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때가 왔다!
재환은 육공회에서 내기에 성공했고, TV에서는 연일 대윤자동차 사태로 야당 의원들이 여당을 물어뜯는 형국이 되었다.
[이창현(새한국당):도대체가! 이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경제 관료들이 이런 기본도 잊고서 협상을 진행합니까?]
[노성대(대윤자동차 구조조정본부장): 이미 랜포드와 확실히 구두계약으로 묶어 놨고, 구두 또한 법적 효력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창현: 그게 말이 됩니까!]
야당은 총선 이후로 오랜만에 여당을 물어뜯을 기회가 생겨서 작정하고 칼을 갈고 있었다.
특히 초선급 의원들은 이때를 노리고서 더욱 더 물어뜯었다.
[이창현: 이것 보세요! 이것을! 대윤자동차 매각공고로 관련주들이 오르다가 쭉 내려가는 것을요! 근데 이게 다 외국인들의 매수가 아닙니까?]
[노성대:그, 그렇게 유의미한 수치는···]
[이창현: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랜포드의 선언 이후로 전부 매도해서 이 사람들이 치고 빠진 차익이 얼마입니까! 우리나라 거래소들이 언제부터 외국인들 배를 불려주는 일만 했습니까?]
단순이 대윤자동차 유찰 하나로 끝나기에는 주변 주식이 너무도 요동쳤다.
사실 삼신이 상윤을 인수한 것으로 겨우 자동차 관련주들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막대한 차익을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이 치고 빠졌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의 개인투자자들이 엄청난 손실을 보고 털렸다는 것이다.
“에효~ 열심히들 한다. 열심히들.”
재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뉴스를 계속 보고 있었다.
다음날 대윤자동차 매각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고 노성대 구조조정본부장이 사퇴했다.
이후 재경부의 고위 공무원단 몇이 인사이동으로 떠났으며, 경제부총리도 새로 뽑는다는 이야기가 경제련에게 까지 퍼졌다.
대윤은 이후 재협상자를 찾는다고 했지만, 이미 상황은 텄다.
JM은 랜포드가 철수한 이후로 슬쩍 협상하겠다고 간을 봤지만, 비싸다는 난색을 표했다.
그리고 아성은 선길이 말해준 대로 자체적으로 자동차 R&D연구소로 예산을 돌리겠다며 아예 빠져버렸다.
삼신? 상윤차를 인수했는데, 대윤까지 먹는 ‘김우준 스타일’을 이건호 회장이 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혜성그룹은 재환이 이미 생각해둔 게 있었다.
그렇게 남북관계 이후로 올라갔던 정권 지지율은 대윤자동차 사태로 인해서 소폭 하락하기 시작했다.
***
자동차 사업으로 시끌시끌하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재환은 다음 프로젝트에 대해 준비를 했다.
“박 이사님. 준비됐습니까?”
“네, 바로 차 준비됐습니다. 대표님.”
“좋습니다. 바로 가지요.”
재환은 박찬우 이사를 따라 새로 증축된 물류센터로 갈 준비를 했다.
차에 타면서 재환을 보좌하는 박 이사는 광주로 향하면서 박 이사와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광주까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25km 정도 되니 금방 도착할 겁니다.”
전라도 광주가 아닌 경기 광주.
구분이 힘들어서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이번에 광주 신 물류센터 말입니다. 이름 좀 바꾸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그냥 신경이 쓰이더군요. 경기도 광주, 전라도 광주···.”
“아, 그렇다면 어떤 이름으로 물류센터 이름을 정하시겠습니까?”
“흐으음.”
재환이 잠시 생각할 때 박찬우는 같이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그 광주시 물류센터가 오포읍이라는 곳에 있으니, 그 이름으로 정하시면 어떻겠습니까?”
“그거 좋네요. 정합시다. 오포물류센터로요.”
“네?”
“그걸로 하자고요.”
재환은 그 자리에서 오포물류센터라고 이름을 지었다.
차가 달려 광주시 오포읍의 혜성 유통물류단지에 도착한 재환이었다.
혜성그룹 사장의 등장에 모든 임직원이 달려왔고, 재환이 나오자 모두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유통물류단지 센터장 김양민 이사의 인사를 받은 재환은 가볍게 악수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기존 유통물류단지에서 2개 동을 더 증축한 규모라서 상당한 크기였다.
재환은 여기에다만 500억 이상을 부었으니 앞으로 기존 혜성의 수도권 쇼핑몰부터, 홈쇼핑은 전부 이쪽이 담당할 것이다.
“대표님. 내부로 안내하겠습니다.”
재환은 김 이사를 따라서 내부를 지켜봤고, 그 뒤로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앞으로 24시간 가동될 유통망에 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다.
2시간 정도 유통물류단지를 샅샅이 둘러본 재환은 점심시간이 되자 슬슬 움직일 준비를 했다.
“대표님. 점심 자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근처에 좋은 백숙집이 있어서 그곳으로 예약했습니다.”
“백숙이요? 밖에 나가서요?”
재환이 묻자 임직원들은 혹시 문제가 있나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혹시 다른 메뉴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김양민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면서 말했다.
“구내식당에서 먹을 생각입니다.”
“네, 넷!?”
사장님이 친히 행차하셔서 고급 정식집에서 백숙을 준비했는데, 별안간 구내식당을 이용한다는 말에 임원들이 혼비백산했다.
“대, 대표님. 지금은 일용직 적재 노동자들이 있어서 같이 드시기에는···.”
“그래서 가는 겁니다. 일용직 많이 고용하는데 이런데서 밥심을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재환이 이전에 혜성전자 공장 다니면서 포스트잇으로 이것저것 지적사항을 붙이면서 느꼈던 거지만, 다른 건 어느 정도 지적사항이 통과돼도 공장 밥이 맛이 없으면 사기가 팍 꺾인다.
‘화성공장 밥이 그 뒤로 엄청 맛있어졌다는 소문은 들었지.’
재환은 이참에 물류센터 밥맛은 어떤지 한 번 볼 셈이었다.
임원들의 만류해도 강행해서 일용직 노동자들과 같이 식사하는 자리가 되자 구내식당에서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
당연히 나가서 먹을 줄 알고 만들던대로 만들던 식당 영양사들은 사장이 먹는다는 말에 황급히 위생부터 신경 썼다.
“자, 알아서 퍼가면 됩니까?”
“네, 넷!”
재환은 식판을 들고 밥과 반찬을 퍼 담은 다음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구내식당 밥은 평범했다.
뜨끈한 쌀밥에 콩나물북엇국, 계란에 부친 혼합 소시지와 김, 청포묵 무침과 배추김치였다.
“자~ 식사 맛있게 합시다.”
“네, 넷!”
졸지에 물류센터 간부들까지 찾아와서 식사를 하는 자리가 되었다.
재환이 한 입 먹어보고 우물거리는 것에 모든 간부들의 촉각이 곤두섰다.
“먹을만하네요.”
그래도 아예 폐급 식사는 아니고, 어느 정도 먹을만하기는 했다.
“하지만 좀 더 노력해주셔야겠습니다. 앞으로 불시에 와서 몇 번 밥을 먹을테니까요.”
“예, 예! 알겠습니다.”
“일은 밥심으로 하는 겁니다. 예산 조금 더 투입해서라도 먹는 거는 신경써주세요.”
재환은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한 다음 차 안에서 슬쩍 나눴던 ‘광주물류센터’에 대한 이름을 ‘오포물류센터’로 개명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재환이 하는 일에 대해 간부들은 기계적으로 예스맨이 되었고, 재환은 이런 노동사업에서는 그게 차라리 나을 거로 생각했다.
재환은 식사를 마치고, 앞으로 온라인쇼핑몰 전문으로 나올 4개동 중 한 곳을 유심히 바라본다음 돌아갈 준비를 했다.
“아, 그리고 말이죠.”
“네. 대표님.”
재환은 품 안에서 노란 봉투를 꺼내 김양민 센터장에게 건네줬다.
“식사 덜 하신분들은 아까 예약한 백숙집 가서 드세요.”
“아! 대표님.”
“노쇼는 하면 안 되죠. 못 드시면 포장이라도 하시고 가져가서 드세요.”
재환은 잘 하라는 의미로 금일봉을 건네주고 오포읍 물류센터를 떠났다.
그리고 국내에 돌아와서 재환이 찾아간 곳은 닥터안 소프트웨어였다.
“어서오십시오. 대표님.”
“안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안현수는 지난 번 보다 한층 밝아진 얼굴로 재환을 맞이했고, PPT실로 가서 신형 프로그램을 테스트했다.
“VA3-Neo에 대한 개량판입니다 Neo+라는 이름으로 쓰려고 합니다.”
지난날 닥터안 소프트웨어에 인터넷 쇼핑몰 보안프로그램에 대한 오더를 내린 뒤로 시간이 걸렸지만, 제법 그럴듯한 프로그램이 나온 것이다.
“사내 인터넷 쇼핑몰 팀과 한 번 협력해서 테스트해 보려고 합니다.”
“네, 대표님.”
단일 프로그램 하나로 보안과 결제를 처리할 수 있다는 걸 오더내렸는데, 이제 거기에 대한 테스트만 남았다.
“그럼 같이 테스트를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자리를 마련해 봅시다.”
재환은 안현수와 같이 혜성의 온라인 마켓 프로젝트 ‘프로젝트 코멧’에 대해서 최종 테스트에 들어갔다.
***
테스트는 훌륭했고, 사이트 역시도 끊김 없이 완벽했다.
그리고 쇼핑몰에 쓸 상품으로 그동안 이월되거나 지방 계열사에 있는 상품 중에서 양질의 제품을 골라서 쇼핑몰 계약을 하고 오라고 박찬우 이사에게 오더를 내렸다.
“박 이사님. 이제부터 인터넷 쇼핑몰 제품은 전부 이사님이 검수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새 프로젝트의 중책을 맡게 된 박찬우는 기전실 팀장 시절의 인연으로 차기 오너와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에 대해 가슴이 벅찼다.
재환은 달력을 보면서 10월에 발표할 준비를 했다.
“굵직굵직한 건 몇 개 하니까 시간 정말 빨리 가네.”
재환은 이미 이사회의 만장일치 승낙을 받아낸 새 프로젝트 ‘코멧’을 위해 광고를 시작했다.
[나를 위한 패션 시계, 나는 코멧에서 산다!]
[혜성시계가 9시를 알려드립니다.]
‘코멧? 그게 뭐야?’
첫 광고 이후 웅성거리는 반응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이젠 혜성의 제품을 인터넷에서 구매한다! 코멧닷컴! 곧 시작합니다!]
‘인터넷 쇼핑몰? 근데 왜 이름이 코멧이야?’
‘혜성이 영어로 Comet이잖아? 그거 아님?’
인터넷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재환은 온라인/오프라인 할 것 없이 실시간 반응을 지켜보면서 물량확보를 위해 움직였다.
“네, 여보세요?”
[대표님 부산 신발공장에서 양품으로 저희 쇼핑몰에 납품을 요청하는 업체들이 30곳이 넘습니다.]
“모두 받아들이세요. 대신 퀄리티 준수는 확실히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 다음은 전주였다.
[이쪽도 의류 쪽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네, 받아주세요. 세탁기 한번 돌리고 물 빠지는 거 나오면 가만 안 둡니다.”
초창기 인터넷 쇼핑몰의 가장 큰 문제점.
그것은 마구잡이로 받아든 물건들의 불량으로 인해 환불 문제부터, 먹튀가 심했다는 것이다.
재환은 사업을 진행할 때 이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걸러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품질관리에 신경 쓰게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온라인 쇼핑몰 ‘코멧닷컴’에 대한 오픈이 시작됐다.
[뭐든지 다 있다! 원클릭 구매! 코멧 닷컴!]
재환은 2000년의 감성이 물씬 풍기는 광고를 지켜봤다.
지난날 혜성트로이카의 컴퓨터 광고때 나왔던 톱스타 김혜선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고 쇼핑몰 홍보에 몰두했다.
초고속 인터넷 사업 이후로 우후죽순 일어나는 온라인 마켓 시장에서 재환은 현재의 점유율을 보고서 딱 한 녀석을 타겟으로 잡았다.
“옛날 생각나네?”
불과 몇 년 안 됐던 과거의 일이었다.
당시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기업 ‘이베이스’가 요청했던 45% 지분을 가진 동업을 제의했던 순간이었다.
그때 재환은 거부했지만, 그 뒤로 이베이스는 한국에서 ‘K옥션’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2년 먼저 사이트를 운영했다.
재환은 이베이스를 넘어 앞으로 벌어질 수천조 규모의 온라인 마켓 사업을 지금부터 시작해 확실한 승기를 잡을 것이라 다짐했다.
“자~ 다 덤벼라! 이베이스! 미래의 미시시피닷컴, 신드바드쇼핑!”
한국을 넘어 미국, 중국에 있는 훗날의 초거대 쇼핑몰까지 겨냥하면서 재환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