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83화 (83/244)
  • 83-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오월동주~

    대화그룹은 요 며칠간 전 방위적인 압박으로 인해 미칠 것 같은 상황이었다.

    거기에 자신들을 돕기로 해줬던 도천상이 이번 서울 민자 역사 입찰에 대해서 점점 회의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김 회장, 아무래도 힘들 것 같소.]

    “비서관님! 제가 이런 부탁 잘 안하는 사람이라는 거 알지 않습니까?”

    [아니, 나도 이야기는 했소. 하지만 그쪽도 완고하게 나왔단 말이오.]

    한국방송과 삼우일보의 다큐멘터리 특선으로 ‘명동사채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도천상은 자신이 언급된다는 것에 대해 대노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손을 쓰려 했다.

    급기야는 ‘이 방송이 나가는 것을 막아 달라!’라고 대화그룹에 요청하며, 자신이 아는 정치권에게 손을 댔으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총선이 3개월 남은 상태라 잘못하면 사채업자와 정치인들의 유착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어 쉬쉬하게 된 것이었다.

    거기에 청와대 내의 비서실에서도 민정수석에게 보도지연을 김승열이 직접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차라리 김 회장의 이름으로 방송정지 가처분신청을 하는 게 어떻겠소? 심사가 될 것 같은데요.]

    “이미 했습니다. 그리고··· 강행하겠다고 합니다.”

    [후우, 유감이군요.]

    결국 민정수석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형식적인 인사 뒤로 통화가 끝났다.

    “···.”

    통화를 마친 뒤로 김승열은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주체 못하고 들고 있던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짝-

    대리석 바닥에 깨져나간 휴대폰을 몇 번이고 짓밟다가 급기야는 회장실 안에 있는 화분이나 전화기 등의 물건을 집어던져 있는 대로 부숴버렸다.

    회장실 밖에서 까지 들릴 정도였고, 명동의 대화그룹 본사 전 임직원이 공포에 질릴 정도의 분노가 뿜어져 나왔다.

    “으아아아아!!”

    쾅! 콰아앙!

    골프채를 꺼내 TV까지 박살내버린 김승열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파에 쓰러졌다.

    “후우··· 후우···.”

    넥타이를 거칠게 뜯어내고 힘겹게 숨을 고르면서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한 원흉에게 강한 분노를 보였다.

    “혜성의 그 새끼 나불거리는 거에 몇 놈이 흔들리는 거야! 신재환 그 놈이 뭐라고!”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 대화그룹의 비서실과 기획실 임원들은 목숨 걸고 안으로 들어가 극대노한 김 회장을 말렸다.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참으셔야 합니다!”

    곧바로 달려와 넙죽 엎드리면서 제발 진정해달라는 요청에 김 회장은 골프채를 들고 그들을 내리치려고 들어 올렸다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열 받아도 차마 함께 한 부하들을 구타할 수는 없었다.

    “청심환··· 청심환 하나 가져와.”

    “예, 회장님!”

    비서실장이 급히 구비해뒀던 청심환을 안쪽 재킷에서 꺼내 바쳤고, 곧바로 물도 떠왔다.

    껍질을 거칠게 뜯은 다음 금박의 청심환을 입에 넣고 으적으적 씹으며 물을 들이켠 김승열은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임원들은 이 자리에서 또 벌어지고 있는 ‘대화그룹의 폭탄’을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만약 그것까지 이야기한다면 김승열 회장이 고혈압으로 쓰러질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막 달려오는 대화가의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콰앙!

    “형님! 승열 형님!”

    “!”

    김상열 대화 이글스 구단주 겸, 대화정보통신 사장이 달려왔을 때 난장판이 된 회장실과 임원들이 겨우 부축하는 김승열 회장을 볼 수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 그···그게···.”

    “빨리 말해 이 녀석아!”

    “기, 김 사장님!”

    비서실장이 어떻게든 말리려고 했지만, 다시 한 번 퓨즈가 올라온 김승열을 막을 수 없었다.

    “숨기는 거 없이 다 불라고!”

    김상열은 자리에서 주저앉아 현 상황에 주저앉아 말했다.

    “K, KS··· 경선 그 망할 놈들이 저희 무선사업부를 노리고 적대적 인수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 이이···.”

    별안간 KS가 대화를 노린다는 말에 결국 김승열의 눈이 뒤집혔다.

    ***

    그날 저녁.

    재환이 서울역 인근에 있는 HT 호텔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을 때, 라디오 뉴스에서는 최대현이 나와 KS 비전 21세기 플랜을 발표하고 있었다.

    [외환위기를 벗어났던 전 국민과 함께! 저희 KS가 같이 움직일 것입니다. 앞으로 수많은 일자리와 신기술을 위해 움직이겠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미래 플랜에서 KS텔레콤과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휴대폰 사업에 대해 선언했고, 그로 인해 ‘적당한 인수대상’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재계에서는 KS가 대놓고 대화정보통신을 노리고서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업계 CDMA폰 1위인 삼신전자가 상당히 불쾌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대현과 현규가 서로 술 한 잔 하고서 적당히 합의를 했다고 한다.

    재환은 라디오 채널을 돌리며 관련 뉴스를 연신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재환을 찾는 손님이 찾아왔다.

    “신재환 사장님. 되십니까?”

    억양이 약간 독특한 한국어로 묻는 노인을 보고서 재환은 만날 사람이 왔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제가 신재환입니다.”

    “만나서 반갑소, 나 김희철이라고 하오.”

    김희철, 일본 이름은 가네무라 히로요리로 재일교포민단 내에서도 꽤나 실세로 불리는 고위 간부였다.

    그리고 지금은 샤를로트그룹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이 자리에서 서울 민자 역사 사업에 참여한 큰 손 중 하나였다.

    “앉으시지요.”

    “좋소.”

    김희철이 자리에 앉자 재환은 라디오를 접고서 차를 시켰다.

    티타임을 가졌을 때, 김희철은 주변을 보면서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현해탄을 경계로 내 뿌리라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많은 세월이 흘렀소.”

    “그렇습니까?”

    “허허허, 옛날만 하더라도 정말 전쟁 이후의 폐허였는데 이렇게 발전한 것을 보면 내가 다 흐뭇하단 말이지.”

    북한의 조총련계와 같이 대한민국의 민단 역시도 대부분은 자신들의 뿌리를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것이 과해서 자칫 불법과 탈법사이의 일도 도맡아 한지라 이런저런 구설수가 있긴 했지만, 사업하는 사람들, 또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민단과 각별한 관계를 맺었다.

    “우리 집안은 원래 제주도 출신이었소. 그러다가 할아버님이 일본으로 넘어와 도쿄에서 다시 일어났지.”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재일교포로써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말에 재환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사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런 감성을 건드리는 말을 들으니 재환은 대략적으로 이 사람이 어떤 유형인가에 대해서 빠르게 분석했다.

    “내 이야기만 해서 좀 재미가 없는가?”

    “아니요. 그 당시의 격동의 세월을 실시간으로 들으니 영광입니다.”

    재환은 미소 지은 얼굴로 그것을 모두 들어줬다.

    그리고 흡족한 김희철이 본론에 들어갔다.

    “샤를로트와 서로 합의를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

    샤를로트가 먼저 동맹을 제안한 것이다.

    “만약 신재환 대표가 그것을 승낙한다면 내가 직접 샤를로트를 설득할 수 있소.”

    재환은 그 말을 듣고서 넌지시 말했다.

    “제가 알기로는 청량리역 민자역사 단 한곳의 입찰로 시작했을 때는 샤를로트와 대화가 손을 잡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젠 아니지. 대화는 이번 사업에서 빠질 거니까.”

    김희철의 말에 재환은 머릿속에 대충 그림이 그려져서 피식 웃었다.

    ‘이것으로 도천상의 존재는 방송을 타지 않겠군. 다큐도 그냥 평범한 쩐주들 이야기로 끝날 테고.’

    차라리 사업을 포기할망정 양지로 끌어올려지는 것을 거부했던 도천상이 스스로 포기한 것 같았다.

    “결국 그렇게 되는군요.”

    “그대가 한 일이잖소?”

    “···제가 그렇게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하하핫.”

    “겸손을 부리면 그 공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다 들어줬는데, 신 대표 그대가 뺄 것은 또 뭐요?”

    재환은 그 말을 듣고는 입술을 어루만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물이긴 했지만, 너무 한정된 싸움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공격할게 너무 많았죠.”

    만약 그 엄청난 자본이 양지에서 움직이는 기업가였다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승률이 1%가 안됐겠지만, 지하경제의 거물이라는 약점을 잡고 싸운 것이 먹힌 일이었다.

    그리고 저쪽 역시도 자금과 정보는 만만치 않으니 안 것일 것이다.

    “샤를로트의 신 회장도 이번 일에 대해서 아주 흥미롭게 보시더군요. 도천상을 거꾸러트린 이야기를 두고요.”

    ‘뭐,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어쨌거나 동맹을 제안했을 때, 재환은 잠시 생각했다.

    사실 원래 역사로 생각한다면 혜성의 부도, 아성그룹의 유통업 분리 이후 서울 민자 역사는 샤를로트와 대화가 양분했다.

    청량리역, 서울역 모두 부지와 건설은 대화건설이 만들고 대화유통이 운용했지만, 실 입주 임대는 샤를로트가 운용했던 시스템으로 말이다.

    재환은 대화 대신 혜성과 그렇게 움직이자는 샤를로트를 두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세 가지를 댔다.

    “서울역, 청량리역, 창동역. 셋 모두 저희가 손에 넣고 싶습니다.”

    “허허, 그렇게 된다면···.”

    “대신 창동역은 샤를로트가 위탁하여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운용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

    재환의 역제안에 김희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재환은 여기서 삼우일보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오프더 레코드의 그 자료를 꺼내기로 했다.

    “그건 너무 과한···.”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서울역과 청량리역의 운영은 저희 혜성쇼핑이 하고 싶군요.”

    아직 보도되지 않은 신문기사였고, 그곳에는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다.

    [대한민국의 심장, 그 교통의 관문. 하지만 자본은 일본?]

    “!”

    재일교포들의 투자를 모두 ‘일본의 손길’로 매도해버리고, 거기에 대해 서울역을 건드렸다는 기사가 나올 ‘뻔’ 한 적도 있다는 재환의 카드.

    그것을 보고 김희철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저는 존중합니다. 재일교포 역시도 우리나라를 위해서 움직인다면 충분히 동지로 받아들일 수 있고, 김 위원님 같은 분들이 계시다면 우호적인 한일관계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 이런 기사가 어떻게!”

    “그거··· 제가 막은 겁니다? 페어플레이를 위해서 말이죠.”

    지금이야 메이저 신문 한 편이지만, 다른 언론사들이 이 떡밥을 물면 어떻게 되는지는 민단도, 샤를로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020년대의 sns 스마트폰 세대라도 난리가 날 일이었는데, 지금 같은 2000년이면 그 국민감정은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는다.

    김희철은 그것을 보고서 거칠게 신문을 구겼다.

    “후우- 어떻게 같은 동포라는 자들이!”

    김희철을 향해 재환은 넌지시 제안했다.

    “동맹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울역과 청량리역은 혜성쇼핑이 운용하게 되겠지만 말이죠. 단.”

    “단?”

    “저희가 유감스럽게도 건설사가 없어서 말이죠. 그 역사에 대한 설계, 그리고 건설에 대해서는 ‘샤를로트’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

    이러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샤를로트는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쇼핑몰을 충분히 지을 수 있는 자체 건설사를 소유하고 있고, 혜성은 입찰을 할 수는 있어도 건물을 지으려면 다른 건설사의 손을 빌려야했다.

    그러니 샤를로트와의 동맹을 ‘매장 양분’이 아닌 ‘건설과 유통’으로 이원화 시켜서 움직이자는 제안이었다.

    ‘이러면 샤를로트쇼핑은 배 아파도, 샤를로트건설은 확실히 뜬다. 그 그룹을 모두 소유한 신 회장이 주판 한 번 굴릴 법 하지.’

    그리고 눈앞에 있는 민단 역시도 투자금은 100% 이상 회수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민단에게 있어서는 샤를로트에게 투자하는 돈을 ‘유통’이 아닌 ‘건설사’로 돌린다는 계약서 하나만 고치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것을 들은 김희철은 이 제안에 차가운 냉수를 시켜 쭉 들이킨 다음 연신 생각했다.

    “나나 민단자본은 그것에 대해 찬성할 만 하오. 하지만 신 회장은···.”

    “그분도 명분과 실리 중에 실리를 선택하실 겁니다. 어느 쪽이든 돈은 충분히 들어오니까요.”

    재환이 역제안한 것이 김희철을 포함한 민단 세력들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그들은 정식으로 샤를로트 신 회장과 이야기를 하고 이사회에 정식으로 안건을 내 놓아 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길었던 그 제안은 승낙됐다.

    ***

    [다음 소식입니다. 서울의 철도와 국철역 일대를 개발하는 민자역사 사업에서 대화유통이 입찰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대화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명동쩐주들에 대한 다큐에서 도.천.상 그 세 글자는 거짓말같이 편집되어 방영이 되었다.

    삼우일보의 칼럼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나 보다.’ 라는 명동 쩐주 황제의 존재는 그저 넘어가는 존재가 되어 다시 한 번 음지에서 그 이름이 언급되는 경우는 없게 되었다.

    [이후 대화그룹은 내실을 다지겠다는 선언과 함께 기존의 계열사에 대한 투자로 선회하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재환은 뉴스를 보면서 잘 포장된 신상품을 열어봤다.

    그 안에는 신상 만년필들이 가득했다.

    하나는 재환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샤를로트에 건네줄 양해각서 사인용이었다.

    “내일이지?”

    희경의 물음에 재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역사적인 사인식이죠. 아버지도 준비하셔야죠.”

    “히야~ 우리 혜성이 서울역사 백화점이라···.”

    재환은 그러면서 한 가지 기획서를 또 하나 건네줬다.

    “이건 또 뭐냐?”

    “큰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재단에 대한 건데요. ‘노숙자 재활쉼터’ 예산기획안입니다.”

    “뭐?”

    “제가 입찰할 때 그랬거든요. 민자역사면 그 일대에 있는 노숙자들 문제 어떻게 할 거냐고. 거기에 대해 재활시스템과 복지시설을 운용하고, 그러면서 지금의 노숙인를 반으로 줄이려고 합니다.”

    “이게··· 되려나?”

    “싹 쓸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예산을 줘서 데려가 재활시키는건데 성과는 있을 겁니다.”

    재환의 말에 희경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것을 희수에게 건네주기로 했다.

    셋의 입찰에서 둘이 손을 잡고, 하나가 포기한 상황이 되었으니 싸움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승리는 혜성그룹이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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