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09화 (109/244)
  • 109- 교통계의 대격변(2)

    혜성전자의 내비게이션 출시를 앞두고 난적을 만난 혜성그룹.

    재환은 회장으로써 훗날 경쟁자가 될 벤처기업 지니어스 전자를 인수할 것을 명했다.

    그것을 위해 이기남 전무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 팀이 움직였고, 잘하면 좀 더 시너지를 일으켜서 새로운 시장에 엄청난 성장세를 일으켜 줄 것이다.

    재환은 회장실에서 지니어스 전자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봤다.

    초고속인터넷 시대 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포털들 덕분에 신문보다 뉴스 찾기가 더 수월해진 감이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정보는 쉽게 나왔다.

    [지니어스 ‘위기를 정면 돌파 할 것이다.’]

    [위기에 빠진 벤처 1세대의 사업가. 도박수는 성공할 것인가?]

    지니어스는 내비게이션 시장을 노리면서 벤처기업치고는 꽤나 무리하게 융자를 끌어올려 이것 하나에 집중을 했다.

    덕분에 재정 상태는 꽤나 위태위태 해보였고, 신제품 하나에 매달린 상황이라 잘 하면 쉽게 인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벤처가 이래서 위험하다니까.”

    IT버블도 슬슬 끝물이 될 때였고, 이 당시 생겨난 벤처기업들은 대다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줄도산했다.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 벤처, IT라면 무턱대고 대출을 땡겨준 은행들, 거기에 목숨보다 귀한 사채돈을 쓴 업자들.

    모두가 연쇄적인 폭발로 몰락하게 되는 것이 이후 벤처 버블의 몰락이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IMF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최악인 상황이라고 평가할 정도였고, 이때의 트라우마를 겪고 벤처기업이란 단어는 구시대 버블의 상징이 되었고, 훗날 ‘스타트업’이라는 단어로 바뀌어서 부활하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걸렸다.

    재환은 그것을 알고서 빨리 움직이기로 했다.

    지니어스가 훗날 내비게이션 시장에 강자가 되는 미래가 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혜성이 없고, 혜성 내비게이션이 없는 시대니까 경쟁의 전제를 바꿔야 했다.

    재환은 앞으로는 미래를 본다 하더라도 혜성그룹의 존재를 생각하고 경우의 수를 따지면서 움직이기로 했다.

    역사가 반복된다고 하지만, 이미 바뀐 것이 한참되고, 당장에 자동차와 반도체가 이전과 같이 삼신과 아성이 1인자로 이어가는 세상이 계속될지는 모를 일이니 말이다.

    며칠 뒤 재환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지니어스의 지분을 적대적으로 매수한 기업이 있다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무래도 저희가 한발 늦은 것 같습니다!”

    임창훈, 장진욱, 이기남이 모두 재환 앞에서 고개 숙여 사죄했다.

    “에효- 어떤 눈치 빠른 인간인지는 몰라도 선수를 쳐 부렸네.”

    재환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지니어스를 인수 앞두고 있는 의문의 기업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일단 그쪽을 알아보고 저희도 투자할 수 있는 만큼 하겠다고 해 주세요. 지니어스가 그 외부에 얼마나 받았는지는 몰라도 저희도 그 이상에 투자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후 재환은 세 임원들을 물러나게 한 뒤로 생각에 잠겼다.

    그때 회장실에서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회장님, 내일 골프 회동 약속으로 새 의복 준비했습니다.]

    “아, 패션사업부에 골프웨어 준비하라고 했었지.”

    속옷 이후로 배냇저고리부터 골프웨어까지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는 패션사업부였다.

    재환은 훗날 패션사업부도 독립시켜서 독자적인 종합 의류기업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도 착실히 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골프 잘 못치는데.”

    어렸을적 아버지와 배우기는 했지만, 영 늘지를 않았던게 골프였다.

    차라리 스쿠버다이빙이나 요트로 배낚시 쪽이 더 취향인데 그쪽을 관심 가지는 재벌가 친구가 잘 없다는 게 아쉬웠다.

    “후우, 어쨌건 참가는 해야지. 그 형님 초대인데.”

    웬만하면 빠지고 싶어도 꼭 와달라는 부탁을 들었을 때, 육공회까지 언급하니 안 갈 수가 없었다.

    재환은 회장실로 온 자신의 골프웨어를 한 번 확인하고 내일을 준비했다.

    ***

    딱-

    육중한 체구에서 날아간 샷에 골프공이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나이스 샷!”

    재환은 대현에게 박수를 치면서 다음 홀로 넘어갔다.

    “하하하, 가끔 이렇게 푸른 들판을 봐 줘야 안심이 된다니까?”

    재환을 골프 약속으로 초대한 것은 대현이었다.

    그래서 라운딩을 하면서 둘의 골프가 계속 됐고, 운 좋게 몇 번 들어갔지만, 대다수는 대현의 승리로 이어졌다.

    골프를 끝낸 재환은 리조트로 들어와 재환에게 차를 대접했다.

    “재환이는 퍼팅 연습좀 더 해야겠더라? 회장님인데 앞으로 실력 좀 키워야지.”

    “난 골프쪽은 전혀 흥미가 없어서요. 그냥 아이언이랑 드라이버 휘두르는 법만 아는 수준이라고 말 했잖아요.”

    “쫌 만 더 하면 잘 하겠는데 말이야.”

    재환은 손사래를 치면서 아이스티를 들이켰다.

    그리고 대현이 무슨 말을 할지 조용히 기다려봤다.

    반응은 빨리 나왔다.

    오늘 골프 라운딩도 기분좋게 끝내고, 신사업을 진행하면서 흡족한대현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이번에 말이야. 우리 KS가 내비게이션 사업을 하게 됐다.”

    “···!”

    “미리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해야겠네. 그러니까 아까 골프 내기 제안 받지. 왕창 잃어주고 술 한잔 사려 했는데.”

    재환은 태연하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최대연을 보고서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혜성이 내비게이션 사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대현이 자신들도 사업하겠다는 것을 미리 말한 것이었다.

    “그럼··· 지니어스 매수한게 형님입니까?”

    “매수가 아니야. 처음부터 내가 투자했거든. KS텔레콤하고 손잡아서 ‘KS-티맵!’이라는 GPS 내비게이션 사업을 하는거야.”

    ‘아, 젠장!’

    물론 이것 역시도 미래에 준비된 일이었지만,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다.

    KS가 내비사업 진출한 것은 앞으로 5-6년은 더 걸린다고 생각했는데 뭔 바람이 들었는지 곧바로 선빵을 쳐 버렸다.

    재환은 그 말을 듣고 일어났다.

    “야, 재환아! 왜 이래?”

    “형님, 진짜 서운합니다. 어떻게 우리끼리 육공회라면서 서로 영역은 터치 안하기로 한 거 아닙니까?”

    분명 혜성이 삼신디스플레이를 납품받으면서 내비게이션 연구 몇 년동안 한 것을 알면서 그런 식으로 넘어가니 진짜 미칠 노릇이었다.

    “아, 이번 일은 내가 미안하다니까? 어떻게 양해 좀 구할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육공회 모임은 좀 쉬겠습니다.”

    “신 회장!”

    대현이 붙잡으려고 했지만, 재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프장을 나섰다.

    차에 올라탄 재환은 주먹으로 뒷좌석 소파를 내질렀다.

    퍽-

    “아, 진짜 너무들 하네.”

    재환은 이번 일을 두고서 육공회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육공회는 훗날 경제련과 상공연을 뛰어넘는 거대 단체를 만나기 위한 밑그림이었는데, 여기서부터 어그러지니 짜증이 치밀었다.

    “나는 건설업도 팔고 자동차 사업도 눈치 보면서 잡음 안 나게 처리했는데, 의리도 없이!”

    재환은 그것을 두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다음날 재환은 혜성전자와 트로이카의 임직원들을 모아 놓고서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말했다.

    “···그렇군요. 지니어스는 처음부터 KS의 투자로 만들어진 기업이었던 겁니까?”

    “벤처 투자한다고 슬금슬금 움직인거겠죠. 잘 되면 바로 추수하는거고, 안 되면 손 털고 모른 척 하는거고.”

    방법은 전형적인 재벌가 2세들의 수법이었는데, 그걸 믿었던 육공회 형님이 그랬으니 기분이 상했다.

    “일단 이렇게 된 이상 KS에게 성의 표시는 해야겠죠.”

    “대표님! 성의 표시라 하시면···.”

    “트루넷의 통신장비 소재 KS종합화학하고 거래하죠? 그거 대체할 수 있는 기업 알아보세요. 국내든 해외든 기술력 갖췄으면 그냥 고하시고요.”

    “네?”

    “그렇게 하세요. 신뢰 문제니까 그쪽에서도 아무 말 못 할 겁니다.”

    그 뒤로 재환은 전자와 컴퓨터를 넘어 다양한 곳에서 KS와의 관계를 서서히 끊으려는 반응을 보였다.

    혜성한국통운과 혜성홈쇼핑, 코멧닷컴 등의 택배차량들부터 KS에너지와 주유 계약을 맺었지만, 그것도 공개입찰을 할 거라고 선언했다.

    심상치 않은 기류 속에서 언론사들이 슬슬 냄새를 맡고 움직였지만, 아직은 주간지 경제지에서나 나올법한 소문으로 줄어들었다.

    [야, 재환아! 너 계속 안 나오는 이유가 뭐냐?]

    “어~ 대현 형님에게 물어봐. 그분이 아주 잘 설명해주실 거야.”

    진용의 전화에도 재환은 당분간 술자리 갈 일 없다면서 만류했다.

    이후에도 현규나 정인이 보내는 연락도 재환은 개인상의 사유로 만류했다.

    그러면서 점점 KS의 계열사들과 관계를 정리하자 그쪽에서도 대현이 대노했다는 말을 건너건너 듣게 됐다.

    ***

    얼마 후 재환은 식사를 하려고 웨스턴 호텔로 나왔다가 기다리고 있던 진용을 발견했다.

    “뭐야?”

    “올 줄 알았다. 그래도 가끔 식사는 하러 와 주니 우리 호텔 밥이 맛있긴 하지?”

    “후우, 미안하다. 정 사장. 내가 진짜 할 말이 없거든?”

    재환이 좀 까칠하게 나왔지만, 진용은 그럴수록 서글서글하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아, 왜 그래? 신 회장님. 위에 형제들 다 있다. 우리가 화해 주관하는거니까 가서 이야기 하자.”

    “···.”

    재환은 잠시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 한 대 태우고 올라갈게.”

    재환이 진용의 안내를 받고 스위트룸에 들어가자 그곳에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육공회의 멤버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대현은 재환이 온 것 때문에 어서 오라고 손을 내밀었다.

    재환은 머뭇거리다가 그 손을 잡고 일단 악수를 했다.

    그리고 이 화해를 주관하는 두성그룹 박정인 사장이 나섰다.

    “자~ 자~ 이러지 말고 남자답게 둘 다 화해 합시다. 내가 주관해서 타협을 좀 둘이 해 봐요.”

    그동안 조용했던 정인이 나서서 주관하고 재환과 대현의 자리가 되었다.

    “이번 일은 내가 미안하니 여기서 합의를 하자.”

    “그럼 제가 형님에게 서운한 감정을 어떻게 풀어야 겠습니까?”

    재환의 물음에 대현은 봉투를 꺼내 문서를 하나 내밀었다.

    재환이 그것을 확인하자 거기에는 지니어스만이 가진 기술 특허들이 가득했다.

    “이걸 왜?”

    “우리 아이디어다. 우리는 이대로만 그대로 만들어 나갈거야. 절대 너희들 기술하고는 전혀 상관없게 움직인다고 다짐하지.”

    “?”

    “출시도 늦추마. 만약 그랬는데도 너희랑 유사한 거 나온다면 그땐 고소를 해도 받아들일게.”

    아예 맨땅에서부터 경쟁을 하자는 말이었다.

    그리고 대현의 제안을 들은 재환을 향해 정인이 중재해서 말했다.

    “자, 그러면 합의를 합시다. KS하고 혜성하고 내비게이션 만드는 것을 두고서 경쟁을 하는 거예요. 우리끼리 밀실 회의가 아니라 시장에 나와서 정식으로 붙으라고.”

    “···.”

    그러자 진용도 슬쩍 거들었다.

    “육공회 친구분들이 각자 회사 떠맡고 있는 거··· 다들 사정 잘 알고 있잖아? 특허권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그냥 경쟁으로 가는 게 어떨까?”

    재환은 그 제안을 받고서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 서류를 대현에게 돌려줬다.

    “좋습니다. 혼자 다 처먹을 것도 아니니 그러면 경쟁을 통해서 제대로 승부를 보기로 하죠.”

    대현은 그 말을 듣고 기다렸다는 듯이 박수치면서 일어났다.

    “하하하, 그래~ 맞아. 자고로 기업이란 좋은 경쟁을 해 줘야지.”

    이것으로 내비게이션은 이제 2파전이 되었다.

    아성그룹은 이전부터 자사의 자동차 내장형 빼고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 사실상 분리형 내비게이션을 두고 붙어야 할 것은 혜성과 KS의 대결이었다.

    “그럼 화해의 의미로 이 자리는 제가 살게요. 그동안 못 본 만큼.”

    이렇게 됐으니 그동안 KS와 멀어졌던 계약들은 다시 복구하기로 했다.

    그리고 혜성전자에 연락해서 내비게이션 대결에 대해 좀 더 스퍼트를 가할 것을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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