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오너 vs CEO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재환은 동문회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미스터 신! 필라델피아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유쾌한 인상의 중년의 백인 교수가 손을 내밀자 재환은 반갑게 악수하면서 오랜만에 온 모교를 돌아봤다.
“그리운 모교로군요.”
재환은 고딕풍의 캠퍼스를 걸으면서 옛 추억에 사로잡혔다.
미국 최고의 명문대 아이비리그의 한 축이자 3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 16명의 퓰리처상 수상자, 3명의 대법관, 40여명의 주지사와 150명이 넘는 하원의원 등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세계적인 동문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고 재환 역시 이곳을 졸업해서 자랑스러운 동문 한 축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아, 그러고보니.”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교수에게 물었다.
“조지프 내쉬 교수님은 잘 계신가요?”
“아, 그분은 제 작년에 은퇴하셨습니다.”
“그분이 벌써요? 하긴··· 학사 끝냈을때가 벌써 10년 전인가.”
재환은 그 뒤로 당시의 교수들을 물어보고 그중 몇 명은 아직 강단에 서 있다는 말에 캠퍼스를 돌면서 그들과 인사했다.
그리고 홍보처로 가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스터 신, 와튼 스쿨 동문의 방문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와서 단순히 모교에 대한 추억으로 인사하는 이야기는 끝났고, 이제 본격적으로 사업 논의를 했다.
“그동안 매년 기부금은 보냈지만, 이번에는 직접 나와서 강연할 기회를 주셨으니 좀 더 크게 내려고 합니다.”
“매우 옳은 결정입니다. 후배들 역시도 성공한 동문에 대해서 깊은 감사를 표할 것입니다.”
재환은 수표책을 꺼내서 개인 예산으로 얼마를 쓸까 하다가 만년필로 그 금액을 결정했다.
“호오?”
“와튼의 친구들이 모두 ‘600만불의 사나이’수준으로 성공하라고 600만달러를 기증하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벌어진 기증액에 교수들은 박수를 쳤다.
그리고 재환은 곧 있을 강의준비를 했다.
***
펜실베니아 대학 내 특별 강의를 위해 재환은 새 정장을 맞춰 입고 능숙하게 영어로 인사했다.
수백명의 동문들은 이 자리에 참여해 한국에서 온 대선배가 무슨 말을 할지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재환은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로 물꼬를 텄다.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왔을 때, 모든 것은 엉망이었습니다. 회사를 물려받아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상태여서 내수가 말이 아니었고, 저희 회사 역시도 부도 위기였죠.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했습니다.”
재환은 97년 혜성전자 입사 이야기를 하면서 추억의 옛 이야기를 계속 늘어놨다.
“물론 혈통이라는게 있어서 남들보다 빠른 출발은 했었죠. 그런데 트랙이 진흙탕이었다는게 문제였네요?”
간간이 농담도 섞으면서 혜성의 새 아이디어 이야기. 특히 코멧닷컴과 혜성트루넷, 그리고 혜성전자의 내비게이션과 MP3 플레이어를 이야기하며 말했다.
“펜실베니아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을 개발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를 선도할 아이디어를 이끌어나가는 경영자들을 만든 곳이기도 하죠! 저는 이 자리에서 우리 후배들은 그보다 더 좋은 발전을 꿈꾸라면서 새로운 아이템을 선물로 드릴까 합니다!”
“!?”
동문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재환은 신제품 MP3 플레이어인 슈퍼코멧을 이 자리에 온 후배들에게 모두 돌렸다.
거기에 설명서부터 혜성뮤직 스토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고, 기분 좋게 손을 흔들어 마지막 말을 끝냈다.
“앞으로의 최첨단 시대를 이끌 후배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재환은 박수 갈채를 받으면서 강연을 마쳤다.
그리고 재환이 뿌리는 씨앗들이 슬슬 미국 내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라델피아의 한 호텔에서 쉬고 있던 재환은 아침에 뉴스를 보면서 웃었다.
“서부에서는 빈민가 아이들에게 컴퓨터 관련 프로그램 강의와 함께 선물로 돌렸고, 동부에서는 동문들에게 이걸 써보고 더 좋은 제품을 발명해보라고 뿌렸는데 말이지.”
각기 다른 상황에서 돌린 마케팅이었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단가만 해도 상당한 제품들이 무료로 풀리면서 점점 사용자들의 후기가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미국 최대의 전자 [Electric Geek]에서는 그런 혜성전자 제품에 대한 커뮤니티가 하나둘씩 만들어졌다.
[nerdy: 슈퍼코멧이라는 MP3는 가성비가 상당히 좋아. 그리고 자유롭게 음악 프로그램을 집어 넣을 수 있어.]
ㄴ[nerdy// A-폿하고 차이가 뭔데?]
ㄴㄴ [nerdy: A-폿은 A튠즈 뮤직을 통해서만 노래를 담을 수 있지만, 이건 노래 파일만 있으면 그냥 USB로 담을 수 있다고! 별도의 소프트웨어가 안 필요해!]
어찌보면 A-폿의 가장 장점이자 단점을 두고서 호불호가 심했던 고객들의 반응을 혜성의 슈퍼코멧으로 돌릴 수 있는 반응이었다.
재환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현재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캐치했고, 실시간으로 인터넷 반응을 시애틀의 임용태에게 보내면서 개선점을 요구했다.
그렇게 혜성이 점점 성장하기 시작하니 결국 A-컴퍼니도 슬슬 준비를 했다.
***
동부 한 바퀴를 홍보차 누비면서 시애틀로 돌아온 재환은 갑작스럽게 판매량이 추락한다는 소식을 듣고 물었다.
“뭐가 문제인데 갑자기 슈퍼코멧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진 겁니까?”
그러자 임용태가 신문을 꺼내들었다.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즈에서 일제히 올라오는 기사입니다.”
거기에는 A-컴퍼니의 ‘스티브 폴’이 슈퍼 코멧을 부수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미국은 더러운 카피캣이 활개칠 시장이 아니다.]
[슈퍼코멧? 상대할 가치도 없는 불량 제품!]
“!”
A-컴퍼니가 CEO를 앞세워서 혜성전자에 대한 악담을 마구 퍼붓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미국 내 메이저 신문사와 방송국들이 풀어 다니면서 노골적인 비난으로 혜성의 이미지를 카피캣으로 격하시켰다.
분명 분노해야 될 일이었지만, 재환은 그것을 보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
“!?”
임용태나 임창훈은 이 상황에서 웃고 있는 재환을 보고 이해 못했다.
“회장님, 이 상황은 지금 웃을일이···.”
“아니요! 놈이 떡밥을 문 겁니다! 오히려 이때부터 슈퍼코멧은 다시 살아날 거예요!”
“네?”
임용태도 되묻자 재환이 말했다.
“A-컴퍼니의 수법입니다. 자신들이 뭔가 신제품을 만들고 후발주자들이 나오면 조롱 광고를 CEO의 이름으로 뿌려서 여론을 움직이죠.”
“대표님! 하지만 이런 모욕 때문에 저희 제품 판매량이 주는 것은···.”
“그들이 직접 우리 제품을 콕 찝는다는 것은 견제할 정도로 혜성이 뜬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됐어요. 내가 알아서 하죠.”
재환은 사람 좋게 미국에서 조용조용히 움직이니 싸움닭 같은 스티브 폴이 움직였다고 생각하면서 이제 자신도 좀 매운맛으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자,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도 메이저 언론사 잡는겁니다. 두 임 이사님들 준비 하세요!”
재환은 앞으로 혜성전자 슈퍼코멧에 대한 인터뷰 창구는 자신이 하겠다는 것을 알리면서 슬슬 준비했다.
이미 한국에 오기 전에도 했던 말.
그것은 ‘자신이 회장 직함을 가지고 직접 막말도 하고 발로 뛰면서 오너리스크라는 말 나와도 마케팅 1책임자로 움직이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리고 재환은 거기에 맞춰 기자들을 부르고 방송까지 타게 되었다.
[A-컴퍼니가 얼마나 저희가 무서우면 CEO까지 나와서 그런 말을 다 할까요?]
[미스터 신, 그렇다면 이번 A-컴퍼니의 도발을 신경쓰지 않으신다는 겁니까?]
TV속에서 나오는 재환은 기자의 질문에 눈썹을 씰룩이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전 드레스 코드도 모르는 그 ‘폴라티 올드맨’의 말에 신경 안씁니다. 오히려 언급해주니 저희 이름값만 올려주는 도움이라 봐야겠군요.]
천하의 실리콘밸리의 왕 스티브 폴을 두고 ‘폴라티 올드맨’이라는 모욕적인 단어로 갚아준 재환이었다.
그리고 그 단어가 미국인들의 뇌리에 남은 것인지 인터넷에서는 밈으로 스티브 폴을 ‘폴라티 올드맨’이라고 조롱하는 유행어가 만들어졌다.
뉴스를 보고 극대노한 스티브 폴은 좀 더 원색적인 비난을 혜성에게 퍼부었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한량 같은 놈이 IT회사 오너 노릇을 한다!]
[혜성은 기부를 악용해서 공짜로 제품 뿌리는 저열한 마케팅이나 쓰는 기업이다!]
[MP3 플레이어에서 우리를 쳐다볼 일도 없을 것!]
점점 더 A-컴퍼니의 폴라티 올드맨이 더욱더 길길이 날뛰었지만, 재환은 거기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다른쪽으로 마케팅으로 다른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회장님, 원하시는 수량을 모두 채웠습니다.]
“네~ 그래요.”
한국 공장에서 장진욱의 연락을 받은 재환은 곧바로 모든 수량을 보내라고 명한다음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노크 소리와 함께 임용태와 임창훈이 나와 말했다.
“회장님. 준비됐습니다.”
이번 MP3 플레이어 홍보를 위해 재환은 LA와 베벌리힐즈 인근에 있는 ‘호텔 캘리포니아’에서 신제품 전시회를 준비했다.
이미 그 일대에는 혜성전자 슈퍼 코멧 스토어를 오픈한 상태였고, 거기에 맞춰서 제대로 된 발표회를 할 생각이었다.
“그 동안 스펙이니 제품 가격이니 알음알음 퍼지기는 했어도 정식으로 인사드리는게 늦었던 건 사실이에요.”
“회장님,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요?”
“마케팅으로만··· 이미 3분기 예산이 초과 위기입니다.”
“···.”
그도 그럴 것이 계열사 하나가 미국진출을 앞두고서, 경쟁사 지분 인수에, 엄청난 홍보에 원가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난 가격할인으로 100만대를 찍어내 그걸 전부 미국에 보내서 팔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오너 또한 직접 머물면서 발로 뛰려고 하고 있으니 더욱 더 예산을 보냈다.
“이게 아주 큰 도박인건 사실이에요. 혜성그룹 전 계열사를 합쳐도 아직 A-컴퍼니에는 미치지 못할 정도고요.”
2010년대 이후의 압도적인 넘버1이 아니다뿐이지 IT업계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드는 공룡기업을 상대로 혜성이라는 이미지는 너무도 초라했다.
하지만 재환은 지금이 그나마 A-컴퍼니랑 정면으로 싸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움직였다.
그리고 그 날을 위해서 재환은 새 명품 정장을 맞추다가 생각나서 말했다.
“아, 참! 초대권 준비 됐죠?”
“네, 그렇습니다.”
“A-컴퍼니에도 한 장 보내주세요. ‘사랑하는 스티브 폴에게 보내며!’라고요.”
“네?”
“보내세요. 꼭!”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이왕이면 그 폴라티 올드맨이 꼭 와주길 바랬다.
***
2001년 12월.
새해를 한 달 앞두고서 호텔 캘리포니아 공연장 전체를 대관한 재환은 수많은 IT업계의 관리자와 몇몇 셀러브리티들이 오는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이들이 오게 된 것은 재환의 초대장도 있지만, 거기에 응한 사람들의 존재였다.
“헤이, 미스터 신!”
“아! 거위츠! 마이 프랜드!”
마이크로 컴퍼니의 빌 거위츠와 마리아 거위츠 부부가 혜성전자의 제품 홍보식에 참여해준 것으로 언론사를 포함해서 유명인들이 움직인 것이었다.
사실 그들에게 있어서 ‘혜성? 신재환? WHO?’ 였지만, 그가 한국 기업을 미국에 상장시켜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올리고, MP3 플레이어 시장에 진출하자 스티브 폴이 견제를 한다는 이미지로 인해 적절한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와튼스쿨 출신의 한국에서 온 천재 경영자가 실리콘밸리의 왕을 상대한다라- 기가 막힌 스토리텔링이군요.”
“하하하! 알 게 모르게 그런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졌나요?”
“미스터 신, 오늘 양복 정말 멋지군요.”
마리아의 칭찬에 재환이 웃으면서 말하려던 찰나 뒤에서 큰 동요가 있었다.
“엇?”
“와우!”
“어머!”
모든 기자들이 갑자기 몰려들었고 호텔 로비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울렸다.
그리고 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오는 것은··· 스티브 폴이었다.
재환이 그렇게 조롱했던 검은색 폴라티에 청바지, 단촐한 런닝화 차림으로 주머니에 손 넣고 발을 찍찍 끌며 오는 모습은 아예 도발적으로 이 자리에 와준 것이라는 이미지였다.
‘진짜 왔어? 하하, 그것 참···.’
조롱의 목적으로 보낸 초대장이었는데, 그걸 진짜로 받아들고 재환의 눈앞에서 초대장을 팔락이는 스티브 폴이었다.
“헤이, 미스터 카피캣? 초대 받고 와 줬다.”
“아, 그래요. 일단 옷 것에 대해 환영인사는 해 드리죠. 폴라티 올드맨!”
서로를 ‘카피캣(따라쟁이)’니 ‘올드맨(늙은이)’ 조롱하면서 눈이 마주친 둘은 불꽃이 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엄청난 기사거리가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