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01화 (101/244)
  • 101- 기습적으로

    재환은 한국통운 인수를 앞두고서 주변을 경계했다.

    이 인수전은 어디까지나 기습적으로 강행할 협상.

    그러므로 누가 끼지 않기 위해 움직일 셈이었다.

    “삼신증권의 말로는 우리가 나서기만 해도 바로 협상 가능하다고 했지만···.”

    이 건에 대해 냄새를 맡을 녀석들이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사실 한국통운은 아태건설의 소유에서 벗어난 뒤로 이후 수많은 대기업이 노리는 알짜 회사가 된다.

    하지만 혜성그룹이 있는 이상 재환은 여러 주인을 거치는 연쇄를 끊어버릴 거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것을 협상하기 위해 저녁 늦은 시간 술 약속을 하나 잡았다.

    ***

    드르륵-

    “아이고, 어서 오시지요.”

    재환을 반갑게 맞이한 것은 대한산업은행의 중역인 윤기철이었다.

    “윤 상무님,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하하, 저도 신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혜성건설 매각부터, 대윤자동차와 대윤건설 법정관리 등으로 수많은 기업과의 교류를 가진 산업은행과 이번에도 큰 건을 노리고 있었다.

    “이미 삼신증권에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네, 저희 인수합병 자문이지요.”

    “혜성그룹은 확실히 인수의 의사가 있으신 겁니까?”

    지난날 대윤자동차 사태 이후로 국책은행에서 관리하는 회사들을 매각할 때마다 확실히 그 의사를 몇 번이고 확인하려는 모습이었다.

    재환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원하신다면 미리 매각 선금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하,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바로 협상을 시작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산업은행 역시 매각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고, 재환 역시도 단김에 인수하기 위해 움직였다.

    “삼신증권의 말에 의하면 매각 대금을 어느 정도 잡았다고 하셨는데, 주당 얼마씩 생각하십니까?”

    재환은 윤 상무의 말에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가 조용히 품 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쪽지를 하나 빼내 슬쩍 윤 상무에게 보였다.

    “말로는 못하고, 이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환이 그것을 보이자 윤 상무는 적절한 금액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음, 알겠습니다. 이번 매각에 대해서는 제가 맡고 있으니 앞으로 협상은 저와 같이 진행하시지요.”

    “알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제가 낼 테니 맘껏 드시지요.”

    “하하, 이렇게 오래 앉아있어도 될지 모르겠네요.”

    재환은 윤 상무를 보고서 슬쩍 말했다.

    “제가 산업은행에서 인수할 회사를 한국통운 하나만 생각하는 게 아니어서요.”

    “네?”

    재환은 산업은행이 필요한 것을 살살 긁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인수합병 문제로 앞으로 자주 만나뵐 것 같습니다.”

    그날 밤 재환은 앞으로 상황을 위해 이야기했고, 윤 상무의 눈이 점점 커졌다.

    ***

    며칠 뒤 재환은 삼신증권 임원들과 같이 한국통운 협상을 위해 산업은행 본점으로 향했다.

    여의도에 있는 본점은 언제나 북적거렸고, 그곳에는 그들의 산하에 들어간 각종 기업의 파업 릴레이로 가득했다.

    “죄다 떠맡으려니 힘들기도 하겠지.”

    재환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다행히 아직 한국통운에 대한 시위는 안 보였다.

    “좋아, 가보자!”

    재환은 한국통운 매각팀과 협상을 위해 들어갔다.

    내부에서는 순조롭게 매각논의가 진행됐다.

    가뜩이나 수많은 기업을 법정관리로 떠맡은 산업은행인지라 금액에 관해서도 기존 주가에 대해 좀 더 쳐주자 웬만하면 다 OK싸인을 했다.

    거기에 고용 승계까지 100%로 진행해주겠다고 했으니 아주 땡큐였다.

    “자, 그럼 사인하시지요.”

    정식으로 인수 전에 양해각서를 먼저 사인한 재환은 이제 한국통운은 절반 이상 자신의 품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산업은행 중역들과 악수를 하고 기분좋게 그곳을 나섰고, 이제 현금 마련을 위해 계열사를 움직이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배웅 이후로 재환은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음?”

    “아!”

    훤칠한 키에 정장을 갖춰 입은 상대를 본 재환이 놀라자 상대 역시도 손으로 뭔가 가리키려고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재환에게 다가왔다.

    “이것 참, 우연이군요.”

    그는 바로 이베이스의 피터 최였다.

    ‘망할 놈이 벌써 냄새를 맡았군.’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하하, 은행에 온 거야 물론 금융 업무이죠. 게다가 이곳에는 저희 와튼 스쿨 동문들이 많지 않습니까?”

    “별로 그런 거 신경 안 썼지만.”

    국내에서는 별로 아이비리그의 학위를 잘 사용하지 않았던 재환이었는데, 피터 최는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노리고서 움직였다.

    “금융업무라, 통장이라도 만드시려나 보군요.”

    “네, 그런 것도 있죠. 하는 김에 겸사겸사 좋은 매물도 알아보고요.”

    재환은 K-옥션을 위해 이 녀석들도 나설 거라고 생각했다.

    “힘내세요. 좋은 경쟁을 위해서 말이죠.”

    “맞습니다. 좋은 경쟁을 해야죠.”

    재환은 피터 최를 뒤로 하고 차에 탔다.

    “후우- 미치겠군.”

    “그래도 양해각서를 맺었으니 저쪽에서 따로 껴들 수는 없을 겁니다.”

    김진 사장의 말에도 재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게 문제인 겁니다. 양해각서는 법적인 효력이 없잖아요.”

    양해각서, 흔히 MOU라 불리는 방식의 함정이었다.

    정식 계약 전에 신사협정이지만, 그 전에 얼마든지 협상이 결렬될 수도 있고, 일단 당사자들이 말라서 대략적인 합의를 한 내용이었으니 본계약까지는 조마조마한 감이 있었다.

    이 당시는 신뢰를 위해서라도 지켰지만, 수백, 수천억의 돈이 오가는 사업에서 매출 이득을 위해 좀 더 좋은 곳과 계약하는 것을 뭐라 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K-옥션의 예산은 전부 미국 본사의 이베이스에서 제공될 겁니다.”

    “상대가 이베이스라면 만만치가 않겠군요.”

    미시시피 닷컴 이전의 전세계 전자상거래 온라인 마켓 1인자였고, 재환의 코멧닷컴 성장을 위해서는 꼭 꺾어야 할 놈들이었다.

    재환은 저놈들의 견제를 어떻게 막아야 하나 생각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바로 떠오르지 않아서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날 저녁 양재동 집에 돌아온 재환은 컴퓨터로 뉴스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 와중에 재환은 뭔가 생각난 게 있어 나스닥 쪽으로 현재 미국 기업들의 상황을 살펴봤다.

    IT버블의 끝물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2년만에 줄도산할 업체들이 많아질 미국 시장이었다.

    곧 있으면 2001년인데 벌써부터 떨어지는 주가의 IT기업들이 상당했고, 그중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많았다.

    “휘유, A-컴퍼니 주식 이 기회에 한 번 풀 매수 해볼까?”

    훗날 시가총액 2000조원의 대기업이 지금은 1.1달러 남짓할 때였다.

    이미 그 전에 비상금으로 한화 20억원 어치 사들인 게 있긴 했지만, 이참에 좀 더 사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미국 주식 쇼핑을 하고 있던 재환은 이럴 때가 아니란 걸 뒤늦게 깨닫고서 자신이 찾던 곳을 찾았다.

    “그렇지!”

    한국에서의 사업 경쟁이지만, 답은 미국에 있었다.

    재환은 이 기회를 이용하기 위해 그동안 모아놓은 혜성그룹 내의 사내 현금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 언론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속보: 신재환 대표, 혜성트루넷 지분 일부 매각.]

    [3억 달러의 실탄 소유. 하락 이후 미리 매각? 혹은 다른 기업 인수를 위해?]

    [신재환: ‘타 회사 교류를 위해 움직일 것.’]

    [‘재미있는 회사가 있다.’ 신재환 대표가 인수할 곳은 어디?]

    재환이 트루넷 지분을 일부 매각하고, 수천억의 현금을 손에 넣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재계의 촉각이 곤두섰다.

    그 소식을 들은 K-옥션은 긴급 회의에 들어갔다.

    “3억, 그것도 달러로 말입니까?”

    “오버 슈팅 치고는 너무 큰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들 역시도 혜성이 한국통운을 인수하면서 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현재 그 회사는 잘 쳐줘야 5-600억도 비싸다고 나올 금액이었다.

    설마 미쳤다고 수천억을 한 회사에 통째로 쏟아붓는 미친 짓을 할 놈은 없을 거다.

    하지만 재환은 그 미친 짓을 고려한다고 언론에 당당하게 선언했다.

    “오늘 자 신문입니다. 심지어 미국 언론에까지 나온 기사입니다.”

    혜성의 신재환이 실탄을 가지고 초대형 M&A를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시애틀에서 저런 말을 했다니. 사람 신경 쓰게 만드는군요.”

    어찌 됐건 수천억의 금액을 가지고 회사 하나의 지분을 대규모로 사들인다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겠다는 선언이었다.

    “현재 우리가 한국통운을 인수할 때 배정된 예산이 얼마죠?”

    “본사에서 온 4500만불입니다.”

    “흐으음.”

    3억 불 대 4500만 불.

    이번에 유통물류에 대해서 굉장한 대란이 일어난 혜성그룹의 오픈마켓 사업의 목줄을 잡을 기회였는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피터 최는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일단 언론에 올릴 것은 취소해 주세요. 이건 대놓고 할 사업이 아닌 것 같습니다.”

    K-옥션은 이베이스의 이름으로 한국통운 매각에 끼어들고 그 기사를 메이저 신문사와 방송국에 모두 알리려 했지만, 이 상황 속에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우리도 IB사업을 위해 전문 팀을 꾸려 나갑시다. 언론 발표만 안 할 뿐이지 한국통운에 대한 협상은 계속할 겁니다.”

    괜히 이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한국통운 인수를 시도하면 주가만 미친 듯이 올라서 먹어치우기가 더 껄끄러워진다.

    피터 최는 재환을 상대하기 위해 계속 움직여 보기로 했다.

    ***

    “그럴 줄 알았습니다. 망할 놈들.”

    재환은 삼신증권 사무실에서 한국통운 인수 건으로 K-옥션도 접근한다는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러면 단독 입찰이 아니라 결국 경쟁으로 갈 것 같습니다. 산업은행은 분명 그것으로 내부 회의에 들어갈 것이고요.”

    김진 사장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그 해결책을 위해 김 사장님을 뵈러 온 것이 아닙니까?”

    “네?”

    재환은 달러가 두둑이 담긴 통장을 꺼내 들고 말했다.

    “혜성쇼핑이 아닌 신재환의 이름으로 매수하는 겁니다.”

    “저, 정말 하실 겁니까?”

    상상 이상의 금액에 김진 사장도 놀랄 정도였다.

    그동안 기업이나 개인에 대한 투자를 모두 맡았던 삼신증권이었지만, 개인으로 이 정도 규모는 간만이었다.

    “저 녀석들 장난질하는 거 이번에 제대로 군기 잡아줘야죠.”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 금액을 이베이스 미국법인 지분을 사 들이는데 쓰겠습니다.”

    재환은 미국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K-옥션의 모기업 이베이스를 그냥 들이받기로 했다.

    현재 이베이스는 IT버블 이후로 시가총액 76억 달러에 주당 11달러 52센트까지 올라갔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반년이 지난 뒤로 주당 3달러 81센트까지 추락했다.

    이 상황에서 재환은 공격적으로 이베이스의 지분을 사들였다.

    3억달러를 다 쏟아붓는 한이 있어도 재환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만약 재환의 투자로 인해 주가가 오른다면 훗날 팔 수 있었고,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혜성이 이베이스의 대주주가 되어서 목덜미를 콱 붙잡을 수 있었다.

    “차례대로 사들이세요. 차례대로.”

    “차례대로··· 말입니까?”

    “딱 두 가지에만 매수를 멈춰주시면 됩니다. 하나는 주가가 지금의 두 배로 오를 때, 아니면 제가 한국 K-옥션의 항복 선언을 받아들일때입니다.”

    “알겠습니다.”

    재환은 삼신증권에 오더를 내려주고 이제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

    열흘 뒤 K-옥션의 사무실에서는 본사에서 온 연락에 피터 최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Yes...Yes...But....Yes...”

    아이비리그 와튼 스쿨 출신의 엘리트 임원이 본사에서 오는 연락에 ‘예스맨’이 되어서 10분 동안 쩔쩔매고 있었다.

    잘못하면 자신의 목이 날아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K-옥션의 고위 임원 여럿이 같이 따라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영혼까지 털린 피터 최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나와 말했다.

    “후우- 이번 한국통운 인수···.”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는 중역들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취소합시다. 본사에서 온 금액은 내부의 사내 현금으로 운용할 것입니다.”

    이베이스 본사가 털어버린 뒤로 K-옥션은 한국통운 인수 시도를 완전 백지화시켰다.

    그리고 MOU이후로 다시 달라붙는 기업 없이 혜성그룹이 수월하게 한국통운을 인수했다.

    인수대금은 447억이었고, 대표인 재환의 오더에 따라 전원 정규직 고용 승계로 노조와의 협의를 마쳤다.

    기존의 혜성그룹 계열사인 혜성유통과 통합하는 방식으로 법인 이름을 ‘혜성한국통운’으로 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재환은 개인이 이베이스의 지분 4%를 획득한 자리에서 매수를 멈췄고, 미국과 한국 모두 혜성그룹이 이베이스의 대주주가 된 상황에서 호재가 되어 쌍끌이로 주가가 미친 듯이 올라가서 기쁜 마음으로 연말을 준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