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36화 (136/244)
  • 136- 대외적으로 움직인 회장님.

    재환은 혜성쇼핑 임원들을 모아놓고 선언했다.

    “지금부터 터키에 대한 홍보를 아끼지 마시고, 국내 거주하는 터키인들도 초대해서 행사를 한 번 합시다.”

    “네?”

    임원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서 어리둥절했다.

    심지어 몇몇은 터키란 나라에 가본적도 없고, ‘거기가 아시아냐, 유럽이냐?’ 가지고 헷갈릴 때였다.

    “슬로건은 ‘형제의 나라’입니다. 한번 잊어버린 그분들을 존중하는 자리를 만들어보자고요.”

    그렇게 말하며 부장,차장급 직원들이 준비했던 팜플렛을 임원들에게 돌렸다.

    그것은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주터키한국문화원에서 제공한 자료들이었다.

    [민족의 비극 한국전쟁, 세계 4위의 파병과 3번째로 많은 희생을 겪은 터키군과의 역사.]

    터키라는 나라가 한국전쟁 당시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고 ‘금양장리 전투’같은 역사적인 전쟁사의 자료까지 보이면서 현재 국내의 터키 관계에 대한 자료가 가득했다.

    몇몇은 그것을 읽고서야 터키라는 나라가 이런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탄식했다.

    “어차피 3.4위전입니다. 이기고 지는게 중요한 경기가 아니에요. 그렇다면 차라리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를 아주 훈훈하게 전세계의 축제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회장님, 이거 아주 좋은 마케팅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터키가 일본을 16강에서 꺾은 이후로 인지도가 상당히 올라간 상태입니다.”

    곽정빈이 확신하고, 박찬우 등의 다른 임원들도 동조했다.

    “마침 한국 대표팀에게 있어선 마지막 경기가 아닙니까? 월드컵 특수를 위해 움직이는 겁니다.”

    임원들은 ‘터키 마케팅’에 대해서 모두 동조했다.

    그렇게 프로젝트 ‘형제의 나라’는 혜성쇼핑의 지원으로 전국민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언론사가 그 떡밥을 물어 응답하기 시작했다.

    [50년 전 이억만리 타국을 돕기 위해 청춘을 바친 형제의 나라.]

    [무스타파 만시즈:‘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참전할 것입니다. 자유를 위한 형제들의 싸움이니까요.’]

    [기억하고 있습니까? 고구려 때부터 이어진 형제의 나라의 인연을.]

    터키에 대한 이미지는 한국전쟁 이후로 일부 학자들은 고구려와 돌궐의 관련성까지 깊게 파고 들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에 맞춘 혜성그룹의 국내 거주 터키인들 초대와 함께 장학재단 기증식이 벌어졌다.

    “그동안 소홀했던 양국의 관계가 이번 월드컵 이후로 다시 형제의 인연이 되길 바랍니다.”

    재환은 주터키문화원과 외교관들이 있는 자리에서 축사를 하고, 기증식을 끝낸 다음 케밥과 양고기 파티를 벌였다.

    지금 이 자리에 초대한 터키인들은 대다수가 이태원 이슬람 사원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자영업자들과, 혜성재단의 대학교 경한대의 유학생들, 그리고 각 계열사에서 찾고 찾아 데려온 공장 노동자들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좋은 관계를 더 맺기 위해 재환은 주변 임원들에게 일러뒀다.

    “저 사람들 취업비자나 교육비자 잘 살펴보고 괜찮은 사람이다 싶으면 계열사 쪽으로 정규직으로 채용시키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러면서 민트소스에 양고기 한 점을 먹은 재환은 생각보다 괜찮은 맛에 입맛을 다셨다.

    “중국식 양꼬치 말고 이슬람식 양고기도 괜찮은데? 냄새만 어떻게 한다면 가공식품으로 괜찮겠어.”

    그때 재환을 향해 반갑게 다가오는 중년의 터키인이 있었다.

    금발의 백인이지만, 이슬람풍으로 콧수염을 기른 건장한 체구의 인물은 재환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주한터키외교관 자네르 모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신재환이라고 합니다.”

    “혜성 같은 큰 한국 기업이 우리 튀르크와의 우호 교류를 주선해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한터키 외교관 자네르는 유창한 한국어로 재환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 옆으로 아내와 아이가 인사를 했는데, 다른 이슬람국과는 달리 차도르나 터번을 두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재환은 그들에게도 인사하고 임창훈을 시켜 준비한 선물을 가져오게 했다.

    “자, 받으시지요. 터키 분들은 선물을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오우, 아닙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받으세요.”

    “하하, 정말 괜찮습니다.”

    “그래도 받으세요. 가족들을 위한 선물입니다.”

    “하하하, 정 그러시다면···.”

    재환은 그 모습에 터키 문화를 미리 배워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선물 교환을 좋아하지만, 덥썩 받거나 바로 거절하는게 아니라 몇 번의 겸양을 보이고 ‘정 그러시다면···’이라는 식으로 받는다.

    그리고 가장에게 선물할 때는 ‘남자다움’이 필요한 물건을 줘야 했다.

    “오우, 이게 뭡니까?”

    “우리 회사에서 만든 시계입니다. 가족분들이 모두 찰 수 있는 3개입니다.”

    메탈 장식이 화려하게 된 혜성시계의 플래그십 모델을 건네주자 그 선물이 흡족했는지, 손에 차고 있는 명품 롤렌스 시계를 벗고서 바로 차보는 자네르 대사였다.

    그리고는 여성용 시계와 어린이 시계를 각각 아내와 아들에게 건네줬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희도 약소하지만···.”

    문화원 직원들과 외교관들에게 시계 한 자루씩 돌리자 그쪽도 성의라면서 재환에게 건네준 것은 독수리와 칼 모양이 인상적인 수제공예품 찻잔이었다.

    “미스터 신은 티타임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약소하지만···”

    재환은 예의에 맞춰 한 번 겸양적으로 거절했다가 이내 못이기는 척 받고는 그 잔을 어루만졌다.

    터키인들과의 교류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뒤늦게 냄새를 맡은 용산과 강남등의 지역구 정치인들과 외교관들이 도착해서 인사를 나눴고, 이 자리에서만큼은 혜성이 터키와 한국 관계를 크게 향상시킨 주역이 되었다.

    그리고 재환이 돌아봤을 때, 멀리서 선글라스를 쓴 김상명이 있었다.

    “아!”

    “···.”

    그는 말없이 엄지를 보이면서 조용히 물러났다.

    이벤트는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고, 외교관과 문화원의 간부들과 혜성그룹과의 인연도 좋게 시작됐다.

    그 이후 언론에서는 대대적으로 재환과 혜성그룹의 터키 후원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리고 재환은 혜성쇼핑을 통해서 터키의 농산물과 가공식품 등을 수입해서 배치하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그리고 역사적인 터키전이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6월 25일 4강전 독일전 패배로 시작하여, 6월 29일 3.4위전 터키전까지 닷새 남짓한 시간 동안 터키에 대한 이미지는 급속도로 올랐다.

    이후 대통령 내외와 나라의 높으신분들이 VIP석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한국 팀 응원단인 붉은악마가 태극기와 터키 국기를 휘날리면서 모두를 감동케 했다.

    비록 경기는 3:2로 아쉽게 한국 대표팀이 패배했지만, 이 날은 승패를 따지지 않고 모두가 손을 잡으면서 필드를 달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한국과 터키 양국의 우호로 이정도의 국제적인 이벤트는 유래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국정원과 함께 그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신재환 회장은 전반전 경기만 보다가 갑자기 사라졌고 한다.

    ***

    2002 한일 월드컵은 브라질의 5회 우승, 대한민국 4강의 기적, 다시 찾은 형제의 나라, 슈퍼스타 데이빗 베컴 등 수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성황리에 끝이 났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라에 큰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월드컵 열기 속에서 묻혔다.

    [다음 소식입니다. 서해 연평도 해상 부근에서 해군과 북한군의 교전이 일어나···]

    형식적으로 몇 줄의 기사만 나왔던 상황.

    국군의 군함 한 채가 침몰하고, 전사 6명과 부상자 18명이 나온 사건이었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성남에 위치한 국군수도병원에는 당직기자 몇 명에 전사자의 유가족들이 고작인 초라한 분위기였다.

    그때 조문을 위한 검은색 SSM-525 세단 한 대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이는 혜성그룹 회장 신재환과 비서실장 임창훈, 그리고 예비역 대령이자 혜성시계 사장 김명진이 있었다.

    셋 모두 근조를 위해 검은 정장과 넥타이 차림으로 무거운 얼굴로 향했다.

    그 뒤로 같이 온 트럭은 3단 근조화환이 실려 있어 기전실 직원들이 날랐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혜성그룹 회장 신재환]

    재환의 이름으로 화환이 들어갔고,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한 재환은 품 안에서 1억짜리 수표 3장을 꺼내 싸인을 하고, 봉투에 담아 부조함에 담았다.

    “아, 어떻게 오셨는지···?”

    부조함을 지키던 유족들은 재환과 혜성그룹 사람들을 뒤늦게 알아보고 화들짝 놀랐다.

    “혜성그룹 내에서 추모를 왔습니다. 안내해 주시지요.”

    “아, 네!”

    재환은 안으로 들어가 여섯 명의 영정이 있는 곳에 향을 올리고 엄숙하게 추모 인사를 올렸다.

    북한의 대남도발로 인해 장병이 희생된 사건이었지만, 정치권에 참여한 인물은 없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관계자는 한국인이 아닌 주한미군사령관이었다고 한다.

    “쯧-”

    재환은 일행과 함께 유가족을 위로하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 육개장에 소주를 한 병 깠다.

    “대외적인 마케팅 한 다음에, 국내도 신경 쓸 것이지.”

    재환이 혀를 차며 말했지만, 그걸 듣고 있는 조문객도 거의 없었다.

    “여러모로 씁쓸한 일입니다. 저 역시 군에 오래 있었지만···.”

    김명진 역시 소주를 마시면서 쓰린 속을 달랬다.

    재환은 조용히 밥을 먹다가 임창훈에게 말했다.

    “임 실장님. 이거 다 드시고 유가족 대표 분들 모아주세요.”

    “예?”

    “현재 부상으로 입원 중인 군인들 가족들까지요. 그분들하고 이야기 좀 해봐야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임창훈은 육개장을 먹다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빈소에 있는 유가족들과 입원중인 장병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불러왔다.

    그리고 빈소 안측에 위치한 유가족 대기실에서 재환이 그들을 모셔놓고 말했다.

    “먼저 고인들에게 명복을 빌고, 부상입은 장병 가족분들에게도 위로를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이름난 대기업 혜성그룹의 회장이 직접 찾아와서 조문을 하자 그들은 착잡함 속에서도 재환에게 감사를 표했다.

    “여기까지 와 주신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일부는 젊은 아들을 먼저 보내 참척의 고통을, 또 집안의 가장이면서 부인과 어린 아이들을 남긴 희생자들 속에서 재환은 기부금에 대해 논했다.

    “그래도 남은 분들은 앞으로를 위해 사셔야 하니 혜성그룹 회장의 이름으로 여러분들게 도움을 드릴까 합니다.”

    재환은 정부의 유가족 보상 이전에 개인 기부금으로 가족들에게 금액을 알렸다.

    6명의 전사자들의 가족에게는 각각 5억원에 매달 100만원씩 10년 동안 제공한다.

    그리고 부상자들에게는 각각 3억원에 따로 5년동안 위로 기부금 제안을 하고, 무사고 장병 역시도 2억원씩 기부하기로 했다.

    추가로 유가족들의 친인척 등은 향후 혜성그룹 입사 시 가산점을 주어서 그들이 살 수 있게 자활책을 마련해 주었다.

    계산한다면 엄청난 금액이었지만, 이 정도는 재환이 매년 해외주식을 굴리면서 개인의 현금으로도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고, 향후 혜성그룹의 복지재단 운용 등으로도 낼수 있으니 전혀 아까워할 돈이 아니었다.

    세부적인 논의는 전사자들의 49재 이후에 다시 조율하기로 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장례 잘 치르시고, 부상자 가족분들 역시도 자녀분들의 쾌차를 바랍니다.”

    “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재환은 손을 잡고 감사를 표하는 유가족들의 인사를 받으며 떠났다.

    재환 일행이 떠날 때, 기자 한명이 다급히 다가왔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회장님?”

    “?”

    재환이 멈췄을 때 그 기자는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민국일보의 전승철 기자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 조문을 와주신 회장님과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그럴려고 온 거 아닙니다. 기사 쓰는건 상관없는데, 인터뷰는 예의가 아니에요.”

    재환은 기자의 제안을 무시하고 돌아갔다.

    “회장님! 회장님!”

    하지만 재환이 돌아서 이야기를 나눌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사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다음날 민국일보의 단독으로 나온 기사는 모두를 들썩이게 했다.

    [누가 진짜 나라를 위해 움직였나?]

    [대통령, 총리와 군 관계자들보다 먼저 온 기업인. 그는 사재를 털어 유족들에게 기증하고 그분들의 감사를 받으며 돌아갔다.]

    혜성그룹 회장이 월드컵 열기 속에서 일어난 연평도 해전 사건에 대해서 먼저 조문하고 가족들에게 기증하고 돌아간 사실은 대서특필되었다.

    정부에서도 부랴부랴 청와대에서 비서실장을 대신 보내 조문하고, 여야할 것 없이 정치인들의 위로 편지가 오갔지만, 때는 늦었다.

    거기에 국방부 공무원들도 배상 문제에 대해서 논의했지만, 재환이 기부한 액수보다 훨씬 낮은 금액이라 이미 ‘일개 기업인보다 못한 형편없는 안보관’이라고 언론에게 들들 볶이며 완전히 얼굴에 먹칠을 당했다.

    거기에 맞춰서 재환이 이야기 하지도 않았는데, 육공회 내에서 자발적으로 모금을 해서 각각 KS의 이름으로, 삼신의 이름으로, 신누리의 이름으로, 두성의 이름으로, 아성차의 이름으로 그룹의 기부 릴레이가 이어졌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지켜본 재환은 회장실 전화통에 불이 나는 상황에서 느긋했다.

    [회, 회장님. 새정치당 당대표 전화입니다.]

    “없다고 하세요.”

    [회장님! 국방부 차관의 연락입니다.]

    “꺼지라고 하세요.”

    재환은 그 외에 붙는 인물들을 다 차단하고 마이웨이로 움직였다.

    그리고 혜성의 2002년의 월드컵 열풍 이후로 회장의 개인적인 의사 하나로 인해 상당한 폭풍을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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