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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125화 (125/244)
  • 125- 작년에 부도난 그 회사~ 팔리지 않고 또 왔네~

    혜성그룹은 회장이 새로운 사업을 이야기하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백두전자를··· 인수한단 말입니까?”

    임창훈 실장의 물음에 재환은 웃으면서 말했다.

    “올해 김치는 김치냉장고에 담아두시면 더 맛있을 겁니다.”

    절대 이번 인수전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한 마디였다.

    회장님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반대할 임원은 없었다.

    찬반투표를 할 필요도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백두전자를 인수하기 위한 TF팀이 만들어졌다.

    각 계열사에 인수·합병에 필요한 인물들을 각출하게 하고, 대표는 임창훈 실장이 맡으라고 명했다.

    기전실이 재무까지 담당하고 있으니 그룹 내 현금으로 인수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해 언제나 인수합병에서 투자자문으로 도움을 줬던 삼신증권과 논의해 보기 위해 오랜만에 태평로로 떠났다.

    재환의 등장에 삼신그룹의 사장단들도 들썩였고, 삼신증권의 김진 사장이 그를 안내했다.

    “삼신은 인사이동이 참 잦군요.”

    “하하하, 저희가 순환 근무를 좀 많이 해서 말입니다.”

    눈앞에 이 양반도 삼신카드다 삼신자동차다 여기저기 돌 때마다 봤는데, 다시 삼신증권 투자자문 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에 혜성이 백두그룹하고 빅딜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 백두전자가 매물로 나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그렇게 된 겁니까?”

    “네, 맞습니다.”

    “바로 IB팀 준비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저희 삼신증권은 M&A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혜성과 거래를 하면 엄청난 성과가 떨어진다는 건 삼신그룹 내에서도 고위 임원들이 잘 아는 사실이었다.

    “곧 실무진들이 연락할 겁니다. 그때 서로 조율을 해서 원활한 일 처리를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김진 사장은 재환과 악수를 하면서 VVIP에게 인사를 올렸다.

    삼신증권 사무실에서 나온 재환은 온 김에 현규를 만나려고 걸어갔다.

    그때 미전실에서 직원들이 와서 재환을 맞이했다.

    “어서오십시오. 신 회장님.”

    혜성그룹 회장에게 정중히 인사한 미전실 직원들에게 재환을 물었다.

    “이현규 대표 어디 나갔습니까?”

    “아, 지금 출장을 가셨습니다.”

    “그래요? 최근에 만났었는데.”

    “네덜란드로 가셨습니다.”

    “반도체 노광공정 때문이겠군요.”

    일전에 들은 적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미전실 직원들은 자신들이 온 이유를 말했다.

    “지금 저희 회장님께서 신 회장님을 뵙기를 청하십니다.”

    “저를요?”

    “네, 그분께서 지금 집무실에 계십니다.”

    승지관이 아니라 태평로 사옥 집무실에 있다는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내를 받았다.

    “좋습니다. 가지요.”

    미전실 직원들의 안내를 받은 재환은 오랜만에 이건호 회장을 뵙게 됐다.

    “어서오시오. 신 회장.”

    “인사드립니다. 회장님.”

    재환이 인사하자 이건호는 앉으라고 자리를 내줬다.

    그리고 둘이서 차를 마시는 자리가 되었고, 최상급의 다즐링이 재환의 앞에 놓였다.

    두 회장이 티 타임을 즐기는 동안 주변 공기는 숨 막힐 정도로 무거워졌다.

    “혜성이 이렇게 성장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신 회장의 공이 제일 큰 거 같소.”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그저 유능한 직원들을 영입했는데, 그들이 기대에 걸맞은 활약을 해준 것이죠.”

    “너무 겸손해할 것 없소. 동년배 경영자 중에서는 신 회장이 제일이요. 그건 내가 인정하지.”

    갑자기 아들을 두고서 자신을 막 칭찬한다는 것에 대해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재환이었다.

    ‘이 분이 이렇게 칭찬을 자주 하시는 분이 아닌데?’

    오히려 ‘슬슬 네가 경계 된다.’라는 뉘앙스로 나오는 이건호 회장을 보고서 재환은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 말을 아꼈다.

    “MP3 플레이어로 미국에서 맹활약을 하고, 게임기 시장까지 진출한다지?”

    “네, 지금은 모두 각자의 대표이사들에게 맡겼지만 말입니다.”

    “자동차는 어떻게 할 것이오?”

    재환은 이 회장이 자신을 부른 것은 역시 대윤자동차 인수 때문에 논하는 것 같았다.

    “인수전에 참여할 것입니다.”

    “우리의 도움 없이 가능하겠소?”

    “재경부의 판단에 맡겨야겠죠.”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는 재환을 보면서 이건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재환은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회장님, 저는 제가 모든 결정권을 가진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그때의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기업간의 신의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럼 됐소. 삼신 역시 그동안 혜성과의 동맹으로 많은 이득을 봤으니 앞으로도 계속 좋은 관계 유지하길 바라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재환은 이 회장에게 인사하고 태평로 사옥을 나갔다.

    그리고 이건호는 창밖으로 재환이 차를 타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과연···?”

    ***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 회장님.”

    “하하, 신 회장님 얼굴이 아주 밝습니다? 요새 연일 손대는거 마다 히트라죠?”

    백두그룹 정목원 회장과 제대로 만나 이야기 한 건 딱 4년 만이었다.

    그동안 경제련 회의 등에서는 간간이 악수를 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때 회장님이, 저희 아버지를 경제련 회장으로 추대해주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고급 요릿집에서 웃음꽃을 피우며 이야기했지만, 본론은 곧 나올 것이다.

    백두그룹은 한때 재계서열 12위까지 올라갔던 대기업집단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지금은 혜성보다 훨씬 뒤처진 것은 물론이고 그룹 존폐의 상황이었다.

    그래도 범 아성가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어찌어찌 지원은 해서 건설, 엔지니어링, 시멘트, 중화학공업을 남기고 어떻게든 우량 계열사를 매각해서 겨우 목숨은 붙어있게 해준 것이었다.

    “백두전자의 제품군은 저희하고 겹치지 않으면서 아이디어 상품이 많은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치냉장고, 에어컨, 전기밥솥, 공기청정기, 와인셀러 등 훗날에 대박이 날 상품들이 많았다.

    “사실 혜성전자는 백색가전보다도 음향기기나 게임기 같은 제품이라 시너지가 좋을 겁니다.”

    대중적으로 팔기 좋은 물건들이 많으니 젊은층 위주로만 팔리는 상품을 다각화 할수 있는 기회였다.

    “투자은행하고 이야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금액은 서로 조율하는게 이야기가 빠르지 않겠습니까?”

    백두그룹이 역으로 제안한 것이었다.

    정목원은 차라리 회장끼리 이렇게 있을 때, 대략적인 금액을 잡고서 거래를 빨리 끝내자고 제안했다.

    재환은 그런 정 회장을 보고 생각했다.

    ‘그룹 내 부채가 얼마나 되길래 이런 급처를 제안하는거야?’

    옛날이었다면, 신의를 위해 조금 비싸게 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백두전자 하나만 사는 게 아니라 혜성그룹 신사옥 건설계획에 대윤자동차 인수까지 염두에 둬야 했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 냉정하게 움직이려고 했다.

    “투자자문이 예상하는 금액과 비슷하다면 그렇게 하지요.”

    일단 한 발 빠지면서 중립적으로 말하자 정회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2500억이 필요하오.”

    “!”

    제법 센 금액이었다.

    못 낼 금액은 아니지만, 전부 주고 사기에는 좀 그런 상황이었다.

    재환이 두 개 사업만 아니었으면, 적당히 조율해서 2000억 정도로 합의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나오니 조금 더 깎기로 했다.

    “하하, 좀 큰 금액이군요.”

    재환은 술잔을 비우면서 말했다.

    “작년부터 연달아 히트를 치면서 어떻게 여유가 있는거로 압니다. 신 회장, 내 부탁드리죠. 좋은 회사이니 절대 손해 볼 금액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혜성전자가 슈퍼코멧과 M-BOX의 연타석홈런으로 주당 17만원까지 넘어 연말에 20만원 안착 가능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트루넷 역시도 시가총액이 60억달러 전후로 움직이니 마련한다면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정 회장은 그것을 알기에 재환에게 매달리면서 간곡히 부탁했다.

    “금액 차이가··· 좀 많이 나는군요. 저는 한 1500억 정도를 생각했습니다.”

    “시, 신 회장!”

    역으로 그건 너무 헐값이어서 정목원이 소리치자 재환은 조용히 빈 잔을 채우면서 말했다.

    “부채까지 저희가 떠안는 방식이고, 거기에 전 직원 정규직으로 고용 승계가 보장되는 금액입니다.”

    “!”

    이야기가 그렇게 되면 상황이 다르지만, 그래도 당장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백두그룹을 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내 2300억은 받아야 급한 불을 끕니다. 이미 1금융권에서 받을 수 있는 융자도 한계에 다다른 몸이오.”

    정말로 절박한 것 같았다.

    이미 아성가 전체가 지원을 해줘서 4100억에 영암 조선소를 큰집인 아성중공업에 넘겼고, 자동차 핵심부품이었던 백두공조도 미국 사모펀드에 5500억이라는 금액에 넘겼다.

    그 외 중소 계열사 정리하는데 3000억이 추가로 들어왔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백두전자까지 넘겨서 남은 계열사 살리는데 올인 해야 하는 상황.

    재환은 그 상황에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정 회장님, 그럼 이 자리에서 한 가지는 약속드리겠습니다.”

    “그, 그게 뭐요?”

    “제가 아성가와의 의리를 생각해서 투자은행에서 자문받은 금액보다는 좀 더 이득을 보게 하겠습니다. 이건 사재를 투입해서라도 약속드리죠.”

    일단은 그렇게 약속하고 말했다.

    “정말 그 금액이 필요하시다면, 뭔가 하나 더 끼워주실 수 있습니까?”

    “대체··· 뭘 원하는 거요?”

    “저희 대윤자동차 인수전에 참여합니다.”

    “!”

    순간 한 방 얻어맞은 표정을 보이는 정목원을 보고서 재환은 술잔을 들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의리를 생각해서 그 금액 어떻게 맞춰드리겠지만, 차기 인수합병을 위해 저희도 당장 큰돈을 쓰기 힘들다는 것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일부러 고개 숙여 사과의 제스처를 취하자 정목원은 조용히 술만 들이켰다.

    “···이 자리 끝나면 내가 내일 바로 연락 드리겠소.”

    “네, 알겠습니다.”

    그 뒤로는 조용한 술자리가 이어졌고, 적당히 시간이 되자 뜨거운 악수 한 번으로 둘의 회담은 끝났다.

    ***

    다음날.

    회장실에서 재환의 술자리 이야기를 들은 임창훈과 백두전자 인수팀으로 파견나온 곽정빈의 눈이 커졌다.

    “그렇게까지 된 겁니까?”

    “덤이라고 생각하는거죠.”

    자동차 사업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백두의 본가인 아성그룹에서도 알고 있으니 어떻게 움직일지 반응을 볼 셈이었다.

    ‘아성가라면 확실히 다르지. 반응이 바로 나올 거다.’

    삼신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직설적으로 통큰 거래를 선호하는 방식이니 분명 오늘 안에 연락이 올 거라 생각하는 재환이었다.

    “자세한 제안이 오면 그때 이야기하죠. 그때까진 제가 말한 금액 염두에 두시고 계속 백두전자 실무진하고 협상해보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아, 그리고 말입니다.”

    재환은 이참에 한 가지 더 임원들에게 오더를 내렸다.

    “향후 대윤자동차 인수에 대해서는 삼신증권 말고 다른 투자자문 쪽을 알아봐주세요.”

    “네?!”

    그동안 삼신과 각별한 사이로 인수합병에서 언제나 파트너가 돼 줬는데, 이번 일에 대해서는 협업하지 않겠다는 말에 임창훈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재환은 그렇게 하라는 제안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어차피 내가 이렇게 말 안해도 향후 삼신 쪽에서 먼저 대윤 인수는 못 도울 것 같다고 말할 거야. 지난번 이 회장님 뉘앙스가 딱 그랬어.’

    이참에 루트를 좀 다양하게 만들기로 생각한 재환이었다.

    ***

    그날 저녁.

    퇴근을 앞두기 전 재환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신회장님. 나 정목원입니다.]

    백두그룹 정 회장의 연락이었다.

    “네, 회장님. 어떻게 결정 하셨습니까?”

    자동차 사업의 떡밥을 던졌으니 백두가 뭐를 제안할지 재환이 생각했다.

    [이번에 백두전자의 에어컨을 팔면서··· 차량용 히터와 에어컨, 그리고 컴프래셔, 에어백 공장을 같이 껴 드리겠습니다.]

    재환은 그 제안을 받고 손가락으로 주산을 해서 계산해본다음 피식 웃었다.

    “좋습니다. 그럼 그것까지 합해서 2600억원 전후의 규모로 한 번 맞춰보겠습니다.”

    공장 몇 개 끼워 매각제안을 했으니 재환은 그쪽이 필요한 금액에 100억 더 쓰기로 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재환은 하루 시간을 할애해서 기다리자 제법 준척이 하나 들어와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 전화한 것은 그 사업 매각에 대해 아성자동차의 정목균 회장하고 이야기가 끝난 상황일 것이다.

    “그럼 협상 좀 더 빠르게 진행하겠습니다. 서로 윈윈합시다. 회장님!”

    [그, 그래요. 아무튼 이번에는 내가 신세를 좀 졌습니다.]

    재환은 구두 약속으로 거래를 확정하고는 통화를 마치고 기지개를 켰다.

    “자~ 퍼즐 하나하나 맞춰가니 이제 재경부 발표만 기다리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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