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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140화 (140/244)

140-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저녁에 애인과 만난 재환은 웨스틴 호텔의 중식집 ‘화연’에서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그냥 가볍게 중화요리여도 되는데요.”

“왜? 맘에 안 들어?”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비싸서···.”

먹는 쪽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고급 호텔에서 정식을 시키는 재환을 보고 미연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재환은 느긋한 얼굴이었다.

“원래는 그 소원에 맞춰서 진짜 유명한 노포 맛집을 생각했거든? 근데 공교롭게 문을 닫았더라고.”

재환은 이 삶으로 돌아오면서 아버지와 자주 먹었던 용산 일대의 남경반점 코스요리를 떠올리다가 피식 웃었다.

“뭐, 아쉬운 대로 여기 코스요리도 좋지.”

오래된 반점 대신 호텔 코스요리를 주문했으니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됐다.

두 남녀가 주문한 뒤로 먼저 차가 나왔을 때, 재환은 마시면서 휴대폰 문자를 받았다.

[회장님, 임창훈입니다. 경제지에 알아본 결과 홍콩 쪽 ‘크래프트 증권’이라는 곳에서 인터뷰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그럼 그렇지.”

데이트 중에 받은 연락에 재환은 답장문자로 ‘그쪽 알아보고 혹시 앞장세운 한국계 인물이 있는지 살펴봐라.’라고 오더를 보냈다.

“무슨 문자를 그렇게 보세요?”

“아, 미안. 회사 일이라서.”

재환이 휴대폰을 다시 넣고 다시 애인과 같이 식사를 시작했다.

송이버섯 요리가 처음 나오고 그 뒤로 차례대로 나오는 음식을 먹으면서 재환은 이럴 때야 말로 회사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

“먹을 만해?”

“네, 아주 맛있어요.”

아빠 미소로 흐뭇하게 미연을 바라보던 재환이었다.

그때 밥을 계속 먹다 고개를 돌렸을 때 들어온 손님과 재환이 우연히 눈을 마주쳤다.

“음?”

“오빠, 왜 그러세요?”

“아는 분을 만난 거 같아서.”

미연이 누구인가 싶어 입구로 들어오는 손님을 바라봤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사색이 되면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왜 그래? 너도 아는 분이냐?”

“빠, 빨리 먹고 여기 나가야···.”

“음? 왜?”

“아, 안돼요! 지금 들키면!”

미연은 그러다가 중년 부부의 손님 내외가 고개를 돌릴 때 조용히 나가서 황급히 밖으로 나가 몸을 피했다.

재환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자리를 안내받기 위해 다가오는 내외를 좀 더 가까이서 보게 됐다.

“아!”

“아이고, 한 의원님. 맞으시죠?”

재환이 일어나서 한 의원에게 반갑게 인사하자, 그 역시도 웃으면서 악수를 했다.

“아니, 어떻게 신 회장님을 여기서 뵙는군요?”

“하하, 갑자기 짜장면이 땡기는 날이 있습니다.”

“이 분이 혜성그룹 회장이세요? 어머머!”

옆에 있는 한 의원의 부인이 황급히 재환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 의원 안사람입니다.”

“아, 사모님이시군요. 두 분이 오붓하게 좋은 식사자리 가지십시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나저나 미연이 왜 갑자기 자리를 피했나 싶었던 재환은 불현듯 떠오르는게 있어 넌지시 물었다.

“한 의원님.”

“네,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따님 있으십니까?”

“···네?”

한수호는 그 질문에 어리둥절했고, 옆에 있는 부인이 말했다.

“아! 네, 큰애가 딸이죠. 아이고~ 연예인 한다고 속 엄청 썩였는데, 요새는 그 교육방송에서 일해요.”

“아··· 그렇군요.”

“그거 졸업하면 빨리 시집이나 보내야 되는데!”

졸지에 애인의 집안사를 알게 됐고, 어쩌면 이분들이 예비 장인,장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재환은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아직 반도 안 먹은 코스요리를 보고 밖으로 피해있는 미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냥 딴 데 가서 먹을래?]

[아뇨, 죄송해요. 금방 들어갈게요.]

다행히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단지 급하게 먹은 뒤 후다닥 나왔을뿐이다.

그 뒤로 디저트는 자신이 사겠다고 근처 빙수집에 가서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미연의 반응에 재환은 그저 재밌게 지켜봤다.

***

“하하하, 사람 인연이라는게 참.”

어제 일을 떠올린 재환은 회사 내에서도 키득거리면서 언제쯤 부모님에게 말할까 생각했다.

그동안 아버지가 정치자금을 댄 것은 현 대통령 김대준의 오랜 후원자로 새정치당의 스폰서였다.

그런데 지금 사귀는 아가씨가 새정치당의 라이벌, 새한국당의 의원 딸이라니 재미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장가가라고 들볶던 아버지가 뭐라 할지 궁금하네.”

뭐, 정치인 집안의 딸이라면 딱히 반대는 안 하겠지만, 안팍으로 얘기는 좀 나올 것 같았다.

그때 회장실의 스피커폰이 울렸다.

RRRR-

“여보세요?”

[대표님, 기전실장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들어오라 하세요.”

연애 생각은 이쯤 하고, 다시 업무로 복귀할 때였다.

기전실장 임창훈은 곧바로 들어와 재환이 알아오라 한 자에 대한 기사를 건넸다.

“내일 자 올라올 기사입니다.”

대충 작성한 인터뷰 같았는데, 사진이 동봉되어 있었고, 그에 대한 프로필이 드러났다.

“제임스 리?”

“알아보니 주영국대사 이한민 전 차관보의 자제로 현재는 영국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검머외네요.”

고위 외교관 아들로 태어나 그곳에서 출생해서, 국적을 딴 이야기.

훗날이라면 논란이 될 수 있어도, 60년대 출생자라고 하니 크게 논란되지는 않을 시대였다.

“공부 열심히 했네? 런던정경대 출신에 미국 월가 근무도 했었고, 지금은 소베날 인베스트먼트의 이사라···.”

소베날이라는 이름을 보고서 재환은 이 녀석이 국내에 재벌 사냥을 위해 파견된 자객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대표님. 소베날과의 협상을 하기위해 알아보라 하신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찌 해외 금융투자사 임원들을 알아보라 하신···?”

“협상이라니요? 오히려 조질 녀석들입니다. 그것도 이쪽 방향만 보면 오줌을 지리면서 장난질 못하게요.”

“!”

재환의 말에 섬찟함을 느낀 임창훈이었다.

“앞으로 제가 금융계 사람들을 좀 많이 만날 겁니다. 각 계열사에 대해서는 실장님이 조율 좀 해 주세요.”

“네? 회장님. 제가 말입니까?”

“특히 김 고문 유니콘 재단으로 빠지고, 아버지도 조용하시니 기전실이 컨트롤타워가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재환은 임창훈을 돌려보낸 뒤로 퇴근 전에 전화를 걸었다.

“아직 장 마감 안 됐지?”

재환은 시간을 확인하고 차 안에서 전화를 걸었다.

하나는 조아은행, 그리고 다른 한 나는 농협은행이었다.

재환은 두 은행의 산하 투자증권에 ‘한 가지 부탁’을 했고, 그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어 따르기로 했다.

***

“매수는 순조롭게 이뤄지는데 뭔가 좀 그렇네?”

제임스 리는 한국에 온 지 이틀차에 바뀐 주가를 보고서 미묘함을 느꼈다.

그리고 파견 온 크래프트 증권 직원들에게 물었다.

“아직까지 한국 내에 무슨 주가 리스크 같은 거 없지?”

“네, 이사님. 아직 오너는 탈세 혐의로 조사중이라 리더 부재인 상태입니다.”

“흐으음, 그럼 다른 외인 투자인가?”

그들이 생각한 것은 순환출자의 대기업 중에서 가장 고리가 약한 KS를 노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KS지주회사는 수백 달러대의 타 계열사와 다르게 주당 7불이 안되는 곳이라 풀 매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식이 올라 한화로 8천원대까지 오르자 무슨 일인가 싶어 조사를 했다.

“설마하니 우리 존재를 알고서 국내 증권가가?”

“그럴 일은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선 그런 흐름을 캐치할 만한 금융회사도 없습니다.”

이미 다국적기업으로 홍콩 증권거래소에서 이런 일 한두 번 해 본 실력이 아닌 자들이었다.

“뭐, 조금 오르긴 했지만, 별수 없지. 내일부터 지주회서 KS에 대한 풀매수 들어가도록 해요.”

예산은 총 1억 5천만 달러로 준비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미친 듯이 올라가는 주)KS의 주가였다.

[다음 소식입니다. 해외 기관들의 대기업 투자로 인해 지주회사들의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오늘의 장입니다.]

주당 8천원 하고 있던 KS가 9천원대 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룹 내에서도 점점 우려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크래프트 증권의 매수로 소베날 인베스트먼트가 5%의 지분으로 KS의 대주주가 되었을 때, 임원진의 긴급회의가 들어갔다.

지주회사 자체의 주가는 적지만, 그 순환의 고리에는 KS그룹 최고의 계열서 KS텔레콤과 KS에너지가 있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지주회사 KS가 대주주로 오너의 지분을 넘으면 곧바로 핵심 계열사가 그룹 오너 대신 해외 투자사가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시나리오로는 말이다.

***

“10%까지는 순조롭게 매수되고 있습니다”

크래프트 증권의 직원들은 제임스 리의 지휘 아래 지주회사 KS의 풀매수를 계속해서 올렸고, 점점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은 8천만 달러가 한 번에 터질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최종적으로는 15%까지 지주회사를 소베날이 점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제임스 리는 이상한 것을 느꼈다.

“이거··· 생각보다 다른데?”

“무엇이 말입니까?”

여의도 증권거래소를 다녀온 제임스 리는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가 매수하는 것 이상으로 점점 자본이 움직이고 있어.”

“저것 역시 외인 기관 아니겠습니까?”

“저게 안 보이나? 국내 자본으로 움직이는거야.”

자사주 매수도 아니고, 소베날과 쌍끌이로 지주회사 KS를 매수하는 ‘또 다른 세력’이 있다는 것을 제임스 리만 캐치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의문을 가지고 멈출수는 없었다.

이미 레이스는 시작됐고, 소베날은 최종적으로 KS의 1100만 주 정도를 확보하기 위해 계속 매수를 눌렀다.

‘차라리 오차 10%까지 생각하고 좀더 예산을 올려서라도 지분 15%만 채우면 되는데...’

***

“오케이! 놈들 움직이시고!”

재환은 조아은행과 농협은행에서 이번 주식 매수 잘 진행된다는 말에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날 속보로 KS그룹 회장 최대현의 탈세 건에 대해서 1심 무혐의가 떴다.

그날 저녁 다급한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야, 재환아! 지금 어디냐?]

대현이었다.

재환은 올 사람이 왔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슬슬 퇴근하려고 하시는데, 오늘 축하연이라도 있습니까?”

[기, 긴급 소집이다! 나 좀 도와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을 안 재환은 웃음을 참으면서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KS호텔에 도착했을 때, 오늘은 술도 놀잇감도 없이 정말 심각하고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됐다.

그리고 육공회 일부는 해외 출장 등으로 참여자도 절반 남짓이었다.

재환, 현규, 대현, 문영 넷만 있는 육공회에서는 역시 소베날 사건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야이씨! 이거 진짜 큰일이다!”

눈 뜬채로 그룹을 통째로 뺏길 위험에 대현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평소에 지분 관리 잘 하시지 그랬어요?”

재환이 그 말을 하자 대현은 한숨을 푹푹 쉬면서 말했다.

“농담도 못 받아주겠다. 이건 진짜···하아~”

상황을 파악한 현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심각해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난 지금 사재 털어서라도 자사주 매입해야 해. 이거 메꾸려면 적어도 1조는 든다!”

차라리 주당 7천원 이하일 때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사들이면 됐는데, 순환출자의 구조상 그런 계열사 지분 교환이 안 되다 보니 위태위태하다가 터진 케이스였다.

그리고 KS를 시작으로 향후 10년동안 한국 재벌 기업집단들은 지주회사를 집요하게 노리는 해외 금융기관들에게 계속해서 털리게 된다.

그렇게 사들이고 거액의 배당금과 차익을 남긴 다음 팔아먹고 피하면 끝이니 말이다.

게다가 이런 해외 투기자본이 배당소득 제외하고 세금을 물릴 방법이 없었던 금융당국의 취약성도 도마 위에 오른 게 이때였다.

결국, 첫 빠따로 당하게 생긴 KS를 위해 재환이 말했다.

“너무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니에요. 우리가 있잖아요?”

“뭐?”

“형님, 기억 안 나요? 우호지분 거래해서 저희가 가진 지주회사 KS 지분이요.”

“!”

분명 육공회의 끈끈한 동맹과 신사협정 식으로 서로간 교류를 해 오긴 했었다.

하지만 그걸 합쳐도 아직은 무리라 생각한 대현이 말했다.

“아냐, 그래도 부족해! 지금 내가 집안 사람들 총 동원해서 지주회사에 소유한 지분이 15%야.”

‘그 중에서 본인 소유는 1.1% 남짓이고.’

재환은 그걸 생각하며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계산했다.

“저 놈들 못해도 그만큼은 매수할 거야. 벌써 11%를 넘었어.”

“그 외에는 뭐 없습니까?”

이번엔 문영이 묻자 대현이 그것에도 대답했다.

“자사주 3.3%··· 나머지가 외국인 투자 35%인데, 여기서 저놈들 15%가 나오면···.”

“어이구야. 그럼 순식간에 외국인 주주 과반수네?”

현규나 문용도 이게 정말 보통일이 아니라는 심각성을 느꼈다.

그것을 막기 위해 KS가 당시 어떻게든 외국인 기관의 지분 과반수를 막기 위해서 발로 뛰어다녔던 최대현의 고생은 금융역사에도 남았다.

하지만 재환은 그것을 혼자만 느긋하게 말했다.

“됐어요. 오히려 이 싸움 더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어, 어떻게? 지금 우리 회사 법무팀 전부 머리싸매고 있다고!”

“일단 그놈들이 15% 정도 지분을 소유 못 하게 만들면 되는거 아닙니까?”

“그게 말이쉽지.”

“쉬워요!”

“!!!”

재환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육공회 멤버들에게 말했다.

“다들 잘 알아두라고요. 향후 KS를 넘어 삼신이나 효령, 그리고 우리 혜성도 이런 상황을 겪을 수 있으니 본보기를 보이는 싸움을 할겁니다.”

상대는 유럽과 홍콩에서 움직이는 해외 투기자본.

재환은 이들을 조져버릴 계획을 그 자리에서 털어놨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세 명의 재벌 오너 일가 사람들의 눈이 점점 커지고 입이 떡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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