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35화 (135/244)
  • 135- 회사 대 회사의 거래.

    대리석 건물에 들어가 안내를 받고 걸어가면서 재환은 주변을 둘러봤다.

    국정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은 대리석에 별들을 본 재환은 넌지시 감상명에게 물었다.

    “저게 블랙 요원들의 순직탑입니까?”

    “아··· 그렇습니다. 지금은 안보 전시관의 교육 목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청사 내부에 무거움이 감돌아서 뭐라도 이야기를 해야만 좀 환기시킬 수 있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이 넓은 청사에서 사람이라고는 재환과 안내해주는 요원들밖에 없으니 더 삭막해 보였다.

    ‘정부기관 중에 가장 꺼림칙한 분위기네, 이건 중앙지검청 때 압박보다 더 심하잖아?’

    몇 번이나 문을 열고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까지 지나가는 사람을 전혀 보지 못한 재환은 문이 열리고서야 환기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곳입니다.”

    큰 문이 열리고, 그 안에는 화려한 음식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내부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직원들이 곧바로 90도로 인사했고, 그 속에서 걸어오는 거구의 사내가 있었다.

    “아이고, 신 회장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살짝 빠진 앞머리에, 커다란 안경을 쓴 비만 체형의 사내는 김원택 현 국정원장이었다.

    겉모습으로만 보기에는 이런 사람이 국가 내에 모든 대외 정보를 통솔한다는 게 안 믿겼지만, 대검 중수부 소속에 청와대 안보특보를 역임한 거물 관료였다.

    “자, 자~ 앉으시지요. 식사 아직 못하셨죠? 풀코스로 준비했습니다.”

    “아, 네.”

    일단 재환은 그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고, 특급호텔 요리에 단련된 입맛이었는데도 여기 음식들이 굉장히 공들여 차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환은 자리에 앉으면서도 주변을 둘러봤을 때, 한 가지 특이한 점을 알 수 있었다.

    ‘창문이 없구만.’

    백화점에서 고객들이 쇼핑에 집중하라고 창문과 시계를 없앤 이야기는 알지만, 국정원 내부도 이럴 줄은 몰랐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김원택 원장은 싱글거리는 웃음으로 먼저 명함부터 꺼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 국가정보원장을 맡은 김원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받은 명함은 웃기게도 [안중상사 대표이사: 김태원]이라는 전혀 다른 명함이었다.

    “아··· 위장신분이라는 게 이런 식이군요.”

    “하하하, 저야 뭐 국정감사 등에 얼굴을 내밀긴 하지만, 그래도 대외적으로는 이런 명함도 씁니다. 아, 그 번호로 연락 주시면, 한 다리 건너서 통화가 가능합니다.”

    재환은 그 명함을 가지고 피식 웃으며 일단 안에 넣어놨다.

    “대외적으로 정보수집에 바쁘신 분들이 어째 기업하는 저를 데리고 왔는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일단 드시면서 같이 이야기 하실까요?”

    재환은 일단 대접하는 음식 안 가린다는 마인드로 천천히 식사를 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장이 직접 자신을 부를 시나리오는 생각했다.

    ‘대북사업? 아냐, 그건 대통령 면전에서 이미 안 한다고 했어, 그러면··· 중계무역? 국정원 끼고 할 곳이라면 희토류나 석유자원문제로 중국이나 이란 독재정권 거래인가?’

    모르긴 몰라도 나라가 기업인 대외적으로 끼고 무슨 프로젝트를 하는데, 혜성그룹이 필요한 건 확실해 보였다.

    재환이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김 원장은 웃으며 조용히 물었다.

    “혹시 회장님께서는 밥 먹는데 일 이야기 하시는 걸 싫어하십니까?”

    “원래 안 그렇긴 한데, 그냥 먹으면서 듣죠.”

    재환이 쿨하게 승낙하자 김 원장 역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했다.

    “혜성그룹은 최근 유통계에서 엄청난 성장을 하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서울역 민자역사 쇼핑몰까지 차지하셨고요.”

    “지금은 아니죠. 2년은 지나야 진정한 성장이 드러나지만요.”

    딱 서울역 민자역사가 완공될 때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마트나 백화점같은 쇼핑몰은 물론이고, 인터넷 쇼핑몰 역시도 엄청난 성장세라고 들었습니다.”

    현재 혜성그룹의 양대 축인 혜성쇼핑과 혜성전자.

    두 계열사의 쌍끌이 성장으로 인해 엄청난 기세로 10대 그룹에 안착한 뒤로, 멈출 줄 모르는 혜성그룹이었다.

    “자, 말씀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우리 혜성쇼핑이 나라를 위해 할 일이 있습니까?”

    “하하하, 그런 일이 좀 있습니다. 회장님께도 나쁜 제안은 아닐 겁니다.”

    ‘만약 북한에 백화점 지어달라고 하는거면 이 자리에서 나간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재환이 김 원장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정원에서 말한 것은 전혀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회장님, 스포츠를 많이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네?”

    “월드컵에 맞춰 혜성쇼핑의 제품들이 많은 할인을 하고 있고, 소문난 야구광이자 축구팬이라 들었습니다.”

    “아, 뭐··· 시간 날때마다 자주 보긴 합니다?”

    재환은 별안간 월드컵에 맞춰 스포츠 이야기를 하자 뭔가 싶어서 더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 4강 신화를 이룬 대표팀. 다음 상대들을 위해서 국가적으로 마케팅을 하려고 합니다.”

    “국가 마케팅··· 아!”

    그 순간 재환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때를 시작으로 갑자기 열풍이 분 ‘형제의 나라 터키’, ‘정렬의 나라 브라질’등의 우호적인 분위기와 함께 점점 제3세계의 국가들과 폭넓은 교류가 있었다.

    그리고 재환은 미래를 잘 알고 있었다.

    아쉽게도 독일에게 지고, 그 다음 3.4위전 상대는··· 바로 그 ‘형제의 나라’였다.

    “저희가 공교롭게도 4강에 있는 각 나라들과 경제,문화 교류를 준비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한 대국민적 마케팅을 혜성그룹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독일, 브라질, 터키··· 셋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터키고요?”

    “!”

    정곡을 찌르자 잠시 눈썹이 꿈틀거린 김 원장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 경제련을 통해서 그쪽 교류 사정은 잘 아시는 것이군요.”

    “근데 확률이 되겠습니까? 지기를 바라는 싸움도 아니고요. 터키랑 만나려면 나란히 결승에 가거나, 나란히 지는거 아닙니까?”

    “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총 3개의 플랜이 있는데, 회장님께서 말하신 케이스는 그중 하나입니다.”

    “나머지는 뭐죠?”

    “그 전에 같이 하시겠다는 약조를 해 주시겠습니까?”

    김 원장은 국정원과 사업을 하려면 승낙 조건이 먼저라는 것을 강조했다.

    재환은 그 말을 듣고 빈 그릇을 밀며 말했다.

    “담배 한 대 태우고 와서 말해도 됩니까?”

    “네, 피세요.”

    “제가 라이터도 앞에서 반납했고, 웃어른 앞에서 어떻게 태웁니까? 흡연실 있으면 다녀오겠습니다.”

    “김 상무, 안내해 드려.”

    국정원장의 명에 김 상무는 재환을 모시고 밖으로 나왔다.

    신기하게도 아까는 들어올 때 없었던 양철 재떨이가 구비되어 있었고, 재환이 피는 담배 모델과 라이터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탁- 탁- 치익!

    한 대 물면서 창가를 바라본 재환은 잠시 생각했다.

    ‘뭔 상황인줄 알겠군. 이 당시 월드컵 터키전 마케팅은 술자리 썰로만 들었는데 사실이었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국정원은 알고 움직이냐는 것이었다.

    승부조작은 아니고, 터키전 마케팅은 플랜 3개중 하나라니 나머지 둘도 들어봐야 했다.

    하지만 중요한건 단순히 여기에서 승낙했을 때, 혜성이 국가와 협상해서 뭘 얻을 수 있냐는 거다.

    ‘단순히 대통령 따라 경제 사절 몇 번 따라가는 거로는 부족하지. 이권 확실히 챙길 수 있는걸 제안하겠어. 어차피 마케팅 비용은 우리가 내야 하는 거잖아?’

    피차 비즈니스로 엮이게 되었으니 그 정도는 충분히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재환이었다.

    “자 가시죠.”

    “네,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재환은 다시 안내를 받으면서 안으로 들어갔고, 어느새 직원들이 빈 그릇을 치우고 차를 대접했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다즐링 홍차를 내놓은 것을 보아 확실히 국정원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승낙하겠습니다. 몇 가지만 들어주신다면 말이죠.”

    “알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플랜부터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김 원장은 박수를 치면서 이번 월드컵에 이야기를 쓸 준비를 했다.

    “첫 번째로 독일을 이겼을 때입니다. 그러면 다음 월드컵이 독일에서 열리니 그것을 두고 한독관계에 대한 마케팅으로 그들을 알릴 겁니다.”

    “뭐 4강 상대이고, 이미지야 좋으니 문제 없겠군요.”

    “다음은 브라질과 붙을 때입니다. 현재 남미에서 경제 교류를 통해 외교부에서 노력하는데, 첫 FTA(자유무역협정) 대상이 칠레입니다. 이후 브라질쪽과 교류를 할 것입니다.”

    ‘호오~ 역사가 바뀌는 건가? 축구 결과에 따라 칠레 다음으로 한국-브라질 FTA를 간다니.’

    그곳의 경제 규모를 생각한다면, 확실히 엄청난 효과가 있긴 할 것이다.

    뭐 구매력에 대비되게 그쪽 관료들의 부패와 불안정한 치안을 감안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플랜 C가 바로 터키입니다. 이쪽은 국방사업으로 100억 달러 규모의 교류가 이어지는데, 현재 ‘한국전쟁 때의 혈맹’을 강조하면서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습니다.”

    문화교류이자 다음 월드컵을 위한 빌드업 독일, 경제사절단을 보내고, 차기 FTA대상자가 될수 있는 브라질, 국방사업을 통해 대규모 협약을 맺을 터키.

    재환은 거기에 대해 셋 다 타당하다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셋 다 수용 가능합니다. 시장이 좋은 곳들이니 차후 혜성쇼핑의 해외진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국가입니다.”

    “하하하, 그렇군요.”

    재환은 돌아가는 대로 브라질과 독일 대신 터키에 관련된 사업을 진행시키기로 했다.

    일단 익산쪽의 협력사 직물공장에서 터키 대형 국기도 마구 찍어내고, 형제의 국가라는 마케팅에 맞춰서 적당히 한국 거주 터키인 할인과 그쪽 타운에 대한 교육지원 등도 해줄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거 진짜 땡큐네? 안 그래도 경기 결과 아는데, 거기에 맞춰 국정원이 판을 깔아준다니.’

    비록 초반엔 3개국 모두를 준비해야겠지만, 나머지 둘에 대한 상품을 파기해도 이건 남는 장사였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아무래도 결승까지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마도 3.4위전일텐데 터키가 브라질 이기긴 힘들겠죠.”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미 선수촌의 연락망에 의하면 선수들 부상도 심하고 체력 고갈문제로 사기는 높아도 몸 상태가 최악이라고 하더군요.”

    이미 확률적으로 결승은 브라질:독일에 3.4위전이 한국:터키전이 될 것을 국정원도 예상한것 같았다.

    “그러니 역시 플랜C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신 회장님께서 혜성그룹으로 전 국민에게 터키라는 나라를 알려줄 수 있으십니까?”

    프로젝트 ‘형제의 나라’의 제안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하겠다는 제안을 했으니 월드컵에 맞춰 마케팅을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럼 이제 저희가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뭐가 있을까요?”

    본격적으로 이권에 대해서 재환이 말하자 김 원장은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몇 가지 제안을 했다.

    “훗날 저 언급된 3개국 정상회담때 경제사절을 제안드리겠습니다.”

    “그건 저희가 이 일 안해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하하하···.”

    사실이었다.

    이미 혜성의 덩치는 외환위기에서 건설이랑 해운 팔아서 겨우 숨이 붙은 그룹이 아닌, 10대 재벌에 당당히 이름을 알렸으니 굳이 이 협역을 안 해도 언젠가는 대통령이 불러 경제사절에 포함 시킨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월드컵이 끝난 이후 그 이슈를 몰아 프로축구를 키우려고 합니다.”

    “흐음?”

    “프로축구연맹 회장이 공석이 될 텐데 혹시 추천하실 분이 계십니까?”

    덤으로 하나 엮어서 프로축구 연맹회장 자리도 혜성이 고를 수 있는 권한을 준다는 말에 재환은 생각했다.

    ‘K-리그··· 그거 계륵··· 아니지! 오히려 지금 손대면 이 이슈로 더 재미나게 경영은 되겠는데.’

    재환은 나쁘진 않지만, 좋지도 않은 그 제안에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 전 계열사를 돌아보면서 손가락 두 개를 들었다.

    “거기에 추가로 더 부탁드립니다.”

    “네?”

    “이건 이 자리에서 바로 결정 안해주셔도 됩니다. 이번에 크게 불러야 협의가 가능하니까요.”

    “마, 말씀하시죠.”

    “현재 국정원에서 기념품 등으로 시계를 많이 만드시더군요. 절대시계라던가?”

    “하하하··· 그건?”

    “그거 혜성시계로 납품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솔직히 그건 위에 내민 제안에 비하면 정말 별것 아닌 일이었다.

    하지만 재환이 다음에 말한 것은 큰 폭탄이었다.

    “방위산업 때문에 터키쪽과 관계 개선 프로젝트를 하신다죠? 저희도 이번에 참여하려고 합니다.”

    “네, 네엣?!”

    “현재 대윤 인수한 뒤로 상용차 부문에서 혜성이 움직이고 있는 것 아시죠? 군용 트럭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국정원을 통해서 국방부에 자리 가능합니까?”

    “!”

    이건 확실히 큰 건이었다.

    기존에 상윤과 기어 모터스라는 두 기업이 양분해서 납품했는데, 거기에 혜성이 끼게 된다.

    더군다나 방위산업에 낀다는 건 단순 내수의 군인 뿐만이 아니라 해외 수출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군용 차량 사업이라면, 딱히 크게 문제될 사안도 아니지만 각축전이 큰 곳이니 말이다.

    “일단 제 제안은 이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모두 승낙해 주실 수 있다면, 몇 번이고 혜성그룹이 월드컵으로 하나 된 형제들을 위해 뛰겠습니다.”

    어차피 몇개는 안 해줘도 터키 마케팅은 할 생각이니 부담없이 던진 제안이었다.

    “알겠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저희가 회의를 통해서 결정하겠습니다.”

    회의라고 해야 코드 원에게 보고하거나, 아니면 자체적으로 전권을 가질 국정원이 움직일 것이었다.

    재환은 그 회담을 마치고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 양재동으로 돌아갔다.

    재환은 차 안에서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피식 웃었다.

    ‘그래도 국내 최고의 정보조직이라는데, 하는 건 음지의 외교관, 상사맨이 따로 없군.’

    뭐 더러운 뒷공작은 아니고, 나라를 위한 평화 마케팅이니 응하기로 했다.

    그리고 재환이 예상컨대 기존의 제안 2개와 추가 제안 2개 모두 결국 국정원은 받아들일 것이다.

    자신들이 컨트롤 하기에는 혜성의 덩치가 너무 컸고, 대등하게 논하면서 들어주면 언젠간 비슷한 상황에서 또 거래가 가능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며칠 뒤.

    안타깝게도 4강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독일에게 패배하고, 같은 시기 브라질이 터키를 이겨 결승이 정해졌을 때, 국정원은 재환이 제의한 모든 것을 다 수용하겠다고 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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