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48화 (148/244)
  • 148- 결혼 한번 하는데, 전부 달려든다.

    혜성백화점 본점의 휴무일에 맞춰 재환의 부모님과 미연 쪽 부모님이 모두 VVIP 라운지에 모였다.

    그곳에서 시작된 상견례는 매우 훈훈한 자리에서 이어졌다.

    “귀한 따님을 저희 며느리로 맞이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숙의 말에 미연의 어머니 양윤주 여사도 화답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혜성그룹 같은 명문가에 저희 딸을 시집보내니 저희가 더 영광이지요.”

    두 부인은 서로에게 말하면서 ‘딸아이 이제 신부수업 시키느라 많이 부족하다.’, ‘우리 아들도 집안일에는 무심하다.’ 등의 이야기꽃을 계속 피웠다.

    그리고 반대쪽에서는 희경과 수호의 이야기도 나왔다.

    “사실 내년 2월에 졸업할 때, 그때 식을 올리는 게 저희 쪽으로는 더 편한데 말입니다.”

    “아이고~ 사돈 양반에게 죄송합니다. 저 녀석이 늦장가 가는 바람에 집안이 꼬여서 말입니다.”

    “네?”

    “장손을 먼저 장가보내야 하는데, 한참 늦어서 조카들이 기다리는 통입니다. 그래서 얼른 보내려고 하니 양해 좀 부탁드립니다.”

    “허허허, 그러면 어떻게 조율을 하긴 해야겠군요.”

    양가 부모님들은 서로 맞춰나가며 만족하는 분위기였고, 재환 역시 얼굴을 붉히고 있는 미연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녀의 손에 끼워진 반지는 재환이 이번에 확장된 혜성백화점 명동점 명품관에서 직접 공수해온 최상급 보석이었다.

    그리고 둘이서 같이 협의한 내용을 재환이 말했다.

    “저기, 결혼식 치르면 양재동에서 분가해서 살려고 합니다.”

    “어머? 그러려고?”

    “집은 어디서 구하게?”

    부모님의 물음에 재환이 대답했다.

    “예전에 삼신에서 부탁받아서 분양한 아파트가 몇 채 있어요. 삼신타워팰리스라고.”

    “어머, 아파트로 가려고?”

    “이제 막 지어졌고, 90평이라서 둘이 살기에는 가정부 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둘이 살기에는 나쁘지 않겠다만··· 굳이 거기로 들어갈 필요 있어?”

    희경이나 명숙이 한 마디씩 물었지만, 재환은 쿨하게 대답했다.

    “회사 출근 거리도 가깝고 괜찮을 거 같아요.”

    “저는 괜찮아요. 어머님.”

    미연 부모 쪽에서는 재벌가 시어머니 모시는 것보다는 나을 테고, 재환쪽은 언젠간 이런 일이 있을거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예식장과 규모를 논하고, 세부 조율 속에서 상견례는 훈훈하게 끝이 났다.

    ***

    “박수! 박수! 드디어 장가를 가는구나!”

    스위트룸에서 폭죽까지 터트리고, 생일 나팔을 부는 육공회 형제들의 축하를 받게 된 재환이었다.

    “그래서 날짜는 언제야?”

    “12월쯤 될 거 같아. 그때 미연이가 학교 종강이거든.”

    “키야~ 일사천리구나.”

    “축하해. 재환아.”

    육공회 멤버 모두가 축하해 주고, 거기에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이 친구들이 꽤나 거창하게 동생의 결혼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집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분가하기로 했어. 현규한테 분양받은 아파트 살 거거든.”

    “아, 삼신타워팰리스 거기!?”

    이미 올해 1,2차 완공 이후 상위 1% 이내의 재력가들이 하나둘씩 입주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혜성그룹 회장까지 들어간다면 그 자체가 홍보가 되어 브랜드가 올라갈 것이다.

    “가깝잖아? 걸어서도 출근 가능하다고.”

    “크으~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찌 우리가 가만히 있을까?”

    대현과 진용의 말대로 그들은 하나씩 선물을 준비했다.

    먼저 꺼낸 것은 진용이었다.

    “뭐야, 이건?”

    “신누리 백화점 무제한 상품권. 이걸로 혼수 전부 쓸어가라.”

    “···미친놈아. 당연히 우리 혜성쇼핑에서 혼수 준비해야지.”

    “에헤이! 회장님이 회사 물건 그렇게 사면 내부거래야!”

    한도 없는 상품권을 건네주고 그걸로 집안 혼수품목 전부 사라고 쾌척하는 진용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하나둘씩 재벌 친구들의 선물들이 나왔다.

    “형님, 저도 하나 준비했어요.”

    웬 자동차 카탈로그와 계약서를 가져온 선길이 그것을 재환에게 건넸다.

    “뭐야? 웬 차를···.”

    “웨딩카 겸 앞으로 쓰시라고요. 저희 이번에 대형세단 리무진 모델 ‘에르쿠스’라고 합니다.”

    “결혼선물로 차를 다 마련했냐.”

    신누리에 이어 아성차는 아예 최신형 리무진 세단을 준비해서 타고 다니라고 건네준 것이었다.

    친구 결혼선물로는 참으로 엄청난 것들이 계속 나왔다.

    “읏차, 나는 크게 준비한 건 없고, 그래 너희 들어간다는 집이 어디에 있지?”

    이번엔 정인이 나와서 재환에게 명함을 건네줬다.

    [두성건설 디자인팀.]

    “새로 들어갈 신혼집 인테리어 기깔나게 만들어주마. 우리 회사 전무, 상무급들이 맡아줄거야.”

    진짜 결혼 하는데 돈 0원도 안 들 상황이었다.

    호텔도 해주겠다, 신혼집 인테리어도 해주겠다, 혼수품도 모두 대주겠다, 심지어 웨딩카로 공짜로 한 대 제공했다.

    “이야, 내가 제일 초라하네. 나름 준비한건데.”

    문영은 조용히 봉투를 꺼내서 재환에게 건네줬다.

    “이건 또 뭐야?”

    “혹시 신혼여행 아직 생각 안 했으면 거기로 가. 우리 회사 해외에 있는 리조트인데, 하와이 펜트하우스다.”

    “햐, 진짜. 다들 눈물나게 고맙네.”

    하나씩 주는 선물 속에서 육공회 멤버들은 재환에게 한 가지를 더 말했다.

    “결혼이 12월이니 그럼 11월에 움직여야겠네.”

    대현의 말에 재환이 의문을 가졌다.

    “뭘 움직여요? 11월에 뭐 할 게 있다고.”

    “내가 잘 아는 역술인이 있거든? 둘 사주팔자 알아보게 생년월일 나한테 보내.”

    “아니 그런 점을 누가 믿는다고··· 아니 잠깐! 부부 사주?”

    대현은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그 옆에 있는 진용 역시 뭔가 준비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이 짓궂은 재벌가 오너 친구들이 엄청난 이벤트를 벌여버렸다.

    ***

    [함 사세요! 함 사세요!]

    [혜성그룹 회장은 냉큼 와서 함을 받아가거라!]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 양반들을 제가 끝내 못 말렸습니다.”

    재환은 천호동 한수호의 집에서 진심으로 사과했다.

    상위 1%의 양반들이 호롱불에 오징어 가면을 쓰고, 천호동 일대에서 함을 사라고 외치니 재환은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언제쩍 함진아비야 진짜!’

    제발 그런 거 하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대현이 외치고, 진용이 오징어가면 쓰고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모습은 이미 일대 주민들과 유명언론사들이 전부 달려들어서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이고~ 됐어! 어떻게 저런 양반들이 함을 가져온 게 우리 사위 능력 있다는 거지!”

    오히려 장모인 윤주가 시끌벅적해서 좋다면서 이모들을 대동해 술상을 차리고 떡도 잔뜩 빚어서 제대로 준비했다.

    그리고 한수호 역시도 싫지만은 않은지 한복까지 갖춰입고서 느긋하게 담배를 태웠다.

    “하하하, 뭐 딸아이 하나 있는 거 결혼하는데 이것도 다 추억이겠지!”

    “혜성그룹 회장님의 결혼이라 아주 휘황찬란하게 준비된 거 같습니다? 하하하!”

    이런 빅 이벤트에 냄새를 맡은 강동구 구청장에, 지역구 의원까지 전부 한민국당 출신이어서 자기 부인들까지 대동해서 음식을 같이 만들었다.

    심지어 몇몇은 이 기회에 인맥을 쌓겠다고 자기 딸들까지 데려와 신부의 친구 역할로 붙여줬다.

    “신 회장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닙니다. 구청장님에 김 의원님까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집안 거실에 거하게 차려진 술상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장모를 보고서 재환은 혀를 차고 슬슬 나갈 준비를 했다.

    “저것도 민폐니까 얼른 가서 붙잡아오겠습니다.”

    그때 장모가 미연을 부르고 자그마한 술상을 차려주고 친구들과 따라가라고 재촉했다.

    대문 밖에서 고래고래 외치던 육공회 멤버들은 재환의 등장에 박수쳤다.

    “바깥에서 민폐 그만 부리고 들어들 오쇼!”

    그리고 미연이 후다닥 어머니가 차려준 술상을 가지고 앞에 내려놓았다.

    “자, 이것들 드시고 들어오세요. 그리고···.”

    흰 봉투를 두고서 바닥에 깔자 정인과 선길이 슬쩍 확인하더니만 웃으며 말했다.

    “아~ 금액은 몰라도 제수씨의 춤은 빠지면 안되는데요!”

    “그렇지 춤!”

    평소 안 그러던 양반들이 더욱더 날뛰자 결국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춤시위를 당긴 미연과 그 친구들을 보고 왁자지껄 웃다가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한수호 의원 내외가 들어와 남은 봉투 나눠주고, 술상이 차려졌으니 얼른 들어오라고 성화다.

    “자~ 추운데 얼른들 들어와요~ 우리 집안 사람들 전부 와서 술하고 음식 장만했어요.”

    “자~ 그럼 갈까요?”

    그때 대현이 육공회 멤버들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재환보고 내려오라고 한다음 대문 밖으로 끌고갔다.

    그 앞에는 삼우일보, 민국일보, 대한신문, 동화일보등등 수많은 메이저 언론사 기자들이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

    “자! 이것으로 함은 들어갑니다! 기자양반들도 이거 사진 마지막으로 다들 끝! 시마이 합시다!”

    대현의 외침 속에서 함진아비로 온 육공회 멤버들이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그때 저 멀리서 직원들과 털레털레 오는 현규가 있었다.

    “어? 야! 빨리빨리 와라!”

    대현의 부름에 후다닥 달려온 현규는 가득 들고 있는 선물상자를 기자들에게도 돌렸다.

    “뭐야, 그거?”

    재환의 물음에 답은 바로 나왔다.

    기자 하나가 열어본 순간 그 안에는 10만원 상당의 상품권과 서라벌호텔에서 만든 봉채떡이 담겨있었다.

    “이 주변 일대 전부 돌리고 왔어. 소란스러워도 전부 넘어가 준다고들 하더라.”

    삼신그룹 황태자가 직접 미전실 직원들 데리고 가서 동네 일대에 일일이 방문하며 소란을 양해해달라고 선물을 돌리고 온 것이었다.

    ‘난장도 정성껏 깠다. 진짜···.’

    그래도 이게 흔히 말하는 찐친구들이라는 건지 일단 모두가 모여 기념촬영을 기자들 앞에서 했다.

    혜성그룹을 중심으로 KS, 삼신, 아성차, 효령, 신누리, 두성그룹 등 3-40대의 재벌가 오너들이 격식없이 모여 찍은 이 날의 이벤트는 훗날 SNS시대에도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는 새벽까지 술판을 벌이고 기업가와 정치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노는 자리 속에서 재환과 미연은 축하세례를 아주 거하게 받았다.

    ***

    12월 KS호텔은 수많은 기자단이 모여 나라의 거물들이 모이는 결혼식에 이목을 집중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거물들이 도착했고, 조금 늦은 서울시장 이상명에 등장에는 웬만한 재벌 회장들보다 스포트라이트가 셌다.

    그 뒤로 아성가 회장들이 모이고, 1세대의 재벌들도 각각 화환을 보내면서 참여했다.

    “아, 신 회장.”

    신랑 대기실에 있을 때, 삼신 이건호 회장이 들어온 순간 모두가 일어났다.

    “아, 회장님!”

    “진심으로 축하하오. 이거 내 아들이 결혼한 것 같은 느낌이구만.”

    언제나 딱딱한 인상이었지만, 오늘은 특히 더 근엄한 모습이었다.

    “주례 맡아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처음에는 그런 거 못 한다고 한 양반이, 결국 시간이 지나자 슬그머니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줬다.

    “노인네가 눈이 침침해서 준비한거 읽을 수 있을지나 모르겠소.”

    “아이고, 아닙니다. 이 회장님의 주례사라면 그게 얼마나 축복입니까?”

    명예회장 희경 내외도 이 회장에게 감사했고, 이제 식이 시작됐다.

    [나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마누라,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누라와 자식은 절대 한 몸이니 바뀌면 안 됩니다. 부부일심동체입니다!]

    이건호의 주례사에 여럿 웃음이 터져 나왔고, 여당과 야당의 거물들도 오늘만큼은 당대표들이 나란히 모여서 박수를 쳐줬다.

    하객 사진 때 모두 모인 육공회, 오늘을 위해서 군복무 중 특별히 휴가나왔다는 처남, 그 외 수많은 인척들이 연달아 사진을 찍고 웨딩카를 타고 떠나서 세기의 결혼식이 끝났다.

    ***

    비행기 일등석에서 이제 부부가 된 재환 내외는 한바탕 폭풍이 일어난 뒤로 뻗었다.

    “진짜 요란한 일정이었어.”

    “그래도 함 팔았을 때는 엄청 재밌었어요.”

    미연이 그렇게 말하며 재환의 옆에 안겼다.

    재환은 신혼여행으로 떠날 하와이 펜트하우스를 기다리면서도 회사일을 생각했다.

    ‘내년부터 난잡하게 널린 계열사들 정리 좀 하고, 그룹 시스템 좀 재구축해야지.’

    97년으로 돌아와 혜성의 일을 시작하고, 2003년까지 딱 7년 동안이 재환의 혜성 1기였다면, 앞으로는 혜성 2기는 좀 다를 것이다.

    전문경영인 비율도 늘리면서 기존의 두 배 이상으로 연구개발센터도 늘리고, 유니콘 재단 등을 이용해서 아이디어도 후원해서 투자 폭도 늘릴 거다.

    “할 일이 많겠네.”

    재환이 무심코 창밖을 보며 한 말이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재환의 팔을 베고 졸고 있는 미연이었다.

    재환은 웃으면서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편히 자게 좌석을 젖혀줬다.

    ‘이번 결혼 생활은 잘 해야지.’

    그것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3년의 마지막 행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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