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21화 (121/244)
  • 121- 2002년도 바쁘겠다.

    2001년의 마지막, 재환은 혜성전자 임원들과 함께 마이크로 컴퍼니에서 온 임원진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역사적인 M-BOX 출고 행사를 했다.

    거기에 맞춰 수많은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알렸고, 비디오게임기에서도 혜성이 다시 한번 쇼크를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일본 소니아가 본격적으로 한국 법인을 만들어 ‘PS-2’의 출시를 알렸다.

    [2월 25일! 여러분에게 찾아뵙습니다!]

    소니아와 정면승부를 한국에서 치르게 될 비디오게임기 전쟁의 서막이 울리는 순간이었다.

    ***

    “판매량 국내에서 100만대로 잡아야겠어요.”

    “네?”

    재환은 새해부터 공격적으로 나가기로 했다.

    “충분히 가능한 수치입니다. 그리고 이 정도는 해야 앞으로 마이크로 컴퍼니와의 거래에서 목소리 좀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재환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거기에 따른 마케팅을 준비하게 했다.

    “일단 M-BOX에 있는 전문 게임 스튜디오 하나 만드세요. 일단 용산하고 코엑스를 생각하겠습니다.”

    “그 두 곳으로 말입니까?”

    “용산은 썩어도 준치라고, 게임기나 컴퓨터 제품 사는 곳은 조립컴퓨터 시장 박살은 났어도, 역세권은 아직 건재하잖아요?”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방식이겠지만, 약발이 더 셀 것이다.

    왜냐면 재환이 대규모로 그래픽카드다 사운드카드다 대량으로 마트 물량으로 풀어내서 고사할 위기의 소상공인들에게 이번엔 새로운 제품을 팔 기회를 제공해 줄 테니 말이다.

    “물론 불법 다운로드 같은 거 뿌리면 철저하게 족칠 거지만 말이죠.”

    그리고 삼성동 코엑스는 강남에서 엄청난 위치선정에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각광 받으니 새로운 문화센터로도 시너지가 있을 것이다.

    재환은 그 두곳을 선점하기로 하고 그 뒤로 혜성 게임즈를 통해 M-BOX에 들어갈 게임 제품들에 대해서도 확실히 국내 서비스를 위해 한글화, 더빙 등을 준비하라고 명했다.

    회의를 마친 재환은 집무실에서 잠시 쉬다가 기전실장을 불렀다.

    “임 실장님, 제가 말한거 준비 됐습니까?”

    “예, 회장님. 그렇지 않아도 사내 보안 인트라넷에 올려놨습니다.”

    임창훈은 그렇지 않아도 부름을 생각하며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확인 해 봐야겠네요. 어디보자.”

    재환이 컴퓨터를 키고 사내 인트라넷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뉴 혜성타운’이라는 기밀 파일이 있었다.

    로그인해서 파일을 열어보자 설계도와 조감도가 멋들어지게 만들어져 있었다.

    “연면적 6200평에 건축면적 220평입니다. 빌딩 높이는 지상 25층, 지하 4층으로 정해졌습니다.”

    “뭐, 지금의 본사보다는 확실히 규모가 크니 이 정도로 괜찮겠네요. 더 커졌다간 주변 조망권 분쟁도 있으니···.”

    혜성전자와 혜성게임즈에 대한 일도 중요하지만, 다른 계열사를 통틀어 새로 시작할 프로젝트가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혜성그룹의 신사옥이었다.

    97년 건설사를 매각하고, 해운사를 매각하고 돈 되는 것은 모조리 팔아치워서 지금의 혜성그룹으로 재편했을 때 일이었다.

    그리고 백화점 매입으로 명품관을 본사로 쓰고 있었지만, 증축을 위해서 한티사거리 일대에 알박기로 사 놨던 땅들을 이제 쓸 때가 온 것이었다.

    이제 이곳을 싹 밀어버리고 혜성그룹의 신사옥이 지어질 것이다.

    “건설사들 한 번 알아봐야겠네요. 예산이 2000억 정도니 거기에 맞춰 입찰을 받아야겠죠.”

    강남 한 곳에 짓는 대형 빌딩이니 눈독 들이는 곳이 많을 거다.

    그때 임창훈은 헛기침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회장님, 저··· 이런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뭔데요? 제가 듣기에 그런 내용입니까?”

    “그것이··· 회장님 일가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혜성가 사람 이야기에 재환은 혀를 차면서 말해보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임창훈은 조심스럽게 재환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 일’에 대해 속삭였다.

    “확실해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것을 들은 재환은 어깨가 들썩거리다가 배를 잡고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크게 웃던 재환이 입을 열었다.

    “아이고, 사람 일은 참 모른다더니만 어떻게 그렇게 풀린건지 모르겠네요.”

    “그, 그러게나 말입니다.”

    보고하고도 조마조마했지만, 회장이 아주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임창훈 실장도 멋쩍게 따라 웃었다.

    “그럼 상황 확실히 알아보고 ‘그 회사’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어차피 다 같이 통하는 사이 아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회장님.”

    재환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들은 임창훈이 인사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재환은 몇 번이고 회장실 안에서 웃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아, 김 부사장님. 기환이 좀 바꿔주세요.]

    재환은 곧바로 혜성게임즈에 연락해서 사촌동생을 불렀다.

    그리고 오랜만에 사촌 형제끼리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불렀다.

    ***

    천호동 쪽에 있는 한적한 펍에 도착한 재환은 맥주를 시키면서 분위기를 즐겼다.

    강남 일대의 수제맥주집은 죄다 꿰고 있다는 진용의 추천이었는데, 이 참에 한 번 와 본 것이었다.

    재환은 맥주를 마시다 사촌동생에게 피식 웃으며 물었다.

    “야, 신기환이. 너 연애한다며?”

    “어, 어?!”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화들짝 놀라는 기환을 보고 재환은 손사래를 쳤다.

    “뭘 그런 반응을 보이냐? 사촌 녀석 연애한다는 데 내가 다 기뻐 죽겠구만!”

    “미안···.”

    “그게 뭐가 미안할 일이냐?”

    재환은 기환을 대견하게 바라보며 하나둘씩 물었다.

    “형이 어디에 어떤 처자 만나는지도 이야기를 들었다?”

    “그, 그걸 어떻게? 부모님도 모르신단 말이야!”

    “응, 나는 더 정보가 빨라.”

    “혀, 형! 형 말고 집에서 또 아시는 분 없지? 내가 나중에 이야기 드릴테니까 그건···.”

    “걱정하지마라! 하하하!”

    재환은 크게 웃으면서 건배를 했다.

    그리고는 핫윙 안주를 하나 씹어먹으며 기환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 마이다스 그룹 오 회장 조카딸이라고?”

    참으로 그 회사는 혜성과 인연이 많았다.

    재환이 그곳에 혜성건설 매각 이후로도 야구장 개보수 공사, 혜성백화점 광주점 증축 공사등 인연이 많았는데, 이제는 집안사람끼리 연애도 다 하게 됐다.

    “그래서 어떻게 만나게 된 거야?”

    “오 회장님 조카딸··· 그러니까 여자친구가 거기 대학교 다니고 있거든. 졸업반인데 아버지 뵈러 학교 들렸다가 조교 하는 친구에게 소개 받았어.”

    “치야~ 인연이라는 게 그렇게 이어지는구나. 만난지는 얼마나 됐어?”

    “다음달이면 100일···.”

    재환은 박수를 치면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저 녀석을 구제해주는 아주 착한 마음씨의 여성이 다 있었군.’

    재환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적당히 상황 봤으니 둘이 잘 이어질 것 같으면 이번 혜성타워 공사는 마이다스에게 맡길 것을 생각했다.

    “그래서··· 잘 맞는 것 같아?”

    “그, 그게 내가 할수 만 있다면 결혼도···.”

    “하하하! 그래 너도 벌써 스물 여덟이지?”

    동생 영환이 하고는 열 살 정도 차이나는 맏이여서 숙부님네서 할 줄 아는게 없다고 구박받던 녀석이 지금은 자리를 잡고서 결혼 염두한 연애까지 하고 있으니 잘된 일이었다.

    자신이 이 삶으로 돌아오면서 부모님만 챙긴 경향이 있었는데, 이렇게 된거 두 숙부님네 집안도 좀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암튼 그래. 계속 연애 잘하면 나중에 내가 마이다스 분들 한 번 만나야겠다.”

    “어, 형이?”

    “그렇지 않아도 그분들하고 사업 논의할 것을 생각하고 있거든.”

    일단 슬쩍 떠보는 형식으로 던져봤고, 이 녀석이 자기 여친에게 그 말을 해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지켜보기로 했다.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 한 잔 하자고! 다음엔 여친도 불러서 같이 먹고 말이야.”

    “응, 그래!”

    맥주잔을 부딪히며 꽤나 괜찮은 수제 맥주를 들이키던 재환은 좋은 안주와 음악을 들으며 즐기던 중 눈길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음?”

    한 무리의 젊은 남녀가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을 때 재환은 그 중에서 장발에 일자 앞머리를 한 젊은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재환이 고개를 갸웃 거릴 때 기환이 맥주를 마시다 이야기를 꺼냈다.

    “맞다. 형, 혜성 게임즈의 이번 게임 유통 때문에 말인데.”

    “어, 어!”

    재환은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돌려 기환의 사업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러면서 힐끗 거리면서 그 낮이 익은 여성 쪽을 바라봤다.

    ***

    미연은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친구가 한턱낸다는 말에 참여했다가 몇 시간 동안 기만질을 듣다가 3차까지 끌려와 있었다.

    “미연아, 요기. 요거 어때?”

    미연의 친구 은주는 약지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가리키면서 계속 미연의 답을 기다렸다.

    손가락이 이상해서 그런 건 아니고 약지에 있는 다이아 반지를 자랑하려는 거였다.

    “으, 으응. 그냥 아무거나 시켜줘.”

    “아무거나? 뭘 그런 말을 해? 우리 오빠가 다 사준대잖아.”

    그러면서 반듯한 외모의 애인과 닭살 돋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자 슬슬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보던 친구긴 했지만, 자랑질이 하도 심하고 남들하고 비교하며 우월감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걸 원체 좋아하던 녀석이었다.

    거기에 은주는 자신을 떠받들던 다른 친구들까지 불러서 모두에게 뽐냈다.

    “오빠~ 내 친구들이 너무 결정장애지?”

    “부담갖지 말고 맘껏 시켜요.”

    젊은 벤처 사업가로 보이는 은주의 애인은 넉살좋게 미연과 친구들에게 말했고, 그러면서 술을 먼저 시키면서 자기 자랑을 시작했다.

    “우리 오빠가 말이지. 이번에 사업을 좀 하거든. 그래서 쏘는거야.”

    “정말? 얼마나 대박이 났는데?”

    “으음, 공이 몇 개더라?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사업 대박이 난 애인을 데리고 자랑질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기분이 최고조로 올라간 그녀의 애인도 거들었다.

    “이번에 게임기 사업을 하는데 말이죠. 미연씨가 성우라고 했던가요?”

    “네? 아, 네.”

    “쟤 연예인 되고 싶다고 했다가, 카메라만 보면 벌벌 떨어서 목소리만 나오잖아.”

    순간 발끈했지만,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는 미연이었다.

    “그래도 뭐, 쟤가 목소리는 좋긴 하지. 오빠가 좋은 자리 있으면 알아봐 줘.”

    “하하, 네.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저희가 전문 성우분들이 많이 필요한 사업을 하거든요.”

    “아, 아. 그래요?”

    “외화와 게임쪽 더빙 일이에요. 그쪽 경험이 있으신 지 모르겠지만, 페이도 제법 좋습니다.”

    그러자 미연은 떠오른게 있어서 말했다.

    “그렇군요. 그렇지 않아도 요새 비디오 게임기가 막 들어오면서 선배들도 그쪽 더빙 섭외가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그 순간 은주의 애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에이, 미연씨. 지금 나오는 것들은 완전 똥이에요. 망할 타이틀 같은 거 신경 쓰면 안 돼요.”

    “!”

    “혜성 걔네들은 감각이 없다니까, 진짜 승자가 누가 될지도 모르고. 쯧-”

    그래도 혜성 내비게이션 더빙까지 했던 몸인데, 대놓고 자존감을 깎는 말이었다.

    “이번에 제가 일본에서 큰 사업을 준비했는데 말이죠. 조금만 참아봐요. 제가 은주 얼굴 봐서 엄청 좋은 자리를 알아드릴게요.”

    “아··· 네.”

    “이왕 하려면 1등 타이틀에서 개런티 좋은데를 해야죠. M-BOX 그거 망할 게 뻔히 보이는데···.”

    그 순간 자랑질의 모임 속에서 불쑥 들어온 인물이 있었다.

    183cm의 큰 키에 조명속에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누구인지 분간이 안갔다.

    “아이고, 여기서 다 보네?”

    “네?”

    미연의 물음에 재환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누구인가 했지, 우리 회사 살려준 미연 씨가 여기 계셨구만.”

    “!”

    미연은 그 순간 뒤늦게 재환을 알아보고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웬 서른은 되보이는 아저씨가 이 자리에 끼냐면서 경계했다.

    “저기, 아저씨 누구세요?”

    은주의 물음에 재환이 답했다.

    “옆에서 계속 듣고 있던 사람인데, 이 친구하고 아주 잘 아는 사람이요.”

    “!”

    재환은 그러면서 아까 전 일본에서 사업하며, M-BOX는 망할거고, 자신이 준비할 프로젝트 말고 좋은 게임기 시장이 있다고 한 그 애인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 친구도 곧 나를 잘 알 것 같은데요?”

    “!”

    운이 없게도 조명 탓인지 취한 탓인지 그 자리는 미연빼고 아직까지 재환을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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