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90화 (90/244)
  • 90- 혜성 대신 아성.

    대통령의 초대.

    그리고 술자리를 하면서 혜성그룹을 치하하는 자리.

    거기에서 대통령 김대준은 혜성 회장 신희경이 아닌 재환에게 직접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경제사절단에 참가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재환이 그 자리에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포함해 모든 관료가 경악할 만한 일이었고, 얼굴이 사색이 된 희경이 벌떡 일어났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아들 녀석을···.”

    스윽-

    그 순간 김대준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손을 들어 희경을 제지했다.

    그리고 아직도 미소를 잃지 않은 김대준에게 재환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큰 어른의 제안을 이렇게 단칼에 거절한 것은 예의에 어긋났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 다시 사과드리겠습니다.”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오. 허허허허!”

    여전히 재환에게 존대하며 나오는 김대준을 향해 확실히 정치인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좀 성급했지. 걷기도 전에 뛴다고 하려고 했나?”

    “대, 대통령 각하!”

    희경이 황급히 상황 정리를 하려고 했고, 비서실장과 경호실장도 한마디 거들려 했지만, 역으로 김대준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룹 총수들까지 같이 방북하는 것은 아직 무리겠소.”

    그리고 그룹 총수들이 모두 방북을 한 일은 십몇 년 뒤에나 일어난다.

    물론 그 전에 비공식적인 이야기는 조금 다르겠지만 말이다.

    이후 김대준은 거기에 대해 일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마이크로 컴퍼니 사와 자선재단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된 거요?”

    “사업을 같이하면서 미국과 한국 사이의 교류, 그리고 전 세계적인 자선재단인 거위츠 재단에 기부를 한 것입니다.”

    “그 금액으로 누구를 어떻게 도우려고 하시오?”

    “먼저 지난날 외환위기로 인해 길거리에 내몰렸던 노숙인들에게 자활 쉼터를 제공하여 그들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또한 해외에서도 한인타운에 있는 어려운 학생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래요, 아주 좋은 일이에요.”

    김대준은 그 뒤로 재환의 사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21세기 정보화 시대라서 그런데 혜성은 발 빠르게 체질개선을 하는 것 같더군요.”

    “시류에 맞춰 움직이고 있습니다. 물론 나라의 발전 역시도 이루면서 말입니다.”

    “허허허, 말하는 것이 막힘이 없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주 쉽게 풀어나가는 것 같아요.”

    김대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술병을 들었다.

    “한 잔 받으시겠소?”

    재환은 다가가 정중하게 대통령이 내린 술을 받았고, 그다음 자신 역시도 따라드렸다.

    그 뒤로 자잘한 이야기들이 다시 희경과 오가다가 만찬이 끝이 났다.

    “아이고, 조심히들 들어가게나.”

    대통령이 먼저 관사로 들어가고, 그 뒤로 비서실장의 인사를 받은 희경과 재환이 차에 올라탔다.

    아직도 조금 전 일에 대해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희경을 향해 재환이 조용히 말했다.

    “기차 화통처럼 퍼부으실 건 알겠는데요. 이번 일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겁니다.”

    “으으윽.”

    어금니 꽉 깨물고 최대한 분노를 억제한 희경의 말에 재환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아~ 우리 집안에 실향민이 있어요? 아니면 북한 땅에서 소 한 마리 가져온 게 있어요?”

    “임마! 신재환!!!!”

    결국, 무궁화동산을 벗어났을 때 참고 또 참아왔던 희경의 포효가 울렸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재환은 아버지를 향해 비장의 수를 말했다.

    “!”

    그리고는 잠시 차를 멈추게 한 다음에 김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죄송하지만, 잠시만 차 멈춰주세요.”

    “네?”

    “그래 차 멈춰! 이 자식이 뭐 잘난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게!”

    희경도 헐크가 되어서 차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고, 김 기사는 샛길에 잠시 멈춘 뒤로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리고 15분 정도 차 안에서 이야기가 오고 간 다음, 문이 열렸다.

    “기사님. 다시 출발합시다.”

    “네? 아, 네!”

    김 기사는 황급히 달려와서 운전석에 앉아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그림자가 있었다.

    ***

    “하~ 신재환이 그 친구 잘나간다더니 목에 깁스했나?”

    “그러게 말입니다. 어린놈이 어떻게 VIP 앞에서 무안하게 거절을 해요?”

    비서실 내에 있는 경제수석과 민정수석 등의 고위 관료들은 만찬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이를 갈고 있었다.

    다행히 VIP가 사람 좋게 넘어가줘서 망정이지 옛날이었으면 다음날부터 혜성그룹 회장이 수시로 서초동 들락거리면서 검찰총장과 마음의 대화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녀석 가만 놔둘 겁니까? 아주 혼쭐을 내줘야 할 것 아닙니까!”

    하지만 비서실장 한영옥이 반대했다.

    “그건 안 돼! VIP께서도 취중에 나온 이야기니 이 일에 대해 문제 삼지 말라고 하셨네.”

    물론 계획을 하고 신재환에 깊은 관심을 가져 은연중에 혜성그룹을 점찍어서 떠본 거지만 말이다.

    그리고 청와대 경호원들이 다가와 경호실장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

    “맞습니다.”

    “흐으음.”

    경호실장은 혀를 차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혜성도 난리로군. 무궁화동산 나가자마자 신희경 회장이 아들 녀석 갈궜다던데? 아주 눈물 나게 털었대.”

    “당연히 그래야죠!”

    “그래도 신 회장은 상황 돌아가는 걸 아는구만!”

    대통령에게 불손했던 재환을 희경이 잔뜩 혼냈다고 하니 청와대 간부들이 직접 나서지 못해도 화는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어쨌건 이 일은 VIP의 일과 비서실장 체면이 있으니 해프닝으로 적당히 끝낼 것 같았다.

    ***

    얼마 뒤 뉴스에서는 대서특필 될 정부의 새 정책이 문화관광부 장관의 입으로 발표됐다.

    [한반도의 영원한 통일을 위해, 6월 13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을 선언합니다.]

    6.13 남북정상회담.

    김대준 대통령 내외가 직접 평양으로 향해 그곳에서 북한의 김정일을 만나는 자리였다.

    대통령 내외를 포함해 통일부장관, 외교부장관, 국정원장, 경제수석, 외교안보비서관 등의 청와대 간부진이 대규모로 참여하는 일이었다.

    “2개월 남았군.”

    TV로 뉴스 발표를 보면서 컴퓨터 모니터로는 나스닥 상황을 보고 있었다.

    혜성트루넷의 주가는 멈출 줄을 모르고 고공행진을 했으며, 마이크로 컴퍼니의 제 3주주 등극 이후로는 주당 70불까지 치솟았다.

    “이대로만 현상 유지를 해도 좋긴 한데,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새로운 장작을 넣어줘야 하는 법이지.”

    재환은 그것을 계산 속에 넣은 다음에 움직일 준비를 했다.

    그때 TV에서 연신 남북정상회담의 발표를 할 때 또 다른 기사가 나왔다.

    [한편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재계의 도움 또한 컸습니다. 남북간의 평화 교류를 위해 아성그룹과 대한공상회의소장까지도 힘을 쓰겠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음?”

    재환은 TV에서 아성그룹이 직접 움직인다는 기사와 정목헌 회장의 인터뷰를 보고서 시선을 고정했다.

    [하나된 한반도를 위해서 저희가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습니다.]

    정목헌 회장의 그 말에 재환은 혀를 찼다.

    “아성이 두 번째 타자가 됐구나. 우리 다음에 플랜 B였나보네.”

    하긴 지난날 실향민 출신의 정형주 명예회장이 소 1001마리를 이끈 소떼 방북 이후로 북한측 라인은 아성이 가장 많았다.

    “잘 될까 모르겠네?”

    재환은 그것에 대해서 미리 연락해 볼까 싶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다음날 갑자기 아성그룹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

    재환은 종로에 있는 고급 요릿집을 자주 방문하게 됐다.

    “이게 벌써 몇 번째지?”

    비슷한 나이대 친구들이라면 호텔이 편하지만, 삼촌이나 아버지뻘의 총수들은 정갈한 분위기의 요릿집을 더 선호했다.

    재환은 초대받은 자리에서 지배인의 안내를 받고 정 회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드르륵-

    “어, 왔는가?”

    정목헌 회장은 재환을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며 앉으라고 자리를 내밀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재환은 정 회장에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왕회장님께서는 건강하십니까?”

    가볍게 안부를 물었을 때, 정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많이 연로하셨어. 100세까지는 사시겠다고 자부하신 분인데.”

    “아···.”

    왕자의 난이 충격이 컸는지,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정형주 회장은 이후 다음 해에 숨을 거둔다.

    즉 지금의 대북사업은 왕회장 정형주가 살아있던 시절 마지막으로 추진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뉴스 잘 봤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을 알린 아성그룹이 이제 마지막 관문을 여는군요.”

    “후후, 그렇게 보이는가?”

    옅은 미소 속에 씁쓸함이 묻어나는 정목헌이었다.

    재환은 저 표정이 왜 나오는지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면서 말했다.

    “대북사업. 난관이 크긴 하겠지만, 좋은 사업 아닙니까? 금강산 관광부터 남북 철도, 유통, 운송 등의 사업을 같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정목헌은 술잔을 쭉 비우면서 재환을 보고 물었다.

    “그렇게 좋게 생각하면서 왜 거절한 건가?”

    “네? 아, 그거요?”

    어차피 정목헌도 청와대 호출을 통해 들었을 것이니 대략적인 상황은 알 것이다.

    “대북문제는 금융업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분명 미래가 있는 좋은 사업이지만, 저희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흐으음.”

    혜성그룹이 웬만한 사업은 다 도전 해도 금융업이나 건설 같은 것은 신재환 체제에서 거리를 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겨우 그 이유가 전부인가? 혜성과는 맞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서 북한 관련 사업을 다 거절했다고?”

    “다 거절은 안 했어요. 나름대로 정부에 도울 게 있으면 할 겁니다. 방북을 거부한 거였죠.”

    “···.”

    정목헌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듣다가 재환에게 물었다.

    “자네 술 잘 마신다고 하던데 말이야.”

    “예? 아, 적당히 마시는 편입니다.”

    “형님하고도 소주 대작을 했다지? 나하고도 한 번 해 볼 생각 있나?”

    “네?”

    정목헌이 진지한 눈으로 자신하고 대작을 하자고 한다.

    분명 대북사업 문제로 뭔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희경이 아니라 자신을 불러서 논하자는 것은 차마 하지 못할 말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내일 머리 좀 깨지겠군.’

    재환은 정 회장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좋습니다. 오늘 밤은 회장님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재환과 정 회장은 술 몇 병을 더 시키고, 안주도 푸짐하게 주문해서 휘황찬란한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도자기에 담긴 증류소주를 마시면서 정 회장이 하는 말을 재환은 하나도 빠짐 없이 머릿속에 담았다.

    “그래서 나에게 그러더라고. ‘정 회장, 아무래도 당신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98년부터 시작한 아버님의 남북평화 의지를 이어가야 할 게 아닙니까?’라고 말이야.”

    “그렇군요.”

    “비서실장에 민정수석에 장관들이 다 몰려 있는데 어쩌겠나? 내가 재계에서 총대를 메겠다고 했지.”

    어찌 보면 재벌 회장의 푸념이라고 할 수도 있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었다.

    “힘드시겠습니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은 분명히 올 것입니다.”

    재환은 또 한 잔 따라주면서 어느새 시간이 자정이 넘었다.

    슬슬 둘 다 취기가 올라왔을 때 재환은 아직도 속 안에 담은 것이 많아 보이는 정목헌 회장에게 정면으로 들이 받아보기로 했다.

    “회장님. 아직 할 얘기 많이 남아있으시죠?”

    “으음? 아이고, 이 꼰대가 좀··· 내 할말만 했지?”

    “아이고, 그렇다고 무슨 꼰대라고 자학하실 정도는···.”

    재환은 고개를 저으면서 정목헌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있는 짐을 덜어드리기로 했다.

    아성자동차의 정목균도 좋은 파트너지만, 정목헌 역시도 알아두면 좋을 사람이다.

    ‘그리고··· [그때의 참극]은 막을 수 있으면 막아야지.’

    재환은 그것을 염두해두며 직구로 던졌다.

    “혹시 돈 문제로 그러시는 거 아닌가 싶어서 여쭤본 겁니다.”

    “돈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정목헌의 목소리가 살짝 격양되었고, 재환은 숨길 것이 없다는 듯 말했다.

    “대북사업 독점권을 가지고··· 정부가 혹시 뭔가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요, 요구라니? 뭘 말하는 거야?”

    그때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어이구~ 여기 주변에 듣는 귀가 있으려나? 그러면 돈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되는데? 와이로라고 해 줄까?”

    일부러 방 안 이곳저곳을 한 번 둘러본 다음 앉아서 말했다.

    “대북지원자금 같은 거 어느 정도 요청 왔을 거 아닙니까?”

    쨍-

    “지금 나한테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정목헌이 술잔을 탁자에 거칠게 내리치며 외쳤다.

    하지만 재환은 태연하게 두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정말 없으십니까? 드러나서는 안 될 정상회담의 지원금이?”

    “이봐 신재환이! 자네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한 건가?”

    취중에도 눈을 부릅뜨며 재환을 노려보는 정 회장을 보고 재환은 태연히 잔을 채우고 말했다.

    “아니라면 이 자리에서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재환은 정목헌을 향해 말했다.

    “이 한잔으로 저는 이제 취기가 돋아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으으음!”

    폭발했던 정목헌은 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지만 라이터를 찾기 힘들었고, 재환이 다가가 조용히 불을 붙여드렸다.

    그 순간 가까이 있던 정목헌이 재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듣는 귀가 있을수 있어.”

    “!”

    있기는 있다는 말이었다.

    아마도 3년 뒤에 있을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 이미 증거가 남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재환은 일부러 크게 소리쳤다.

    “하하하! 회장님 벌써 취하시면 어쩌십니까!”

    “!”

    그러면서 정목헌 회장에게 은근슬쩍 제안했다.

    “어떻게 2차는 저희 집에서 한 잔 드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좋은 안주 포장하겠습니다.”

    재환이 자리를 옮기자는 말을 하며 눈을 찡긋하자 정목헌은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생각하다 일어났다.

    그리고는 재환의 움직임에 맞춰졌다.

    “그래! 오늘 혜성그룹 가서 먹고 죽자!”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재환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나갔다.

    “재환아! 너 나랑 형님 동생 안 할래?”

    일부러 과장되게 움직일 때 요릿집 안에 있던 종업원들이 황급히 둘을 부축했다.

    그리고 준비된 차에 맞춰 재환은 곧바로 양재동 자택으로 출발하게 했다.

    재환은 옆자리에 앉아서 숙취 해소 드링크를 마시고 있는 정목헌 회장을 보고 말했다.

    ‘정 회장님. 이번 생은 제가 한 번 살려 드리겠습니다. [그 비극]이 지금 삶에는 일어나지 않게요.’

    그것을 약속하고 재환은 김 기사에게 출발하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