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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89화 (89/244)
  • 89- 남북···뭐요?

    재환은 빌 거위츠 부부를 안내하면서 혜성그룹 본사에서 신 회장과도 인사를 하게 했다.

    그곳에서 매년 100만 달러로 20년 기부를 약속했고, 그것에 대해 둘 다 환영해줬다.

    “사업만으로 끝난 게 아니라 자선사업에도 관심이 있으셨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시애틀에서 제 부인을 소개할 걸 그랬습니다.”

    빌 거위츠는 웃으면서 새로운 기증자 신재환을 향해 악수했다.

    “기증식을 위해서 제가 한 번 더 시애틀을 가야겠군요.”

    “아, 그때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거위츠 재단은 미국에 있는 수많은 자선재단과는 다른 방침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른 자선단체와 달리 소액기부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액기부를 받으면 그것에 대한 자금처리를 위해 따로 직원을 고용해야 하는데, 그런 비용 역시도 기부금을 통해 운용하게 되니 예산의 투명 집행에 문제가 생길 거라는 이유였다.

    그래서 재환 역시도 조금 크게 지른 금액이었다.

    “미래를 위해서 자선활동에 참여해주시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미스터 신.”

    마리아 게이츠는 선물 받은 꽃다발이 맘에 들었는지 향을 맡으면서 재환에게 말했다.

    그리고 재환은 자선재단 중에서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했다.

    “현재 혜성은 그룹 내에서도 교통시설 등에 있는 노숙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복지시설 마련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들의 남은 삶에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 역시도 좋은 자선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힘을 쓸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국내의 문제도 있지만, 시애틀부터 캘리포니아에 있는 아시아계 학생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머, 그 또한 좋은 방법이네요. 인제 보니 미스터 신이 자선사업에 대한 플랜이 확실했군요.”

    재환은 거위츠 재단을 통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모두 말했다.

    그렇게 자선사업 재단에 관한 이야기를 끝낸 뒤로 그들은 안산에 있는 혜성트로이카 공장으로 향했다.

    재환은 신형 컴퓨터들을 소개하고, 마이크로 OS를 쓰는 제품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자신들의 소프트웨어가 잘 쓰이고 있는 것을 보고 빌 거위츠는 흡족한 얼굴을 보였다.

    “이건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군요.”

    거위츠는 손가락을 풀기 시작하더니 시제품으로 나온 컴퓨터 win os 98을 이리저리 만져봤다.

    한글판이었지만, 거위츠는 단축 코드를 능숙하게 입력해서 영문판으로 바꾼 다음 벤치마크 테스트를 했다.

    그리고는 생각 이상의 속도에 재환에게 엄지를 날렸다.

    “훌륭해요. 이 정도면 미국의 PH사나 IMB사의 컴퓨터들 못지않은 성능입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거위츠는 그 뒤로 공장 이곳저곳을 보면서 깔끔한 기계들과 철저한 품질관리를 하는 혜성트로이카 안산공장을 돌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확실히 우리와 OEM을 맺기 좋은 공장 같군요.”

    규모도 적절하고, 숙련된 기계공들도 많으며,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분위기에 생산력도 좋았다.

    아내 마리아 거위츠가 재환과 자선재단 기부 논의를, 남편 빌 거위츠에게는 신제품 컴퓨터를 선보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뒤로 국내에서 기자, 정치인, 지자체장, 경제련의 다른 회장들은 재환의 안내를 받으며 움직이는 거위츠 부부와 한마디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이번 일정은 단 하나다.’라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가는 길에 김포국제공항에서는 거위츠 부부와 재환이 마지막으로 악수했다.

    “조만간 미국에서 보지요.”

    “미스터 신이 시애틀에 올때는 저희가 기증식에 올 기자들을 모을게요.”

    마리아는 자신이 직접 거위츠 재단에 대해 재환의 얼굴을 전미에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앞으로 좋은 파트너십을 기대 하겠습니다.”

    “땡큐, 미스터 신.”

    두 부부가 돌아갔을 때 재환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차에 올라탄 재환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 미국 일은 잘 풀릴 것 같고.”

    그 순간 갑자기 재환의 품 안에 있던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렸다.

    희경이었다.

    “네, 아버지.”

    [야! 신재환! 너 지금 어디야?]

    “?”

    다급하게 외치는 희경의 목소리에 재환은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물었다.

    “거위츠 부부 배웅하고 돌아가는 길이죠. 뭐 때문에 또 그러세요?”

    [너, 너··· 지금 당장 집으로 와!]

    “아, 뭐 때문인데요?”

    [시끄러! 급한 일이라 시간 없어! 오늘 모든 일정 다 취소하고 당장 달려와!]

    다급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재환은 대체 뭐길래 아버지가 저리 당황하면서 외쳤나 싶어 머리를 긁적였다.

    재환은 혀를 차면서 담배를 꺼냈다.

    “양재동 집으로 바로 갑시다.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으니 빨리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김 기사는 김포에서 양재까지 초고속으로 달렸다.

    ***

    재환이 집에 돌아왔을 때 그 안에는 혜성그룹의 고위 임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사색에 질린 얼굴로 분주하게 움직였고, 집안의 가정부들은 수시로 마실 음료를 나르고 재떨이를 비우느라 바빴다.

    재환이 안에 들어오자 임창훈이 다급히 달려와 인사하며 말했다.

    “아, 대표님. 오셨습니까?”

    “뭔 일인데 회장실이 아니라 여기들 모이신 거예요?”

    “크, 큰일입니다. 오늘 밤···.”

    “오늘 밤이요? 무슨 일 있어요?”

    임창훈은 떨리는 손으로 재환에게 속삭였다.

    “V...VIP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

    VIP의 초대라는 말에 재환의 눈이 가늘어졌다.

    “김대준 대통령이요?”

    “그, 그렇습니다.”

    재환은 세상 무서울 것 없었던 아버지가 왜 저리도 서두르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면서 오늘 밤 대통령의 초대라는 말에 청와대 구경을 할 수 있나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재로 들어갔을 때 그 안에는 화생방 훈련을 한 것처럼 매캐한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쿨럭, 쿨럭! 아유~ 좀 문이라도 여시지.”

    “아, 왔냐? 어서 와서 앉아라.”

    희경은 다급히 재환을 부르고 말했다.

    그리고는 피던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을 빤 뒤로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했다.

    “후우우, VIP의 긴급호출이라면 진짜 뭐가 있다는 건데.”

    “지금이 무슨 군사정권도 아니고, 투표로 뽑힌 양반을 뭐 그리 무서워해요?”

    “임마! 네가 몰라서 그래! 수틀리면 혜성이 지금 잘나가도 이거야!”

    희경이 목을 긋는 시늉을 하자 재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주변을 환기했다.

    그때 노크 소리와 같이 달려온 김범준이 있었다.

    “회장님. 준비해왔습니다!”

    “어, 가져와!”

    희경은 서류 꾸러미를 한번 쭉 둘러보면서 재환에게도 건네줬다.

    그것은 주요 계열사의 재무제표와 그동안 정치자금으로 희경이 준 개인 자산 목록들이었다.

    도자기에, 골프채에, 산수화에 별별 것을 다 선물로 바쳤다.

    “이거 중에 회삿돈으로 바친 건 없죠?”

    “미쳤냐? 내가 그 구설수 안 만들려고 3년 전에 비자금도 끄집어냈구만!”

    “네~ 그럼 개인 후원이니 이건 문젯거리가 될 게 없긴 하겠는데.”

    재환은 혹시라도 정부가 꼬투리 잡힐 게 없나 살펴봤다.

    사실 재환이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돈 문제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처리한지라 적어도 재벌 삼종신기인 [횡령, 배임, 탈세]는 자신의 체제 안에서 확실히 없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털어서 먼지가 안 나오면, 넘어트려서 먼지를 만들 수 있는 게 정부이기도 했다.

    ‘그래도 민주정권이니 그런 치졸한 짓까지는 설마 안 하겠지.’

    재환은 그것에 대해 넌지시 물었다.

    “총선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지 짐작 가세요?”

    “후우우, 그러니까 말이야. 영옥 형님에게도 물어봤는데, 모른다는 거야. 그냥 갑자기 VIP의 호출 오더란다.”

    뜬금없는 소환이라니 재환은 이 시국에 정권이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싶어서 머리를 굴려봤다.

    집 안에 있던 고위 임원들은 혹여라도 책잡힐 일에 대해 미연에 봉합해뒀고, 대략적으로 정보를 숙지한 희경과 재환은 청와대행을 앞두고서 탕에 들어갔다.

    부자가 들어가도 넉넉한 크기의 욕조 안에서 더운물에 몸을 담그던 희경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잘 해라. 그래도 한때 후원했던 분이라 우릴 이쁘게는 보실 거다.”

    “뭐, 진짜 갈구려고 왔으면 미리 언질이라도 줬겠죠.”

    “후우- 그래. 어차피 너도 이만큼 했으면 윗선에서 알아주는 거겠지.”

    군부정권과 민주화 시대를 넘나들며 사업을 해왔던 희경이었다.

    아무리 5대 재벌이라 하더라도 정부, 그것도 대통령과의 면담은 굉장히 두려운 일이었는데 혜성의 규모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희경과 재환은 목욕재개를 마치고, 오늘을 위해 준비한 새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대통령 각하를 다 만난다니.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네요.”

    명숙은 남편의 재킷을 챙겨주고 아들의 넥타이를 매주면서 말했다.

    “잘 할 수 있을 거야.”

    “네, 별일이야 있겠어요?”

    그리고 약속시간 4시간 전에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

    청와대로 차가 왔을 때, 멈춰선 곳은 효자동의 무궁화동산이었다.

    “저기가 옛날에 궁정동 안가로 유명했던 곳이야. ‘그 일’이 있은 뒤로는 허물어버리고 공원을 지었지.”

    “그렇군요.”

    딱히 신경은 안 쓰고 있었던 곳이었는데, 여기서부터 이미 청와대 경호팀이 신원 확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확실한 조회가 끝난 뒤로 차례대로 통과를 받았다.

    그리고 청와대 내부로 들어와 도착한곳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 정무수석이 있는 위민관이었다.

    그곳에 내렸을 때, 기다리고 있던 한영옥 실장이 반갑게 재환을 맞이했다.

    “아이고, 신 회장 왔는가?”

    “아, 비서실장님!”

    한영옥 실장은 껄껄 웃으면서 희경과 포옹하고 본관으로 안내했다.

    그 뒤로 정무수석, 민정수석, 경호처장과 수많은 수석들이 동행했다.

    그리고 본관에 도착했을 때, 귀빈들을 맞이하는 2층 영빈관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긴장감 넘치는 곳에서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김대준이 있었다.

    “아이고, 이거 귀한 손님이 다 오셨구먼.”

    희경과 재환을 박수치며 환대해주는 김대준은 옆에 있던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걸어와 반갑게 인사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각하!”

    “허허허, 나는 그런 딱딱한 것은 싫어하는디.”

    젊은 시절 사고로 불편한 몸이었지만, 하회탈 같은 인상으로 늘 웃는 얼굴을 한 노신사의 모습이었다.

    거기에 개그맨들 성대모사로 들었던 특유의 억양과 사투리는 딱딱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리고 시작된 술자리는 흑산도 홍어삼합을 시작으로 민어 매운탕과 매로 구이 등에 청주가 있었다.

    ‘대통령이 생선 진짜 좋아하시나 보네?’

    삼합의 보쌈 빼고는 대부분의 메인 안주가 해산물인 것을 보고 재환은 눈치껏 민어 매운탕 한술을 떴다.

    식사 자리가 이어질 때 김대준과 희경의 이야기꽃이 피워졌다.

    “하하하, 그때 생각이 아직도 나네요.”

    “손바닥이 합이 맞듯이 여당이 있으면 야당도 있어야 한다고 공동 후원을 다 했잖소. 그때 우리 동지들 도움 많이 받았제.”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하하하!”

    다행히 분위기는 좋았고, 재환은 이대로 조용히 마시다가 돌아가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때 김대준은 재환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글고보니 자네가 그 신 회장의 잘 빠진 아드님이구먼.”

    “아, 네. 신재환이라고 합니다.”

    “하하하! 그려. 내가 아침에 티브이를 보다가 신 사장을 보고서는 내 마음이 다 흐뭇했소.”

    재환이 아침방송에 나왔던 것을 대통령이 다 봤다고 한다.

    “그대 같은 젊은 피가 잘 해야 기업도 살고, 사람들도 사는 거요. 부디 올바른 경영인이 돼 주시길 바라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아버지와는 다르게 ‘각하’가 아니라 ‘대통령님’으로 칭하는 재환이었다.

    “에··· 이번에 총선이 끝나고 내가 남북관계에 대해서 좀 논의를 하고 있소.”

    “아, 남북관계라 하시면···.”

    희경이 묻자 김대준은 청주 한 모금을 마시며 말했다.

    “이번에 정상회담을 한 번 진행할까 하오.”

    “푸웃!”

    그 순간 재환은 대통령의 술자리에서 사레가 들리는 결례를 범했다.

    “죄, 죄송합니다. 쿨럭! 쿨럭!”

    어차피 각자의 자리에 있는 단상이니 누구에게 튈 일은 없었지만, 비서실장이나 경호실장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북정상회담··· 잊고 있었다. 지금은 새천년이야.’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

    원래는 김일성과 전임 대통령이 90년대 진행하려 했으나, 북한의 그 양반이 급살을 맞은 뒤로 정권이 바뀌고 나서 다시 진행된 일이었다.

    “아이고, 남북평화를 위해서 직접 만나시는 회담인 거군요.”

    “벌써 분단 된 지가 50년인데 이제는 평화를 좀 맺어야 하지 않것소?”

    모든 정치인은 자신의 임기 내에서 우선순위로 정하는 것이 바로 ‘남북평화’와 ‘경제발전’일 것이다.

    그리고 김대준은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하는 돌파구로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간 경제 교류를 준비했다.

    물론 이 당시에는 정말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일로 되겠지만, 재환에게 있어서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신재환 사장.”

    “예, 대통령님.”

    “첨단 산업을 발전시키고, 나라를 위해서 국산 종자들을 사들이고, 거기에 마이크로 컴퍼니와 같이 자선재단을 쓴다지?”

    “소신으로 한 일이었습니다.”

    “허허허, 하나하나가 다 멋진 일이었소. 그래서 말인데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혜성그룹이 나라를 위해서 좀 움직여 줄 수 있것소?”

    “어떤 움직임을 원하시는 겁니까?”

    “경제사절단을 꾸리려고 하는데 같이 평양으로 간다던가.”

    재환은 김대준을 보고서 활짝 웃으며 그 자리에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그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

    “어엇?!!!”

    재환은 대통령의 제안에 당당하게 ‘No’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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