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51화 (151/244)
  • 151- 대격변을 앞두고서(3)

    21세기에 IT계에서 손꼽히는 CEO들은 많았지만, 그중 한 명을 꼽는다면 엘리사 수였다.

    대만계 미국인인 그녀는 MIT에서 공학박사까지 딴 이후로 레이니온과 인터콘이라는 양대 미국 반도체 회사에서 전설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것도 반독점법으로 해체되네 마네 할 정도로 전세계를 지배한 당시 1위였던 인터콘을 고사 직전이었던 레이니온에 합류하여 뒤집어버린 스토리텔링은 그녀의 주가를 한층 더 올려줬다.

    그런 그녀가 당시 재무이사로 레이니온에 근무하던 시절, 재환이 헤드헌터를 보내 영입 제안을 했다.

    그래픽카드, D램, 비메모리, CPU등 컴퓨터의 핵심 부품 모든 것에 관여한 만능형 인물이라 영입만 할 수 있다면, 재환은 혜성전자의 위상을 두 세단계 더 올릴거라 확신했다.

    ***

    “회장님.”

    “음?”

    스위트 룸에서 업무를 하던 재환은 김준호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이런 기사가 한국에서 올라왔습니다.”

    노트북을 펼쳐서 보여주자 포털 사이트에서 재환에 대한 기사가 마구 올라오고 있었다.

    [혜성그룹 회장, 인재 쇼핑을 하다.]

    [‘억만금을 들여도 인재는 영입해야 한다!’ 사재출연까지 하는 신 회장의 강력한 의지.]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들은 한국의 부름에 응답할까?]

    재환이 개인 통장까지 가져와서 외국의 개발자들을 영입한다는게 한국 내에서는 꽤나 화제였다.

    그것도 ‘회장의 사재 출연’이라는 방법까지 쓰니 오너의 책임경영에 대한 칼럼들도 간간이 보였다.

    “내 통장은 퍼포먼스용이었는데, 이게 잘 먹히기는 하는군요.”

    유명하면 무슨 짓을 해도 박수를 쳐 준다는 말이 딱 이런 상황 같았다.

    거기에 몇몇은 지나치게 재환을 띄워주다 보니 ‘연봉을 털어서라도 인재를 영입한다.’라는 낯간지러운 기사도 있었다.

    어찌 됐건 재환은 이렇게까지 했으니 몇 명 더 영입하고, 서부를 떠날 준비를 했다.

    “다음 주 스케줄도 좀 빡셀 겁니다.”

    재환이 실리콘밸리 이후 떠날 곳은 디트로이트였고, 자동차 관련 인물들도 몇 명 영입한 다음 상황에 따라 유럽 출장 여부를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 재환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미스터 체어맨! 레온 양입니다.]

    “아, 그래요. 어떻게 됐죠?”

    [미팅은 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조건이 좀···]

    “조건이요?”

    [혜성전자 내 최고연봉 대우를 원한다고 합니다.]

    재환은 그 말을 듣자 잠시 생각했다.

    부회장급으로 격상한 혜성전자의 대표이사인데, 바로 앉히기에는 아무리 파격이라 하더라도 지금 그녀의 나이가 너무 젊었다.

    중요한 인재긴 하지만, 기존의 연봉체계를 모두 뒤엎어 버리고 그동안 고생한 임용태, 장진욱, 이기남 등의 공신들보다 우선에 두기에는 생각 좀 해봐야 할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는 알아 두죠.”

    [그럼 이번 주 토요일 저녁 7시에 약속을 잡겠습니다.]

    “네.”

    재환은 통화를 마친 다음 잠시 생각했다.

    “김 차장, 지금 노트북에 임원 급여 명세서 파일 있나요?”

    “네, 바로 담아서 가져오겠습니다.”

    김준호가 바로 자신의 USB메모리에 담긴 고위 임원들의 연봉표를 건네줬고, 하나하나 확인했다.

    현재 혜성그룹 내에서 재환을 제외한 연봉킹은 장진욱 혜성전자 대표이사로 34억원이었다.

    그다음으로 기전실장 임창훈이 29억이었고, 이번에 외부에서 혜성쇼핑 대표이사로 영입된 전 신누리호텔 대표이사 김만국이 28억, 혜성 아메리카의 임용태가 27억 6천만원이었다.

    2020년도만 하더라도 재벌이 아닌 전문경영인도 100억대가 넘는 CEO 연봉킹이 나오지만, 이때는 이것도 굉장한 대우였다.

    재환은 일단은 미리 말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에게 모두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토요일이 되어 샌프란시스코의 호텔에서 엘리사 수를 만날 수 있었다.

    재환보다 한 살이 어린 엘리사 수는 단발머리에 두꺼운 안경 너머로 부처와 같은 온화한 미소로 재환에게 인사했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박사들을 쓸어가시는 혜성그룹 회장님께 인사드립니다.”

    “쓸지는 않았습니다. 수많은 거절 속에서 이뤄진 계약들이니까요.”

    “그래도 많은 수의 박사급 인재들이 혜성과 계약했다 들었습니다.”

    “미스 수가 오늘 계약한 다면 딱 메이저 3할 타율입니다.”

    정확하게 전체 헤드헌팅에서 29.9%가 승낙했고, 공교롭게도 엘리사가 승낙한다면 30%를 채울 수 있었다.

    “현재 미스 수가 맡고 있는 직책이 재무이사라고 들었습니다.”

    “레이시온에서 구조조정을 맡고 있습니다.”

    “연구 개발에 전권을 지원할테니 혜성으로 오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재환은 그 말을 하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김준호가 재환의 카드로 구매한 6천달러 상당의 아이언 골프채 세트를 건넸다.

    “미스 수가 연구개발만큼이나 골프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오늘 만남의 기념으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 뒤로 오는 것은 최상급 프랑스산 와인이었다.

    “와인 역시도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마시는 구대륙 와인은 품평하기 아주 좋을 겁니다.”

    “저에 대해 많은 조사를 하셨군요. 이것 역시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선물 공세로 시작된 재환의 제안에 엘리사 수는 조용히 웃으며 물었다.

    “다른 것은 없습니까?”

    “하하하, 연봉계약서 말입니까?”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살짝 흔들리면서 입가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선물은 감사합니다만, 제가 원하는 것은 없는게 아쉽군요.”

    “호, 뭘 원하는 지 알 수 있을까요?”

    “혜성전자의 반도체 연구개발 플랜말입니다.”

    “!”

    재환은 그 말을 듣고 이 사람은 뼛속까지 연구자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하하하하!”

    재환은 크게 웃은다음 아타셰 케이스 안에서 혜성전자가 평택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 설계서와 현재 계열사들의 연구개발에 대한 자료를 건네줬다.

    엘리사 수는 조금의 리액션도 없이 천천히 읽어내려갔고, 모든 것을 다 읽고 말했다.

    “부족합니다.”

    “어느 면에서죠?”

    “80에이커 정도 되는 공장 같은데, 이 두 배는 되어야 할 겁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죠.”

    “혜성이 진심으로 반도체 전쟁에 끼어든다면 이런 공장이 적어도 5개는 넘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미국에도 R&D연구센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막힘없이 혜성의 비전에 대해 술술 말하면서 평가하는 엘리사는 마지막으로 재환에게 말했다.

    “미국에 R&D연구센터를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그곳을 컨트롤 할 수 있게 전권을 주면서 한국은 1년에 4개월 정도만 가겠습니다.”

    “흐음.”

    “그리고 급여는 60만 달러를 요구합니다.”

    “가능합니다.”

    “연봉이 아니라 월급입니다.”

    “!”

    터무니없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었고, 대부분의 경영자라면 여기서 그냥 판 엎어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조건을 내건 엘리사 수 자체가 그것을 더 잘알고 있었다.

    이건 아주 에둘러서 거절을 표한 것이란 걸 말이다.

    하지만 재환은 거기에서 여유가 넘쳤다.

    ‘내 이래서 한국 임원들에게 말해두길 잘했지.’

    재환은 그 제안을 승낙했다.

    “좋습니다.”

    “역시 힘드시겠습··· 네?”

    “월봉 60만 달러로 해서, 총 연봉 720만 달러에 미국에 R&D센터를 만들죠.”

    “정말입니까?”

    “다만 한국에 4개월만 근무하는 것은 조금 조정을 하죠. 6개월로 합시다. 적어도 절반 이상은 한국 본사에서도 연구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재환의 제안에 엘리사 수는 처음으로 감정을 보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감스럽지만···.”

    그녀는 활짝 웃으면서 재환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군요.”

    재환은 웃으면서 그녀와 악수를 했고, 남편과 상의 이후 혜성전자로 이직하기로 구두 합의를 했다.

    그렇게 재환은 수많은 제안 끝에 S급 인재들을 두루두루 영입하여 실리콘밸리에서 엄청난 수확을 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한국의 혜성전자가 캘리포니아의 박사급 연구원들을 대거 영입하고, 레이니온의 엘리사 수를 연봉 720만 달러에 영입했다는 말에 공학박사들이 깊은 관심을 보이며, 재환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생겼다.

    재환은 이쯤에서 캘리포니아에서 인재영입을 마치고 곧바로 디트로이트로 향했다.

    ***

    모터시티라 불렸던 역사를 가졌지만, 미국 자동차 산업에 쇠락과 동시에 몰락의 도시의 상징이 된 디트로이트.

    하지만 그 이미지와 대비되게 아직도 수많은 인재가 있는 곳이었다.

    진흙속의 진주라는 말이 있듯이 재환은 이 곳에서 혜성자동차를 살릴 수 있는 인물들을 찾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찾아낸 피터 노이만 교수였다.

    “앤 아버의 미시간 대학교에서 자동차공학 교수로 계시고 계시죠?”

    “그렇소이다.”

    이 60대의 백인 노교수는 과거 랜포드에서 픽업트럭 F시리즈의 설계를 맡았던 커리어를 가진 인물이었다.

    “한국에서 트럭사업을 좀 크게 하려고 하는데 도움이 필요합니다. 교수 연봉의 두 배를 드릴테니 한국으로 오시죠?”

    “글세, 나는 이미 은퇴한지 10년이 지난 몸이오만···.”

    “그래도 수많은 후진 양성을 하시면서도 아직 현역의 의지를 가지셨다고 들었습니다.”

    “픽업트럭과 트레일러를 한국에서라···.”

    피터 노이만은 파이프 담배를 몇 모금 빨며 말했다.

    “한국이란 나라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거요. 내가 랜포드 시절에서도 가장 인기없는 차종이었소.”

    “일본도 같은 이야기를 했었죠. 하지만 토요다나 니혼 모터스가 하이럭스나 타이탄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역사도 어느덧 30년이나 지났소. 한국이 이제 시작하기에는 많이 늦었다고 생각하오.”

    “아니요. 전 그러니까 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

    “현재 한국은 세단 위주, 그것도 흰색이나 검은색 등의 단색이라는 천편일률적인 시장입니다.”

    “흐으음.”

    “하지만 점점 한국의 직장인들도 근로 시간이 단축되고 피크닉과 캠핑 등의 문화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낚시 문화또한 유명하죠.”

    “그래서요?”

    “발상의 전환입니다. 지금 한국은 세단 위주의 시장에서 점점 캠핑을 위한 SUV나 RV등의 차량들이 뜹니다. 거기에 편승해 픽업트럭 역시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더나 도전하는 건 우리 혜성 하나죠.”

    재환의 그림에 피터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용히 파이프를 내려놓고 말했다.

    “내가 간다면, 연구소 하나를 만들어 줄 수 있소?”

    “국제공항과 가까운 자리에 큼지막하게 지어드리죠. 또한 노후대비를 위해 자사의 대학교 자동차공학부를 만들어 교수로 채용해 드리겠습니다.”

    “매우···좋은 조건이군요.”

    “그만큼 아주 많은 일을 시킬겁니다?”

    그렇게 디트로이트 내에서도 인재영입을 성공한 재환이었다.

    만약 여기서 안된다면, 유럽으로 떠나 독일로 가서 디젤 차량 전문의 공학자들을 영입하려고 했는데, 그건 다음에 가도 충분할 것 같았다.

    이들을 이끌고 한국을 갈 때, 비행기 한 채를 대동하게 됐고, 그로 인해 강남의 혜성그룹 본사는 때아닌 외국인들로 북적거리는 국제화 분위기가 되었다.

    재환은 전 직원들을 모아놓고 특별 훈시의 자리를 가졌다.

    전 계열사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재환은 여유있는 모습으로 말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취임한 이후로 수많은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확실히 달라진 혜성그룹의 위상을 생각하면, 재환의 개혁은 전 직원이 수긍할 말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합니다. 미국에서 수많은 식구들을 영입했지만, 저는 앞으로도 인재를 위해 억만금이라도 쓸 겁니다.]

    물론 그러면서 지금까지 혜성을 떠받든 국내파도 홀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혜성에서 수고해주신 분들에게도 그 능력과 업적에 따라 성과급을 더 높일 것입니다. 금액은 무한대에 가까우니 직장인들에게 있어 휴가와 보너스는 반드시 챙기겠습니다.]

    그것에 맞추면서 1주일당 법정근로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1시간씩 줄여 61시간으로 고쳤다.

    뿐만 아니라 결혼, 출산, 육아, 조사 등의 금액도 폭넓게 운용하여서 직원 복지도 대대적으로 늘려줬다.

    판은 깔아줬으니 이제 모두가 애사심을 가지고 똘똘 뭉칠 것이다.

    2004년 혜성그룹은 그렇게 도약을 위해 최대한으로 몸을 풀기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