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31화 (131/244)
  • 131- 이해관계의 트레이드

    옛날 옛적에 아성그룹은 한 가지 큰 고민이 있었다.

    늘어나는 자동차 주문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생산량.

    거기에 점점 극심해지는 노동조합과의 싸움으로 인해서 해외 공장 이전 등도 힘들어질 때였다.

    그때 정목균이 아성자동차와 기어모터스 외에 여러 계열사를 두고 독립할 때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아성과 기어의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던 것을 사촌인 백두그룹이 아닌 새로운 공장을 설립한 것.

    충청남도 서산시라는 바다를 낀 동네에 22만 제곱미터 규모로 ‘무노조-무파업-무정규직’이라는 목표로 설립한 드러나지 않는 아성차의 계열사였다.

    그 회사의 이름은 ‘동한오토’라는 곳이었고, 그룹 수뇌부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아는 정목균의 ‘유령 계열사’였다.

    “···.”

    재환은 소주를 연신 들이켜며 자신을 노려보는 정목균에게 말했다.

    “혹시 술이 부족하시면 제가 따라드리겠습니다.”

    “쿵!”

    그 순간 빈 잔을 거칠게 내리친 정목균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회식 장소를 좀 옮기게!”

    그러면서 품 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비서실장에게 건네줬다.

    “회, 회장님!?”

    “자네가 이거 가져가서 자리 옮겨서 다른 데서 직원들 먹이게.”

    “아, 알겠습니다.”

    회장님의 심기가 굉장히 불편하다는 것을 안 아성자동차 비서실장은 황급히 직원들을 수습해서 다른 자리로 옮기기로 했다.

    5분대기조 수준으로 후다닥 없어진 아성차의 직원들을 보고 재환은 혀를 내둘렀다.

    “이보쇼. 아주머니.”

    “네, 네! 회장님.”

    “셔터 좀 닫아주겠소? 오늘 수입은 이걸로 충분할거요.”

    정 회장은 봉투 하나를 더 꺼내 식당 주인에게 건네줬다.

    금액을 확인한 그녀는 황급히 식당 문을 닫고, 떠난 자리의 음식들을 치웠다.

    “소주도 한 병 더 준비해주시고.”

    “예, 예! 회장님!”

    그렇게 재환과 정목균 회장 둘만의 자리가 되었다.

    “좋아. 그럼 이제 기탄없이 이야기 해 보자고.”

    “물론입니다. 회장님.”

    “어떻게 알았는가?”

    대답 여하에 따라 그동안 혜성그룹과의 인연은 백지화가 될 수도 있었다.

    “나를 속일 생각은 말게. 지금 자네는 역린을 건드렸어.”

    “위험한 이야기를 해야 남는 장사가 생기는 법이니까요.”

    원래 안전빵 장사로 지분교환과 컨소시엄등 리스크를 최대한 줄였지만, 이 상황에서는 좀 더 대담하게 나가기로 했다.

    이미 동한오토를 언급했을 때부터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재환은 시나리오를 하나 만들었다.

    “지난번 백두그룹에서 자동차부품 공장을 인수할 때, 대략적으로 서산에 뭔가 엄청난 공장이 있단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

    “작년 12월에 완공됐는데, 공장은 안 돌리면서, 내부 규모가 엄청나다죠.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재환은 세 치 혀로 그 상황을 그럴듯하게 꾸며나갔다.

    “게다가 하청업체들의 입은 못 막으셨더군요? 이미 충남과 전북 일대에 2.3차 공장들은 동한오토 특수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납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삼신에게도 비슷한 제안을 보냈는데, 그쪽은 충남 일대에 공장이 아예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회장님 소유라고 생각한 겁니다.”

    “후우.”

    이 정도로 둘러댔을 때, 정목균은 길게 한숨을 내쉬다가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 어떻게 공장을 완공하자마자 이렇게 걸릴 수가 있었는지 모르겠군.”

    “기억 안 나십니까? 김우준 국내 비자금 유령회사도 제가 찾았습니다. 드림마트!”

    지난 일이지만, 그것 역시도 언급하자 정 회장은 두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천리안을 가진 친구구만.”

    “칭찬 감사합니다.”

    정 회장은 고기 한점을 먹고 우물거리다가 생각에 잠겼다.

    재환 역시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리면서 고기를 먹었고, 그러다가 반응이 나왔다.

    “3000억.”

    “네?”

    “당장에 준비할 수 있네. 동한오토는 더는 언급 말게. 하지만, 군산 공장과 승용차 사업부는 내가 인수하지.”

    정 회장의 제안 거절이었다.

    공장 대 공장의 교환이 아닌 돈으로 사겠다는 말에 재환은 다시 말했다.

    “회장님, 차라리 서로에게 필요한 쪽을 늘리니 지금 교환하시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뭐라고?”

    “아마도 동한오토가 나온다면 완성차 공장, 그것도 승용차와 경차가 아니겠습니까?”

    아성 산하의 울산과 소하, 아산은 모두 준중형차에서 대형 세단까지 만드는 곳이니 소형차는 그쪽으로 몰릴 것이다.

    “그리고 제가 대윤 인수한뒤로 경차, 버스, 트럭 위주로 갈 것인데, 그중에서 경차는 이미 점유율을 다 먹은 상태가 아닙니까?”

    “으으음···.”

    이것 역시 사실이었다.

    과거 대윤자동차 시절부터 경차 ‘티코’를 만든 대윤을 보고 그 사업에 대해 흥미를 느낀 아성이 ‘아성 액토즈’라는 경차를 만들어서 경쟁하려 했다.

    하지만 800cc대 엔진에 대윤의 역작 MTZ가 나온 뒤로 철저하게 박살났다.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새 경차 프로젝트로 999cc대에 새 모델을 개발하려 했지만, 지지부진한 연구에 앞으로도 4-5년은 더 걸릴 일이었다.

    경영자로써 생각하면 혜성그룹의 재환은 타당했다.

    굳이 무리하게 남의 파이 먹으려고 장점도 아닌 경차 사업에 진출해서 승패를 장담 못 할 싸움을 하느냐, 아니면 깔끔하게 접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중형차~대형차 세단 시장으로 모든 것을 집중하느냐다.

    당연히 아성이라면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더 좋았다.

    하지만 뭔가가 계속 걸리는 정목균이었다.

    ‘분명 나쁜 제안이 아닌데, 저 친구가 저 세 치 혀로 말하는 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단 말이야. 차라리 지분교환이나 돈으로 사고 동한까지 가지는게 베스트긴 한데.’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정 회장에게 재환은 한 가지를 더 준비했다.

    “회장님, 그럼 아예 판을 크게 키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라고?”

    “대윤자동차 슬로바키아 공장까지 걸겠습니다.”

    “!”

    이미 체코,슬로바키아에 각각 아성과 기어가 공장 하나씩을 가지고 있는데, 대윤의 공장까지 제안을 받았다.

    만약 그렇게 되면 아성은 순식간에 유럽에서 공장 3개를 소유하고, 터키 공장까지 유럽수출입 규제가 풀리면 4개가 된다.

    “대신 저희도 판이 커져야겠죠? 동한 오토에 아성차와 기어모터스 지분교환을 해서 2:2 트레이드로 갑시다.”

    “!”

    이건 확실히 생각해봐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완성차 시장에서 삼신을 혜성이 살려줘서 양대 기둥이 되었는데, 거기에서 확실히 우위를 정할 수 있는 건이었다.

    물론 신재환 저 녀석이 남은걸 삼신에게 팔 생각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대윤차의 알짜배기는 모두 자신이 갖는다.

    “후우, 이거 이거 참···.”

    아들뻘 되는 녀석이 회장에 오른 뒤로 더 엄청난 계획들을 준비하는 제안에 정 회장은 소주 한잔을 비우며 결정했다.

    “딱 1주일만 주게.”

    “정말이십니까?”

    “동한오토 매각에 대해 법적으로 그럴듯하게 넘겨야 하지 않겠나? 정리할 시간은 줘야지?”

    승낙이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좋은 거래가 될 것입니다.”

    재환은 이제 기분좋게 술잔을 나눌 수 있다면서 손을 내밀었다.

    정목균은 그것을 보고서 조용히 재환의 손을 잡았다.

    “대신 여기 술은 오늘 자네가 사게나.”

    “하하하, 이를 말입니까?”

    훗날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연탄갈비집 회담이라 불리는 이 거래는 그렇게 타결되었다.

    ***

    이후 혜성그룹의 실무진이 군산공장과 아성기어자동차 그룹의 사람들이 모여서 매각 문제를 논하는 동안 재환은 승지관으로 향했다.

    아직 현규가 돌아오지 않았지만, 메일을 받은 그 녀석은 곧바로 자신이 보고서를 재작성해 바로 아버지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것을 들은 이건호 회장은 곧바로 재환을 승지관으로 불러서 협상을 시작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얼굴이 많이 좋아지셨군.”

    “사업에서 큰 건을 연달아 성공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하하.”

    재환이 웃으면서 다가오자 이건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차를 내왔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 서류를 돋보기 안경으로 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덜란드에서 전자 사업을 하라고 보낸 아들 녀석이 자동차 관련 문제를 보냈더군, 게다가 또 신 회장하고 관련된 일 같소.”

    “아드님에게 자그마한 제안을 했는데, 그것이 아주 매력적으로 보였나봅니다.”

    “···.”

    날카로운 눈으로 뚫어져라 재환을 응시하는 이건호의 눈이었다.

    재환이 독심술은 없지만, 이제는 저 눈빛의 뜻을 알 것 같았다.

    ‘무슨 뜻이냐? 이것을 두고 서로의 실익은 뭐냐? 이게 사기가 아니겠느냐?’

    사업계획에 대해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거기에 상대방 까지도 분석해서 파고들어가는 이건호 회장의 눈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아성보다는 까다로운 거래일 것이다.

    정 회장처럼 술한잔 하면서 그 자리에서 오너의 계약을 하는 것과 다른 삼신의 스타일.

    그것은 협상하기 전 처음부터 미리 모든 것을 분석하고, 그것을 올려서 이건호 회장이 확실하게 승낙을 해야만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내용이 있다면 원점부터 다시였다.

    ‘이쯤되면 나한테 신뢰를 주셔도 될 것 같은데, 끝까지 예비 경쟁자라는 의심을 하시는 것인가?’

    일단 재환은 보고서를 던졌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삼신의 몫이었다.

    “창원에 있는··· 자동차 R&D 연구소를 넘기겠다라?”

    “그렇습니다. 이미 상윤을 통해 SUV 연구소가 있으시겠지만, 이번에는 세단 차량의 가솔린 엔진 연구소입니다.”

    “흐으음.”

    르노어-니혼 얼라이언스와 교류를 하면서 국산화 기술을 70%까지는 성공한 삼신이다.

    유럽제 엔진으로 잘 준비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기술을 받은 가솔린 엔진 기술까지 받는 것은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그 조건은 삼신전자와 삼신자동차와의 지분교환입니다.”

    “엔진 연구소와 우리 주식을 바꾸자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이후 계열 분리때 대구의 삼신상용차, 그리고 대윤상용차, 경차사업부를 합쳐서 통합 혜성자동차로 독립할 것입니다.”

    재환의 제안에 이건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전자는 안 되겠소.”

    “?!”

    삼신전자 지분을 이참에 더 늘리려고 했는데, 이건호의 단호한 답변이었다.

    “아직 혜성에서 파견온 인원들 양성도 안 됐는데, 걷기도 전에 뛰려는 것 아니오? 반도체에 대해 어디까지 빼가려고 하는가?”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만···.”

    재환은 멋쩍게 웃으면서 이건호에게 역으로 제안했다.

    “그렇다면 지분교환을 위해서 회장님께서 제의하실 곳이 있겠습니까?”

    “나보고 결정하라고?”

    “1차 제안을 제가 드렸으니, 그것을 거절하신 회장님께서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주시지요.”

    “···”

    그 순간 이건호의 눈이 커져서 더욱 부릅뜨게 되었다.

    마치 ‘이 놈 봐라?’식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재환은 거기서 한 가지는 확신했다.

    삼신은 반도체에 진심인 만큼, 자동차에도 진심이다.

    그러니 회의를 파토내진 못하고, 전자 지분만 안된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건호는 그 자리에서 펜으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재환에게 말했다.

    “삼신 내에 유통업을 모두 넘겨주면 잘 운용할 수 있겠소?”

    “네?”

    “삼신물산 산하에 있는 유통매장 삼신플라자 말이오.”

    “!”

    신누리 그룹 외에도 삼신플라자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한 번 거래를 시도했지만, 일부 지분을 가지는데 끝났다.

    그런데 이건호가 아예 유통업을 통째로 넘기겠다는 말에 재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꿩 대신 닭, 아니··· 그것도 오골계 수준인가?’

    안 그래도 서울역, 청량리역 민자역사 만들어지려면 2년 더 걸리는데 점포를 늘리기에는 최고였다.

    거기에 지금 삼신플라자의 지점은 3개였는데, 그 위치가··· ‘분당’, ‘명동’, ‘종로’라는 노른자 중에서도 상 노른자였다.

    “대답은 혜성그룹의 이사회가 끝난다음에 해도 늦지 않소.”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을 구두계약이라 생각하고, 제가 더 자세한 제안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재환은 승지관에서도 거래를 마친 뒤로 쾌재를 불렀다.

    15억 달러.

    한화로 1조 6천억 규모의 금액인데 그것도 전액 조아은행의 융자.

    그리고 그 돈으로 산 회사로 재환은 빅딜을 해서 공장 두 개와 SUV 사업부를 아성에 넘기고 아성차&기어모터스의 지분과 작년에 만든 새 공장 동한오토까지 손에 넣었다.

    그리고 남은 승용차 사업부와 중형차&대형차 가솔린 엔진개발연구소와 세단 사업부를 삼신에 넘기고, 거기에 따라 삼신자동차 지분 증가와 삼신그룹 유통사업부를 모두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실질적으로 혜성이 실제로 쓴 돈은 매각대금의 반에 반도 안됐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정부 관계자와 재계의 사람들은 땅과 무릎을 동시에 쳤지만, 그 여론은 월드컵에 조~용히 묻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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