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11화 (111/244)

111- 작은 성의, 큰 거래.

내비게이션의 판매량이 계속 올라가면서 점점 관심도가 대중적으로 퍼지고 있었다.

빠른 보급으로 인해 높은 가격이긴 했지만, 그것에 따른 편의성은 확실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수많은 기업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히야, 공기업도 이걸 한다네?”

한국통신, 내년 8월 민영화를 앞두고 있는 RKT가 자신들도 내비게이션 사업을 진출 선언하고 개발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후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IT기업들도 내비게이션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해 알음알음 기술자를 모은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에 퍼졌다.

“뭐, 이제부터가 진짜 무한경쟁이겠지.”

선점은 했다 하더라도 득달같이 달려들 수많은 경쟁자를 생각한다면, 이제부터 확실히 기술력으로 후발주자를 꺾어야 했다.

재환은 그것을 위해 먼저 인사부터 개편하기로 생각했다.

***

“어서오세요. 대표님과 부사장님.”

재환은 장진욱과 이기남을 반갑게 맞이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회장님.”

재환은 둘을 보고 웃으며 차를 가져오게 했다.

현재까지 내비게이션 시장이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었고, 혜성은 판매량 1위를 올리면서 확실히 KS와의 격차를 벌렸다.

“지난번 보너스 알맞게 배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장 반응은 어떱니까?”

“회장님의 보너스로 혜성전자의 사기가 매우 올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 프로젝트 역시도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좋아요. 일한만큼 대우를 해줘야 애사심이라는게 생기는 겁니다.”

재환은 자신이 인수한 계열사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돈을 풀 때 풀었고, 그동안 혜성쇼핑, 트로이카, 트루넷등의 계열사가 대박을 터트릴 때마다 두둑한 보너스 파티를 벌이던 것을 혜성전자 역시도 받게 된 것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혜성전자에 대해서 개편을 좀 하려고 합니다.”

재환은 자신이 준비한 조직도를 꺼내 장 사장과 이기남 소장에게 보여줬다.

“회장님, 이건?”

“아니, 이게···.”

둘 다 놀란 얼굴이었고, 재환은 거기에 관해서 설명해줬다.

“내비게이션이 발전해나가는 거 정말 좋긴 하지만, 그거 하나로 만족할 우리 혜성전자가 아니죠. 그래서 연구개발센터를 업그레이드시킬 겁니다.”

재환은 혜성전자 R&D센터의 규모를 3배 이상 늘리기로 했다.

“그래서 연구소장 역할을 맡으신 이 소장님이 잘 해주셔야 합니다.”

“회장님, 염려 말아주십시오. 저희는 어떤 제품이든 연구해서 경쟁사들과 기술적 격차를 벌릴 것입니다.”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장진욱에게도 말했다.

“장 사장님, 규모를 늘리려면 앞으로 인재영입이 필수입니다. 국내파나 유학파 할 거 없이 연구원들 있는 대로 데려와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것 때문에 제가 기전실 통해서 안산공장 근처에 있는 빌딩 몇 개 알아봤는데, 이 중에 임시 연구센터로 쓸 곳이 어디가 괜찮을지 한 번 알아봐주세요.”

새로운 연구실을 만들기 전까지는 임시로 쓸 건물을 재환이 매입하겠다는 말에 두 임원이 수긍했다.

“얼마 안 있어서 들어올 친구들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반도체 산업 시작할 역군들 말입니다.”

“아, 분명 수원에 있는 팀도···.”

재환이 삼신전자와 지분교환 이후로 반도체 사업을 위해 연수를 보낸 연구원들 이야기를 하자 장진욱과 이기남의 머리가 복잡했다.

할 일은 많은데 올해도 벌써 절반이 지났고, 정말 임기 내에 일복이 터졌다고 할 일이었다.

그리고 재환은 그 둘에게 깊은 신뢰감을 북돋아 줬다.

“혜성전자는 두 분이 앞으로도 잘 이끌어나가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제가 뒤에서 든든하게 밀어드리겠습니다.”

장진욱과 이기남 모두 재환의 명을 들은 뒤로 황급히 움직였다.

“자, 그럼 나는 말이 나온 김에···.”

반도체 이야기에 대해 보고만 받았는데, 오늘 상황 좀 알기 위해 수원으로 향했다.

***

“요새 좀 어떠냐?”

수원 삼신전자 단지에서 잠깐 나온 친구 석찬을 오랜만에 만난 재환은 현 상황에 대해 넌지시 물었다.

“휴우- 눈치 보여 죽을 것 같다.”

석찬은 아이스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끓는 속을 달랬다.

“왜? 삼신이 우리 직원들 괴롭히냐? 현규 한 번 통화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여기도 엄청 상황이 안 좋더라고.”

“···자세히 이야기해 봐.”

재환의 재촉에 석찬은 길게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꺼냈다.

“반도체 버블이 꺼진 것 같다. 작년에 64메가 D램 개당 20달러 하는게 지금 얼마인 줄 알아?”

“아···.”

재환은 그 말을 듣고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일본, 한국, 대만, 미국 등에서 D램을 가지고 엄청나게 찍어내면서 호황기를 이끌었지만, 그 뒤로 공급 과잉으로 추락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저번에 본 게 5.8달러였는데 말이지.”

“현재 현물가가 5.2달러다. 1/4토막이 났어.”

“어려운 일이지.”

“삼신전자에 연수받으면서 눈치 보여서 제대로 배울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 떨어지면 우리가 OEM해도 큰 일 아닐까?”

재환은 고개를 저으면서 석찬에게 말했다.

“아니야. 그건 신경쓰지 말고 그냥 열심히 배우기나 해.”

“뭐? 그러다가 진짜 반도체 쇼크라도 나면···.”

“그럴 일 없어. 곧 바닥 찍고 올라갈 거다. 오히려 우리만 더 진입하기 쉬워지는 거야.”

향후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미국 역시도 생산 대비 수익에 대해 문제점을 느껴 하청을 운용하지만, 반도체라는 게 그 뒤로 얼마나 무궁무진하게 이용되는지는 재환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재환은 이미 대규모로 D램을 쓸 수 있는 사업체를 여러 개나 가지고 있었다.

‘잘 됐어. 오히려 이러니까 더 투자하기 쉽겠구만.’

재환은 오히려 위기가 기회라는 것을 캐치했다.

“남은 기간 열심히 배우고 지금 만드는 공장 다 지어질 때까지 힘 좀 내줘라. 말했지만, 모두가 혜성전자의 뿌리가 될 사람들이야. 너를 포함해서!”

“후우, 점점 어깨가 무거워지는구나.”

“잘 할 거라고 믿는다.”

재환은 석찬과 악수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파견 나간 혜성전자의 반도체 사업팀에 대해서도 따로 격려금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수원에서 서울로 올라가면서 그의 눈이 또다시 번득였다.

“예, 형님. 접니다.”

[아! 그래. 재환아!]

재환이 전화를 건 것은 얼마 전 한 번 감정 상했던 대현이었다.

술 한잔 털고 화해한 이후로도 연락이 좀 뜸했지만, 먼저 전화를 거니 대현 쪽에서 화색을 보이며 반갑게 말했다.

[네가 왜 그렇게 내비게이션 그거에 매달린 줄 알겠다. 이거 진짜 엄청난 신사업이야.]

“네~ 저희가 트리플 스코어로 잡고 있지만요.”

[하하하, 그래. 진심으로 축하한다.]

“조만간에 약속 한 번 잡죠. 제가 KS호텔로 가겠습니다.”

[오~ 그래, 그래! 내가 다 애들 불러서···]

그 순간 재환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형님하고 저만 따로요.”

[음?]

“지난번에 그 맛난 프랑스 와인 다시 한 번 마셔보고 싶군요.”

대현은 둘이서 한잔하자는 말에 잠시 수화기 너머로 말이 없다가 이내 대답했다.

[그래 뭐, 원한다면 한 병 준비하마.]

“예~ 모레 저녁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재환은 통화를 마치고서 주먹을 쥐었다.

이번 일에 대해 곱게 넘어갔던 딜에 대해 제대로 된 딜을 볼 셈이었다.

그러면서 또 다른 곳에 전화를 걸었는데 이번엔 기전실 쪽이었다.

[네, 회장님.]

“임 실장님. 지금 언론사 통해서 소문 하나 확인 좀 해주셔야 겠네요.”

[무슨 소문입니까? 바로 기전실을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혜성과 KS에 대한 불화설 같은 뭐··· 그런거요.”

[···네?]

***

이틀뒤 재환은 KS호텔 VVIP 라운지로 향했다.

이미 그곳에는 대현이 동생이 온다는 소식에 그 프랑스산 최고급 와인에 KS호텔의 특식들을 준비한 대현이 있었다.

“아이고! 어서와, 신 회장.”

“그간 잘 지내셨죠?”

“하하, 우리 안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대현이 과할 정도로 움직이면서 재환을 와락 끌어안은 다음 악수했고, 자리로 안내해줬다.

테이블 위에는 송로버섯 요리와 에멘탈치즈 등이 있어서 와인과 곁들여 먹기 좋은 안주들이 가득했다.

“우리가 노력은 했는데, 초반부터 너무 차이가 났네.”

현재까지도 내비게이션 시장은 혜성과 KS가 팽팽한 라이벌··· 이라고 언론에서는 말하지만, 격차가 상당한 편이었다.

재환은 거기에 대해 2D내비와 3D내비를 넘어 현재 기술력에 대한 차이와 마케팅 등을 말하려고 했지만, 긁어 부스럼이라 생각하고 그저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내비게이션 시장은 혜성이 수월하게 먹는다.

그리고 오늘은 좀 더 큰 사업을 위해서 대현에게 딜을 걸러 온 것이었다.

“그래, 따로 만나자는 일이 무엇일까? 나 욕하는 말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연신 싱글거리는 대현을 보며, 재환은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님, 솔직히 뒤늦게 특허 우회 일을 알았을 때, 그냥 넘어간 거는 우리 사이니까 가능했던 겁니다. 인정하시죠?”

혜성 중역들이 특허청까지 가서 특허우회 이야기를 슬쩍 언급하자 대현은 살짝 식은땀을 흘렸다.

“으, 으음? 그건 내가 정말 미안한 일이지. 그래서 내가 몇 번이고 더 사과할 테니, KS회장 체면 좀 살려줘.”

넉살 좋게 ‘우리 사이’로 넘어가려는 대현에게 재환은 슬슬 장작을 지폈다.

“네~ 그래요. 하지만 언론사 놈들이 아주 개코더군요. 그 일로 냄새를 빨리도 맡았어요.”

“무슨 소리야, 그게?”

“제가 그때 홧김에 KS와의 거래 끊으라고 명했을 때, 은연중에 저와 형님의 기업에 대한 불화설이 맴돈다고 하더라고요?”

“하, 하하! 신문사 찌라시 같은 거에 넘어갈 우리가 아니잖아?”

“네~ 저희는 안 넘어가죠. 주가가 넘어가지.”

“···.”

사실이었다.

기업 간에 큰 거래가 끊긴다는 것이 ‘소문’으로만 퍼져도 수시로 주가가 요동치는 것이 증권가였고, 그래서 언론이 나발 한 번 불면 각 기업의 비서실이고, 미전실이고, 기전실 같은 데스크가 당장 정보도 요청에 관계자들을 만나서 입단속을 시킨다.

그리고 소문이 벌써 퍼졌다는 말에 대현은 웃음기가 슬슬 걷히면서 재환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언론이나 증권가가 생각하는 그게 단순한 오해였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죠.”

“어떤··· 방법으로?”

“저희가 이번에 거래 끊는다고 했던 KS에너지하고, KS케미칼, KS텔레콤 등의 지분을 제가 좀 사들여야겠습니다.”

“뭐?!”

대현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냐는 말로 눈을 부릅뜨자 재환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뭘 그렇게 놀라세요?”

“재환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KS의 사업들에 네가 지분을 가진다니!”

“대신, 저희 역시도 KS와의 교류를 위해서 계열사들의 일부 지분을 형님이 가질 수 있게 하겠습니다. 형님 KS는 호텔에 면세점 안 필요한가요?”

“!”

대현은 그제야 재환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와인 잔을 들고 쭉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본 재환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거죠. 우리 사이는 더 돈독하게 보일 거고요. 최대현 형님.’

대현은 그런 재환을 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니까 너 지금··· 혜성하고, KS의 지분교환 우호조약을 말하는 거냐?”

“바로 그렇습니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조건이죠.”

지난번 특허우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 녀석이 조용히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딜을 제안할지 생각 못 한 대현이었다.

적당히 내비게이션 시장 성장세를 위해 현재 지니어스를 넘기고 반독점 체제로 굳히는 수준을 생각했는데, 이게 일이 커졌다.

“화학, 정유, 통신··· 혜성하고 그렇게 크게 관련은 없잖아?”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죠. 그리고 저희가 그냥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의 우정을 위해 교환하는 거 아닙니까?”

그것을 위해서 재환은 슬슬 꼬드기기 시작했다.

“이번에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도 있잖습니까? 샤를로트나 호텔 헬튼이나 프라자 같은 곳들 나선다는데 KS도 나서야 하지 않겠어요?”

“흐으음.”

“게다가 형님이 저희 혜성의 백화점과 면세점, 게임유통, 한국통운 지분을, 저희가 KS에너지, KS텔레콤 등의 지분을 가지면 갑자기 거래가 잠깐 끊어진 것도 수월하게 넘어갈수 있죠. 서로의 우호지분을 가지고 동맹이니까요.”

“혜성이··· KS의 백기사가 되어 주겠다는 거냐?”

“바로 그렇습니다.”

KS그룹은 최대현 체제 이후 순환출자 구조에서 회장에 대한 우호지분이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었다.

KS일가의 모든 지분을 합친다 하더라도 투자유치를 위해 외국계 자본이 많이 들어온 상태가 문제였다.

훗날의 일이지만 그러다가 사모펀드에 된통 당해서 언제나 우호지분을 모으기 위해 백기사 찾아 대현이 발품 팔며 다니던 게 2000년대의 KS였다.

석유와 통신업이라는 알짜 캐쉬카우 사업을 하고 있지만, 우호지분 부재로 조마조마한 상황인데, 재환이 찌르고 들어갔다.

“지금부터 제가 사들여가는 지분은 전부 물 건너 사모펀드 하는 애들 재뿌리는데 필요할 겁니다.”

“으으음.”

그리고 재환은 앞으로 주유소와 통신 문제는 걱정할 거 없다면서 KS의 지분으로 마음껏 백기사 역할을 할 셈이었다.

그리고 이건 혜성의 특허 우회 장난질 대가로는 대외적으로도 무난하면서 엄청난 거래가 오갈 일이었다.

“어떠세요. 형님?”

“하, 이 녀석 진짜···.”

순간적으로 욕이 나온 대현에게 재환은 조용히 와인을 따랐다.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대현은 곧바로 재환에게 요청했다.

“10분만 시간을 줄 수 있냐?”

한 방 먹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제안하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도 드릴 수 있습니다.”

상대의 약점을 찔러들어가면서 거절해도 평타, 승낙하면 초대박인 제안 건넨 후 재환은 칼자루를 잡고서 그 응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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