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94화 (94/244)
  • 94- 입찰후보들이 하나씩 움직인다.

    재환은 그날 저녁 또다시 방송국들을 방문했다.

    그가 CBM에서 여러 번 인터뷰를 한 모습을 보고, 같은 지상파 방송국인 KBC나 SBC역시도 앞다투어 사장이 직접 재환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재환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기로 했다.

    어차피 시청률만 올려주면 되고, 그럴수록 자신이 사업하는 것에 대해 알릴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사업의 다각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저희는 상생을 위해서 움직입니다. 이번 혜성-삼신 컨소시엄은 순조롭게 이뤄질 겁니다.]

    [일본제요? 르노어-니혼 얼라이언스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일본을 언급하는 게 이상한 지적 아닙니까? 뭐가 그리 불편해요?]

    신문에 나왔던 이야기를 대놓고 디스하면서 거리낄 것 없이 그대로 정면돌파를 한 재환이었다.

    그 모든 인터뷰는 9시 뉴스에 방송국 3사에 모두 나올 것이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뉴스 스튜디오 내에서 녹화를 마친 재환은 예의 넘치는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인사하며 떠났다.

    그리고 재환이 떠나면서 방송국 사람들의 수많은 평가가 있었다.

    “재벌가 사람들답지 않게 진짜 신사네?”

    “인터뷰도 엄청 조리 있게 하시잖아. 시청률 잘 나오겠어.”

    “방송 타는 거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사장님께 건의해서 초대 몇 번 더 해볼까?”

    여의도 방송국 3사의 사람들이 모두 재환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며 그에 대한 호감도는 최고조로 올라가 있었다.

    한편 재환은 차에 탄 뒤로 시간을 살펴봤다.

    “퇴근 시간이네요.”

    재환은 6시가 넘은 것을 두고서 뭔가 생각나서 말했다.

    “김 기사님. 차 돌리세요.”

    “네?”

    “바로 집에 가기는 그렇고, 오늘은 생각 좀 해보려고 돌아다니고 싶네요. 적당한 곳에 내려주세요.”

    “대표님, 적당한 곳이라 하시면···.”

    재환은 여의도 근처에서 적당히 돌아다닐곳이 어딘가 생각하다가 좀 더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용산으로 갑시다. 거기 이태원에서 내려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김 기사는 일단 재환이 원하는 대로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태원에 있는 5성급 호텔 하이얏트에 도착한 재환은 김 기사를 보내고 홀로 식사를 했다.

    스시 오마카세에 술 한잔을 곁들이면서 노트를 꺼내 현재 상황에 대해 쓰고 있었다.

    ‘아성이 벤스랑 같이 손잡고 인수전에 참여했고, 노리는 것은 해외 공장.’

    그리고 다른 업체에 대해서도 들은 정보들을 추합했다.

    ‘원래 역사대로 나올 JM-피요트가 나설거였지. 그리고 랜포드는···.’

    대략적으로 입찰대금이 얼마쯤 나올지는 짐작됐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3파전이고, 오히려 눈치싸움으로 더 큰 금액이 나올수도 있는 상황이지.’

    재환은 머리가 복잡했다.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고 역사를 바꾸는 것은 미묘하게 틀어지는 상황이 나오니까 혜성이나 삼신이나 서로 윈-윈 하면서 넘어갈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대뱃살입니다.”

    셰프의 능숙한 손길로 새 접시가 나오자 재환은 그것을 한 점 먹으면서 맛을 음미했다.

    머리는 사업 이야기로 복잡했지만, 혀와 몸은 좋은 음식이 들어가면서 행복을 느꼈다.

    “맛이 괜찮으십니까?”

    “네, 가끔은 이렇게 혼자 와서 먹는것도 괜찮네요.”

    하이얏트의 일식 셰프는 미소를 지으며 새로운 부위를 썰어 재환에게 대접했다.

    만족스런 식사를 하면서 손으로 계속 현재 입찰 상황에 대해 계산한 재환은 이후 혜성쇼핑 산하로 들어온 대윤자동차판매, 이제는 ‘혜성 오토카’로 변경된 업체에 대해서도 재개편을 할 준비를 했다.

    ‘단순히 신차만 파는 게 아니야. 중고차 사업에도 참여한다면 아성보다 20년은 더 빨리 올라갈 수 있어. 게다가 이것에 대한 규제는 여론을 이끌어나가 기존 시장에 관한 이야기만 하더라도···.’

    하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미래를 생각하면서 계속 사업을 확장해나가려고 하는 재환의 큰 그림이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했다.

    그리고 오늘 회는 특별히 오마카세를 만든 셰프에게 계산 외에 팁을 제공해주고 나섰다.

    가볍게 청주 한잔을 곁들였지만, 뭔가 심심한 감이 있던 재환은 지하로 향했다.

    그곳에는 레코드 바가 있어서 LP로 노래를 들으며 감성적인 분위를 느낄수 있는 곳이었다.

    “어서오십시오.”

    정장 차림의 바텐더가 공손히 인사하고 재환은 테이블에 앉아서 메뉴판을 보고 주문했다.

    “위스키는 로얄살루트 38년산, 안주는 가볍게 과일을 주문하고 싶은데, 바나나나 배, 이런 건 좀 그렇고 단걸로 엄선해서 주세요.”

    “알겠습니다.”

    재환은 위스키를 시켜서 쭉 들이켰다.

    오늘 하루는 그냥 퇴근 이후 편하게 지내기로 했다.

    LP바는 한산했고, 또 다른 바텐더가 다가와 수첩을 건네줬다.

    “신청하실 곡이 있으십니까?”

    “흐으음.”

    재환은 잠시 생각하다가 만년필을 꺼내 곡을 적어 신청했다.

    “이걸로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과일안주와 같이 나온 음악은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였다.

    브릿팝의 은은한 음악이 나왔을 때, 재환은 눈을 감으며 지휘봉을 흔들 듯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갑자기 재환에게 다가오는 정장 차림의 남성이 있었다.

    그는 재환을 부르기 전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다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음?”

    재환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자신을 향해 공손히 인사하는 정선길이 있었다.

    “···어?”

    여기서 정선길을 만난 재환은 일단 인사를 받아주고 자리를 만들어줬다.

    “이런 곳에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일행과 같이 오신겁니까?”

    “하하, 아닙니다. 혹시 동석 가능하겠습니까?”

    “그러세요.”

    재환은 쿨하게 승낙했고, 선길은 조심스럽게 옆에 앉았다.

    그리고 새 잔을 담아서 위스키 한 잔을 담아줬다.

    건배를 하고 마신 뒤 선길은 먼저 재환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제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그런 식의 흑색선전을 생각한 건 아닌데, 이렇게 보도된 것을 사과드립니다.”

    ‘호오? 그걸 본인 탓으로 돌려?’

    의외로 굉장히 공손하게 나오는 정선길을 보고 재환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신경 안 써요. 경쟁이 과열되다보면 감정 조금 상할 일이 있는 거죠.”

    어차피 모두가 한국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일로 감정 상하면 경제련이라는 존재가 없었을 것이다.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잔 또 따랐고, 선길이 조용히 물었다.

    “음악을 좋아하십니까? 오아시스의 노래가 명곡이죠.”

    “아, 가끔 기분 낼 때는 틉니다.”

    “역시 오디오 명가인 혜성이어서 그런지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 것 같군요.”

    “뭐, 그렇지는 않지만요.”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고 생각 한건지 일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전에 사과 빼고는 일상적인 이야기로만 흘러갔다.

    재환은 정선길이라는 이 친구는 아버지 정 회장과 다르게 화통하다기보다는 차분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맞춰나간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 선길은 주변 일상 이야기를 했다.

    “사촌이 이곳을 운영하는지라 자주 옵니다. 다음에 오실 때는 티본 스테이크 레스토랑을 한 번 들려주십시오. 그곳 고기가 아주 좋습니다.”

    “흐음~ 스테이크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네요.”

    “그러고보니 대표님은 야구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혜성 타이거즈의 구단주도 겸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 그렇게 크게 좋아하진 않아도 우리 팀이라는 자부심은 있지요. 최다 우승팀 아닙니까?”

    “하하하, 곧 월드컵도 있을텐데, 야구도 그런 국제대회가 하나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네~ 언젠가는 생기겠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던 중, 시간이 지나자 재환이 일어날 준비를 했다.

    “아, 일어나시겠습니까?”

    “네, 남은 술은 키핑해서 다음에 올 때 같이 드시죠.”

    “알겠습니다.”

    재환은 지나치게 깍듯한 정선길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나이 차이도 겨우 두 살인데, 너무 그렇게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선길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번 대윤자동차 입찰전이 오면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재환은 웃으면서 선길과 악수하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미 선길이 손을 써둔 것인지 호텔 내에 있는 vip차량이 대기하고 있었고, 재환은 웃으며 차에 탔다.

    재환은 양재동까지 가면서 생각했다.

    ‘저런 스타일이 진짜 무서운 법인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기계적으로 사람을 대하면서, 책잡히지 않게 예의를 지켰다.

    처음에는 아성자동차에서 정 회장이 아들의 커리어를 위해서 나선 것 같은데, 본인의 자질 또한 굉장히 뛰어난 녀석 같아 보였다.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 판단한 다음 어떻게 대처할지를 생각해야겠고 말이야.’

    이건 1:1의 승부가 아니었다.

    아성의 정선길은 세 경쟁자 중 하나에 불과했고, 아직 JM과 랜포드의 움직임은 제대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

    다음날 혜성그룹 강남사옥에서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이제껏 승지관이나 태평로 사옥으로 재환이 찾아가기만 했는데, 이번엔 삼신에서 현규를 직접 보낸 것이었다.

    재환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차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 주재원들이 보내준건데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뭔데?”

    현규는 자신이 알아온 정보를 재환에게 말해줬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랜포드야.”

    “이유가 뭔데?”

    “그건 미국 자동차 기업들의 특징 때문인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현재 미국은 Big3라 불리는 JM, 크레이슬, 랜포드가 꽉 잡은 시장이었다.

    랜포드는 세계 최초의 양산형 자동차를 개발한 이미지와 다르게 두 경쟁사에게 가장 처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리는 자동차 업계에서 JM이 전세계적으로 자동차 회사들과 교류를 하면서 그 지분으로 거대한 연합체를 만들고, 크레이슬은 벤스와 합병해서 벤스-크레이슬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미국과 독일이라는 자동차의 두 중심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반면 랜포드는 인수합병의 역사도 짧고, 그나마 나선 것이 영국의 SUV 자동차 업체 ‘로버’나, 스웨덴의 상용차&승용차 종합기업인 ‘보르보’정도를 인수한 것 빼고는 없었다.

    “즉 공장도 적고, 계속 뒤처지고 있으니 아시아 시장을 활로로 찾고서 필사적으로 대윤자동차 인수에 달려들 거란 말이지?”

    “그래, 대략적으로 55억불 정도 생각한다고 하더라.”

    “가장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게 55억불이라···.”

    “참고로 JM은 50억 전후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랜포드의 금액을 보면 그 녀석들도 따라갈 것 같아.”

    아성만 생각하고 있었을 때, 미국의 두 업체가 직접 달러를 준비해서 그 정도로 달려들거란 이야기에 재환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벌써부터 50억 달러 전후로 나온다면 막상 시간 좀 지나면 더 많을 거야.”

    “맥시멈이 얼마나 될까?”

    “경매로 시작하면 지금 50억불이 시작가라고 할 수 있겠지.”

    재환의 말에 현규는 자신이 인수 입찰에 재무팀을 맡고 있으니 입술이 타들어갔다.

    “히야, 이거 진짜 판이 커졌는데?”

    현규의 말에 재환이 웃으면서 물었다.

    “장족의 발전 아니냐?”

    “음?”

    “3년 전 크리스마스 기억 안나? 네가 삼신증권 이사로 우리가 트로이카 인수하려고 했을 때 참여해서 300억대 규모로 인수합병 진행한거.”

    “아, 그렇지. 그때 300억에 산 회사가 지금은··· 100배도 넘지 않냐?”

    재환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300억대 인수로 놀던 우리가 지금은 5조원대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거야.”

    그 말에 현규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회가 남달랐다.

    “판이 너무 커졌는데··· 이 입찰전 이길 수 있을까?”

    재환은 그 물음에 피식 웃었다.

    “왜 대답을 안해?”

    “정말 그만큼 써야 할까? 해서.”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300억에서 5조 이야기했으면서, 거기서 또 갑자기 확신이 안 서?”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재환의 대화 패턴에 현규가 어리둥절했다.

    “일단 오늘 네가 알려준 정보에다가 나도 미국쪽 라인 타고서 좀 더 정보를 모으려고.”

    “그, 그래. 그 다음은?”

    “흐으음. 오늘 와 줬으니 승지관에 가서 한 번 이야기 드려야겠지. 혹시 아버님 초밥 좋아하시나?”

    “음?”

    재환의 머리는 다시 한 번 빠르게 돌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