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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137화 (137/244)
  • 137- 온갖 일이 생겼습니다.

    2002년의 상반기가 월드컵으로 인한 축구 열풍이었다면, 하반기는 야구의 시간이었다.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그해 KBA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는 85년 이후, 트로피를 가지지 못했던 삼신 라이온즈의 기적같은 끝내기 홈런 우승으로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번 육공회 모임에서는 전적으로 현규가 전부 쐈다.

    “크아아앗! 솟구쳐 오른다!”

    환호, 열정, 감동 모든 단어를 써도 될 만큼 좋아하는 현규를 보니 확실히 삼신가의 야구사랑은 정말 각별하다고 생각했다.

    재환은 그러면서 옆에서 거드는 진용도 슬쩍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도 훗날에···.’

    “뭐야? 왜 날 봐?”

    “이쪽도 흘깃거리고 말이야.”

    재환이 대현과 진용을 여러번 바라보자 둘이 물었고, 헛기침으로 얼버무렸다.

    “뭐, 삼신 우승 덕분에 서라벌 호텔에서 파티하는 건 좋은데 말이죠. 이제 다른 이야기를 좀 해봅시다.”

    “아, 그래. 재단 설립 논의도 있었지.”

    대현은 그때 여기 여섯 명이 재단 이전부터 십시일반을 해준 일을 떠올렸다.

    “그래도 우리 육공회 형제들이 의리가 돈독해요. 지난번 연평해전에서 유가족 기부금 모은걸 보면요.”

    “마, 그건 네가 더 존경스럽다. 일시불 몇억식에다가 10몇년 연금까지 지원한다며?”

    기부라고는 하지만 상상 이상의 스케일에 모두 눈치싸움으로 그분들에게 크게 기증했다.

    재환은 그 일을 생각하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매년 해외주식 굴리면서 버는 돈이 2-300억은 됩니다. 이건 그룹 내 연봉이나 배당금 없이 순수 수익으로요.”

    “어이구, 우리 재환이 알부자네?”

    “솔직히 1년이면 충분히 메꿀 돈인데, 그걸 좋은 일에 쓰는 건 일도 아니죠.”

    “그래, 덕분에 우리도 지갑 크게 열었다.”

    대현은 크게 웃으면서 재환에게 말했다.

    “자~ 우리가 월드컵때 한 내기에 따라서 육공회의 재단을 만들고 이사장은 신재환 회장이 될 거야.”

    그러면서 재환을 띄워줬다.

    “자, 초대 이사장 신재환에게 박수!”

    육공회 멤버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재환은 이 자리에서 취임사를 맥주 한 잔 쭉 비우고 말했다.

    “아, 일단 처음으로 육공회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내가 활동할 수 있어서 기쁘네요. 하지만 한 가지 당부할게 있습니다.”

    재환은 자신이 생각한 육공회 재단에 대해 말했다.

    “먼저 ‘육공회’는 지금처럼 계속 음지의 친목회로 계속 유지합시다. 이 재단은 대외적으로 경제련 중 일부의 후원으로 인해 이뤄지는 것으로 될 겁니다.”

    “!”

    “음?”

    양지이자 음지를 추구한다는 육공회 재단을 두고서 재환은 앞으로 운영 방침에 대해 말했다.

    “먼저 생각할 것은 기술 위주의 투자재단이 될 거에요. 아이디어가 있는 벤처기업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창업자금 지원과 거기에 따른 기술 교류를 만들것입니다.”

    재환의 말에 일부는 수긍하면서 찔리는 것도 있었다.

    특히 대현은 지난번 내비게이션 경쟁때 선 넘을 뻔한 짓을 혜성-KS간 우호지분 교류로 인해서 겨우 화해했기 때문에 차라리 공공재의 재단 내에서 공동 투자로 아이디어를 얻어내는 것에 대해 수긍했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저희가 창업활동을 지원하는 겁니다. 물론 거기에 따라서 낙하산들이 보조금 털어먹으려고 온 것은 지양해야겠죠?”

    재환은 그것을 염두해서 말했다.

    “친인척 등으로 관련된 투자는 더욱 엄중하게 진행할거고, 만장일치제로 할 겁니다. 한 명이라도 거부하면 끝이에요.”

    “동의!”

    “오케이!”

    대다수가 동의하는 일이었고, 재환은 거기에 대해 한 가지 더 말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육공회란 이름은 쓸 수 없으니 재단 이름을 새로 만듭시다. 신청 받아요.”

    여섯 명의 재벌가 오너들의 머리를 싸매고 이름을 생각했다.

    “식스티 코퍼레이션!”

    “기각!”

    재환은 그러면서 대현이 별생각 없이 말한거라 여기고 노려봤다.

    “신세계 기술문화재단?”

    “엉, 진용아. 그것도 좀 그렇다.”

    “기업의 별, 창업의 별, 문화의 별에서 쓰리스타! 삼성 어떠냐?”

    “기각!”

    “형님. 지금의 삶을 위한 기술교류니 현대는요?”

    “야!”

    어째 재벌가 오너들이 다 모였는데도, 상상력의 부재인지 재단 이름 하나 짓는데, 제대로 된 이름 하나 낼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자리에서 조용히 현규가 손을 들었다.

    “뭔가 순우리말로 해도 좋을 것 같아.”

    “음?”

    “어떻게 보면 재벌의 상징이 하나 있잖아? 용.”

    “용이라···.”

    “그리고 어떻게 보면 개천 용을 만들어내고, 우리 역시도 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순우리말로는 ‘미르’라고 하더라고···.”

    “···미르재단?”

    재환은 그 단어를 듣고서 등골이 서늘했다.

    “...미안하다. 그건 진짜 안 될 말이다.”

    “아, 진짜! 더럽게 까다롭네! 미르재단이라는 이름도 좋아보이는구만.”

    ‘그 미르가 네 미래를 날려버릴 뻔 했단다···.’

    재환은 기를 쓰고 반대했고,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을 때, 정인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냥 간편하게 가자.”

    “음?”

    “일단, 우리가 하는게 창업 지원을 하고 그 모든게 우리의 후원으로 이뤄져서 영향력을 높이는 거잖아?”

    “그렇지.”

    “그렇게 키운 기업들이 성장하는데, 그런 개천용을 키우는 건 힘들잖아?”

    “그러니까 용은 별로라니까요?”

    “그럼 다른 단어로 하지. 유니콘은 어떠냐?”

    “어···?”

    유니콘 기업.

    훗날 벤처기업이란 단어가 IT버블과 서브프라임 이후로 사장되고, 투자를 통해서 아이디어로 급성장해 벼락출세를 하는 희귀한 케이스라는 의미로 쓰이는 미국의 스타트업 용어였다.

    “유니콘··· 유니콘기술문화재단이라···.”

    “야, 차라리 그걸로 하자! 이름 괜찮아 보인다. 유니콘 재단.”

    대현의 말에 진용도 수긍했다.

    “나쁘지 않네? 유니콘 재단 이사장 신재환이라···”

    분위기는 점점 유니콘이라는 이름에 꽂혔고,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결정했다.

    “그래, 그러면 유니콘이라는 이름으로 갑시다.”

    2002년 서라벌 호텔의 오너들의 술자리에서 결정된 재단법인 유니콘의 탄생이었다.

    ***

    구로디지털단지.

    이 당시는 아직 ‘2호선 공단입구역’이라는 곳으로 알려진 구로동의 수많은 오피스 빌딩의 사이에서 삼신 소유의 작은 빌딩 하나에, KS와 두성, 신누리의 후원이 경제련을 통해 이뤄졌다.

    그리고 초대 이사장으로 혜성그룹 신재환 회장이 임명되는 ‘유니콘 기술문화재단’창립식이 사옥 옆의 샤를로트 시티호텔에서 열렸다.

    경제련의 간부들과 대기업의 오너들, 게다가 정치권 내에서도 방귀 께나 뀐다는 거물들이 모여있었고, 노동부와 정보통신부는 장관이 직접 와서 축하를 보냈다.

    재환은 그분들을 모아놓고서 유니콘의 창립 기념사를 천천히 읊었다.

    [네, 먼저 여기 와 주신 여러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먼저 저희 유니콘 기술문화재단은 기업의 후원으로 청년실업과 각종 아이디어 상품을 도와 동반 성장을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재단의 후원으로 인해 지원자를 추슬러 각종 자격증 지원과, 취업 알선, 또한 공모전 등을 통해 스펙으로 기업 입사가 가능하도록 만들겠다는 플랜을 내놓았다.

    그동안 재벌들 간에 많고 많은 재단이 있었고, 재환의 경우 미국의 거위츠 재단 이사까지도 겸하고 있었지만, 단순 복지가 아닌 기술 후원이라는 슬로건을 내 걸었다.

    재환의 기념사가 끝나고 큰 박수가 이어졌고, 만찬회가 이어졌다.

    재환은 여기저기서 오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고 악수하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특히 많이 찍는 것은 노동부와 정보통신부의 장관을 포함한 고위 간부들, 그리고 정치권 사람들이었다.

    “여당에 야당에 너나할 것 없이도 왔구만.”

    재환은 하도 악수를 해서 손이 얼얼할 정도였다.

    일단 이것으로 올해 사업에서 큰 건은 거의다 해결된 것 같았다.

    이제는 기존의 계열사들 유지를 하면서 점점 내실을 다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향후 5년에서 10년 뒤에 나올 유니콘 키드들이 각 정,재계에 퍼지는 것을 생각하며 이제 씨 뿌리기에 들어갈 것을 상상하면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때 샴페인 한 잔을 마시던 재환을 향해 불쑥 나타난 인물이 있었다.

    “아,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

    50대 중후반의 중년 남성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꽤 미남이었을 것 같은 밝은 인상이었는데, 단정한 정장 한 곳에 붙어있는 금배지가 그의 신분을 알렸다.

    옆에 있는 남성의 비서가 곧바로 설명했다.

    “새한국당의 한수호 의원님이십니다.”

    “아, 그러시군요. 인사드리겠습니다. 혜성의 신재환입니다.”

    악수를 한 뒤로 한 의원은 유니콘 재단 설립식 현수막을 보며 말했다.

    “정말 좋은 일을 해 주셨습니다. 저도 옛날에 이런 일을 했어서 잘 알지요.”

    “아, 그렇습니까?”

    “제가 특허전문 변호사였어요. 당시에 구로공단이다, 청주공단이다, 대전산업단지다 많이 돌아다녔죠.”

    법조인이 정치하는 경우는 많아도 특허전문이라는 말에 재환은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전혀 들어본적 없는 인물인게, 초선이나 2선 갓 한 정치인으로 보였다.

    “초면에 실례가 많았소. 오늘 인사 이후로 다음에도 뵈는 일이 있도록 합시다.”

    “아, 네. 의원님.”

    재환은 인사 이후 돌아가는 그 의원을 보고 생각했다.

    ‘근데 저 분, 이름은 몰라도 어디서 본 것 같은 인상인데···.’

    어딘가 모르게 재환의 눈에는 위화감은 없고, 익숙함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벌개진 자신의 손에 각종 향수가 범벅된 모습을 보고 재환은 잠시 의자에 앉아 쉬었다.

    “힘들지?”

    옆에 와 있던 현규가 같이 샴페인을 마실 때, 재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좀 오래 있는다? 보통 이런 행사 하면 10분 있다 바로 사라지더만.”

    “하하하, 그러기엔 여기 모인 사람이 너무 많잖아? 이런 사람들이 쉽게 모일 자리가 아니지.”

    현규가 웃으며 말하자 재환이 넌지시 물었다.

    “그래서 임대료는 네 계좌로 보내야 하냐, 아님 삼신전자로 보내야 하냐?”

    “당연히 회사지. 원래 저 건물이 디지털프라자 입주하려는 곳이었는데, 그냥 이 업무로 쓰라고 한 거야.”

    “그렇구만, 아무튼 앞으로 잘 운영해 봐야지. 기다려봐라. 유니콘 키드가 우리들 띄워줄거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아, 맞다. 너 요새도 그 성우 아가씨 만나냐?”

    갑자기 연애사 이야기가 나오자 재환은 멋쩍게 얼굴을 긁적였다.

    “어쩌다보니 사귀게 되었어. 이젠 진짜 커플이지.”

    “오~ 드디어 네가 막차로 장가가는구나.”

    두 재벌가 오너가 키득거리고 있을 때, 그들을 향해 조용히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 자신만만한 얼굴로 걸어오는 그를 보고 현규가 흠칫했다.

    “어?!”

    “왜 그래?”

    그때 그 인물이 다가와 먼저 말했다.

    “이야, 누군가 했더니 현규랑 신 회장님이 같이 계셨구만.”

    “...야, 너 언제 한국 온 거냐?”

    현규가 일어나서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포옹을 하자 재환은 더 모를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현규가 그를 소개해줬다.

    “아, 신 회장하고는 직접 만난 적 없나? 인사해! 효령그룹의 친구다. 우리랑 동갑이야.”

    “처음뵙겠습니다. 조문영이라고 합니다.”

    “아, 네!”

    재계서열 15위의 효령그룹은 그 내실이 튼튼한 곳이었다.

    특히 종합무역상사 부문과 중공업, 화학, 건설, 오토바이 등 손을 안 거치는 곳이 없었다.

    어쨌건 이런 자리에서 새로운 인물을 만난 재환은 악수를 하면서 뒤늦게 서로를 알아갔다.

    “그동안 미국에서도 신 회장님의 활약을 신문을 통해 많이 봤습니다. 혜성그룹에 날개를 달아주신 분이 아닙니까.”

    “아, 네. 효령 역시도 요새 무역상사에서는 네임드 아닙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인데, 오늘 저녁 식사 같이 어때?”

    현규가 먼저 그것을 제안하자 재환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조문영은 정중하게 재환에게 물었다.

    “오늘 저녁 같이 식사가 괜찮으실지요?”

    “아, 네. 뭐 그럽시다.”

    두 눈에 ‘야망’이란 단어가 가득해 보이는 새 친구의 등장에 재환은 한 번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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