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44화 (144/244)

144- 시장님과 담판.

“그게 무슨 소립니까? 서울시 공무원들이 왜요?”

“신사옥 인허가 문제에서 계속 딴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잖아요?”

한티역 사거리에서 혜성그룹의 신사옥을 만드는데, 갑자기 서울시에서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시공사 마이다스 건설 역시도 시공 허가 이후로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수뇌부에게 연락할 정도라니 이대로 가면 상황이 심각해질 것 같았다.

“회장님, 아무래도 제가 강남구청장을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임창훈은 직접 기전실을 움직여서 이번 사태에 대해서 민선 구청장과 논의를 해볼 생각이었다.

“거기가 지금 새한국당 소속이죠?”

“그렇습니다. 회장님.”

서초,강남,송파 흔히 강남 3구라 불리는 곳들은 모두 새한국당 소속이었다.

지금은 야당이고, 다음 대선에도 야당이 되겠지만 그래도 무시할수 없는 규모인지라 어느 정도의 관계는 좁히고 있는 편이었다.

“일단은 구청장이지만, 안되면 지역구 의원이라도 만나 봐야죠. 강남 갑,을 모두 신경 쓰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자칫하면 사옥건립에 문제가 생길수 있는 일이었는데, 재환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자사의 건설 인허가 이야기인데도 ‘그런가 보다’식의 차분함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왜 갑자기 서울시가 그렇게 움직이는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차 준비하세요. 잠깐 바람 좀 쐬야겠습니다.”

“네? 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기전실에서 곧바로 차를 준비했고, 재환은 마포구 상암동으로 가자고 명했다.

상암월드컵 경기장은 월드컵의 열기 이후로 한산했다.

내부는 텅 비어있었고, 곳곳에 입점을 준비하는 피트니스 센터나 대형마트, 영화관, 사우나, 예식장, 푸드코드 등이 있었다.

“사실 이게 다 이권이란 말이지.”

정말 GH가 사명감을 가지고 온 게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운영권을 가지고 서울시와 매출을 양분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이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억울하면 구단 하나 따로 만들던가.”

비록 8-90년대에 행정가와 정치가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중소도시에 연고를 내리게 된 한국 프로축구였지만, 이미 뿌리는 내린 상황이었다.

재환은 이곳에 와서 다시 한번 ‘팬들의 동의없는 연고이전은 없을 거다!’라는 다짐을 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

그날 저녁 데이트를 나온 재환은 모카빙수를 이리저리 스푼으로 휘젛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오빠, 왜 그러세요?”

“음?”

“그러다 다 녹아요. 혹시 맛이 없어서 그러신 거예요?”

“아니야. 아니야!”

반쯤 녹은 빙수를 한 숟갈 퍼서 먹은 재환은 조용히 미연에게 물었다.

“미연아, 혹시 집에서 우리 사귀는 거 알고 계셔?”

“어··· 아니요? 사실 집에서는··· 저 연애하는 지도 모를걸요?”

재환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근데 그건 어째서···.”

“아버님 성함이 한짜 수짜 호짜 맞지?”

“!?”

지난번 신누리 호텔에서 보였던 반응에, 그 한수호 의원이 연예인한다는 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100% 확신할 수 있었다.

“숨길 것도 없네요. 맞아요. 그 새한국당에 한수호 의원님이요.”

“내친김에 그냥 가서 인사를 드릴까?”

“네, 넷!?”

“문제될 게 뭐 있어? 이렇게 몰래 만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가서 인사드리고 정식으로 사귀는게 낫지.”

재환의 제안에 미연은 당황하다가 우물쭈물했다.

“아니, 그러니까··· 일단 부모님은 저 연애를 모르고··· 음··· 오빠가 가신다면, 아마도··· 아직 결혼까지 크게 생각은···”

“싫으면 어쩔 수 없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시 말할게.”

“아, 아니. 싫은 게 아니고··· 그러니까···.”

미연은 계속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설마 지금 당장은 아니···죠?”

“맞는데?”

“···.”

갑작스런 제안이었지만, 미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승낙했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재환은 미연의 집으로 가기 전 잠시 혜성백화점 명동점에 선물을 사러 갔다.

“부모님 뭐 좋아하시니?”

“네? 아, 그··· 갈비?”

“오케이. 다른건?”

“요새 술 많이 드신다고 홍삼액기스도 꼭 챙겨드세요.”

“우리 아버지랑 같네.”

재환은 선물을 바리바리 사 들고 천호동으로 향했다.

***

“어머머, 이게 누구야? 혜성그룹 신 회장님! 맞으시죠?”

“두번째 뵙네요. 인사드리겠습니다. 사모님.”

딸이 손님을 데리고 온다는 말에 혹시 남자인가 싶었는데, 정말 찾아왔다.

그것도 보통 남자가 아니라 10대그룹 총수였다.

안에 있던 한 의원은 막 양복을 갈아입고 일상 차림의 모습에 손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 아니! 신 회장님이 어떻게 여기에?”

“인사드리겠습니다. 의원님.”

재환이 미연의 집에 방문하고, 안채에서는 술상이 거하게 차려졌다.

재환이 사온 갈빗살에 냉장고에서 도자기에 담긴 청주 등으로 정성이 들어간 식단이었다.

“별일이군요. 어떻게 회장님이 직접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하하, 인사차 온 겁니다.”

“아니, 강남에서 여기까지요? 흐으음.”

초선의원이지만, 변호사와 도의원 시절부터 정치인들과 친분이 깊은 열성당원이었다.

그래서 전화 한통으로 수많은 정치인들을 만나는데 문제가 없는 사람이었고, 재환은 그래서 한 의원에게 요청하기로 했다.

“그럼 인사는 이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어려운 부탁과 쉬운 부탁이 있는데, 둘 다 들어주시겠습니까?”

“나한테요? 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지요. 단··· 부정한 짓은 절대 용납못합니다.”

“하하, 그런 건 아닙니다.”

재환은 먼저 쉬운 부탁부터 한 의원에게 꺼냈다.

“서울시장하고 자리를 좀 가지고 싶습니다.”

“으흠?”

한 의원에게 있어서는 별것 아닌, 말 그대로 정말 쉬운 부탁이었다.

“어떻게 마련해 주시겠습니까?”

“이해가 안 가는군요. 청와대 초청도 받고 현 여당에서 후원도 많이 하시는 분이 그걸 부탁하러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그렇게 사무적으로 만나면 안 될 상황이어서 그럽니다. 아무래도 주변 분의 소개로 들어가려 합니다.”

“흐으음.”

“최근에 서울시장님께서 우리 혜성에게 서운한 일이 있으신가보군요. 그래서 직접 만나 좀 풀려고 합니다.”

안 그래도 혜성이 새한국당 이야기에서 뭔가 트러블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서울시 내에서 다른 기업과 뭔가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걸 어깃장 놨다고 당내에서 나온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요. 안 그래도 이번 주말에 등산 모임이 있는데, 이 시장님도 참여하실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분이 등산이나 축구, 테니스 같은 운동한 다음 땀을 쭉 빼고 빈대떡에 막걸리를 그리 좋아하시더군요.”

“알겠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등산 좀 해봐야겠군요.”

재환 역시도 이 부탁을 하기 전에 현 서울시장을 만나는 것에 대해 여러 번 생각했다.

직접적으로 연락을 해서 그냥 들이받는 수도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절대 좋은 수는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5, 6년만 지나면 그 양반 세상이니 말이야.’

서울시장의 커리어로 대선에 나와서 화려하게 대통령에 오른 사람이니 이렇게 해서 슬슬 새한국당 쪽에도 발을 넓히기로 한 재환이었다.

“자, 뭐 그거는 됐으니 이제 어려운 부탁을 한 번 해 보시죠.”

한 의원은 재환에게 술 한잔을 따라 주고 쭉 들이켰다.

그리고 재환이 다음 부탁을 말했다.

“한 의원님,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푸우웁!”

순간 한 의원이 분수처럼 술을 뿜어냈다.

“쿨럭! 쿨럭! 커억!”

“아이고, 받으세요.”

재환이 손수건을 건네자 그것으로 입을 닦던 한 의원이 재환을 노려봤다.

“지금··· 그걸 나한테 부탁이라고 한 거요?”

“진심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부탁이라 드린겁니다.”

그 순간 한 의원은 문을 열고 아내와 딸을 불렀다.

손님이라고 해서 왔는데, 별안간 집안이 뒤집힌 순간이었다.

한 의원은 재환과 딸 미연을 앉혀놓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제부터입니까?”

“사실 작년 월드컵 때부터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어머, 어머머 세상에?!”

졸업하면 시집이나 보내야겠다는 딸이 남자를 데려오긴 했다.

나이는 12살이 많은데, 10대 기업 회장이고, 제법 외모도 됐으며, 먼저 요청을 했다.

“그동안 속여서 미안해요. 아빠! 오늘도 정식으로 인사드리기로 해서 온 거예요.”

“으흠! 너는 가만히 있거라!”

“여보!”

오히려 한 의원의 부인이 남편 옆구리를 찌르면서 눈짓을 줬다.

하지만 한 의원은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했다.

“신 회장님.”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으음, 일단 이건 내가 바로 확답못하겠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런 사윗감이 어디있다고!”

“어허! 당신 오늘따라 왜 그리 호들갑이야?”

아내가 따졌지만, 한 의원은 단호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시오. 내 날을 잡아서 다시 이야기 하지요.”

“알겠습니다.”

현 여당의 실세들과 어울리는 재벌 회장, 그리고 상대 야당의 의원의 딸이라는 기묘한 관계에서 한 의원은 일단 결정 유보를 했다.

하지만 재환이 돌아갈 때 조용히 말했다.

“이번 주 토요일 약속은 내 따로 정해드리겠소. 약속은 약속이니.”

“감사합니다. 의원님.”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천호동 저택이었고, 재환은 차라리 말을 하니 한결 후련해져서 차에 올라탔다.

“허락받으면 집에도 이야기 드려야지.”

***

“아이고야. 축구 행정가 하라면서 별짓을 다 시키는구나.”

“등산하면 건강도 좋죠.”

수도권 외곽에 있는 양평 용문산에 도착한 재환은 숙부 희수와 같이 산을 탔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산 중턱에서 쉬셔도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서울시장 만날 수 있는거냐?”

“네~ 만납니다.”

“이렇게 번거로운 짓까지 하면서?”

“이건 정성이라는 겁니다.”

“허, 참! 그 양반이 당내에서 방귀께나 뀌는 양반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연맹 총재 몇 년 하고 그만두실 거면 제가 일방적으로 서울시에 통보하면 끝이죠.”

“으으음.”

재환은 계획한 대로 훗날 집안에서 국제기구 간부 자리 하나 만드려면 지금부터 차기 실세들과 확실히 친밀도를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산 중턱에서 쉬고 있던 재환의 휴대폰이 울렸다.

[정상 찍고 이제 내려옵니다. 적당히 중턱에서 뵐 수 있을 거예요. by.한수호]

한 의원의 문자를 받은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슬슬 일어났다.

“자~ 이제 내려온다고 하니 맞을 준비 할까요?”

“으, 음? 알았다. 그러면 뭘 하면 되지?”

“적당히 신발과 바지 끝에 흙좀 묻히시고 내려간 것 같이 하세요.”

재환의 말에 따라 희수가 움직일 때 1시간 정도 흘러서 슬슬 내려오는 일행들이 보였다.

“하하, 오늘 산행 정말 좋았습니다.”

“그래요. 가끔은 이렇게 몸 좀 풀어줘야 한다니까? 다음에는 유 의원과 이 의원도 같이 동행합시다.”

한 무리의 등산복 차림의 노년들이 내려올 때 재환은 거기에 맞춰 슬슬 내려갈 준비를 했다.

그 모습을 먼저 본 한수호는 곧바로 외쳤다.

“아니, 저기?!”

재환이 타이밍 맞춰 고개를 돌렸을 때 모두가 자신을 알아봤다.

“아니, 신 회장님! 여기에는 어떻게?”

“아, 한 의원님이시군요. 등산 즐기신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하하하, 이렇게 뵙니다.”

“으음?”

그 뒤로 수행비서들 속에서 내려오는 서울시장이 있었다.

둥글둥글한 얼굴에 살짝 벗겨진 머리를 모자를 써서 가리고, 선글라스에 등산지팡이를 든 인물이었다.

“어이구, 이런데서 다 만나게 됐어요? 허허허!”

사람 좋게 웃으면서 다가왔을 때 재환은 반갑게 인사했다.

“서울시장님이시군요. 만나뵈서 반갑습니다.”

“으음, 그래요.”

서울시장 이상명.

훗날 차차기 대통령에 오르는 새한국당의 거물이자 국제행사 유치의 대가였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프로축구연맹 총재 신희수라고 합니다.”

“오오- 총재님도 오셨군요. 그러고보니 혜성가에서 숙부랑 조카분이 다같이 등산을 하십니다?”

“하하하! 저희 형님은 골프만 좋아하지 등산은 안좋아하셔서 조카랑 같이 왔습니다.”

그런 타이밍에 적절하게 한수호 의원이 바람을 잡았다.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내려가서 저녁 한 번 어떻습니까?”

“저희야 괜찮지만, 시장님은 어떠십니까?”

“흐으음.”

이상명은 재환과 희수를 한 번 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럽시다! 땀 빼고 시원하게 막걸리나 먹으려 하는데, 사람많으면 좋지요.”

쿨하게 승낙하는 이상명을 두고 한수호는 조용히 재환에게 눈짓하면서 자리를 만들었다.

***

양평 인근의 식당에서는 수행비서들이 따로 방을 잡아 저녁을 먹었고, 재환과 이상명, 한수호와 희수 넷이 모여 빈대떡에 머릿고기, 도토리묵 등이 있는 곳에서 잔을 나눴다.

“자~ 이거 산타고 내려와서 먹는 막걸 리가 아주 별미요.”

한 잔 쭉 들이키고 흡족해하는 이상명을 향해 재환이 잔을 내려놨다.

이상명은 재환과 희수를 보고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뻔히 안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않아도 내가 신 회장을 한 번 만나려고 했어요.”

“아, 그러신가요?”

“허허허, 우리 사이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이오.”

연맹 총재가 옆에 있는데 ‘GH의 서울 연고지 이전 문제’를 재환한테 넌지시 운을 띄우는 이상명이었다.

이미 그들 역시 모든 것을 안다는 분위기였고, 이제 술자리에서 실무 논의가 나올 차례였다.

“역시 상암축구장 사용 논의 문제겠지요?”

“허허, 벌써 본론을 꺼냈군요?”

계속 이야기해보라는 이상명의 반응에 재환은 술잔을 채우고 말했다.

“그럼 이제 제 이야기를 10분만 들어보시면,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좋아요! 한 번 들어봅시다.”

그렇게 10분의 시간 동안 프로축구연맹의 서울 연고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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