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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103화 (103/244)
  • 103- 2001년, 첫 아이템은 너로 정했다!

    얼마 후 재환은 친구의 경사를 전화로 들었다.

    “축하한다. 아들이라며?”

    [그래, 아이도 아내도 아주 건강하다.]

    삼신그룹 4세가 태어났다는 말에 혜성그룹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정,재계의 인사가 축하를 보냈다.

    재환은 약속대로 혜성의류사업부에 특별히 요청해 수제 배냇저고리를 디자인 별로 10벌 주문했다.

    “호호호, 홍 여사가 아주 입이 귀에 걸렸더라고. 손주를 봤으니 그럴 만도 하지.”

    “잘된 일이지. 아들 귀한 집으로 유명하잖아.”

    부모님과의 식사자리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오자 재환은 지난번 만취해서 신세 한탄하던 현규를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친구들은 슬슬 애 아빠가 되는데 너도 이제 생각할 때 되지 않았어?”

    “···.”

    희경의 말에 명숙도 거들었다.

    “참, 아들. 이번에 법무부 장관 막나딸이 좋은 사윗감 알아본다는데, 생각 있니? 거기 아가씨가 너보다 세 살 어리대. 다리 한 번 놓을까?”

    “됐습니다.”

    “아니야, 천천히 생각해봐. 안 그래도 요새 좋은 선 자리가 많더라. 저번에는 상곡의료재단 이사장 손녀가 너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라.”

    “안 만나요.”

    재환은 또다시 시작될 부모님의 결혼 닦달에 황급히 밥을 다 먹고 일어났다.

    가정부들이 그릇을 치울 때 재환은 조용히 빠져나갔고, 희경은 그 모습이 못마땅한지 혀를 찼다.

    “저 녀석은 아직도 자기가 스무 살 대학생인 줄 아나?”

    “어쩔 수 없죠. 자기가 그렇게 싫다고 하는데요.”

    “내년이면 지도 서른넷인데 말이야. 여자 하나 만나는 걸 못 봤어. 에잉!”

    결국, 오늘도 말을 꺼내자마자 피하는 노총각 아들 녀석을 보고 부모의 근심은 깊어져 갔다.

    ***

    새천년의 2000년도 끝나고, 2001년이 되었다.

    재환은 혜성그룹의 새해 신년사를 하고, 각 계열사의 재무제표를 며칠에 걸쳐 전부 읽어나갔고, 사인을 했다.

    “자, 이제 월드컵도 1년 남았고, 올해의 사업도 열심히 해 봐야겠지?”

    작년의 초고속인터넷과 오픈 마켓을 중심으로 잡았다면, 올해는 그에 버금가는 새로운 사업을 준비할 것이다.

    재환은 그것을 앞두고 강남 사옥에 있는 계열사들을 두고 한 가지 재미난 이벤트를 했다.

    계열사마다 각각 자신들의 선물을 준비하고, 그것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재환은 자신은 노란 봉투 속에 격려금을 가득 준비했고, 거기에 대해 강남 사옥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호오, 이거 제법 잘 만들었네?”

    재환이 먼저 받은 것은 혜성시계에서 새로 만든 브랜드 제품인 쿼츠시계 ‘스타노바’였다.

    그동안 카시G의 고성능 내구도 시계나 원목 뻐꾸기시계 외에 따로 개발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 모델은 일본을 넘어 스위스 시계제조사와 무브먼트 기술이전을 받아 만든 제품이라고 한다.

    “이건 내가 차고 다녀야겠다.”

    시계야 각종 명품이 서랍에 가득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회사가 만들어준 제품인데 고맙게 차고 다니기로 했다.

    그 뒤로 혜성시계와 혜성쇼핑끼리 서로 시계와 상품권을 교환했다.

    그다음으로 혜성코멧닷컴은 10% 할인쿠폰을 혜성의류사업부의 아동복과 교환했다고 한다.

    각자의 제품을 두고 혜성트루넷은 기존의 베이직 모델에서 프리미엄 모델로 업그레이드 시켜준다는 상품권, 혜성한국통운에서는 당일 배송 티켓을, 혜성제과는 사극으로 유명해진 전통한과세트를, 혜성전자는 신형 CD플레이어를, 혜성트로이카는 기계식 키보드 등을 나누었다.

    과연 어느 쪽이 가장 사내에서 인기가 많을까 재환은 느긋하게 지켜봤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자 기환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아, 형.”

    “왔구나.”

    혜성게임즈로 발령받은 사촌동생 기환은 자신들이 준비한 선물을 잔뜩 까지고 왔다.

    “그래서 게임사는 뭘 가지고 왔니?”

    쿠웅-

    책상 위에 올라오는데 묵직한 소리가 가득 담긴 것은 하드 커버 안에 담긴 게임CD들이었다.

    “이게 다 뭐야?”

    “형, 내가 책임지고 준비한 게임CD들이야. 엄선해서 가져온 것들이라고.”

    “···어, 그래?”

    스토리가 넘치는 롤플레잉 게임부터, 당대 고사양의 3D 그래픽 게임들이 가득한 패키지들을 본 재환은 일단 선물이니 기쁜마음으로 받기로 했다.

    “그래서 게임사는 요새 어때?”

    “엄~ 청 좋아. 대표님이 출장도 많이 보내주셔서 내가 가져온 프랜차이즈 게임 시리즈들은 웬만해서 다 통과시켜 주셔서 최고야.”

    “마구잡이로 들여오다가 적자 나는건 아니지?”

    “아니야. 인터넷 커뮤니티 반응 보면서 실제로 흥행 되는 시리즈들만 가져오는 거라고.”

    확실히 해외 게임사들의 주력상품을 완전 한글화해서 들여온 것들이니 크게 손해는 나지 않는 사업이었다.

    ‘뭐, 그 정도면 충분하지. 현상유지는 잘 되가니까.’

    어쨌건 회사 내에서 1인분 몫은 충분히 하는 사촌 동생이니 이 선물도 기쁘게 받기로 했다.

    “자, 받아.”

    “오오, 현금이야?”

    재환은 노란색 봉투의 금일봉을 선물로 건네주면서 말했다.

    “가서 오늘 혜성 게임즈 회식 한 번 해라.”

    “고마워, 형!”

    기환이 돌아가고 재환은 수많은 게임 CD들을 한 번 둘러봤다.

    “랜···그릿츠, 전설영웅 시리즈··· 전생여신···.”

    어째 죄다 일본 애니메이션틱한 표지가 가득한 시리즈를 보고 재환은 일단 하나 CD를 뜯어서 집무실에 있는 컴퓨터에 집어 넣어봤다.

    ***

    RRRR-

    “네, 여보세요?”

    [야! 너 퇴근 안 하냐? 몇 시까지 사무실에 있는 거야?]

    “아이고! 벌써 시간이!”

    재환이 커튼을 치자 이미 어둑어둑 해진 강남이 보였다.

    “아이고, 이게 시간이 몇 시야?”

    기환이 준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니 벌써 밤이 늦어 있었고, 덕분에 사장이 퇴근을 안 한다고 눈치를 보는 임원들까지 있으니 보다 못해 희경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

    “아, 이거 저장해 놓은 거 집에 컴퓨터로 못 가져가나?”

    잠깐 플레이해 봤다가 푹 빠진 재환은 다른 CD들을 가지고 퇴근 준비를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뒤로 재환은 또 다른 게임을 컴퓨터에 깔았다.

    “이것도 명작이네? 일본 애들이 스토리 잘 짠다.”

    그 뒤로 며칠 동안 게임에 빠져 있던 재환은 내친김에 일본과 미국, 그리고 국내에 있는 게임사들에 대해서 관련 주식을 찾아봤다.

    “오호~?”

    재환은 생각 이상으로 이쪽은 투자 가치가 많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막 떠오르기 시작했다.

    ***

    얼마 뒤 재환은 아들 턱을 거하게 쏘는 현규이 초대를 받았다.

    육공회 멤버들을 모두 모아놓고 술 대신 무알콜 샴페인을 준비하고, 진수성찬의 서라벌 호텔 정식을 대접하자 모두가 흡족했다.

    “아들 낳은거 진짜 축하한다. 현규야.”

    “감사합니다. 형님.”

    재환 말고도 대현, 정인, 진용, 선길 등의 육공회 멤버들은 각자의 선물을 준비해서 현규에게 나눠줬다.

    “자~ 그럼 이제 이 멤버 중에 장가 안 간건 재환이 하나인 거냐?”

    “아, 대현 형님. 그런 말을 왜 해요?”

    “싱글이면 아는 동생이라도 소개시켜줄까 해서.”

    대현이 낄낄거리면서 말하자 재환은 여기서도 결혼 이야기가 나온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고로 결혼과 죽음은 늦을수록 좋다고 합니다.”

    “오~ 누가 한 말이야? 와이프한테 그말하면 싸대기 맞을 것 같은데?”

    재환은 암튼 결혼 이야기 좀 그만해 달라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때 진용이 음식을 먹다가 육공회 멤버들에게 말했다.

    “현규 지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인데 지금 떨어져 산다고요.”

    “음?”

    “그게 무슨 소리야? 애아빠가 왜 따로 떨어져 있어?”

    현규는 순간 진용을 노려봤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내랑 아이는 퇴원하고 한남동 본가에 있어요. 저는 지금 프로젝트 때문에 이태원에 집 한 채 구매해서 따로 삽니다.”

    현규의 말에 육공회 멤버들은 순간 잘못 말했다고 생각하면서 그를 위로했다.

    “그, 그래. 원래 애는 태어나고 할머니, 할아버지네 있는 게 나아.”

    “이태원에서 한남동은 가깝잖아? 자주 볼 수 있는 거리니까 자주 만나.”

    갑자기 축하턱이 위로의 자리가 된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고, 재환은 그 이야기를 듣자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하고 슬쩍 물었다.

    “그럼 그 큰 집에서 혼자 사는거야?”

    “아, 뭐. 수행비서들은 다 있으니까.”

    재환은 그 말을 듣고 오늘 가져온 가방을 현규에게 건네줬다.

    “이게 뭐야?”

    “혼자 살면 얼마나 외롭겠니? 한 번 해 보라고 넉넉히 담았어.”

    재환은 혜성게임즈에서 들여온 게임CD를 전부 플레이해보고 현규에게 건네줬다.

    다른 육공회 멤버들은 그걸 보고 뭔가 싶어 슬쩍 바라봤다.

    “뭐야 저거? 야한거냐?”

    “아, 애가 셋인 양반이 그런 걸 찾아요?”

    “아니 뭘 그렇게 은밀하게 주고 그래?”

    “어? 저거 게임 같은거야?”

    대현이나 진용은 그걸 보고서 ‘저런걸 뭘 선물로 주냐?’ 싶은 얼굴이었지만, 재환은 한 가지 확신했다.

    이 중에서 몸으로 움직이고 땀 빼는 스타일의 취미를 가진 사람 속에서 현규는 안 그럴거라고 확신한 거다.

    그리고 재환은 그 안에 아주 작은 쪽지를 하나 동봉해준 상태였다.

    “요새 사업 문제로 바쁠 것 같은데, 기분전환이나 하라고.”

    “하, 하하. 받기야 하겠다만 난 이런거 해 본 적 없는데.”

    “괜찮아. 요새는 튜토리얼이다 공략집이다 죄다 있더라.”

    재환은 친구에게 게임CD들을 잔뜩 건네주고 거기에서 뭔가 답을 얻기를 원했다.

    물론 단순히 친구 좋다고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고, 재환 역시도 그 나름대로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

    다음날 재환은 혜성 트로이카의 간부들을 모아서 회의를 주관했다.

    “게이밍 컴퓨터 시장을 좀 노려보려고 합니다.”

    “네?”

    간부들이 놀란 얼굴로 묻자 재환은 자신이 지난밤부터 모아놓은 자료들을 꺼내 건네줬다.

    “옛날 만화방이나 노래방만큼이나 요새 각광받는 사업이 ‘PC방’이라고 하더군요.”

    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새로운 자영업 피시방은 2000년부터 엄청난 성장세를 이뤘다.

    한 곳에 필요한 컴퓨터가 50대는 족히 되고, 모두 정식 라이선스를 받은 게임들을 써야 하는데 대부분은 단가를 위해서 조립식 저가형 제품들을 쓰곤 했다.

    재환은 거기에 맞춰서 아예 게임 전용 컴퓨터를 개발하고, 홍보를 늘려보기로 했다.

    “국민PC사업으로 혜성 트로이카가 굉장한 점유율을 보였습니다. 사무용으로도 신뢰도가 좋지만,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도 좀 팔아봐야죠.”

    “으으음. 게임 전용의 컴퓨터란 말입니까?”

    “제가 알아보니까 요새 게임들은 이렇게 사양표를 두고서 거기에 맞춰서 팔더군요. 거기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그래픽카드 같습니다.”

    재환은 그것을 위해서 출장 보낼 임원들을 추려냈다.

    “시애틀 법인에 있는 임용태 사장님에게 메일을 보내 놨습니다. 마침 마이크로 컴퍼니에서 비디오 게임기를 준비하는데 저희가 국내에서 유통해 팔기로 했으니 그쪽도 돌아보시면서 PC의 그래픽카드와 사운드 카드 등의 대량구매 부품들을 알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일단 재환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중 좌초된 것은 하나도 없으니 임원들은 이번에도 몸은 좀 고달 퍼도 성과급은 두둑할 것으로 생각하고 정해주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재환은 이번 게이밍PC 사업을 위해 주변 계열사들도 적절히 이용하기로 했다.

    ‘일단 온라인 마켓인 코멧에 할인쿠폰을 제휴하게 하고, 용산의 조립컴들하고 가격경쟁이 되게 하려면 일단 박리다매로 해야 하니까 부품도 대량으로 구매해서 막 찍어내야 하고···.’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결국은 가격과 마케팅이 중요한 법이니 재환은 출시 전에 미리 이것에 대해 조정하기로 했다.

    “자~ 2001년 1분기부터는 컴퓨터 사업좀 해 보자고.”

    재환은 2.3분기에 내놓을 프로젝트를 앞두고 혜성그룹 산업에 첫 선봉장으로 게이밍 PC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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