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22화 (122/244)

122- 인연 속에 사업이 되는 경우

잠시 밖에 나가 여자친구랑 통화 하고 오겠다는 사촌 동생을 보낸 뒤로 혼자 술 마시던 재환이 다른 손님 일행 중 아는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 화장실을 다녀오던 재환은 슬쩍 귀를 기울였다.

“M-BOX 그거 망할 게 뻔히 보이는데.”

“···.”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재환은 자리에 있던 미연에게 인사하면서 자신을 드러냈다.

“어머, 미연이 잘 아시는 분이라고요?”

“네, 맞아요.”

미연은 그 옆에서 이분이 누구인지 말하려고 했지만, 재환은 웃으면서 제지했다.

그리고 상황을 모르는 미연의 친구들은 재환에게 한 마디씩 물었다.

“어머, 어떻게 아시게 된 거예요?”

“제가 팬이기도 하고, 회사하고 일을 같이할 수 있게 도움을 요청했죠.”

재환의 말에 주변 여성들의 ‘어머! 어머!’ 소리가 들렸지만, 몇 시간 동안 애인 자랑에 빠져있던 은지는 비웃음이 살짝 묻어난 얼굴로 재환에게 말했다.

“그럼 회사 다니시는 건가요?”

“뭐, 그렇죠.”

“혹시~ 미연이가 눈 엄청 높은 거 아세요?”

“글쎄요?”

“웬만한 소개팅은 거들떠보지도 않거든요. 게다가 대기업 사원, 의사, 로펌 변호사 같은 친구들도 다 빠꾸 먹여요.”

“그렇군요.”

점점 미연의 얼굴이 사색이 돼 갔지만, 재환은 계속해보라는 식으로 느긋하게 있었다.

“저희들 나이가 스물 셋인데, 나이 차이가 좀··· 나네요? 그 뭐라더라? 띠동갑?”

“아~ 사귀는 것도 아닌데, 그런 말 하기에는 그렇네요.”

재환은 적당히 받아치면서 능글거리는 모습을 보였고, 슬슬 은지란 친구가 너무한다고 한마디씩 했다.

결국, 분위기 환기를 위해 은지의 애인이 움직였다.

“김명우라고 합니다. 조그만 벤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명우라고 자기를 소개한 이의 명함을 받아든 재환은 품 안에 넣고 지갑을 뒤적이다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명함을 잊었군요. 다음에 한 번 인사 드리죠.”

“회사 다니신다는 분이 명함을 안 가지고 다녀요?”

“하하하.”

“우리 아빠도 사업하시는데, 명함 안 가지고 다니는 회사원이 있단 건 처음 보네요.”

마지막까지 슬슬 긁고 있는 은지를 향해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연에게 인사했다.

“아, 그럼 다음번에 회사에서 뵈요. 미연 양.”

“네? 아, 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할 때 그녀가 재환에게 작게 속삭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저 기지배 입을 처막았어야 하는데···.”

“하하하. 뭘요.”

재환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손을 흔들고 자리를 떴다.

때마침 기환이 왔을 때, 재환은 2차 가자면서 데리고 나가면서 카운터에서 자신이 먹은것과, 미연이 있는 테이블의 것도 계산해줬다.

그리고 재환이 떠났을 때 미연이란 친구는 아직도 애인 자랑에 뻐기면서 말했다.

“저 아저씨 뭐야? 생각해보니 자기 소개도 안 했잖아.”

“으, 으응!”

“미연이 너 잘 생각해야 돼. 저런 노땅 아저씨가 너 추근거리는 거 우리 오빠한테 말해서 떼줄까?”

“야! 이은지! 너 진짜 말 조심 안 할래?”

미연이 참다 못해 정색하며 말하자 오히려 더 놀리는 은지였다.

“어머, 어머머?! 너도 감정이 있는 거야? 저런 아저씨하고?”

“야 이 년아!”

“너 잘 생각해야 한다? 저 아저씨 학교 다닐 때 너 태어났어. 나중에 금방 퇴직하고 네가 저 아저씨 먹여 살리려고?”

결국, 미연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넌 이제 죽었어.”

“뭐?”

그리고는 품 안에서 재환의 명함을 꺼냈다.

“저분이 혜성그룹 사람이라는 거 몰랐지?”

혜성그룹이라는 말에 다른 친구들이 화들짝 놀라고, 은지와 그 애인도 흠칫했다.

“어, 조금 전 내가 M-BOX 이야기 한 건··· 아이고야. 명함까지 줬는데, 내가 실수했네. 사과드려야겠다.”

“됐어, 오빠! 기껏해야 저 나이면 대리나 과장 정도겠지.”

그러자 미연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회장님이야.”

“···어?”

“저분이 혜성그룹 신재환 회장님이라고!”

그 순간 뒤늦게 한파가 자리에 휘몰아쳤고, 미연이 꺼낸 명함에는 ‘혜성그룹 회장 신재환’이라는 소개와 연락처가 있었다.

***

다음날 재환은 그룹 사장단 회의를 하면서 그동안 하청업체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처음 들어왔을때부터 신경을 썼던건 혜성그룹의 제품에 대한 품질이었습니다.”

협력사들을 통해 베스트 퀄리티를 만들어달라는 BQ시스템 인증 제도를 통해 꼼꼼한 검수를 해서 혜성 제품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었다.

그리고 재환은 BQ로 만들어진 명단들을 얼마 전부터 확인하면서 한 가지 결정을 했었다.

“현재 혜성그룹과 협력한 중소기업들이 250곳이 넘습니다. 정확히는 258개 회사이죠.”

혜성전자, 혜성시계, 혜성트로이카, 혜성트루넷, 혜성바이오, 혜성쇼핑, 혜성유통, 헤성뮤직스토어, 혜성시멘트, 혜성레미콘, 혜성게임즈··· 그 외에 수많은 계열사들과 그들의 하청을 받는 1.2.3차 공장들.

재환은 이때 다시 한번 고삐를 다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저희 역시 많은 회사와 OEM과 ODM 사업을 하면서 품질 관리를 하고 있어요. 윗물을 맑게 하고, 이제 아랫물도 따라가게 할 겁니다.”

“회장님, 그럼 기존의 협력업체에 대해서 따로 처리하실 계획이 있으십니까?”

장진욱 대표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공회의소 주관으로 아예 혜성그룹과 협력사를 공식적으로 모아서 한 곳의 단체로 만들겠습니다.”

“!”

협력사들과의 동맹.

그 이야기를 들은 사장단이 들썩였다.

“앞으로 누구 가족의 하청, 누구 임원의 라인 탄 공장, 이런 거 죄다 정리할 겁니다. BQ인증에서 탈락하면 10년 협력이고, 20년 협력이고 다 쳐낼겁니다. 그리고 영세기업이라도 품질이 좋다면 혜성그룹과 일할 수 있는 단체 회원 자격을 주는 겁니다.”

하청사와의 협약.

이것은 미국이나 유럽 같은 대기업이 부품 납품 협력사들을 배려해서 길드처럼 운영하게 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80년대 삼신그룹이 시작하고, 아성자동차 그룹이 최근에 1.2.3차 협력사들을 모아놓고 그런 방식으로 운영을 준비했다.

재환은 혜성 역시 그런 방식으로 운영해서 적어도 기업 거래간에 구설수가 없이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은 앞으로 계속 될 국내,해외 기업들 간의 제품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이럴 때 품질하고 단가를 한 번 손봐야 했다.

“잘하는 협력사는 투자해서 키워주고, 그중에서도 A급은 특허개방도 고려해볼겁니다.”

“회장님 그건!”

“왜요? 제가 호랑이 새끼라도 한국에 키울 것 같습니까?”

훗날 삼신이나 아성이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2만개가 넘는 특허를 1.2차 협력사들에게 무상을 개방하고 쌍끌이 성장으로 양대 산맥이 된 일이기도 했다.

‘다르게 말하면 확실히 혜성과 끝까지 갈 기업만 고르겠다는 거고.’

재환의 말에 사장단의 눈은 바쁘게 돌아갔다.

그 때 조용히 손을 들어올리는 이가 있었다.

“저희 혜성시계는 회장님의 계획에 찬성합니다.”

혜성시계가 먼저 손을 들면서 김명진 사장이 천천히 상황 설명을 했다.

“저희같이 정밀한 제품을 만드는 곳 같은 경우는 검증된 회사의 제품만 써야 합니다. 그런 이들과 끝까지 가면서 새로운 퀄리티의 부품회사를 받아들일수 있다면, 품질경영에 대해서는 경쟁사들과 확실히 우위를 정할 겁니다.”

조리 있게 상황 설명을 하는 김명진 사장의 말에 다른 사장단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찬성합니다. 혜성트로이카는 컴퓨터 본체를 위해 수많은 부품들을 두고 협력사들을 경쟁시키고 있습니다. 아예 검증된 회사라면 더욱 수월하게 단가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김영수 대표도 동의를 표하자 다른 계열사들도 사장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찬성 의사를 보였다.

재환은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

얼마 후.

재환은 회장실에서 TV에 M-BOX를 설치하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한 게임 플레이 한 다음 조용히 눈을 감은 재환이 중얼거렸다.

“현재 출고가 27만 4천원. 하지만 분명 더 떨어질 거다.”

과거 삼신전자에서 근무했을 때 해외 회사의 케이스를 배우는 교육회에서 들은 이야기가 기억난 것이었다.

출고가 299달러로 시작했던 M-BOX는 라이벌 PS-2에게 밀린 이유는 출시가 늦은 것도 있었지만, 현지화 실패, 내부 롬 불법개조의 방치등의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격경쟁으로 마이크로사의 무리한 인하 때문이었다.

“6개월 뒤에 199달러로 인하, 다음해 175달러 인하, 나중에는 140달러까지 떨어졌다지?”

결국, 덤핑으로 팔면서 게임기에 대한 인지도는 올렸어도, 수익은 거의 못 본 제로섬 게임이 되었다.

재환은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수익을 올리려면 지금부터 원가절감을 하고 적어도 게임 유통까지 같이 맡게 되었으니 수익을 다각화시켜야 했다.

“기환이가 지금은 잘 해주고 있는데, 뭔가 확실한 한 방이 안 떠오르네.”

재환이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을 때, 시계를 바라봤다.

오늘 저녁에는 지난 번 재환이 말했던 1차 협력사들과 만찬회를 하고, 혜성그룹과 같이갈 ‘혜인회’에 참여할 준비를 했다.

혜성그룹과 인화단결을 한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인데, 구식 감성이긴 했지만 그래서 나잇대 많은 협력사 사장들의 지지를 받았다.

일단은 1차 협력사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추후 2.3차 협력사들을 모두 모아서 공식 출범하기 전에 만남인데 임창훈이 간사장을 맡기로 했지만, 참여한다는 의사는 밝혔다.

“휘유- 소니아 PS-2 전까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파이 다 잡아놓는다.”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 차가 준비됐고, 재환은 KS호텔로 향했다.

이미 임창훈 실장이 연설을 마치고 식사 자리가 이어진다는 말에 적당히 인사를 하다가 돌아갈 셈이었다.

호텔 연회장에 재환이 도착했다는 말에 혜성그룹 직원들이 달려와 곧바로 재환을 모셨다.

안내를 받고 들어갔을 때, 안에 있던 협력사 사장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재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뭔, 조폭도 아니고.”

나잇대가 높아 보이는 사람들이 양복입고 와서 재환에게 인사하는 상황이 묘하긴 했다.

재환은 와인잔 하나를 받아들고 여기저기서 인사를 받으며 임창훈 실장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연설은 잘 했어요?”

“물론입니다. 회장님! 모두들 이번 혜인회의 결성에 대해 반색을 했습니다.”

“네, 그만큼 관리 잘해야죠. 혜성은 어음 남발하지 않고, 현금결제 잘 해준다는 것처럼요.”

“···유의하겠습니다.”

재환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아, 천안에 있는 그 승현정공의 박 사장님이죠?”

“네, 네! 그렇습니다.”

“회장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오~ 칠곡물산, 장 사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요새 석회 값 좀 많이 내려갔습니까?”

“하하, 아직 그대로입니다.”

많은 행사를 다니면서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자 재환은 하나하나 악수해주면서 덕담을 했다.

그때 재환을 향해 사색이 된 얼굴로 걸어오는 일행이 있었다.

악수도 많이 해서 음식 좀 먹으려고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데 다가오는 인물들을 보며 재환은 고개를 돌렸다.

“누구신지?”

“회장님, 사죄드리러 왔습니다!”

환갑이 넘어보이는 사장이 다짜고짜 재환 앞에서 넙죽 엎드렸다.

순간 경호팀이 그를 제지하고 일으켰다.

“뭡니까?”

그때 옆에 있던 임창훈이 귀띔했다.

“회장님, 혜성전자 협력사 중 하나인 왕룡실업 이원효 사장입니다.”

“근데 내 앞에서 왜 무릎을 꿇은거죠? 저 사람 뭐 자재 빼돌렸어요?”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곳은 우수 거래처 중 하나 입니다.”

그때 이 사장 뒤에 있는 남녀 역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회장님!”

눈물을 폭포처럼 쏟을 것 같은 단발머리에 여성, 그리고 이 사장과 같이 무릎을 꿇은 젊은 남성을 보자 재환은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 그때 그 싸···.”

미연을 만났을 때 깐족거리던 여자와 그 애인이었다.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습니다.

“됐습니다. 이만 물러나시죠.”

“회장님, 제가 자식 교육을 못 시켰습니다. 회초리를 들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평생 사업을 해온 사람인데 아들뻘 회장 앞에서 무릎을 꿇은 모습과 주변에 웅성거리는 다른 사장들을 보면 자괴감이 들 것이다.

“네, 알았으니까 돌아가세요. 전 신경 안 쓰면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 타입입니다.”

재환은 기전실과 경호팀을 시켜 그들을 돌려보냈다.

사업한다는 그 애인도 같은 죄로 끌려왔을 때, 재환은 문득 생각나 품안에서 받았던 명함을 꺼냈다.

그러면서 밖으로 안내받는 셋을 보고 재환이 손을 들었다.

“잠깐!”

“!”

재환은 그 명함을 팔랑거리며 불렀다.

“김명우씨는 잠시 이쪽으로 오시죠?”

“네! 회장님!”

연하의 여친이 저지른 죄로 싹싹 빌었던 김명우는 다가와서 고개를 숙였다.

“앉으세요.”

“네, 회장님.”

재환은 명함을 보다가 이 사람이 하는 일에 흥미가 생겨 물었다.

“김명우 대표라, 해외 게임 사업을 하세요?”

“?”

“해요, 안 해요?”

“하, 합니다! PC와 콘솔 게임 유통에, 각종 소프트웨어 개발도···.”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그 명함을 테이블에 던지면서 말했다.

“재밌네? 그럼 한번 앞으로 비디오 게임 시장 이야기 좀 해보시죠?”

“···네?”

“이 자리에서 바로! 당장! 나우!”

철없는 커플의 입방정에 대한 처벌은 사선에 앉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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