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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127화 (127/244)
  • 127- 할수도 있고, 안 할수도 있습니다.

    산업은행장 박성민은 재환에게 애원하듯이 말했다.

    [신 회장님. 이번에 대윤자동차 매각공고 이야기를 혹시 못 들으신 게 아닙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당연히 들었죠.”

    [회장님, 이번 대윤자동차 2차 매각공고에도 참여해 주시겠습니까?]

    “글~ 쎄요?”

    재환은 여유를 부리면서 확답을 피했다.

    “제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상황이 좀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미 대윤의 일부 계열사들을 인수하시면서 좋은 거래를 하지 않았습니까?]

    “에~ 이번에는 저희가 단독입찰로 나가야 할 상황인데, 부담감이 좀 커서요. 최근에 백두전자 인수 건도 그렇고요.”

    [아이고, 어떻게 좀 부탁드립니다. 이제 외환위기의 후유증도 끝나가고, 월드컵 시즌 아닙니까? 경제 발전을 위해서 혜성그룹이 좀 움직여 주셨으면 합니다.]

    “신중히 고려는 해 보겠습니다.”

    재환은 통화를 마치고서 콧노래를 불렀다.

    “이거 녹취록 언론사에 보내면 나라가 뒤집히겠지?”

    상황이 역전된 일이었다.

    국책은행이 먼저 재벌에게 연락해서 법정관리 중인 기업을 제발 인수해달라고 은행장이 직접 전화를 하니 말이다.

    그것도 혜성을 콕 찝어 골랐으니 재환으로서는 그저 느긋이 기다릴 뿐이었다.

    거기에 임창훈이 적당히 약을 쳐줘서 일부 고위간부들은 암암리에 ‘회장님이 정말 대윤자동차 인수전에 회의감을 느끼고 포기할 수도 있다.’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아마도 입 싼 놈들이 그걸 공무원이나 국책은행 간부들에게 술자리에서 털 놈이 있겠지.”

    물론 그러라고 가짜 소문을 퍼트리는 거였다.

    “만약 그런 반응 속에서도 국내에서 입찰이 안 나온다면 난리 나겠지. 뭐, 아쉬운 쪽이 매달릴 테니 서두를 거 없어.”

    재환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서 움직이기로 했다.

    회장실에서 나온 재환은 지금 게임기 사업은 어떤지 한 번 움직여 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 이번에는 기전실 간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재환을 호위했다.

    “아니, 이렇게 할 필요 없다니까요?”

    “회장님. 그래도 홀로 움직이시는 것은···.”

    “내 회사에서 내가 혼자 움직이는게 위험합니까, 아니면 깜짝 방문 같은 걸 하지 말라는 뜻인가요?”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나 움직일 때는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마세요. 쓸데없는 허례허식입니다.”

    선대 신희경 회장과 다르게 수많은 부하 직원들을 대동하는 게 아니라 혼자 움직이겠다고 선언한 재환은 본사 안에서는 자유자재로 다니겠다고 선언했다.

    기전실 직원들을 보낸 뒤로 재환은 혜성게임즈로 커피 잔뜩 사 들고 들어갔다.

    “다들 일 열심히 하고 있습니까?”

    “앗, 회장님!”

    김채홍을 포함해 수많은 직원이 황급히 일어났을 때, 재환은 탁자 위에 아이스 커피를 올려놨다.

    “먹으면서들 하세요. 200개 시켰는데, 적으면 이걸로 긁고.”

    재환이 개인 카드를 탁자 위에 올려놓자 김채홍이 눈짓으로 직원들에게 나눠마시게 했다.

    “요새 게임 소프트는 잘 팔립니까?”

    “네, 회장님. 최근 새로운 소프트웨어들이 평가가 좋습니다.”

    재환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옆에 있던 기환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임시 방편이지만···.”

    “!”

    재환이 그 말을 물어보려 했을 때, 김채홍 대표가 제지하려 했지만, 재환이 손을 들었다.

    “뭐가 문제인지 한 번 얘기해 봐요. 신 차장.”

    재환의 말에 기환은 조용히 말했다.

    “소프트웨어에서 밀리는 건 태생적으로 어쩔수가 없어요. 아무리 하드웨어로 M-BOX가 많이 팔린다 하더라도 ‘삼국지 무쌍’ ‘그랜드투어링’, ‘아이언 피스트 시리즈’등으로 일본 게임 소프트를 현지화 합니다.”

    마이크로 컴퍼니가 아무리 하드웨어를 빵빵하게 만들고 게임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하더라도 PS-1때부터 쌓아놓은 소니아의 인프라를 당장에 잡기에는 무리였다.

    “뭐, 일단은 계속 현상유지를 하고, 홍보를 늘려야겠죠. 그리고 우리가 M-BOX 게임 하나만 파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 그렇기는 하죠.”

    “M-BOX 서드파티로 못 메꾸면 PC게임하고, ITD의 제품들도 파세요. 푸키먼은 시리즈 계속 나오잖아?”

    재환의 명에 따라 김채홍과 기환이 수긍하고 마케팅과 유통을 다각도로 움직이기로 했다.

    “아, 그리고 회장님.”

    기환이 다가가서 재환에게 슬쩍 말했다.

    “지금 녹음실에서 한미연 성우가 더빙하고 있어요.”

    “···그걸 왜 나한테 말하냐?”

    그 순간 기환이 실실 웃으면서 속삭였다.

    “그래서 안 만날 거야?”

    재환은 미묘한 표정을 짓다가 그를 따라 슬쩍 녹음실로 향했다.

    [말도 안 돼요! 저는 그런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이곳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있어요! 이들을 버리고서 어떻게 갈 수 있단 말이죠?]

    [대신! 지금 무슨 말을 하신 겁니까?]

    녹음실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 더빙을 듣고, 그것을 프로그래머들하고 조율하는 모습을 본 미연을 보고 재환이 밖에서 중얼거렸다.

    “무슨 공주 대사야?”

    “어, 목소리 톤이 딱 어울리더라.”

    “흐음.”

    재환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녹음 테스트를 맞추고 인사하며 나오는 미연과 마주쳤다.

    “어머! 앗! 회장님!”

    “목소리 좋네요. 역시 전문 성우로 더빙판 확장하길 잘했어.”

    재환의 칭찬에 미연의 얼굴이 돌아가며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거의 우리 회사 전담처럼 움직이고 계신데 뭐라도 대접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저한테요?”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미연에게 식사 자리를 제안했고, 순간 혜성게임즈 직원들은 이 자리에서 눈을 막고 귀를 닫았다.

    ***

    졸지에 회장님과 데이트를 하게 된 미연은 어색함 속에서 계속 손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나요?”

    재환의 물음에 미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거나 잘 먹어요.”

    “그럼 초밥으로 하죠. 지난번에 참치회 오마카세 괜찮은 집을 알았는데, 용산이라 여기서 멀지도 않아요.”

    “아, 네.”

    재환은 김 기사에게 용산 하이앗트 호텔로 가도록 명했다.

    그리고 지난번에 홀로 즐겼던 스시 오마카세에서 첫 데이트를 시작했다.

    “그동안 내비게이션 더빙이다, 게임 더빙이다 많이 참여해줬는데 식사 한 번 제대로 대접 못 했었네요.”

    “아, 아니에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재환보다 한참 어린 미연은 조심조심 예의를 지키면서 식사를 했다.

    목소리 더빙 위주의 성우였지만, 외모는 웬만한 영화배우나 TV탤런트 이상으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재환은 그녀가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고, 그때 전화가 왔다.

    “뭡니까?”

    임창훈 실장이 퇴근 후 전화를 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대한산업은행이 한 번 더 연락을 해서, 회장님과 통화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대윤 문제겠죠. 바쁘다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저녁에 또 한 번 연락했다는 말에 재환은 쿨하게 씹으면서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미안해요. 식사 중에 일 얘기 전화가 다 오네요.”

    “아, 아닙니다! 그럴수 있죠.”

    재환은 미연과 같이 조용히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ESB 성우는 언제부터 시작하신 거예요?”

    “아, 그게··· 제가 원래 연예인이 하고 싶어서 연극영화과 쪽으로 진학했거든요.”

    “오, 그랬군요.”

    “근데 탤런트 공채는 너무 떨어서··· 두 번 탈락하고, 성우 공채는 운좋게 붙어서 계속 활동하고 있어요.”

    “TV에 나왔어도 정말 어울렸을 외모인데.”

    “아, 아니에요. 전 카메라 울렁증이 심해서···.”

    재환을 부담스러워했던 미연은 이야기의 물꼬가 트이면서 점점 다양한 소재를 꺼냈다.

    “사실 저희는 CBM이나 KBC의 공채 성우들과 다르게 외화 더빙이 적거든요. 교육방송이라 대부분 다큐멘터리 더빙 정도에요.”

    “음~ 그렇군요. 그분들에게 게임 더빙은 괜찮은 외주인가요?”

    “네. 그래서 저희 성우극회가 회장님께 많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일거리를 늘려주고 거기에 두둑한 보상까지 있으니, ESB성우극회중 선배들도 미연을 통해서 자리를 묻곤 했다.

    재환은 오랜만에 일 이야기가 아닌 탁 터놓고 일상을 말할 수 있는 자리에 만족했다.

    “그래서 있죠? 지난번에 그 친구가 사색이 되어서 저를 붙잡더라고요. 어떡하냐고 하면서 걔네 아버지에게 카드 뺏기고, 차 뺏겨서 옷도 못 사입어요.”

    “아, 그거 그냥 넘어가 줬지.”

    그때 잘난척 했던 미연의 친구는 그꼴이 났고, 남친은 재환을 도와서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하청업체를 돌리고 있으니 성과에 따라서 봐 줬다.

    그때 다시 한번 전화가 울렸다.

    그 번호는 ‘대한산업은행 윤기철’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대로 폴더를 열어서 한 번 덮어주는걸로 응답했다.

    딱-

    “전화··· 받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잘못 걸린 전화에요.”

    “아, 네.”

    재환은 식사를 마친 뒤로 일어나 호텔을 나서며 김 기사에게 보냈다.

    “집까지 잘 모셔다 드려요. 난 여기 좀 더 있다가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회장님.”

    미연은 차에 타기 전 재환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오늘 식사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자주 연락 주세요. 언제든 시간 낼테니까.”

    “아, 네.”

    미연은 곧바로 수첩에서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재환에게 건넸다.

    “저기 이거···.”

    재환은 그것을 받고 피식 웃으면서 휴대폰을 열어 번호를 저장하려 했다.

    그때 문자로도 대한산업은행의 연락이 왔다.

    [회장님. 저 윤기철입니다.]

    [회장님, 대윤자동차 인수 건으로 긴히 연락드릴 말이 있습니다.]

    [회장님. 이번 인수전에 꼭 참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전화가 안 되니까 문자로 계속 보낸 것을 봤지만, 재환은 고개를 저으며 미연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미연씨.”

    “네, 이만 가보겠습니다. 회장님.”

    재환은 미연을 보낸 뒤로 기지개를 켜며 펍에서 한 잔 마실 준비를 했다.

    그때 이미 혜성그룹 회장의 방문으로 난리가 났던 하이얏트 호텔은 지배인까지 와서 재환을 맞이했다.

    “회장님. 다시 오셨습니까?”

    “뭘 이제와서 그렇게 다들 나오셨습니까?”

    하이얏트 호텔 지배인은 곧바로 재환에게 말했다.

    “회장님, 지금 손님이 오고 계십니다. 혹시 뵈시겠습니까?”

    “손님? 정선길이요?”

    “네 네! 그렇습니다.”

    “뭐, 그러죠. 펍으로 갈 겁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재환은 지난번 오아시스 노래를 들었던 뮤직펍에 가서 위스키를 주문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다급하게 달려온 선길이 있었다.

    “형님, 어떻게 연락도 없이 여기를 오셨습니까?”

    “밥 먹으러 온건데, 너무들 요란이다.”

    재환은 선길을 테이블 옆자리에 앉히고서 웨이터들이 자리 하나를 새로 세팅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냐, 별일 없어.”

    재환은 별일 없지만, 선길은 연락받고 다급히 이곳으로 온 게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저기··· 형님. 실례가 안 된다면···.”

    “자동차 인수전 이야기라면 됐어. 지금 산업은행 연락 씹고 있다.”

    “아, 네.”

    재환의 말에 선길은 곧바로 입을 닫았다.

    그 모습에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술잔을 건네면서 선길에게 말했다.

    “뭐 재미난 이야기 없어?”

    “네?”

    “오늘 말이지. 퇴근 이후 일 얘기 안 하고 오랜만에 일상 이야기하면서 재미있었거든? 그동안 서로 몰랐던 이야기 좀 하자고.”

    재환의 말에 선길은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 이야기 말고 재밌는 썰이 잘 없긴 한데요. 으음··· 제가 샌프란시스코에 유학갔던 이야기라도 해 볼까요?”

    “음, 그래. 유학썰도 재미난거 많지.”

    재환은 선길과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자정까지 술을 즐겼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어떻게 또 퍼졌는지, 최근에 혜성그룹 회장이 산업은행의 요청도 무시하고, 대윤자동차 인수전에 참여 안한다는 소문이 점점 돌고 있었다.

    그러면서 초조해지는 가운데, 결국 정부는 해외의 자동차 회사들을 다시금 끌어들였다.

    그리고 재환은 그 모든 동향을 보고하라는 오더를 내린 뒤로 계열사 공장 순방이나 하면서 느긋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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