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그럴듯한 계획은 어긋났다.
다음날 여의도 증권가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다, 당장 본사에 연락해!”
“세상에···이게 뭔 일이야.”
증권거래소의 주주들과 증권사 직원들은 황급히 연락을 돌렸다.
그리고 냄새를 맡은 경제지들이 석간대신 먼저 기사를 인터넷 포털에 뿌렸다.
[속보: 소베날 인베스트먼트 KS지주회사 지분 13.9%로 제2주주 등극.]
[재벌 지주회사의 몰락인가? 외국계 투자사의 충격적인 투자!]
[현재 KS의 지분 구조는? 향후 어떻게 될 것인가.]
모두가 앞다투어 기사를 보도하고, 그로 인해 주식 관련 모임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할 것 없이 들썩였다.
이런 거대한 사건이 일어날때마다 소액주주들은 피가 말라갈 것이고, 향후 경영권에 따라 주가가 어찌 될지 모를 상황이다.
그리고 혜성그룹 회장실에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 그래. 확인했지. 확실히 이제는 인터넷 시대야.”
신문이 아니라 포털 뉴스로 즉시 결과가 나오는 상황에 재환은 내친김에 최근 두 포털사이트에 대한 지분을 사들였다.
[그래서 이제 두들기면 돼?]
“오케이! 그러면 된다. 반응 보고서 차례대로 움직일 거야!”
[뭐, 수익을 계산하고 한 일이지만··· 실패하면 너한테 다 청구할거다.]
“실패하면 2배로 배상해주마.”
재환은 크게 웃으면서 현규가 움직이도록 했다.
현재 시각 오전 11시 10분.
그리고 이제 12시가 되면 점심시간에 밥먹다가 증권맨들 뿜을 폭탄이 터진다.
***
[속보: 삼신그룹-KS그룹 지분 우호거래 빅딜.]
[삼신 이현규, KS 최대현과 거래를 하다!]
[재계서열 1위와 4위의 두 기업은 향후 휴대폰과 통신사라는 이해관계로 지분 거래를 타결했으며 지주회사 KS와 KS텔레콤, 그리고 삼신전자와 삼신디스플레이의 거래를 마쳤다.]
소베날 인베스트먼트가 14%가 약간 못 미치는 지분을 매수해 제 2주주가 된 것이 증권가를 뒤흔들어야 했다.
그런데 불과 50분 만에 삼신이 움직이니, 그동안 움츠리고 있던 개인투자자들은 정말 KS에 주가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들이는 것은 바로 외인의 지분들.
그것으로 인해 소베날의 한국 재벌 침공은 첫 단추부터 채우기 전에 단추에 금이 갔다.
그리고 그 뉴스를 보고 있던 제임스 리는 탁자를 내리쳤다.
콰아앙!
“이사님!”
“뭐야? 정보가 새기라도 한 거냐? 삼신이 저기서 왜 움직이는데!”
뭔가 처음부터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래도 10% 내의 오차는 있을 거라 예상하고 진행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올라간 KS 주식으로 인해 원래였으면 15%를 채워야 할 것을 13.9%라는 오차가 생겼다.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경영권을 위협할 지분은 됐었다.
이대로 끌고 가서 주주총회때 움직이면 되는 일이었는데··· 갑자기 자신들의 지분 매입 이후 삼신이 끼어들어 비슷한 금액으로 우호지분거래를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외인지분 35%+소베날 15% 라는 과반수 시나리오가 완전히 어긋났다.
“이사님. 이렇게 된 거면 그동안 지분을 올렸던게 삼신인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KS회장 최대현과 삼신의 후계자 이현규는 상당히 각별한 사이라고 합니다.”
두 증권사 직원들의 말에 제임스 리는 인상을 쓰면서 중얼거렸다.
“아니야. 삼신이 한국 내에서는 큰 기업이라고 해도 이렇게 즉각 움직일수는 없어···.”
제임스는 그것에 대해 한 가지를 확신했다.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 배후에서 조종하는 놈이 있는 것 같다. 움직임을 따라 너무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대응을 보면 말이야.’
제임스 리는 그 녀석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그 쪽의 자금줄을 말려야겠다고 다짐했다.
***
그날 밤 청담동의 와인바에서 혜성과 효령의 회담이 있었다.
“다음은 너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거야?”
조문영이 걱정스럽게 묻자 재환은 느긋하게 대답했다.
“이사회 통과되고, 아버지에게도 허락 받았다며? 이참에 KS그룹하고 한 번 친목을 다져봐.”
그룹 내에서 수백-수천억 단위의 지분 거래를 재환 한 명의 오더로 처리하기란 힘들었다.
재환이야 혜성그룹 회장이라 그룹내 전권을 가지고 있었고, 삼신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엇비슷한 덩치의 기업들의 전략적 제휴지만 효령은 달랐다.
딱 90년대 혜성처럼 대기업 말석에 위치한 곳이었고, 금액 리스크는 컸다.
“손해 볼 것도 없고, 이후 매수한 주식은 전부 대현 형님이 사들일 테니까 걱정할 거 없어. 투자라고 생각해라.”
“후우, 내가 생각했던 오너들의 연합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지금 같이 한배에 타 있으면 그 생각 곧 바뀔 거다.”
“좋아! 한 번 친구를 믿고 해 봐야겠어!”
그렇게 다음은 효령그룹의 역공이 시작됐다.
“이걸로 소베날은 한국에서 재미 못 볼거다. 이미 쪽수에서부터 차이가 나거든.”
재환은 기념으로 오늘 술값은 자신이 내기로 하며 와인잔을 들어올렸다.
“치얼스 하자고?”
재환은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해외주식을 살펴봤다.
그리고 소베날 인베스트먼트의 자금 흐름을 확인한 추가 매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떠들썩했던 지주회사 KS의 이야기는 한층 더 재밌어 졌다.
효령그룹이 투자 선언을 하고, KS의 주식 300억을 매수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로 인해 모든 언론은 경제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지금의 상황을 논했다.
‘현재 외국 자본에 대한 경계로 저러는 것이다.’, ‘검찰 조사 이후 최대현 회장이 우호 지분을 끌어들이는거다.’, ‘대기업 간의 빅딜이 다시 한 번 이뤄지는 거다.’ 갖가지 추론이 다 나오는 상황에서 재환은 임선아를 초대하고 현재까지의 지분 거래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아직 홍콩하고 모나코는 조용하죠?”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서랍을 열어 유가증권을 꺼냈다.
[크래프트 시큐리티]
소베날과 육공회의 KS의 지주를 둔 지분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재환은 한 발짝 더 다가가 있었다.
소베날의 옆구리를 치는 전략이었는데, 그들의 자회사인 크래프트 증권의 지분을 사들이고 있었다.
아직은 소액이라 그닥 크게 느끼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숙부들의 이름을 통해 매수할 것이고, 그 뒤로 점점 더 한국발 매수가 커진다는 것을 눈치챌 때는 게임이 끝난다.
재환에게 있어선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고서 소베날 사태를 넘어갈수 있게 KS에게 아주 ‘큰 빚’을 하나 건네주게 된다.
그리고 육공회 역시도 판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재환에 대해 시선이 달라질 것이며, 혜성그룹은 해외 투자은행을 대주주로 있으면서 향후 국제자본에 대한 투기를 막을 수 있게 된다.
결국, 재환이 짜 놓은 판세에 모두가 돌아가고 있었고, 소베날은 ‘침략자’가 아닌 ‘본보기’가 되어서 떡이 되도록 짓밟으면 끝이었다.
“크래프트 외에도 소베날 같이 홍콩을 움직여 흔들 수 있는 투자은행들 지분 투자를 하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회장님을 도와서 그쪽 매수에 대해 힘을 쓰겠습니다.”
“좋아요. 저는 일 잘하는 사람을 아주 좋아하죠.”
산업은행 시절은 ‘방어’에 급급했다면, 조아은행과 거래를 하면서 ‘공격’적으로 변하는 혜성그룹의 움직임이다.
재환은 임선아를 보낸 뒤로 휴대폰을 들어 국제전화를 걸었다.
[으으음··· 헬로우?]
“요~ 케빈장씨!”
[아, 회장님. 새벽에 다 전화를 주셨습니까~?]
“한국은 아직 오후고, 너는 한국인이라는 걸 잊지 말거라.”
빅딜 이후 오랜만에 피터 앤 컴퍼니 소속의 친구 진우에게 연락을 한 재환이었다.
“몇 가지 물을 게 있어서 연락했다.”
[뭔데요? 말해봐요.]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 월가는 손 안쓰냐?”
[순환출자 고리 파고드는 투기자본? 일단 껀수라고 생각은 하더라고.]
“그렇군.”
유럽 투기자본이 아니라 미국 월가까지 달려든다면 지금의 배 이상의 총알 싸움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소베날의 계산 오류로 인해 혼전이 되자 월가의 투자기관들은 아직 간을 보는 것 같았다.
이 녀석들이 외인으로 매수를 한다면 정말 큰일이지만, 일단 그건 최악의 수로 염두해둘 것이다.
“오케이. 알았어!”
[휘유- 휘말린건지 모르겠는데, 조심해라. KS 하나로 끝날 게 아닐 일 같다.]
“어~ 그래.”
재환은 전화를 마치고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
“이사님! 알아냈습니다.”
크래프트 증권 직원은 최근 이상함을 느끼면서 전체적으로 자금 흐름을 알아보라고 한 제임스 리의 오더를 받아왔다.
“어떻게 됐어?”
“두 곳입니다. 한국의 농업조합이자 제 1금융기관인 NH금융투자와, 조아은행 산하의 조아투자증권이라고 합니다.”
‘두 곳이나 된다고?’
제임스는 상황을 노트에 적어 그리면서 물었다.
“그럼 두 곳과 가장 교류하는 국내 기업은 어디가 있지?”
“한국의 기업들은 전부 융자를 받아 처리하지만···.”
“그러니까 그 둘과 같이 교류하는 기업을!”
“아, 네! 그곳은··· 혜성입니다!”
“!”
“그··· 예전에 한국 최초로 나스닥 상장을 추진했던 대기업입니다. 현재 재계서열 9위로 금융관련 계열사는 없지만···.”
“그 놈이군!”
제임스는 KS를 점거하려는 프로젝트에 계속 재를 뿌리는 배후를 드디어 알아냈다.
“하지만, 이사님. 정말 이쪽이겠습니까? 그보다 더 큰 삼신이나 KS를 조종한다는건···.”
“그래서 재벌이라 불리는 거지. 그들은 혈연과 지연, 학연 등으로 오너간에 교류를 하면서 언제든지 시장을 흔들 수 있으니까!”
제임스는 이렇게 된 이상 혜성그룹의 그 CEO를 찾을 생각이었다.
그의 반응 여하에 따라··· 어쩌면 나스닥에 상장한 혜성의 계열사들과 그들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는 타겟 변경이 될 수도 있었다.
‘됐어. 초반에 조금 삐끗하긴 했어도 추가로 1억 달러의 결제가 들어왔다. 기대수익은 충분히 올릴 수 있어.’
그리고 제임스 리에게 또 한가지 정보가 왔다.
자신들이 묵고 있는 여의도 케네디 호텔에서 현재 혜성그룹 회장이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
“기껏 준비했는데, 어떻게 된거야?”
[죄송해요! 정말로 죄송해요! 집에서 일이 생겨서 지금 부모님이랑 같이 청주로 가야 해요!]
재환은 랍스터를 먹으러 미연을 불렀다가, 급한 일이 생겨 일가가 고향 내려갔다는 말에 김이 샜다.
“후우, 경조사는 어쩔 수 없지. 알았어, 그러면 다음에 보기로 하자.”
[죄송해요. 오빠! 다음에는 제가 직접 저녁을 살게요. 브런치 식당이요.]
“아, 그래. 알았다~ 조심히 다녀와라!”
취소할 수도 없고, 화이트 와인 하나 시켜서 이 큰 랍스터는 재환 혼자서 먹기로 했다.
그때 재환의 주변으로 조용히 다가오는 제임스 리가 있었다.
재환 역시 인기척을 느꼈지만, 조용히 와인을 마시며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제임스 리의 움직임에 재환 주변으로 경호팀이 서서히 나섰다.
하지만 재환은 조용히 손을 들어올렸다.
“나 찾아온 손님인거 같구만. 근데 초대한 적이 없는데?”
제임스는 재환을 보고 먼저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식사중에 결례를 좀 범했습니다.”
“양 많이 보인다고, 같이 먹자는 말은 못하겠네.”
비슷한 연배의 정장차림의 남자를 보고 재환은 덤덤하게 넘겼다.
“제 소개를 하면 앉을 수 있습니까?”
“소베날인가? 크래프트인가?”
“전자쪽입니다.”
“그럼 앉아요.”
재환은 쿨하게 명한다음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잠깐 내 주변 30m 이상 떨어져들 있어요.”
“회장님, 하지만···.”
“됐어요. 잠깐 얘기좀 해보렵니다.”
“알겠습니다.”
경호팀은 인사하며 조용히 물러났고, 재환은 제임스 리를 보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다가다 한 번 쯤은 볼 것 같았지. 요새 일부러 서울역과 여의도 일대 호텔들 식당을 돌았거든.”
다행히 데이트 도중에 찾아온 게 아니어서 피식 웃는 재환이었다.
“일단 소개부터 드리죠. 소베날 인베스트먼트의 임원 제임스 리라고 합니다.”
정중하게 명함을 두손으로 올리자 재환은 그것을 받고 품을 뒤적거려 명함을 교환했다.
“혜성의 신재환이오.”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바로 여쭙겠습니다. 이번 KS지분 매수 회장님의 작품입니까?”
“작품이라··· 편하게 생각하쇼.”
어차피 딱히 뺄 이유도 없었고, 결국 몸이 달은 쪽이 먼저 찾아온 일이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군요. KS는 매우 매력적인 사업이 많은 기업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들의 사업을 같이 하고 싶습니다.”
“기습적으로 순환출자에서 약한 고리만 핀포인트로 쳐서 먹는 양반들이?”
“그것은 사업의 기본, 적은 금액으로 큰 성과를 이루는 것이죠.”
“어떻게 말을 해도 국내에서 댁들의 이미지는 투기 세력이요. 그냥 관광왔다 생각하고 이쯤해서 돌아가시려는게 어떨련지?”
재환의 말에 제임스 리의 미간이 살짝 찌푸러졌다.
“반타작도 못하고 돌아가는 투자자가 있겠습니까? 저흰 여기서 아주 오~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소베날의 현지법인도 만들어지고 있었고, 최소 3년 이상은 한국에 있으면서 주식 투기 놀이를 할 거라는 말에 재환이 피식 웃었다.
“그동안 쪽박차면, G.M(상무) 진급은 별나라 이야기겠는걸?”
“···정말 그렇게 움직이신다는 겁니까?”
제임스 리는 재환이 건네주는 와인을 마시면서 말했다.
“이것 참··· 언제봐도 한국의 재벌문화는 적응이 안 되는군요. 고작 1-2%의 지분으로 수십, 수백조를 움직이면서 연쇄도산의 폭탄을 담고 있는 자들이.”
제임스 리는 한국 재벌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가지고 말했다.
“지금이야 1세대 사람들이 살아있으니 그런식으로 움직이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대들이 한국의 걸림돌이 될겁니다.”
“아이고, 진심으로 이 나라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인가?”
“어느쪽이든 투자대상이 썩어들어가는 건 못 봐주겠으니까요.”
결국, 대세에 따라 순환출자 제도는 사라질 것이고, 소베날이 아니더라도 제2, 제3의 존재가 나와서 언제든 공격할 것이다.
그러니 이쯤 하고 적당히 끝내자는 말에 재환도 와인을 먹으며 말했다.
“엿이나 먹으라지. 투기꾼 녀석들.”
“!”
“검은 머리 외국인 녀석이 한국 경제 미래를 판단할 자격이나 있나? 남의 돈 끌어모아 한탕 하려고 온 투기꾼이 말이야.”
“하하··· 끝까지 가시는 거군요.”
제임스 리는 재환을 노려보면서 이제 이 자를 쓰러트려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재환 역시 느긋한 얼굴로 ‘좀 더 날뛰어봐라.’라는 식으로 깔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