”

    “뭐야? 할매였어?”

    나이가 70은 됐는데, 상당히 표독스럽게 생긴 증명사진 속에서 ‘혜성백화점 VVIP’ 상위 100명 안에 들어가는 고객이라는 명세서가 있었다.

    “이전부터 VVIP전담 직원들에게도 폭언과 갑질을 일삼았었습니다. 지난번에 물컵을 바리스타에게 던졌다가 300만원에 합의한 적 있었습니다.”

    “이거, 진짜 막장이구만.”

    부동산 업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인간인데, 쇼핑몰에서 우수고객이라서 떠받들어줬는데, 밑의 직원들을 향해서 안하무인으로 날뛴 진상 중에 진상이었다.

    그동안 큰 손이어서 윗선에서도 뭐라 할 수 없이 쉬쉬했고, 감정노동에 당하는 밑에 직원들만 고생했다.

    재환은 그 상황을 알게 되어 탁자를 내려치고 임창훈에게 말했다.

    “임 실장님, 이 인간 당장 강남경찰서에 신고하고, 이 파일 방송국 3사에 알리세요.”

    “네? 회장님 그렇게 하면···.”

    “VIP고 나발이고, 아주 본보기로 내가 조져버릴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김 대표도 앞으로 매뉴얼 만들어서 이런 인간들 있으면 그냥 경호팀 부르세요.”

    “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재환의 분노에 그날 밤 9시 뉴스에서 일제히 그 갑질이 보도됐다.

    [쏟아지는 폭언과 욕설, 감정노동에 지친 텔레마케터들.]

    [24세 콜센터 직원을 졸도하게 만든 몇 시간의 폭언.]

    [혜성 콜센터 폭언 사건. 분노한 혜성그룹. 법적 대응 할 것!]

    재환의 말에 일사천리로 움직여서 모두가 그 70대의 진상 노인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추가로 비슷한 사례의 다른 회사의 콜센터 직원들의 고충 등이 올라왔고, ‘감정노동’이란 단어가 화두에 올랐다.

    그 와중에 당사자는 뻔뻔하게도 불구속 수사를 받자 변호사를 통해 혜성그룹에 접견을 시도했다.

    “뭐? 합의금 천만원이면 되냐고?”

    “그렇··· 습니다. 회장님.”

    “그딴 식으로 넘겨왔다 이거지? 꺼지라 하고, 그 할마시 죄수복 입는 꼴 봐야 끝내겠다고 하세요.”

    혜성그룹 자체적으로 나서 업무방해, 특수협박등으로 고소를 날렸고, 이 일대에 인맥이 넓은지 피의자 고소 건으로 강남경찰서 서장까지 전화가 왔다.

    [저, 회장님. 일단 나이가 있어 불구속으로 수사는 하고 있습니다만, 합의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강남서장이 쩔쩔매며 연락했지만, 재환은 단호했다.

    “제대로 수사하세요. 만약에 솜방망이 소리 나오면, 내가 행안부 장관 연락해서 강남경찰서가 범인을 대충 수사한다고 사발 한 번 불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재환은 통화를 마치고, 구로 안암대병원으로 향했다.

    상습 폭언으로 인해 신경쇠약으로 입원한 직원을 문병가는 길이었다.

    기전실 임원들을 대동하고 온 혜성그룹 회장의 등장에 초췌해진 콜센터 여직원과 가족인 할머니가 놀랐다.

    “이미주 사원?”

    “네, 네! 맞습니다.”

    “우리 사원이 이렇게 누워있으니 가슴이 아프군요.”

    재환은 품 안에서 백만원짜리 수표 20장이 담긴 봉투를 건네줬다.

    “회사 내규에 외상 말고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산재가 없어서 일단 내가 대신 치료비를 분담하죠. 그리고 이건 위로금입니다.”

    “아, 아이고! 이러지 않으셔도···.”

    손사래를 치며 만류하는 할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돈봉투를 건네줬다.

    “계약직이시던데, 퇴원 이후로 근로계약서 새로 쓸 준비하세요. 내년부터 콜센터 텔레마케터 전원 정규직 채용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치료 잘 받으시고, 그동안 무기한 병가처리 접수하죠. 푹 쉬고 오세요.”

    재환은 그렇게 위로해준 다음 돌아가서 검찰쪽에도 전화를 걸었다.

    그 진상 노인네가 수백억대의 자산가에 여기저기에 약 쳐놓은게 많다고 해서 연락이 많이 오지만, 혜성그룹 회장 앞에서는 어그로만 끄는 행동이었다.

    얼마 뒤 죄수복을 입으면서 조사를 받는 그녀의 모습이 보도되었으며, 검찰은 특수협박과 영업방해등의 죄목을 종합해서 징역 1년 4월의 구형을 때렸다.

    이후 재환은 VVIP라는 것도 무시하고 혜성백화점 내 일체 접근금지 소송을 걸었다.

    만만한 계약직 여직원 감정 쓰레기통으로 쓴 대가로 늘그막에 감방에 가는 신세가 된 진상 VVIP였다.

    [검찰은 김씨가 그동안 여러 차례 콜센터 업무를 마비시키고, 백화점 내에서 부린 행패의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하여 기소했고, 법원에서는···]

    9시 뉴스에서 판결이 나올 때,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재환의 인터뷰가 나왔다.

    [신재환(혜성그룹 회장):그동안 가장 아래에서 고생할 사원들을 지켜주지 못한 일에 책임을 느낍니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서 회사 내에 어떤 사람이라도 제가 다 안고 가 대처할 것을 약속합니다.]

    혜성그룹 회장의 분노에 찬 인터뷰로 인해 혜성의 주가가 엄청나게 오르고, 이 처리방식을 호평하는 국민들이 늘어났다.

    혜성그룹 직원들의 결속력이 한층 더 단단하게 채워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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