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95화 (95/244)
  • 95- 9월까지 입찰경쟁(1)

    [다음 소식입니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오는 8월 15일, 북측과의 이산가족 상봉을 주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벌어진 뒤로 수많은 협상발표가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혜성그룹이 후원하는 이산가족 상봉은 모든 언론사가 집중하는 가장 큰 이벤트였다.

    [아이고, 재철이냐?]

    [형님! 형님을 이제야 뵙게 됩니까!]

    서로를 확인하고 얼싸안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한반도에 큰 감동을 주었다.

    [엄마··· 왜 이제야 보게되는거야! 어흐흐흐흐흑!]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죽어도.]

    지상파 방송국들은 연신 북한 고려호텔에서 만난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 보도했다.

    그리고 희경이 직접 대한민국에 있는 실향민들을 모아 사비까지 털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만남을 주선한 것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신희경(혜성그룹 회장):어··· 우리나라가 남북이 분단된 지 5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헤어졌던 이산가족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게, 저희로서는 사명감이지 않았는가 싶었고.]

    혜성그룹은 이번 일에 사회적으로 크나큰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재환은 종횡무진 활약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서 손뼉을 쳤다.

    “혜성가의 가주로써··· 정말 잘해주신 겁니다.”

    “나 TV속이 아니라. 여기 있다.”

    소파 옆자리에 앉아 있던 희경이 한마디 했으나 TV 속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는지 코끝을 매만졌다.

    “정말 잘하신거에요. 대중적으로 얼마나 알려지겠습니까?”

    “뭐,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들에게 있어선 평생소원일 거 아니야?”

    재환은 그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남북정상회담 이후 혜성이 국책사업은 어떻게 넘어갔지만, 자동차 인수전은 어떻게 할 거냐?”

    “9월까지는 계속 여론전 해야겠죠. 그리고 대윤자동차도 한 번 돌아봐야겠죠.”

    외부에서 얼마를 쓸지에 대해서 논하고 있지만, 일단 대윤 내부의 상황도 알아야 했다.

    재환은 그것을 위해 공식적이 아니라 은밀히 그쪽의 관계자를 만나보기로 했다.

    ***

    얼마 후 KS호텔에서 재환은 자신을 찾아온 대윤의 고위 임원을 만났다.

    “여기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그 임원은 먼저 재환에게 인사하고 명함을 건넸다.

    “대윤자동차의 부사장 이경배라고 합니다.”

    “혜성의 신재환입니다.”

    재환은 자리에 앉힌 다음 커피를 시키고 이야기를 나눴다.

    “부평공장 노조는 좀 조용해졌습니까?”

    “하하, 조금 힘든 편입니다.”

    이경배는 최근 내외적으로 시달린지라 강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미 그룹이 해체된 이후로 대윤자동차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쳤고, 김우준을 넘어 정부의 유임으로 경영을 맡고 있지만, 실권은 재경부 소속이 꽉 잡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것은 전국적인 공장의 대윤자동차 노조가 파업하며 버티고 있었고, 시간을 끌수록 매각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혼자 도맡아 하는지라 그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은 현재 대윤의 기술 상황과 노조가 원하는 협상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혜성-삼신 컨소시엄이 대윤자동차를 인수할 수 있게 너희의 가치를 보여달라는 재환의 제안이었다.

    이경배 부사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먼저 저희 대윤자동차의 기술이라 하시면, 6기통 KX엔진이 있습니다.”

    “대략적인 스펙은 들었어요. 문제는 양산화가 언제 되냐는 것입니다.”

    “만약 인수합병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002년쯤에는 출시할 수 있을 겁니다.”

    “얼마 안 남은 시간이군요.”

    재환은 그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쓸만한 기술력이라 생각하고 그 뒤로 다음 모델들을 물어봤다.

    “이번에 출시하는 MTZ-2입니다.”

    “호오, 역시 경차.”

    800cc대 경차이자 국민차라는 이야기까지 나온 MTZ를 보고서 재환은 이게 대윤에서 가장 큰 효자상품이 될 거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손 볼게 많긴 하지만 말이지.’

    재환은 신차 카탈로그까지 가져온 것을 보아 이경배 부사장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저, 기술에 관한 것은 이야기를 들었고, 문제는 고용승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네, 말해주세요.”

    “노조에서는 전원 고용승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원까지 전부요?”

    “그렇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계약직 사원들 역시도 이번 기회에 정규직으로 모두 채용해 주시는 조건도 있습니다.”

    “어려운데···.”

    재환이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자 이것에 대해서는 이경배는 고개를 힘없이 떨어트렸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건 정부 역시도 권한이 있어서 취업률 때문이라도 고용승계 100%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해 주셔야 할 겁니다.”

    “네, 무슨 말인지 압니다. 하지만 일단 노조 문제도 그렇고···.”

    혜성은 상관없어도 삼신은 ‘무노조 경영’으로 유명한데, 거기에 대해서 과연 이건호가 그것을 받아들이냐는 것이었다.

    “새 회사를 인수할 때는 이런 잡음이 있기 마련이죠.”

    “정부에서는 달러화 마련을 위해서 해외 회사에 매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렇고 될 수 있으면 국내 업체에 인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국내라고 하면 저희하고 아성 딱 둘이네요?”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김우준과 정형주의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했고, 서로가 계열사 인수는 거들떠도 안봤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대윤의 사람들이 국내 매각을 생각하고 있고, 거기에 대해 아성이 나선 이유는 바로 그 왕회장 정형주 때문일 것이다.

    ‘그분이 오늘내일하신다지? 그 전에 당신의 자동차 사업이 국내에서 제왕이 되신 것을 보고싶어 하시는 거겠지.’

    입찰 경쟁 이후로 혜성을 포함한 4곳이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필사적이라는 것이다.

    이미 대윤자동차의 가치는 높게 쳐줘야 40억 달러 수준인데, 50억 이상이 운운된 것으로 오버슈팅을 해도 멈추지 않는 죽음의 레이스가 된 것이다.

    “일단 그것에 대해서는 제가 회의를 해 보고서 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합리적인 선택을 해 주시고, 꼭 입찰 마지막까지 와 주셔서 저희와 같이 사업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저도 그러길 원하네요.”

    재환은 이경배 부사장과 악수를 하면서 티 타임을 끝냈다.

    그리고는 현재 상황을 정리해보기 위해 강남 사옥으로 향했다.

    얼마 뒤 재환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기획서를 정리했다.

    “기전실 여러분들 수고해주셨습니다.”

    “네, 대표님.”

    임창훈이 그 문서를 전달해줬을 때,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임 실장님은 아직도 자동차 사업에 대해 불만족스러우신건가요?”

    “아, 아닙니다. 단지···.”

    “단지요?”

    “아무래도 이 조건 말입니다. 저희는 모르겠지만, 삼신이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컨소시엄의 문제이긴 하죠.”

    한쪽이 승낙해도, 다른 한쪽이 반대한다면 손발이 맞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다.

    그 상황에서 임창훈은 조용히 신문을 건넸다.

    “이건 무슨 기사입니까?”

    “오늘 저녁 석간신문으로 나올 것을 미리 받아왔습니다.”

    재환은 임창훈이 건네 준 신문 기사를 읽고서 눈이 커졌다.

    [아성자동차, 승부수 띄웠다! 55억 달러 투자 가능!]

    [정선길(상무):공격적으로 나갈 것입니다. 아성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와~ 이 친구 진짜.”

    대놓고 이번 입찰전에 ‘55억 이상 쓴다!’라고 밝힌 것이니 여기에 대해서 다른 세 곳도 저만큼은 써야 된다는 말이었다.

    “기어이 오버슈팅이 되겠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정도면 저희의 분담 역시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만.”

    임창훈의 불안한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근데 뭐, 지금 트루넷 주가도 그렇고 사내현금을 생각하면 통째로 먹어도 상관없을 금액이에요.”

    “대표님.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지 않습니까.”

    임창훈의 말대로 밑에 있는 기사에서는 그동안 아성자동차를 통해서 납품하던 혜성전자의 카오디오가 절반 이상이나 계약이 줄었다.

    위약금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만큼 행동을 보인다는 말이었다.

    “이것도 재조정이 좀 필요하긴 하겠습니다. 당장 이번 매출에 대해서는 좀 타격을 입겠지만···.”

    그것에 대해서 활로를 찾기 위해 재환이 움직이기로 했다.

    그리고 이것들까지 종합한 재환은 이건호를 만나기 위해 승지관으로 향했다.

    ***

    승지관에서 차가 내려오자 이건호가 권했다.

    “드시오.”

    “네, 회장님.”

    깊게 우려난 차 향이 매우 좋았는데, 어딘가 익숙한 맛이 났다.

    “지난번에 우리 부인이 신 사장 모친에게 배웠다고 하더군.”

    “아, 저희 어머니요?”

    “아주 맛이 좋소. 모친이 다도 솜씨가 아주 좋으신 것 같군.”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뒤에 이건호는 재환이 가져온 기획서와 석간신문을 천천히 읽어봤다.

    시간이 오래걸려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본 이건호는 조용히 재환에게 말했다.

    “신 사장.”

    “예, 회장님.”

    “구조조정 없이 55억 이상을 태우면 그거에 대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겠소?”

    “조금 오버슈팅이 될 것 같아 보이긴 합니다.”

    “입찰가가 높을수록 결국은 구조조정은 필요한 법인데. 거기에 나더러 노조까지 떠맡으라고?”

    안 그런 재벌 회장이 어디 있겠느냐만 삼신가는 특히 노조에 대해서 학을 떼고 있었다.

    재환은 다른 방향으로 조정을 해서 어떻게 고용승계를 하는 쪽으로 생각했지만, 이건호는 아니었다.

    “신 사장. 내 한 번 물어보겠소.”

    “예, 회장님.”

    “여기에 있는 이 KX엔진이라는 것의 스펙은 믿을만 하오?”

    인력을 넘어 다음은 기술력에 대해서 묻는 이건호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 이미 저희는 일본 출장을 넘어서 프랑스의 르노어하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승용차 엔진에 대해서는 뒤쳐진 상황입니다.”

    “나도 그것을 알고서 물어보는 것이오.”

    결정을 재환에게 맡기려고 하는 이건호의 모습이었다.

    그저 차분한 얼굴로 돋보기안경 너머로 두 눈만 꿈뻑거리면서 그의 말을 들으려고 했다.

    ‘양자택일이군.’

    이건호는 지금 재환의 결정에 따라서 움직일 것 같았다.

    만약 재환이 ‘역시 너무 껴든 것 같습니다.’라고 했는데 이건호가 ‘강행하는게 좋을거라 생각하는데 안되겠군.’ 이러면서 파토가 날수도 있다.

    반대로 ‘이대로 계속 가는게 어떻겠습니까?’라고 재환이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가 이건호가 ‘우린 노조 받을 생각 없으니 이 이상 투자할 생각 없소.’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쪽이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건호는 지금 재환이 내거는 제안에 대해 반대되는 제안을 내놓을 것이다.

    그 이유는 지나치게 과열된 대윤자동차 인수전에서 노조까지 고용승계한다는 것을 꺼려했지만, 자기 입으로 취소를 하기 싫기 때문이다.

    재환은 그것을 알고서 한 번 움직여 보기로 했다.

    “회장님, 그렇다면 제 생각을 이야기 드려도 되겠습니까?”

    “좋소, 하시오.”

    이건호의 승낙이 떨어지자 재환은 현 상황에 대해 분석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혜성-삼신 컨소시엄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물론 삼신에게 있어서는 이 모든 것은 재환의 머리 하나에서 나온 상황이니 감수해야 할 것은 그들이다.

    하지만 재환은 이미 미래를 알고서 하는 말이니 자신감을 가지고 말했다.

    어차피 안 받아준다면 삼신이 큰 그림을 그린 것에 채색을 못 한 것이고, 받아준다면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유대감을 가질 것이다.

    10분의 시간 동안 재환의 말을 묵묵히 들었던 이건호는 돌부처 같은 모습에서 연신 눈썹이 씰룩이고 천장을 한 번 바라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좋소, 그럼 신 사장이 원하는 대로 해보시오.”

    “정말입니까?”

    “하시오.”

    이건호의 ‘하시오.’ 소리를 들었으니 재환은 그대로 진행시켜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최선의 방법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좋소.”

    재환이 인사하며 떠나자 이건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미전실장, 지금 현규 녀석 데리고 승지관으로 오시오.”

    아들에게 직접 전화가 아니라 공적인 전화를 써서 부른다는 것은 그 역시도 큰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

    재환은 차에 탄 뒤로 담배를 물었다.

    “좋아, 삼신 건은 해결됐으니 이제 외국 회사 둘을 한 번 만나봐야겠지?”

    그동안 국내에서만 아웅다웅했는데, 이제 한국 기업을 노리고 오는 랜포드와 JM에게도 한 방 먹일 생각을 했다.

    “자, 어디 한 번 미쳐 날뛰어 볼까?”

    이미 혜성-삼신 컨소시엄에서 전권을 가진 몸이었다.

    이제부터 재환이 폭주한다 하더라도 그 리스크는 이건호가 책임진다.

    재환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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