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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147화 (147/244)
  • 147- 게이트? 닫아라!

    재환은 늦은밤 갑자기 한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늦은 밤 죄송하지만, 근처에 있어서 그런데 잠시 뵐 수 있겠습니까?”

    연락도 없이 다짜고짜 자정이 넘어서 한 전화.

    게다가 재환이 있는 곳은 계동을 지나 이제 광진구에 도착해 천호동까지는 한참이었다.

    [아니, 신 회장.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죄송합니다. 미연이도 보고 싶고, 꼭 지금 뵙고 싶습니다.”

    [후우- 그래요. 그럼 언제쯤 옵니까?]

    “네, 바로 갑니다!”

    재환은 뒷좌석에서 구강청정제를 꺼내 뿌리고, 옷매무새도 다듬으면서 예비 장인과 애인이 있는 천호동으로 향했다.

    밤도깨비처럼 찾아온 재환에 한 의원은 전화로 한 마디는 했어도 반갑게 맞이해줬다.

    “안녕하십니까?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기전실에 연락해서 혜성백화점 본점에서 연락해 급하게 선물을 준비해서 건네주는 재환이었다.

    “어머, 어떻게 이 시간에 다 와주시고···.”

    “너 보려고 왔지.”

    재환은 미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예비 장모에게 값비싼 위스키를 선물로 건넸다.

    “일단 들어와요. 술상 준비할테니.”

    미연과 그 어머니가 황급히 재환을 맞이하기 위해 술상 요리를 같이 만들었고, 안채에 들어온 재환은 한 의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후 그럴듯한 술상이 나오고, 재환이 가져온 위스키가 올라왔다.

    “그래, 이 시간에 급하게 온 이유가 뭐요?”

    “아성그룹 문제입니다.”

    “으흠?”

    “크게 봐서는 전 기업들의 목소리이기도 하죠. 제가 대표로 왔습니다.”

    “허허, 아니 내가 뭘 안다고 그것을 말하러 왔소?”

    재환은 조용히 술을 마시면서 안주 몇점을 먹고 말했다.

    “맛있네요. 어머님 요리 솜씨가 좋은 것 같습니다.”

    “흐음, 그래요. 먹으면서 이야기 합시다···.”

    둘은 안주를 좀 더 먹은 다음 다시 한번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가 한민국당 분들 중에서 이런 부탁을 드릴 수 있는게, 한 의원님 말고는 없어서 말입니다.”

    “난 이제 겨우 초선의원이요.”

    “모든 정치인들은 초선에서 사고를 치는 법이라고 들었습니다.”

    “···내가 무슨 사고를 치라고?”

    한 의원은 야밤에 찾아와서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재환에게 물었다.

    “의원님. 혹시 아성그룹의 불법 대북송금 사건에 ‘블랙박스’가 있다는 걸 아십니까?”

    “!”

    재환이 블랙박스 이야기를 꺼내자 한수호 의원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헛기침을 했다.

    “으흠!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건 나와도 상관없었소.”

    “그 안에 있는 족보면 여당 사람 여럿 날릴 폭탄이 아닙니까?”

    “그것을 감안하고, 여당은 그냥 밀고 가겠다는 뜻이요. 뭐··· 우리 당이 정치적 이슈로 쓰긴했지만, 다 파헤칠 생각이요.”

    역시나 한민국당의 단호한 움직임에 한수호 역시도 따르기로 한 것이었다.

    “재벌들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아쉬웠지. 그 정도의 자료면 충분히 지금의 특검을 막을수 있을텐데, 결국 아성을 제물로 정치싸움이 된 판이니 말이오.”

    재환은 그 말을 듣고 입가에 작은 미소가 생겼다.

    그리고 이제는 한민국당을 이용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것을 모르는 한수호는 술잔을 기울이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아성 최후의 수가 막힌 게 안타까울 따름이오. 나름 최후의 수였을텐데.”

    “그럼 한민국당도 지금의 블랙박스를 최후의 수라고 생각한 겁니까?”

    “음? 그렇긴 하지만··· 설마 이 자리에서 더 크게 터질 폭탄이 어디있겠···.”

    그 순간 재환은 품 안에서 보이스레코더를 들었다.

    “!?”

    “유감스럽게도 우연히 원본이 제게 있었네요.”

    “아, 아니! 그걸 어떻게···”

    재환은 이미 이것을 염두에 두고 한 의원을 만난 것이었다.

    “아성 정목헌 회장과 약속해서 공교롭게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재환은 그러면서 한 의원의 팔을 붙잡고 손 위에 그 보이스 레코더를 건네줬다.

    “잘 쓰십시오. 이걸로 정계에서 좀 더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이걸 왜 나한테···.”

    재환은 대답 대신 피식 웃었다.

    “이걸 중진들에게 보여주셨을 때, 누가 먼저 저를 찾는지 꼭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 그렇게 하겠네.”

    이건 엄청난 떡밥이었다.

    그리고 보이스 레코더에 나온 내용들은 한수호가 소속된 바로 그 한민국당, 이전 새한국당 시절에 ‘대북송금에 대한 합의안’으로 당내 중역들의 이름들이 오갔다.

    이런 핵폭탄을 재환은 아무렇지 않게 넘겨주며 말했다.

    “이번 일이 무사히 끝난다면 양가 부모님이 만나 상견례를 하고 싶습니다.”

    “어, 그건!”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장인어른?”

    이제는 단순 정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새정치당을 후원했던 호남 최고의 재벌가 혜성그룹이 한민국당으로 갈아탄다는 엄청난 성과까지 있었다.

    “나는··· 둘만 좋다면 결혼 허락하겠소.”

    “잘 부탁드립니다. 예비 장인어른.”

    한 의원은 내친김에 바로 아내와 딸을 불러서 결혼 논의를 했고, 약간 놀란 미연의 반응 속에서 승낙하여 결혼 논의가 생겼다.

    ***

    다음날 재환은 전화를 통해 말했다.

    “네, 네. 그렇단 말이죠? 알겠습니다. 그건 제가 한 번 아성에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내 한 의원이 전해준 자료를 보고 세상만사 놀랬소.]

    회사 전화가 아니라 개인 휴대폰, 그것도 서브폰을 하나 만들어서 준비한 재환이었다.

    그리고 하루만에 바로 연락한 것은 현 한민국당의 당대표 최병태 의원이었다.

    단숨에 야당 최고위원이 연락해서 재환에게 부탁했고, 거기에 따라 불법 대북송금에서 아성그룹에 대해서 살려주겠다는 ‘거래’를 했다.

    “좋아. 그럼 이제 세부 조율만 하면 끝이고.”

    재환은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이제 아성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형님! 접니다.”

    [시, 신 회장!]

    “속은 좀 괜찮으십니까? 어제 형제끼리 소주 한잔으로 모든 것을 털으셨죠?”

    안부 인사부터 했을 때, 정목헌은 쓸쓸히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역시 위기일 때 가장 필요한게 피붙이라는 걸 내 이제사 알게 되었어요.]

    역사와 다르게 자살이 아닌, 아성가의 끈끈한 유대로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재환은 거기에 대해서 합의안을 내놨다.

    “새한국당의 최병태 의원이 직접 전해준 조건입니다.”

    [뭐, 뭐요?]

    “현재 국민승리당에 소속된 정목준 의원의 한민국당 입당, 그리고 아성그룹이 여당이 아닌 야당 후원 요청, 마지막으로 제가 한민국당 정치인 집안하고 혼맥을 맺는걸로 끝났습니다.”

    둘은 충분히 할 수 있는거고, 마지막은 재환의 결혼 이야기에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그래요. 그렇게 되었군요.]

    “여러모로 역대급 게이트가 될 뻔했지만, 이걸로 수습은 된 거 같습니다.”

    정치권의 ‘불법 대북송금 게이트’를 재환 혼자서 움직여 강제로 닫아버린 꼴이었다.

    야당도 더 이상 캐면 두 재벌의 후원도 날아가고, 여당 역시 더 이상의 강권이 없으니 이쯤에서 물러날 셈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법원에서 불법 대북송금 논의와 아성그룹 비자금 조사에 의한 1심 판결이 나왔다.

    [다음 소식입니다. 법원에서는 아성그룹의 불법 대북송금과 비자금 조성에 대해 1심 무혐의를 선언했스빈다.]

    [검찰은 항소 논의를 하고 있으며, 이로써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있었던 스캔들은 일단락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원은 아성그룹 정목헌 회장의 재판을 전격적으로 ‘무혐의’처리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재환은 서랍 안에서 USB 메모리스틱을 들어올렸다.

    “휘유, 다행히 원본 안 꺼내고 끝냈군.”

    지난 날 재환이 정목헌과 논의하면서 정치판을 뒤집어버릴 수많은 조보와 음성 파일을 보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있을 정치판의 파토를 염두해 두고 재환은 파일을 복사해서 두 개로 나눴었다.

    하나는 여당 새정치당에 대한 정보가 있는 파일로 정목균에게 준 자료.

    다른 하나는 야당 한민국당의 움직임을 대비한 파일로 한수호에게 준 자료.

    그리고 모든 원본은 재환의 금고 안에 있었고, 다행히 내부의 자료 70%만 열었을 때 제 발이 저린 정치권이 황급히 정목헌을 풀어줬다.

    그리고 최종 원본은 정목헌의 머릿속과 여기 있는 재환의 USB 메모리가 유이했다.

    “자~ 이건 훗날 아성가에게 큰 선물 있을 때, 보내기로 하고··· 암튼 사람 여럿 살렸다.”

    재환은 노현우 정권 초창기때의 게이트를 혼자서 끝내버린 것에 대해 미소를 지었다.

    ***

    얼마후 재환이 아성그룹 회장 정목헌의 극진한 대접을 받는 자리가 생겼다.

    “고맙네. 정말로 고마워. 내 이 은혜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야.”

    “아닙니다. 저 역시 기업가로써 정치권이 단물 빠진 껌 취급한 것에 분개해서 움직인 것입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정치권들은 앞으로도 국책사업에 대기업의 검은돈을 받는 일은 절대 못 할 것이다.

    “뭐든 이야기해 보시게. 내 자네의 부탁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들어줄 수가 있어.”

    “하하하, 글쎄요? 대가를 바라고 그런 건 아닙니다만.”

    재환은 그러면서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회장님. 저희 지금 삼신에 연구원들 파견 보내서 반도체 사업 준비하고 있습니다.”

    “음? 아, 그거야 잘 알고 있지.”

    현재 세계적으로 놀고 있는 한국의 양대 반도체 회사 삼신전자와 아성전자.

    원래 역사라면 아성은 이때 정 회장의 죽음으로 분리된 아성전자가 ‘하이렉스 반도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돌고 돌아 다른 대기업에 가지만 이미 역사는 바뀌었다.

    “이번에 그래서 회장님과 빅딜을 좀 하고 싶습니다.”

    “아니, 지금 말인가?”

    현재 아성그룹은 2003년부터 불법 대북송금에 휘말린 뒤로 오너가 검찰 조사받는 모습이 계속 나와 전 계열사의 주가가 떨어지고, 부채가 심한 상태였다.

    거기에서 재환은 도와줬으니 계열사 하나를 사겠다고 슬쩍 제의한 것이다.

    “아성전자 내에서는 D램 말고도, 그래픽 카드와 CPU 사업부가 있다지요?”

    “으음?!”

    재환은 핵심 대신 숨어있는 미래의 알짜를 찔러봤다.

    “지금 평택에서 반도체 공장을 두성과 삼신이 짓고 있는데, 거기에 그래픽카드와 CPU에 대한 연구개발 센터를 만드려 합니다.”

    “아성전자 내의 그 사업부를··· 원하는 건가?”

    “물론 회장님께서 알토란 같이 키워오셨지만, 맡겨주신다면 제가 그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지요.”

    정목헌은 한 번 생각해볼 일에 술잔을 비웠다.

    확실히 그런 사업부가 있고, 9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인터콘’이나 ‘레이니온’에게 밀려 X86호환에 500MHz정도에서 개발을 일시 중단했다.

    물론 그러면서 연구는 계속했지만, 사업성 문제로 뜨뜻미지근한 상태지만 말이다.

    반면 혜성은 지난번 레이니온에게 그래픽카드 OEM으로 2억 달러 어치의 물량을 생산했었고, 거기에 사운드 카드도 자체 개발하면서 이쪽에 대한 무서운 투자를 하고 있었다.

    ‘이쪽에는 계륵이지만, 저쪽에는 호랑이의 날개란 말이지.’

    기업가로써는 생각해 볼 일, 사람이라면 승낙해야 할 일.

    정목헌은 그것을 두고 재다가 담배 몇 대를 태우고서 결정했다.

    “좋소. 적절한 매각대금이라면 내 팔겠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제가 국내 IT를 위해 노력하지요.”

    이것으로 재환은 아성전자 내에서 그래픽카드 개발부와 CPU 개발부를 손에 넣게 되었다.

    이제 D램 사업부 파견팀이 돌아오고, 2년 뒤에 완공될 ‘평택 혜성전자 타운’이 되면 IT계의 대격변을 일으킬 것이다.

    거기에 일산의 아성전자 인재개발원까지 인수하여, 혜성은 석/박사급 공학자들을 수급 가능한 화수분까지 만들었다.

    2003년은 그렇게 벼락같이 흘러갔다.

    그리고 재환은 혜성-아성간의 빅딜을 언론에 알리고 만년필을 선물하여 사인식을 한 뒤 퇴근해서 집에 알렸다.

    그렇게 장가가라고 타박했던 아들이 마흔 살 되기 전에 참한 처자를 만났으니 부모님에게 상견례 준비하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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