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23화 (123/244)
  • 123- 인재와 설화라는 두 단어.

    재환이 능글거리는 웃음으로 앉아있을 때, 김명우는 이곳이 죽을 자리구나 싶어서 사색이 되어 있었다.

    “인상 펴요. 21세기의 벤처 사업가라면서요?”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사과드려서 제발 여자친구하고, 그 아버님에 대한 처벌은 제가···.”

    “제법 순정파시군요.”

    재환은 명우의 명함을 보면서 물었다.

    “라이트 컴퍼니, 이 회사 이름은 어떻게 지으신 겁니까?”

    “···제 이름입니다.”

    “음?”

    “밝을 명(明)자의 Light와, 바른 우(右)자의 Right입니다.”

    “작명 센스에 대해 뭐라고 하고 싶지만, 그게 본인 이름을 뜻한다니 넘어가죠.”

    재환은 그러면서 임창훈 실장에게 일러뒀다.

    “저 이 사장이라는 분하고 그 딸은 조용히 보내시고, 계약 문제는 BQ퀄리티에 따라 할 거니 공장 시찰이나 잘 준비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임창훈 실장이 이원효 사장과 그 딸인 이은지를 데리고 상황 설명을 한 뒤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재환은 와인 한 잔을 마시면서 다시 말했다.

    “입으로 하는 사과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내가 돈 가지고 배상 같은거 받을 사람도 아니지.”

    “···.”

    “단지 알고 싶은 건 게임 사업을 하면서 비디오 게임 시장 판세에 대해서 좀 들어보려고 합니다.”

    “회, 회장님!”

    재환은 두 손을 모아 명우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해법 여하에 따라서 혜성그룹의 제 1협력사가 될 기회도 드리죠.”

    “!”

    “회장 찬스는 아니고, 순전히 그쪽의 실력과 잠재성으로 평가해야겠지만 말이죠.”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구덩이에 떨어트려 놓고 밧줄을 슬며시 내민 재환의 제안에 명우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회장님, 제가 뭐라고 이렇게···.”

    “김명우, 카이스트 전산학부 중퇴, 개인 사업으로 해외 게임 패치, 유통 외주회사 라이트 컴퍼니 설립. 그 뒤로 스톡옵션으로 300억 땡긴 청년 벤처사업가.”

    “!”

    이미 재환이 모든 것을 꿰고 있자 명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털어놓겠습니다. 다만··· 제 말이 비디오 게임 사업을 새로 하시는 회장님께는 불편하게 들릴수가 있는 점이···.”

    “신경 안써요. 자문이라는 게 그래서 있는거지.”

    재환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 한 번 해 볼까요?”

    재환이 자리를 옮기자고 하자 곧바로 명우가 뒤따랐다.

    KS호텔에서 야경이 멋진 테라스 커피숍은 재환과 명우 단둘만의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되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정통부 공무원이셔서 정보화 시대가 될 거라고 컴퓨터를 사 주셨습니다. 486컴퓨터였는데, 당시 돈으로 40만원이었죠.”

    “야~ 추억의 이름이다. 모뎀 낄 자리는 있었어요?”

    “도스 돌릴때였습니다.”

    명우는 계속 옛 이야기를 했다.

    “처음 PC통신을 하고, 해외 게임들을 플레이 하다가 외국어 배웠습니다. 그리고 하이텔, 천리안 시절에 제가 직접 한글패치를 만들어서 배포해봤죠. 이게 사실 다 불법인데.”

    “그래도 능력 있으셨네?”

    “그러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해보려고 98년에 일본대중문화 개방한다고 했을 때 보따리상 방식이었던 게임들 사업체 차리고 가져와서 게임 대사 같은 거 전부 만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외주도 주고, 국내 유통도 알음알음하게 되었죠.”

    “네~ 그래요. 그런 분이 미국 쪽 비디오 게임기는 똥이라 하셨고요.”

    “···정말 솔직히 말해도 됩니까?”

    “하세요.”

    “게임이 안되는 싸움이 될 겁니다.”

    “그건 저번 술자리에서도 들었으니, 이유를 말하셔야죠.”

    재환의 말에 명우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막힘없이 말했다.

    “80년대 수많은 미국의 비디오게임사가 도산하고, 대세는 일본으로 넘어갔습니다. ITD가 2D 비디오 게임 시장을 잡고, 지금은 3D의 소니아 천하입니다.”

    “네~”

    “아무리 마이크로 컴퍼니가 IT공룡이라지만 이제 막 들어온 신생업체, 그것도 언제 철수할지도 모를 상황입니다.”

    재환은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미래를 모르는 상황에서 그 예상은 빗나가겠지만 말이다.

    “원래 굳건한 1인자가 신생업체에게 거꾸러지는게 경영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그게 지금 상황은 아닐겁니다. 두 번째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 계속 말하세요.”

    “서드파티의 문제입니다. 그게 뭔지 설명을 드리자면···.”

    “알아요. 계속 말하세요.”

    기환에게 그렇게 설명을 들었던 게임기 서드파티 회사들 이야기를 듣자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계속 말하라 했다.

    “소니아의 PS-2는 자체 산하개발사를 두고 유통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알려진 비디오 게임들은 전부 그쪽으로 향하죠. 한글화까지 해서요.”

    “으흠~”

    “반면 마이크로 컴퍼니의 M-BOX는 북미의 게임 기반이라 매니아 층은 소수 있어도 그 팬층이 밀립니다. 게임기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돌아갈 게임이 없다면 이쁜 장식품 수준이죠.”

    “네, 그렇지 않아도 국내에서 그것 때문에 혜성게임즈가 웬만한 게임들 전부 한글화랑 더빙 준비하죠.”

    “그래도 부족합니다. M-BOX가 먼저 출시되도 2달뒤에 나올 PS-2에게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재환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긁적였다.

    그러면서 아이스 커피 한 잔을 추가로 시켰고, 벌컥벌컥 들이킨다음 탁자위에 올려놓고 다시 명우에게 말했다.

    “자~ 그럼 안좋은 이야기 다 들었으니, 내가 명우씨를 따로 부른 이유를 알겠네요?”

    “저와 제 회사가··· 혜성 게임즈의 협력사가 되어서 PS-2 잡는데 동참해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정답!”

    재환은 그런 명우에게 지난 번 못 줬던 명함을 꺼내 건넸다.

    “내일 혜성 본사로 오세요. 점심이나 같이 먹으면서 계약서 쓰시죠. 1협력사 회원 가입할 권한을 드리죠.”

    “!”

    대기업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 그럼 뒤늦은 정식소개와 사업 이야기도 했으니 내일 봅시다.”

    재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하자 명우는 그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

    다음날 재환은 점심 약속을 앞두고 기환을 불러 말했다.

    “알아? 그 사람?”

    “당연하지! 나도 그분한테 공략집이랑 한글패치 받아서 도움받은 게 많은데!”

    기환이 김명우를 잘 안다고 하자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설화(舌禍) 벌인 녀석 혼내주려고 했는데, 이거 게임계 역사적인 설화(說話)가 되겠네?”

    잘하면 이번 비디오게임 전쟁에서 엄청난 우군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재환은 그 친구의 애인은 몰라도, 앞으로의 행동에 따라 중하게 써 줄지까지 생각했다.

    잠시 후 약속시간에 맞춰 회장실로 온 명우가 정중하게 인사하자 기환이 반겼다.

    “쌍라이트님 맞으시죠?”

    “어? 그건 게임동에 제 아이디···.”

    “하하하! 저 아이디 KH짱 이었어요.”

    “아, 아아~ 그 방 한칸 게임팩으로 다 장식하셨던분···.”

    재환은 박수를 치면서 둘을 불렀다.

    “자~ 자~ 재회는 나중에 밥먹으면서 하기로 하고 일 이야기 좀 합시다.”

    재환의 말에 둘은 소파에 앉았다.

    명우는 어제와 다르게 사뭇 침착한 모습으로 PS-2를 잡을 계획을 말했다.

    “인프라를 키우고 정면대결을 한다고 하더라도, 국내 게임계는 한정되 있어서 불리한 싸움인건 어쩔수 없습니다. 다만···.”

    “다만?”

    명우는 밤새 생각해놨던 이야기를 꺼냈다.

    “차라리 M-BOX에 대한 충성고객을 늘려가면서 그들의 구매력을 높이는 곳에 집중하는게 어떨까 합니다.”

    “오호~ 팬층을 굳건하게 하자?”

    “그렇습니다. 현재 소니아는 PS-1시절부터 충실한 팬층이 많아서 팬사이트도 여러개입니다.”

    “온누리넷 같이 말이죠.”

    2000년에 만들어져 상당히 규모있는 비디오 게임 리뷰 사이트였는데 소니아팬이 아주 많아서 소빠넷이라고도 불리는 곳이었다.

    “M-BOX도 그렇게 팬층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터넷 사이트로 수십만, 수백만 모이게 하고 그러면서 굳건한 팬층을 만들고 우대를 하는 겁니다.”

    “그런 게임 사이트 있으면 편하기는 하겠네. 공략에 패치에 에디터에 전부 공유할수 있게!”

    기환도 맞장구를 쳐줬고, 재환에게 말했다.

    “형, 아니! 회장님! PC게임 저희가 유통하는 거하고, ITD하고 푸키먼 쪽 유통도 있으니 죄다 뭉쳐서 한 사이트에서 움직일수 있게 하죠!”

    재환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차피 10명이 1개씩 사주나, 1명이 10개씩 사주나 같은 매출이라면 말이지.”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환과 명우나 걱정거리가 있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지금부터 그런 사이트를 만들기도 그렇고, 홍보에 회원들 모아서 그런 팬층을 만드는게 2달은 도저히 무리입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지금부터 새 사이트 언제 만들어요?”

    재환은 그러면서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카페로 하세요.”

    “네?”

    “그 넥스트이니 페이버니 하는 사이트들의 카페 있잖아요? 요새 거기가 100만명 회원까지도 모을수 있다죠?”

    “아!”

    확실히 인터넷 카페라면 단기간에 만드는게 문제 없었다.

    “그리고 라이트 컴퍼니, 코멧닷컴, 혜성게임즈 사이트에 그 카페 홍보해주고 배너 링크 하나 걸어주면 훨씬 빠를게 아닙니까?”

    “그,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그리고 양질의 자료인데··· 얘기 들어보니 우리 신기환 과장이나 김명우 사장이나 하드 안에 있는거 죄다 올리면 게이머들 끌어모으는데는 문제없죠?”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저희 회사 직원들, 이 프로젝트에 총동원할 겁니다.”

    재환은 그들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했고, 기환에게 슬쩍 말했다.

    “이 건 성공하면 너 하반기 인사에 차장으로 올려줄게.”

    “저 분이랑 같이 일하면 충분히 먹힐거 같아!”

    자신만만한 얼굴의 둘을 보고서 재환은 식사하러 떠났다.

    그렇게 인터넷 카페부터 시작해서 그룹 차원에서 혜성게임즈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TV에서는 연신 유명 연예인들이 나와서 비디오 게임기를 홍보하고, 코엑스와 용산역에 생긴 M-BOX 프라자에서는 연신 회장이 직접 와서 한 게임씩 플레이하면서 떠난다.

    그러면서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었는데, 바로 게임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었다.

    그동안 ‘게임은 유해하다!’, ‘자녀교육에 쓸모없다.’는 식으로 게임기를 죄악시 하는 학부모들이 강남에서부터 재벌 회장이 게임기 들고 홍보하면서 그 사례들이 퍼지자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 것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게임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애가 소외 안된다.’ 라거나 ‘대기업에서도 권장해주는 놀잇거리.’등으로 ‘차라리 당구장이나 오락실에서 다녀 일탈하는 것보다 게임기 하나 사줘서 집에 있는 게 낫다.’라는 인식이 강남 학부모들에게 퍼진다는 이야기를 재환이 들었다.

    “자, 그럼 이 카페는 흥하는지 볼까?”

    재환은 국내 1.2위의 인터넷 포털, ‘페이버’와 ‘넥스트’등의 카페에 들어가 실시간으로 회원 늘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어이고, 점점 구색이 갖춰가네?”

    수많은 회원들과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채팅들, 그러면서 각종 게임들의 공략집 요청 들과 기존의 게임잡지에 있는 기자들까지 활동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렇게 두 달 동안 마케팅과 게임 인식개선, 그리고 한글화 서비스등을 모두 준비했을 때 드디어 가장 강한 경쟁자가 상륙했다.

    [소니아의 가정용게임기 국내 상륙!]

    [PS-2 국내에서 100만대 출하 예상.]

    [즐거움엔 끝이없다! 남녀노소 모두가 쓸 PS-2!]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에 입주해서 엄청난 홍보와 함께 전세계적으로 팔린 명품 게임기라는 것을 알리며 물량공세에 들어간 것이다.

    “뭐, 이정도 예상은 했지만 말이지.”

    재환은 인터넷 기사와 혜성전자와 헤성게임즈 대표들의 보고로 실시간으로 상황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코엑스 게임쇼에서 선언했던 소니의 임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좋은 경쟁을 바란다고 했지.”

    재환이 피식 웃으면서 입에 담배를 물었다.

    언론에서는 치열한 비디오게임기 시장 싸움이라고 했지만, 내부 정보를 들은 것이었다.

    ‘출시 한달차, 도쿄 소니아 컴퓨터 인터랙티브 본사에서 예상보다 더 낮은 판매대수로 당황하고 있다.’

    ‘2002년 한해 100만대 출하를 생각했는데, 지금 페이스라면 50만대도 힘들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들은 재환은 다시 한번 컴퓨터를 키고 혜성게임즈의 게임 카페를 둘러봤다.

    “어쩌면 소니아가 Ps-2 100만대 파는 것보다 우리 카페 회원 100만명 되는게 더 빠르겠구만.”

    2달간의 노력은 전혀 헛되지 않았다.

    출시 이후 첫달차 성적을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 M-BOX가 PS-2를 월등히 높은 판매량을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역사에도 유일하게 아시아시장에서 북미 게임기가 일본 게임기의 판매량을 넘어선 케이스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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