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34화 (134/244)
  • 134- 거래처 회사의 초대.

    영화관 대절해서 이탈리아전을 봤을 때, 그 열기는 굉장했다.

    안에 있던 A관이고, B관이고 재환이 초대했던 인물들 모두는 서로는 몰라도 환호성 속에서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그리고 뒤풀이를 하게 됐을 때, 은근슬쩍 재환에 대한 청문회가 벌어졌다.

    “이야~ 완전 여자랑 담쌓고 사는 줄 알았는데, 재주 좋네?”

    “띠동갑이라고? 능력 좋다야?”

    대현하고, 진용은 재환이 데려온 미연 일행을 보고서 불러서 놀리는 데 재미를 붙였다.

    “재환이가 선 같은거 거절한 이유가 다 있다니까? 이렇게 어리고 아름다운 처자가 있는데 눈에 들어오겠냐고?”

    “작작 좀 하쇼. 아들딸이 학교 다니는 양반들이.”

    “어~ 그래. 알았어~”

    “캬~ 아주 정색을 하네? 무섭게 말이야.”

    놀리는 데 혈안이 된 상황에서 재환은 미연과 그 친구들을 챙겼다.

    “아, 미안하다. 술하고 여자 이야기만 나오면 답 안 나오는 아저씨들이라 저런다.”

    “아, 네···. 괜찮습니다.”

    미연을 포함해서 거기서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름 중상류층 집안에 자제들이라 하더라도 대한민국 10대그룹 재벌가 회장들이 있는 자리에서 술 취해서 놀리는 회장한테 뭐라고 할 사람은 재환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놀다가~ 내가 제수씨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어이 친구들! 호텔 코스 요리 안 먹을래? 전화 한 통이면 바로 주문하는데.”

    “정인형님! 현규야! 저 두 취객 좀 말리러 출동 좀!”

    결국, 다른 육공회 형제들이 말려서야 그들의 낄낄거림은 끝났다.

    재환은 A관을 나와서 길게 한숨을 쉬었다.

    미연을 포함해서 5-6명의 친구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요. 저 인간들 술 들어가면 답이 없거든.”

    “아니에··· 아닙니다. 회장님!”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여대생들이라도 재벌 회장들 모임이라는 거는 아니 깍듯이 예의를 갖췄다.

    “자~ 다들 돌아가야 할텐데. 어떻게 따로 2차라도 가요?”

    “아, 네! 저희는 동네에서 호프집 들렸다 가려고요.”

    “쩝, 괜히 다 미안해지네.”

    재환은 지갑을 열어 수표 두장을 뽑아 미연에게 건네줬다.

    “집이 어디야? 경호팀 불러서 다들 보내줄게.”

    “아, 아닙니다. 이런 거 안 주셔도.”

    “괜찮아. 사과비야.”

    짖궂은 농담에 어울려서 회장님들 주사를 볼 뻔했으니 알아서 놀라고 보내준 것이다.

    “오늘 자리 마련해 주신 거···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뵐게요!”

    미연이 조심스럽게 받아들고 인사하자 재환은 손을 흔들었다.

    “어, 다들 조심히 들어가!”

    그리고 밑에서 대기하는 경호팀들 차량에 안전하게 아가씨들이 돌아갔다는 전화를 받은 재환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저 양반들 빨리 보내고 나도 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8강 진출 뽕에 취해서인지 끝까지 육공회 멤버들 붙잡고서 술판을 벌이는 대현이 있었고, 재환은 매우 시달린 채로 오늘 밤은 그냥 회장실에서 숙식을 마쳤다.

    “죽겠다 진짜.”

    재환은 오늘도 냉면 배달로 해장을 하면서 속을 풀었다.

    월드컵 열기 때문인지 임원 회의 때도 벌건 눈인 상태인 대표들이 몇몇 보였다.

    “이럴때일수록 산업재해 같은 거 없어야 하는데 말이지.”

    다행히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지만, 앞으로 각 현장에서 좀 신경 좀 써달라고 각 계열사에 공문을 보냈다.

    월드컵 기간 동안은 조금 생산량이 줄어도 좋으니 안전이 제일이라고 알렸다.

    그리고 재환 역시도 웬만한 결제 서류들은 다 통과시키고 점심 이후 잠시 낮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RRRR-RRRR-]

    회장실 전화가 오자 재환은 수화기를 들고 말했다.

    “없다고 그러세요.”

    [회, 회장님!]

    덜컥!

    재환은 전화를 놓고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이번에는 휴대폰이 울렸다.

    누구인가 싶어서 번호를 보니 아버지 희경이었다.

    “여보세요?”

    [이놈아! 없다고 하긴 뭘 없다고 해!?]

    불렀던 게 아버지라는 말에 재환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전화를 계속했다.

    “요새는 프로젝트도 없고 좀 쉬라고 했는데, 무슨 일이세요?”

    [너, 새로운 사업 하나 해야겠다.]

    “···예?!”

    갑자기 명예회장님이 하는 말에 재환은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되물었다.

    “무슨 사업이요? 새로운 거라면 뭐··· 우주선 개발이라도 할까요?”

    [실없는 소리 작작하고, 아버지 친구인데 한 번 좀 만나봐라!]

    “뭐 하는 사람인데요?”

    [국제무역 업체야. 너를 꼭 만나고 싶다고 해서 약속 잡아놨으니 23일 일정 비워놔!]

    희경은 그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재환은 휴대폰을 책상 위에 던지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야?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신사업이야? 그것도 국제무역하는 아버지 친구라고?”

    재환은 달력을 보고서 만년필을 꺼내 23일에 동그라미를 쳤다.

    “스페인전 다음이네? 이번엔 조용히 봐야지.”

    저번처럼 최대현이 또 뭔 난리를 칠까봐 그냥 조용히 집에서 보기로 했다.

    그리고 한국 대표팀이 4강 신화를 이뤘을 때, 육공회의 부름 속에서도 재환은 꿋꿋이 집에서 보겠다는 의지로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 대현과 진용이 여자친구 이야기를 한순간 분노해서 새벽에 뛰쳐나갔다.

    ***

    [회장님. 전화입니다.]

    “어딘데요?”

    [안중상사라는 곳인데, 미리 약속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안중상사?”

    재환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어제 아버지가 보내준 명함을 확인했다.

    [안중상사 유럽무역부 상무: 김상명]

    “이 사람인가?”

    재환은 전화 돌리라고 한 다음에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안중상사의 김상명이라고 합니다.]

    “네~ 이야기 들었어요.”

    [하하, 네. 오늘 저녁 7시에 회장님을 모시러 저희가 차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네? 위치만 알려주시면 제가 갈 텐데요?”

    [아닙니다. 저희같이 작은 회사가 회장님을 모시는데,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부디 저희의 호의를 거절해주시지 마시길 원합니다.]

    이 정도로 저자세로 나오는 것을 보고 재환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수긍했다.

    “뭐, 그렇게 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오늘 저녁 7시에 회사 앞으로 차를 보내면 그때 내려가죠.”

    [알겠습니다. 회장님.]

    재환은 그것을 말하고서 컴퓨터를 열어 포털 사이트로 [안중상사]라는 회사를 검색했다.

    그리고 임창훈을 불러서 그에게도 물어봤다.

    “혹시 명예회장님 시절에 안중상사라고 들어 본 적 있어요?”

    [네? 그런 회사 이름은 처음 듣는군요. 상사라고 한 걸 보니 무슨 일을 하는 곳입니까?]

    “흐으음.”

    재환이 검색한 안중상사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무역업체였다.

    직원도 많아 보이지 않고, 사이트에 연혁을 봐도 특출난 게 없는, 잘 쳐줘도 강소기업밖에 안 되는 곳이었다.

    “아버지 친구라는데 왜 나는 얼굴을 모르는 거지? 흐으음···”

    재환은 명예회장 희경이 한 이야기를 하면서, 임창훈을 떠봤다.

    “임 실장님. 뭐든 다 들어줄테니까 최악의 시나리오 다 생각해보세요.”

    “네, 네!?”

    “이 안중상사라는 곳이요. 뭐 하는 곳인지는 알아야 대략적인 사업 이야기를 하죠.”

    그 순간 임창훈은 당황한 기세로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재환은 그것을 보고 뭔가 짚이는 게 있어 계속 말해보라고 재촉했다.

    “말하세요. 온갖 더러운 이야기라도 저는 다 들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 물론 이건 명예회장님을 욕할 일이 아니에요.”

    “회장님···.”

    “알 건 알아야죠. 내가 바지회장입니까?”

    재환의 다그침에 임창훈은 고개를 푹 숙이다가 자신의 가능성을 말했다.

    “거기 혹시··· 그런 회사 아닙니까?”

    “음?”

    “이게··· 말하기 정말 그렇습니다만···.”

    “하세요. 안 하면 김 고문도 부릅니다?”

    재환이 마지막으로 다그치자 임창훈이 희경에 대한 비밀 하나를 말했다.

    “기전실이 비서실이라는 이름을 썼을 때, 명예회장님께서 작은 중소기업 몇 곳을 거래처로 쓰시면서 몇 번 교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유는요?”

    “대외적으로는 중소기업 상생이지만··· 속으로는 사실 ‘정치자금’에 대한 후원으로 거래를 트시는 곳이었습니다.”

    “!”

    재환은 ‘설마 그거인가?’ 싶어서 담배를 물었다.

    “이제껏 정치자금은 개인 자금으로 한 게 아니었어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도자기나 골프채 같은 물건이었고··· 현금화 할수 있는 콘도회원권이나 귀금속류 등을 직접적으로 후원하면 언제든지 트집이 잡힐 수 있다고 한 다리를 건너셔서···.”

    “뭔 상황인지 알겠네요. 그거라면 납득이 가네.”

    재환은 알았으니 가 보라고 손짓했다.

    임창훈이 물러나자 재환은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서 길게 연기를 뿜었다.

    “후우- 그냥 약속 깨버리고, 김 고문이나 임 실장 보내버려?”

    만약 그 안중상사라는 곳이 그런 회사라면 찝찝한 일 엮이기 싫으니까 대리를 보낼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참에 그 잘난 정치인 분들 한 번 보려고 참여는 해 보기로 했다.

    정치자금 같은 거 요구하면 아버지하고 얘기하라고 뒤집어 엎어버릴 거지만 말이다.

    7시가 되고 때맞춰 바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회장님, 저희 안중상사입니다. 지금 앞에 차를 대기하고 모시겠습니다.]

    재환이 그것을 확인하고 내려갔을 때, 그 앞에는 벤스 S클래스 대형세단에 정장을 입은 두 명의 사내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그쪽이 김상명 상무에요?”

    “그렇습니다. 회장님을 안전하게 회사로 모시겠습니다.”

    기전실과 경호팀은 자신들도 동행하려 했으나 재환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임 실장에게 말해뒀다.

    “로비 같으니까 그냥 혼자 가 볼게요.”

    “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재환은 벤스 차량의 뒷좌석에 앉고 차가 출발했다.

    그때 내부는 라임향이 확 풍기면서 바깥에서 볼 수 없게 코팅막이 채워져 있었다.

    “역시 벤스, 차광이 완벽하네.”

    “하하하, 저희가 준비한 의전차량입니다. 회장님 같은 VVIP를 모시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김 상무는 그렇게 말하면서 출발하게 했다.

    하지만 그때 재환에는 차 안에서 여러 개가 눈에 띄었다.

    “그래도 벤스 S클래스인데, 내비게이션 하나쯤은 구비하시죠? 내장형인거 같은데 그걸 빼셨네.”

    “아, 네. 그렇지 않아도 혜성전자 제품으로 교체하려고 임시로 빼놨습니다. 하하하.”

    김 상무라는 사람은 재환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지만, 무슨 말을 해도 깍듯하게 맞춰줬다.

    재환은 그러려니 하면서 갔지만, 뭔가 이상한 점을 계속 느꼈다.

    “이 길은 방배동으로 가는 길이 아닌데요? 과천으로 빠지는 길인데?”

    양재에서 갑자기 남쪽으로 빠지는 걸 보고 이 차가 방배동의 본사로 가지 않는다는 것은 확신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저희 대표께서 본사가 아닌 다른 곳에 계시다고 하셔서 그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차가 점점 구룡터널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재환은 확신했다.

    “방배동이 아니라 내곡동이었구만.”

    “하하하···.”

    “그리고 그 일대는 논밭밖에 없는 곳인데 사무실? 아! 하나 있긴 하구만.”

    재환은 이제야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절대 무역상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아니, 대외적으로는 그게 맞을 거다.

    정부가 인정하는 사업체를 합법적으로 소유한 회사일테니 말이다.

    “안기부 사람들이쇼? 아니, 이름이 바뀌었지. 국정원이라고.”

    “···.”

    시종일관 웃으면서 재환과 맞장구를 쳐 주던 김상명 상무는 그 순간 표정이 바뀌었다.

    그리고는 한껏 진중한 얼굴로 재환에게 고개를 숙였다.

    “자세한 건 도착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국정원이 맞았다.

    재환이 아버지에게 따지려고 전화를 하려 할 때 어째서인지 서울인데도 전파가 터지지 않고 있었다.

    완전히 당한 것 같아서 재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가만 보니까 안중상사라는게, 이름이 딱 드러나네. ‘안’기부와 ‘중’앙정보부를 합쳐서 안중이었구만.”

    “그렇게도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아, 참고로 나 수영 잘합니다. 잠수 3분은 버틸걸요? 그러니 물고문은 됐어요.”

    그때 차량이 슬슬 느려지면서 차가 내곡동 국정원 청사 앞으로 도착했다.

    문이 열리면서 신원 조회가 필요할 때 모두가 나와서 재환이 있는 뒷문을 열어줬다.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흐음.”

    재환이 내리자 김상명을 포함한 양복 입은 회사 직원들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회장님. 무례를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모신 이유는 국가에서 혜성그룹의 도움을 위해서였습니다.”

    재환은 그 분위기속에서 얼굴을 긁적이며 말했다.

    “뭐, 그러면 물고문은 없습니까?”

    “하하하. 저희 회사에 VVIP로 초대받으신 겁니다.”

    “누가요?”

    “원장님이십니다.”

    “국정원장···.”

    누구인지는 관심 없었는데, 국정원장이 이렇게까지 해서 자신을 극진히 모셔오라는 말에 재환은 일단 응해보기로했다.

    “좋습니다. 가 보죠.”

    재환의 쿨한 대답에 김상명은 웃으면서 간단한 신원 조회와 함께 수색대로 안내했다.

    시계와 만년필, 지포라이터 등의 금속 제품을 꺼내 맡겼고, 드디어 흰색 대리석의 비밀의 성에 초대받은 재환은 요원들의 안내 속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국가를 위한 프로젝트에 혜성그룹 회장으로써 초대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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