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05화 (105/244)
  • 105- 규탄시위? 그건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쾅쾅쾅- 쾅쾅쾅-

    “아, 뭐야 진짜!”

    재환은 자다가 방문을 거칠게 두들기는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깼다.

    시간을 보니 새벽 6시인데, 갑자기 왜 이 시간에 자신을 깨우는지 모를 일이었다.

    “야 임마! 신재환! 안 일어나?”

    문밖으로 희경의 노기 어린 목소리에 재환은 뭔 일인가 싶어서 문을 열었다.

    “아 뭐에요? 미국시장 추락이라도 했대요?”

    “야, 임마! 당장 세수하고 거실로 나와!”

    재환은 인상을 찌푸리며 세면장으로 들어간 다음 축축하게 젖은 머리와 얼굴을 닦으면서 나왔다.

    “대체, 대체··· 임마! 뭔 짓을 했는데 아침 댓바락에 기전실 연락이 오냐?”

    “아, 뭐 때문인지 이야기를 해 주셔야 짐작을 하죠!”

    “그 용산 전자상가인가 뭔가에서 애들이 본사 앞에 드러눕고서 시위한대잖아! 난리가 났단다 지금!”

    “!”

    재환은 그제야 졸린 눈이 떠졌다.

    “아니··· 그 사람들이 왜요? 자기네 부품 사달랍니까?”

    “네 놈이 더 잘 알 거 아니야! 저번에 그 미국서 들여온 컴퓨터 부품 매장인가 뭔가 하는 거로 난리도 아니란다! 소상공인 말려 죽인다고 피켓까지 들고 방송국 온다는데 이거 어쩔 거야?”

    희경이 그렇게 분노하는 이유를 알게 된 재환은 난감하게 된 상황에 혀를 찼다.

    TV 광고까지 대대적으로 하고, 그것을 보고 찾아온 고객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니 기존에 밥그릇 뺏기게 생긴 소상공인들이 들고일어난다.

    재환은 그 상황을 알고서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출장계 처리해 줄 테니까 오늘은 본사로 출근하지 마. 상황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

    희경은 재환에게 피해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재환은 오히려 이 상황에서 들이받아보기로 했다.

    “제가 무슨 죄지었습니까? 영업 방해 하는 놈들인데 왜 저희가 피하는데요?”

    “야 임마! 여론이라는 게 그렇게 될 것 같냐?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안 그런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만 소비재 기업으로 시작한 혜성에게 있어서는 특히 위협적이었다.

    본사 옆에 백화점을 두고서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대가 고함을 지르고 장송곡 등의 노래를 틀며 매출에 엄청난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인근 주변까지 피해를 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재환은 강행할 것이다.

    “그럴 수야 없죠. 새로운 사업으로 매출 잘 올리고 있는데, 여기서 주저앉으면 앞으로 뭘 하든 간에 여론 눈치만 봅니다.”

    “임마! 그럼 어쩔 거야? 이런 건 언론 잘못 퍼지면 정권 차원에서 뭐라고 할 일이라고!”

    그동안 재환이 종횡무진 활약하는데 든든한 장벽이 되어준 희경이었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는 상당히 염려하고 있었다.

    재환은 그런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오히려 아버지가 오늘 쉬세요. 그동안 어머니랑 못 해봤던 데이트 좀 하시고 두분 같이 오붓하게 보내시라고요.”

    “뭐, 임마?”

    “딱, 일주일만 주세요. 본사 앞에서 장난질 치는 녀석들 싹 쓸어버릴게요.”

    깊은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들을 보고 희경은 ‘이놈을 믿어도 될까?’ 하는 불안감이 가득한 얼굴을 했다.

    “꼭이요 꼭! 제가 해결할 테니 잠깐만 쉬고 계세요.”

    재환은 몇 번이고 신신당부하면서 오늘 혜성그룹 회장을 출근 안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양복을 갖춰 입은 재환은 경호팀을 불러서 출근용 세단 안에 세 명의 경호원을 불렀다.

    준수한 외모에 수트핏이 어울리는 탄탄한 체격, 거기에 선글라스를 끼게 해줘서 위압감을 주게 만들었다.

    “자, 출근합시다!”

    양재동에서 출발한 재환은 느긋하게 강남본사로 향했다.

    이미 연락이 온 대로 혜성백화점과 혜성그룹 본사 앞에는 살기 등등한 시위대가 있었다.

    [소상공인 등골 빼는 혜성그룹 각성하라!]

    [대기업 박리다매에 서민들 피눈물 흘린다!]

    [우리도 장사하고 싶다!]

    “쯧, 그럼 애초에 눈탱이 치지 말고 싸게 팔던가.”

    재환은 틀에박힌 시위 피켓들을 보고 품 안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자, 확실히 알아두세요. 그냥 강행하고 정문으로 들어갈 건데 만약 제가 멱살을 잡히거나, 아니면 폭행 관련을 겪게 되면 세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사자 제압해서 경찰 부르셔야 됩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우렁찬 함성과 함께 재환은 주차장이 아닌 정문 앞에서 멈춰 당당하게 문을 열고 나왔다.

    그 순간 살기 돋힌 시위대의 시선이 재환에게 향했다.

    신도림, 용산, 그 외 각종 전자상가의 사람들은 우루루 달려들어 재환을 포위했다.

    그 순간 세 명의 경호원들이 재환을 감싸고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혜성그룹 신재환 각성하라!”

    “박리다매하는 사악한 기업인 물러나라!”

    “우리에게 생존권을 달라!”

    아주 준비한 대로 철저히 움직이는 피켓을 든 시위대와 무슨 이벤트가 벌어질까,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들을 보고 재환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웃으면서 걸어갔다.

    그것이 먹히지 않자 급기야는 전자상가의 상인들이 재환의 앞을 가로막고 외쳤다.

    “뭐라도 말을 해 봐라! 새끼야!”

    “이 나라 재벌 놈들은 상생을 몰라!”

    “!”

    그렇게 상생을 외쳤던 재환인데 그 말을 듣고서는 쓴웃음을 지으며 멈춰섰다.

    “대, 대표님!”

    경호원들이 그들을 제압하려 했지만, 재환은 손을 들었다.

    “아직 터치 안 했어요.”

    어디까지 날뛸지 지켜보겠다는 듯이 멈춰있는 재환을 향해 사방에서 시위대의 고성이 외쳐졌다.

    “우리도 살고 싶다!”

    “박리다매 재벌 신재환은 물러나라!”

    “전자상가 소상공인을 말려 죽이려는 혜성그룹 각성하라!”

    패턴이 똑같았다.

    재환은 묵묵히 듣고 있었고 비키라고 손짓했지만, 더욱 더 날뛰는 시위대를 향해 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치익-

    그리고 담배를 꺼내 조용히 불을 붙이고는 한 대 태우면서 시위대를 바라봤다.

    “자영업자 죽이는 컴퓨터매장 철수하라!”

    “동네 상권 말리려는 대기업 각성하라!”

    하지만 재환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여유롭게 담배 한 모금을 빨고 지켜봤다.

    마치 ‘너희들은 계속 짖어라. 어디 지켜보마.’ 식으로 버티는 것이었다.

    담배를 다 태운 재환은 연기를 하늘로 뿜으면서 꽁초를 신발로 끄고 손에 담았다.

    “계속할 거냐?”

    “···.”

    “아니면 좀 비켜주지?”

    재환은 시위대에게 명령했고, 기세에 눌려 앵무새처럼 외치던 이들은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재환은 그렇게 지체됐지만, 수월하게 출근을 했다.

    그리고 본사 건물로 재환이 들어가자마자 안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임원들이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 뒤로 건물 밖에서 노동요와 민중가요가 마구 울려 퍼졌다.

    ***

    이사회를 소집한 재환은 각 중역들에게 말했다.

    “신희경 회장님께서 가벼운 감기 기운이 있으셔서 출근을 못 하셨습니다. 아마 며칠간은 병가를 내실 겁니다.”

    “···.”

    “이 자리에서 회장님이 제게 권한을 주셨고, 1주일 동안 현상 유지를 위해 움직이겠습니다.”

    재환은 그것을 위해서 일단 바깥에 있는 시위대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기전실장님은 곧바로 강남구청에 연락해서 불법시위 여부 알아봐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임창훈은 시위대를 향해 강경하게 나갈 것을 요구하는 재환의 말을 받아들였다.

    “법무팀장님은 지금 시위에 대해 영업방해로 고소장 준비하세요.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하면 먹힐 겁니다.”

    “예, 대표님.”

    “지금 밖에 경호팀을 최대한으로 배치하고, 백화점 고객들에게 타격 없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재환은 그것에 대해서만 강조한 뒤로 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각기 대표들이 정리해서 보고할 것을 알리고 회의를 마쳤다.

    하지만 며칠간 이뤄지는 시위로 인해서 혜성그룹은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합법적으로 시위 신고 한 거라고요?”

    “그렇···습니다. 대표님.”

    임창훈은 행정적으로 어떻게 처리를 못 할 상황이 돼 버리니 난처한 처지였다.

    재환은 사장실에서 창밖 너머에 보이는 시위대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다음 방법 써야겠네요. 어차피 약 쳐놓은 곳이 많으니까요.”

    재환은 그것을 두고서 처리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니 곧바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대표님,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뭔데요?”

    “정치권에서 이 건을 물었습니다.”

    “···.”

    정치권이라는 말에 재환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용산 지역구에 있는 새정치당 국회의원 석형우 의원하고, 구로구의 지역구 박선영 의원이 이번 시위에 동조한다고 합니다.”

    “좋은 먹잇감이라고 생각하겠네요. 둘 다 초선이니 TV좀 받으려고 하는 것 같고요.”

    “국정···감사에 신 대표님이 초청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초청입니까? 가서 호통 좀 듣고 자아비판 하라는 게 아니라요?”

    “죄송합니다.”

    임창훈은 꾸역꾸역 보고했지만, 그게 다 재환과 혜성그룹에게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재환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조용히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수첩을 임창훈에게 보였다.

    “이게 뭡니까?”

    “CBM, SBC, KBC 원,투 하고 연락한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찌···?”

    “용산 전자상가와 신도림 전자상가 등에서 부품값 담합, 강매, 협박, 폭언, 사기 등으로 자료 모아놓은 것들로 시사프로그램 제보한 것들입니다.”

    “!”

    “제가 방송국 3사의 사장들에게 말했습니다. 저거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는 방송국이 나오면, 그곳에는 예능프로그램이든 뭐든 맘껏 나가주겠다고요.”

    “그, 그건!”

    “왜요? 오너가 그런데 나가면 이미지 소모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재환은 내부에서 처리할 수 없으면 그들이 그렇게 버티는 약자의 언더도그마를 철저히 부숴서 국민 전체에게 외면당하게 만들 셈이었다.

    “지은 죄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뭐 묻은 개가··· 아니지. 혜성은 아무것도 묻은 게 없으니 적절한 표현은 아니구만.”

    어쨌건 그것을 가지고 방송국 3사와 대화를 나눠주라는 것을 임창훈에게 알린 재환은 기지개를 켜면서 나왔다.

    “대표님! 대표님!”

    사장실에서 나와서 가볍게 산책을 하려던 재환은 헐레벌떡 달려오는 김준호가 있었다.

    “뭡니까, 김 과장?”

    “지, 지금 임용태 사장이 보낸 팩스입니다.”

    얼마나 급하게 확인한 거길래 가지런히 전송된 문서 한쪽이 꾸깃꾸깃하고 땀까지 배어 있었다.

    “어디 한 번 보죠.”

    재환은 그것을 복도에서 천천히 읽어봤다.

    “!”

    그 순간 이거는 모두가 들어야 할 생각으로 크게 외쳤다.

    “미국 그래픽카드 업체에서 우리에게 정식으로 부품 계약을 요청했다!

    OEM인데 규모가 2억 달러란다!”

    미국 IT업계의 제국 인터콘을 상대하기 위해 라이벌 레이니온이 혜성전자와 혜성트로이카에게 내건 제안이었다.

    “홍보팀 뭐합니까! 빨랑 튀어나오세요! 2억짜리 투자가 미국에서 날아왔습니다! 달러로요!”

    정식으로 OEM을 제안한 계약서는 혜성에게 있어도 엄청난 호재지만, 이건 국가가 더 날뛸 일이었다.

    가뜩이나 IMF 외환위기 이후로 아직도 위태위태한 한국 경제에서 외국 자본의 대규모 투자, 그것도 지난번 마이크로사의 8천만 달러를 아득히 넘는 2억 달러였다.

    사실 규모로만 보면 뭐가 그리 크겠냐만, 이걸로 끝날 계약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해외의 공식유통사가 생기는 일인데, 여기서 그 일을 하려는 회사가 소상공인들이 드러눕는걸로 좌초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건 그 시위에 참여한 지역구 의원들이 정치 커리어를 영원히 작별할 것이다.

    “대, 대표님!”

    홍보팀장을 포함해서 수많은 직원들이 달려와 지금 일에 대해 고했다.

    “지, 지금 당장 5대 언론사와 방송국 3사에 모두 연락하겠습니다!”

    “네, 오늘 자 석간신문은 물론이고, 9시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나오세요. 그리고 인터뷰 한번 제가 한다고 슬쩍 운 띄우면 죄다 달려올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시위대와 일체 타협하지 않고 오히려 강경하게 나간 전략으로 언론을 쓰기로 했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컴퓨터 부품 박리다매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던 혜성그룹이 미국 레이니온 사와 2억달러 규모의 OEM계약을 맺었습니다. 김영철 기자입니다.]

    [혜성그룹은 오는 10일. 레이니온 사와 공식적으로 계약을 마치고 기존에 있는 컴퓨터 부품들을 생산하여 원가 절감과 대규모 공장 증설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2억달러 그 이상으로 집계됩니다.]

    [새정치당은 논평을 통해 ‘소상공인과의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원만한 합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자.’라고 발표했습니다.]

    기자들이 혜성그룹과 레이니온의 부품 수급 계약을 마치자 그 뒤로는 금칠을 해주면서 점점 용산과 신도림의 전자상가 소상공인들에 대한 공격이 들어갔다.

    [추적 1시간: 강매와 판매 사이. 그들에게 당한 소비자의 눈물]

    [프로듀서 노트: 누가 피해자인가? 소비자와 판매자 속 대기업의 할인.]

    [그것을 알고 싶다: 전자상가는 어쩌다 사기와 담합의 온상이 되었을까?]

    방송 3사 시사프로그램들이 전부 긁어대자 전 국민은 이제 누가 잘못한 것인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역구의 두 의원은 자연스럽게 시위에서 빠지게 되었고, 어느순간 ‘합법적인 집회신고였다.’라는 반응의 강남구청의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강남경찰서가 전경차 세 대를 이끌고 와서 시위자들을 진압하고, 수뇌부는 영업 방해와 기물파손, 소음공해와 도로점거 등으로 몇 명 경찰서에서 면담이 이뤄졌다.

    “아, 아버지. 내일부터 출근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딱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던 재환은 그동안 부모님이 오붓하게 시간을 지냈을거라 생각하며 전화를 걸었다.

    [안 그래도 비서실장이 너 보고 싶다고 하더라. 대통령께서 이번 일에 관심이 많다고 하신다.]

    “칭찬하는 쪽으로요? 아니면 혼내는 쪽으로요?”

    [야 임마, 어느 쪽이겠냐? 하하하하하하!]

    생각이 있다면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나 국민을 위해서 어느 쪽으로 손을 대야 하는지 잘 알 것이다.

    재환은 싹 쓸려나간 시위대를 보면서 오늘은 여유롭게 퇴근할 수 있겠다며 기지개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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