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97화 (97/244)
  • 97- 9월까지 입찰경쟁(3)

    재환은 현규와 통화를 마치고는 다시금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는 일이었다.

    나름대로 명문대를 나와 고시를 치르고 몇십 년간 나랏밥을 먹은 사람들이 이번 일로 인해 완전히 물을 먹게 된 것이었다.

    “아직 멀었어. 아직.”

    재환은 이번 대윤자동차 매각건으로 재경부의 간부들 여럿 목이 날아갈 거라고 확신했다.

    그날 저녁 재환은 희경의 집무실 안에서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삼신이 상윤 먹은 것은 그렇다 쳐도, 우리도 꽤 이득 본게 많긴 하지?”

    “이번에 아성이 카오디오 수량 반으로 줄인 게 아쉽긴 했는데, 그만큼 혜성오토카에서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릴 거에요.”

    “그래도 전자에서 빵꾸난 것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게 아니냐?”

    “남는 물량은 수출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걸 위해서 삼신물산이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무역업 계열사가 따로 없는 혜성을 위해 동맹인 삼신이 그 물량까지 팔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이렇게 해서 혜성그룹은 이번 입찰에서 손해는커녕 가장 작은 돈(대윤자판 인수)으로 가장 큰 성과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돌아가자 재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추어 같은 놈들.”

    제환의 조롱에 희경 역시도 답했다.

    “옛날 이영재 부총리 때였으면 이런 일 상상도 못 했을거다.”

    “그 인물이었으면 애초에 아성이나 저희나 참여도 못 하고 해외업체에 팔아넘기려고 했을걸요? 외국 달러 모아야 한다고.”

    한때 안암대 라인부터 시작해서 꼬투리 하나 잡히면 재벌해체에 노리던 이영재를 떠올리자 재환은 생각도 하기 싫은지 고개를 저었다.

    “미운 정이 들었나, 그 양반이었으면 뭐라도 잘 했을텐데, 외국회사에 대윤이 팔려나간거 보니 뭔가 섭섭하네.”

    희경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팔릴 일 없을 겁니다.”

    “정말 네가 말한 것 때문에 그렇게 되겠어?”

    “네, 맞아요. 저희는 그냥 랜포드가 알아서 거꾸러지기만 기다리면 됩니다.”

    깊은 자신감을 가진 재환은 앞으로의 움직임을 위해서 움직이기로 했다.

    ***

    “자~ 이건 이번 상윤 인수 성공해서 내는 축하턱이다.”

    재환은 현규가 사는 식사를 즐기면서 스시 오마카세 맛을 느꼈다.

    “콤비 플레이가 참 잘 됐어.”

    재환은 현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혜성과 삼신은 컨소시엄을 만들면서 이건호 회장과 한가지 작전을 짰다.

    대윤자동차 매각공고가 나왔을 때, 모두가 그쪽으로 돌아와 대규모의 자본이 움직일거다.

    그때 모두가 대윤에 집중하고 있을 때, 현재 홀로서기로 어렵게 재정난이 일어난 상윤을 먹기로 한 것이었다.

    일단 컨소시엄에 참가해서 재환이 선봉으로 나서 적절한 언론플레이와 블러핑으로 배팅을 해서 수십억 달러를 내겠다고 한다.

    그때 적절하게도 아성자동차가 참여해 정선길이 따라가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러면서 저절로 빠진 모습을 보고 재환은 눈치껏 움직여줬다면서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결론적으로 아성은 새로운 후계자에 대한 임팩트를 대중에게 알렸고, 삼신은 헐값에 SUV전문 자동차 기업을 수월하게 인수했으며, 혜성은 그 속에서 판매망을 독점해 앉아서 돈이 들어왔다.

    “암튼 회장님이 흡족해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쿠페 개발이 잘 되는데, 내친김에 상윤 그냥 인수하자고 하셨더라고.”

    ‘그분 진짜 자동차 좋아하신다니까···.’

    재환의 과거의 삶만 하더라도 삼신 하면 반도체, 컴퓨터, TV, 스마트폰 등의 전자로써 넘버1을 찍은 기업인데, 역사가 조금 바뀐 뒤로는 전자보다는 자동차와 금융에 대해 더욱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쩌면 진짜로 삼신이 자동차 사업을 했으면 과거 ‘A컴퍼니’나 중국 ‘위어화이’와 같이 스마트폰 경쟁이나 ‘인터콘’의 회사하고 반도체 싸움이 덜 치열해질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대신 이번 경쟁에 나왔던 미국 자동차 3사하고 피터지게 싸워서 대한민국 주력 상품이 반도체가 아니라 자동차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암튼 고생했어. 앞으로 판매망 한 번 쭉 훑은 다음에 운영해보자고.”

    “좋아. 잘 해 보자고.”

    두 친구가 그렇게 식사를 하고 잇을 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네, 형님.”

    “어, 진용아.”

    재환과 현규가 동시에 전화를 받았고, 먼저 온 것은 최대현이었다.

    [야~ 니들 뭐하냐?]

    “현규랑 같이 있는데요?”

    [육공회 모이자! 너 지금 광장동으로 넘어와라!]

    “KS호텔이요?”

    [그러취! 새 멤버도 왔으니 얼른 와!]

    대현의 말에 재환은 지금 당장 KS호텔로 향할 준비를 했다.

    때마침 현규 역시도 사촌 진용과 통화를 마쳤다.

    “어, 그래. 알았어. 재환이에게··· 그래, 연락했다고?”

    현규는 마치고 재환에게 말했다.

    “광장동 가야겠다.”

    “어, 나도 똑같은 전화 받았어.”

    재환과 현규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KS호텔로 갈 준비를 했다.

    ***

    “어서오라! 새로운 승자들이여!”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지 대현이 두 팔 벌려 재환과 현규를 맞이했다.

    이미 그 자리에서는 진용이 가져온 위스키에 거하게 마신 상태였다.

    “아, 다들 왔어?”

    정인이 둘을 데리고서는 진용과 새로운 인물이 앉아있는 자리로 향했다.

    “자, 한 잔 마셔.”

    “하하, 제가 술을 잘 못해서.”

    새로온 인물은 육공회에 새 멤버로 대현이 데려온 인물이었다.

    “어?”

    “안녕하십니까? 정선길이라고 합니다.”

    뜻밖에도 대윤자동차 입찰전이 끝난 뒤로 다시 찾아온 선길이었다.

    현규는 놀란 얼굴이었고, 재환은 왠지 그럴 것 같았다면서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 여기에 올 것 같더라니, 정말 참여하게 됐네요.”

    “하하하, 최 회장님과, 정 이사님의 요청으로 가입하게 됐습니다.”

    “야~ 선길아.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대현은 언더락 위스키를 들고 다가와 선길과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70년생인데, 어차피 상관없겠다 싶어서 받아들였어. 너희 둘 빼도 과반수니 상관없지?”

    “아유~ 우리가 뭐 사람 가려 받습니까? 어쨌건 형님이 회장이잖아요.”

    “하핫, 그렇지!”

    그렇게 육공회라는 친목 모임에 아성가 사람도 끼게 되었다.

    선길을 아직 어색한지 여기저기 경어를 썼지만, 그들은 모두 쿨하게 말 놓으라고 받아줬다.

    “아, 현규야. 잠깐만.”

    “네?”

    정인이 현규를 부르면서 창원에 합작한 엔진기계 사업에 관해 이야기하자고 떠나자 남은 건 재환과 선길이었다.

    급 어색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재환은 술 한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이번 대윤 자동차 입찰전 아주 인상적이었어.”

    “가, 감사합니다.”

    “말 놓으라니까? 어색하면 그냥 형님이라 칭해. 내가 그렇거든.”

    “아, 네··· 형님.”

    선길은 위스키를 입술에 조금 축이면서 재환의 이야기를 들었다.

    “69억 달러에 9999만 한거는 일부러 그런 거였지?”

    “70억 불까지는 할아버님께서도 바라시지 않으셨어요. 김우준의 코를··· 납작하게 한다는 명분은 되었어도.”

    재환은 역시 아성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희는 이번 입찰이 실패한 뒤로 남은 금액은 모두 R&D센터로 투자할 것입니다.”

    어째 처음부터 69억 달러는 퍼포먼스였다는 것 같다는 말 같아 보였다.

    “그나저나 랜포드가 아쉽게 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자동차를 기술도입 생산으로 시작에 저희 아성자동차인데 말이죠.”

    자동차 제조사의 역사는 참으로 얽히고설켜서 JM뿐만 아니라 랜포드와의 역사도 참으로 복잡했다.

    그 상황에서 랜포드가 들어온다는 말에 아성자동차는 기술 독립 이후로 본격적으로 그들을 상대할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재환은 그 말을 두고 갑자기 크게 웃으면서 모두를 불렀다.

    “자~ 육공회 형제들 주목! 모두 주목!”

    “음?”

    육공회 내부의 인원들은 재환의 부름에 따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리고 재환은 깨끗한 접시 하나를 가져오라고 요청하고 그것을 모두에게 보였다.

    “뭐야? 이게?”

    “대현 형님, 그리고 정인형, 현규, 진용이, 여기 선길이까지 모두 집중해주세요.”

    재환은 지갑을 열어 자신의 품 안에 있던 수표와 현금 다발을 모두 꺼내 그 접시 위에 올려놨다.

    “우리 내기 하나 합시다.”

    “무슨 내기?”

    “랜포드가 이번에 단독협상 하고서 파토 낸다, 안 낸다? 나는 낸다에 거는 겁니다.”

    재환의 말에 무슨 말인가 싶어 어리둥절하던 중 이런 일에는 무조껀 끼어드는 진용이 다가와 지갑에 자신의 현금을 뽑아 담았다.

    “좋아! ‘70억 달러’ 배팅했으니 나는 랜포드가 대윤 삼켜버린다에 걸겠어! 파토는 없다!”

    판돈이 커지자 그제야 다른 일원들도 눈치를 채고 대현이 지갑을 열었다.

    “이야~ 동생들 몰아주기 하는 거냐? 그럼 나도 건다! 인간적으로 70억 달러 배팅하고 그걸 포기할 놈은 없지. 파토 안 난다에 걸겠다!”

    대현이 담자, 거기에 따라 정인도 걸었다.

    “좋아, 나도 공장 먹어치우는게 목표라 생각했으니 걸겠어.”

    그다음으로 현규가 있었는데,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지갑을 꺼냈다.

    “대윤자동차야 앞으로 어찌 되는 거 상관없지만, 친구따라 강남 가 보자. 난 단독입찰 이후 파토난다에 걸게!”

    그렇게 재환&현규 vs 대현,정인,진용의 구도가 되었을 때 새 멤버인 선길은 얼굴을 긁적이며 조심히 물었다.

    “저··· 현금이 없는데 카드도 됩니까?”

    ***

    그리고 약속의 9월이 되었을 때, 뉴스에서는 일제히 속보가 울렸다.

    [속보: 랜포드 모터스 대윤자동차 인수 포기.]

    [속보: 70억 달러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랜포드의 대윤 인수는 없을 것.]

    [랜포드의 대윤 인수 포기. 최소 4조원의 경제손실 우려.]

    [금감위원장 “대윤자동차 매각실패 주식쇼크, 그렇게 크지 않을거다.”]

    “푸하하하하하하!!!!”

    재환은 회장실이 떠나가라 웃어댔고, 같이 TV를 보고 있던 희경 역시도 말이 안 나오는지 담배를 태우면서 말했다.

    “저것들 아주 작정했네. 재경부 애들 줄빠따 쳐도 무죄겠어.”

    재환은 키득거리면서 희경에게 상황을 말했다.

    “아버지, 제가 그랬죠? 독박쓰는 거라고. 외국 회사 털어먹으려다가 제대로 당한 거예요.”

    재환은 이 상황을 두고서 지금까지의 일을 생각했다.

    임창훈 실장에게 알아봐 달라고 한 것도 바로 재경부 내의 사정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삼신에게도 그 정보를 물어봤을 때, ‘제2협상자 이야기는 들어본적 없다.’는 정보를 들었다.

    이번 일에 대해 정부의 가장 큰 패착은 단 하나였다.

    ‘구조조정위원회는 이번 입찰에서 우선협상자를 선별하고, 검증 작업을 안 했다.’

    단지 높게 부른 랜포드의 제안만 덥석- 문 것이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국제비즈니스 협상에서 ‘70억 달러’규모의 계약에서 선계약금도 안 받은 것이었다.

    물론 그 이유는 과열된 경쟁 속에서 4-50억으로 예상했던 금액이 점점 커져서 정부도 급한 마음에 협상을 당겨서 빨리 매각처리하려고 10%의 선금 없이 바로 진행시켰지만, 그게 악수였다.

    차라리 원래대로 9월 15일 입찰 종료를 하고, 거기에서 제대로 협상을 했으면 될 것을 단기간에 매각대금으로 국고를 채운다는 안이한 생각에 윗선에서 협상 기간을 확 줄이고, 세부 조율을 못했다.

    “아버지, 더 웃긴게 뭔지 아세요?”

    “뭔데?”

    “저 미친놈들이 이번 입찰 우선협상 랜포드로 정하고, 유찰 시 ‘예비협상자’를 정해야 하는데 그걸 안했어요. 그냥 70억 달러라는 금액 보고 GO!를 한거였어요.”

    “치야- 예비협상자 계약했으면 비슷한 금액으로 혜성하고 삼신이 다 떠맡는 거 아니야? 뭔 일 처리를 저따구로 했대?”

    “그러니까 정신 나간 놈들이라는 거죠. 그래도 행시 치른 엘리트라느 것들이 아마추어같이 이런 식으로 협상을 하다니?”

    재환이 몇 달에 걸쳐서 ‘재경부 놈들 아마추어다.’라고 공공연하게 깠던 이유가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 이후로 느낀 것이 많은 정부는 훗날 상윤석유화학을 사우디 아람코에 매각할 때나 외환은행을 L스타 증권에 매각할 때 확실한 계약서를 썼지만, 그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일이었다.

    이번 대윤자동차 사태는 과열 경쟁 속에서 외국계 회사들에게 호구 잡힌 일로 끝날 것이었다.

    이대로 끝난다면 말이다.

    “아무튼 유찰된 기업이니 제대로 되겠다. 정부 애들 똥줄 좀 탈 거야.”

    재환은 희경의 말을 듣고 말했다.

    “처음엔 가치가 쭉- 떨어지고, 자립하겠다고 나서겠죠. 공적자금 회수하려고 정부는 다시금 매각을 논할테고요.”

    “그래서?”

    설마 저 상황에서 다시 대윤을 인수할거냐는 아들의 반응에 희경이 물었다.

    “곧 70억 달러 가치의 자동차 회사가 7억 달러로 줄어듭니다.”

    “미친··· 아무리 그래도 자동차 제조사 가치가 그렇게 떨어지겠냐? 저게 무슨 부실 채권인 줄 알아?”

    “다를 바 없죠.”

    재환은 그것을 말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업은행 간부들하고 저녁이나 먹어야겠네요. ‘지금은 상윤자동차 공동경영하느라 힘들겠지만, 1년 뒤쯤에는 모르겠다.’ 식으로 나발 한 번 불어주죠.”

    어차피 돌고 돌아 대윤자동차는 혜성의 손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재환은 70억 버블이 1/10으로 떨어질 타이밍을 아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타이밍이 오는 순간, 혜성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재환이 모아놓은 사내현금만으로 유럽과 동남아, 한국에만 공장이 3곳이 있는 자동차 제조사를 거저 먹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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