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82화 (82/244)

82- 장군을 부른다면 우리는 멍군을 내밀겠다.

재환은 허 청장과 박 의원의 오붓한 시간을 두고서 그 둘이 나왔을 때 가는 길에 대해 공손히 인사했다.

“아, 식사는 괜찮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하~ 오늘 아주 잘 먹고 가요.”

“신 대표는 언제 나하고도 한 번 식사 자리 가집시다. 그렇지 않아도 회장님도 한 번 봬야겠군요.”

둘 다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차에 올라탔고, 두 운전기사는 박 의원과 허 청장을 안전히 집으로 모시기 위해 움직였다.

재환은 그 둘이 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자신도 차에 올라타 눈을 감았다.

“양재동으로 갑시다.”

“네, 대표님.”

김 기사는 곧바로 출발했다.

***

그리고 혜성그룹은 또 다른 공격을 받았다.

“이런 일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혜성그룹 총괄본부장에 오른 김범준은 오랜만에 재환과 희경을 뵌 자리에서 자신의 불찰로 생긴 일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하지만 희경은 혀를 끌끌 차면서 손사래를 찼다.

“아니야. 김승열이가 지 승질에 수틀리면 별짓 다하는 놈이라 그런 짓 할 낌새가 있긴 있었어.”

민자 역사 입찰을 하는 세 개의 유통사는 각자의 주력 상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주력으로 했다.

그리고 대화그룹의 대화유통이 혜성에게 선빵을 쳤다.

“김 본부장님. 규모가 얼마나 된 답니까?”

재환의 물음에 김범준은 무거운 얼굴로 현 상황에 대해 말했다.

“일단 2분기부터 대화그룹의 백화점인 갤럭시아와 슈퍼마켓, 편의점 사업부인 D스페이스에서 저희 상품들을 차례대로 빼기로 했답니다.”

“대충 상품이 뭡니까?”

“혜성제과, 혜성시계, 혜성트로이카, 혜성전자입니다.”

“거기가 전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순간 재환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 놈들도 밥은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나보네요.”

“무슨 말이야?”

희경의 물음에 혜성은 대화유통이 아무리 혜성 물건을 치워도 절대 못 건드릴 한 가지에 대해 말했다.

“혜성바이오팜이요. 차마 쇼핑센터에 야채하고 곡식은 못 빼는 법이죠.”

“아, 하긴···.”

국내 종자의 절반 이상을 석권하고 있는데, 그걸 빼버린 순간 대화유통은 수입산 농산물만 가득한 상황이 될 것이다.

“일단 생산량은 차질 없이 합시다. 남은 물량은 저희 쇼핑 내에서 처리하죠.”

“네?!”

“야! 신재환!”

희경이 소리쳤지만, 재환은 손가락을 까닥였다.

“소화 가능한 물량입니다. 기존의 혜성쇼핑에서 흡수하게요.”

“이 녀석아! 그거 계열사에 밀어내기야! 네가 사장이라고 그렇게 하면 그게 매출에 제대로 된 성장이냐?”

대형 유통업체 납품상품은 자체적으로 소화시킨다는 게 밑에 사람들이 얼마나 죽어나갈 일이라는 것을 아는 희경의 말이었다.

하지만 재환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그래서 물량 2배로 소화시키는 대가로 이번에 성과금을 2배로 해 주려고 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요.”

“!”

“어차피 돌고 도는 돈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해결 할 테니. 진행해주세요.”

“지, 진행이라 하시면···.”

재환은 김범준에게 어설프게 물건 빼다가 장난질 하는 대화에게 정의의 철퇴를 날려주기로 했다.

“김범준 본부장님. 기자회견 준비해주세요. 우리는 이번 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론에 알릴 것이며 아예 싸우자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할 겁니다.”

“그, 그렇게 되면.”

“어차피 이런 일이 재계에서 한두 번 벌어진 일도 아니잖아요.”

“···.”

재환은 자신이 어린 시절 일이지만, 입찰 기업 간의 상황에 대해서 과거 사례를 찾아 넌지시 말했다.

“찾아보니 과거 샤를로트 그룹도 그랬다고 하더군요. 독립한 회장의 동생이 NS그룹이라고 식품과 유통업을 진출했을 때요.”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유통업계에서는 계속 퍼지는 이야기였다.

“동남권 유통단지에 형제가 나란히 입찰하자 샤를로트는 곧바로 자사에서 NS 물건 다 빼버리고 견제해서 겨우 합의했다고요.”

“그, 그래도 그게 언제 적 일인데.”

“다를 바 없어요. 유통과 제품으로 기업 간에 장난질 치면 어떻게 되는지 이참에 보일 겁니다.”

비록 뒷배는 도천상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칼은 대화그룹이었다.

재환은 도천상 견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한 것 같으니 아예 대화를 두들겨서 최종입찰 까지 그로기 상태로 만들어버릴 계획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공식적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수많은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재환은 모두에게 발표했다.

[최근 서울 민자역사 사업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 자리에서 대화유통이 저희 혜성의 제품들을 빼겠다는 선언이 나왔습니다.]

이미 그 말로도 기자들이 웅성거리고 있을 때, 재환은 당당하게 종이에 적힌 리스트를 꺼내고 말했다.

“이것이 대화유통에서 빼는 저희 혜성그룹의 제품입니다.”

그리고 재환은 그 명단을 기자들 앞에 보였다.

아마 이 기사는 오늘 9시 뉴스에 나올 것이고, 내일 아침쯤 되면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사건의 내막을 논할 것이다.

재환은 종편이 없던 시절이라 이 재미난 이야기가 지상파 내에서만 소모될게 아쉬웠지만, 그만큼 국민들의 술안주거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해 정확히 두 시간 뒤에 대화그룹에서 전화가 왔다.

희경은 회장실에서 김승열과 수화기 너머로 싸우고 있었다.

“아, 그러니까 몇 번을 말해? 자네들이 먼저 시작한 일 아닌가! 강남 백화점때도 안하던 추접스럽게 견제 처한 게 지금 한 게 누구냐고!”

김승열 회장 성격이 보통이 아니어서 ‘다이너마이트’라는 별명이 있다고 하지만, 그건 희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폭탄과 폭군이 만났으니 전화 통화 만으로도 고성이 오갔으며 급기야는 오랜만에 아버지의 뚜껑이 열린 모습을 본 재환이었다.

“뭐가 어째? 야! 김 회장! 자네 지금 나 협박하나? 내가 10년은 더 오래 살았어. 이 짜식아! 네놈 학교다닐 때 내가 서울에서 공장 두개를 지었다!”

급기야는 나이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싸움이었다.

10분은 더 회장실이 쩌렁쩌렁 울렸고, 그 다음에는 희경이 전화기를 부수는 ‘와장창!’소리와 함께 겨우 끝이 났다.

“후우··· 후우···.”

“아니, 뭐 그렇게 열을 빼셨어요? 살살 약 올리고 그냥 끊어버리지.”

“빌어먹을 새끼! 쩐주 통해 몇 조 뒷배 있다고 지가 유세를 떨어?”

희경은 속이 타들어 가는지 찬물을 가져오라고 한 다음 벌컥벌컥 들이킨 다음 담배를 물어 쭉 빨아들였다.

이것으로 대화그룹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어차피 야구로나 유통으로나 입찰로나 결국은 싸워야 될 상대.

그동안 비슷한 나이대의 오너일가를 가진 육공회라고 써클 만들고 다녔지만, 모든 재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없다면 경쟁 상대로써 용감하게 싸워 이긴다.

재환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다.

***

“네, 그건 잠시 미뤄주세요.”

[그래도 괜찮겠어? 둘이 싸우는데 어부지리가 안 될까봐 나는 신경이 좀 쓰이는데?]

재환은 KS호텔을 향하면서 삼우일보 홍석준 회장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사채시장에 대해 칼럼으로 한 번 긁었으니 이제는 공영방송사들이 만든 ‘위험한 사채의 덫’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도천상과 명동쩐주들의 이미지를 ‘국썅’으로 만들어 버릴 한 방이었다.

다만 재환이 대화와 도천상이랑 싸울 때까지 샤를로트와 민단에 대해서는 거의 공격이 없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재일교포 민단들에 대한 칼럼으로 한 방 날리려 했지만, 재환이 거절했다.

“아직 거기까지 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러다 싸움만 실컷하고 샤를로트가 낼름 손을 뻗으면 어째?]

“아뇨. 오히려 물밑공작만 몇 번 하고, 입찰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점점 묻히니까 그쪽에서는 무립니다. 관심 가지려고 별 짓을 다할거에요. 그때 쳐야 됩니다.”

재환은 조용히 묻어간다는 게 이런 대형 입찰 때는 얼마나 치명타인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언론에서 혜성그룹이 대화그룹이 날린 ‘장군’에 농산물 납품 거부로 ‘멍군’을 날렸고, 샤를로트와 민단은 훈수도 못 둘 자리였다.

“일단은 보류해주세요. 단···.”

[으음?]

“그 관련 자료 좀 제게 따로 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그것에 대해 물어본 재환은 홍석준의 승낙으로 미소를 지으며 통화를 마쳤다.

“대표님. 곧 도착합니다.”

“네, 차에서 내리시면 뷔페에서 저녁 식사 하시죠.”

“괜찮습니다. 시간 좀 길어질 수 있으니 천천히 식사에 차 한 잔 하셔도 시간 충분합니다.”

재환은 차에서 내리고, 김 기사에게 법인 카드를 건네줬다.

“두 시간쯤 있다 뵐게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재환은 기다리고 있는 KS호텔의 경호팀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대현이 있는 상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안에서는 최대현이 두 팔을 벌려서 재환에게 다가왔다.

“어서 오게~ 브라더~ 육공회의 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네~”

“아 왜 그래요! 그리고 브라더라니.”

“왜? 지난번에 우리한테 ‘형제들이여!’ 라고 말한 게 누구냐? 흐하하!”

대현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재환에게 앉으라고 말했다.

“지난번에 말한 그 와인 가져오고, 안주는···.”

“김치 금지. 자주는 못 먹겠어요.”

“···수비드 수육인데?”

“그럼 조금만요.”

대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박수 한번을 쳤고, 호텔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냄새만 맡아도 혹할 수준의 돼지 수육과 경선시절부터 그렇게 절치부심한 스페셜 김치가 도착했다.

그리고 오늘 가져온 와인은 스페인산으로 최대현이 직접 출장 가서 골라온 것이라 했다.

“확실히 남유럽 애들이 먹을 게 많아. 저 돼지도 그렇고, 와인도 그렇고 육질이랑 목 넘김이··· 어휴~”

호텔리어가 능숙한 손으로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땄고, 곧바로 따르지 않고 5분간 맛과 향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되었을 때, 대현이 와인 잔을 들자 호텔리어가 가서 곧바로 따라줬다.

그 다음 재환의 잔도 채워졌고, 대현은 한 잔 하자며 잔을 내밀었다.

첫 맛을 음미했을 때, 상당히 개성있는 맛이라고 생각하며 삶은 고기 안주왕 상당히 어울릴 거란 생각이 드는 재환이었다.

“괜찮네요.”

“괜찮은 수준이 아니지~ 베리~ 굿이야.”

유럽 출장 다녀오더니 맛집 투어만 하고 왔는지 살도 많이 쪘고, 능글거리는 인상이 된 대현이었다.

“그래, 사업은 잘 되고?”

“여전히 똑같죠. 형님도 뉴스는 보셨죠?”

“대화그룹이 너희 물건 뺀 거? 그럴 거 같았어. 김 회장이 워낙 성격이 다이너마이트라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거거든.”

대현은 와인 잔을 쭉 비운다음 새로 채우고 말했다.

“그래도 이번 입찰 끝나고 나중에 경조사 같은데 한번 참여해서 술 한 잔 하면 또 잊을 사람이다. 뒤끝은 없거든.”

“그래요? 그럼 저랑 형님이 같이 움직이실 수 있습니까?”

“!”

재환이 또 뭔가를 가져온 것 같아서 대현은 흥미를 보였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휘하의 호텔리어들을 모두 나가게 했다.

그리고 대현은 미소가 사라진 채로 진중한 모습으로 재환에게 물었다.

“내가 뭐 해줄거라도 있는 거야?”

“제가 아니라 형님의 사업을 위해서이죠. 저희는 쪼금의 반사이익만 얻은 거고요.”

“말해봐라.”

대현의 말에 재환은 다음 수를 위해 말했다.

“지금 KS텔레콤이 국내 1위의 통신사를 위해서 세기통신의 대주주로 오르셨죠?”

대중적으로는 011의 번호와 017을 쓰는 번호의 통신사가 한 가족이 되었다고 알려진 일이었다.

“휴대폰도 슬슬 만드셔야 할 게 아닙니까? KS텔레시스가 만들어진지··· 한 삼 년 됐죠?”

“그래서 적당한 기술력을 가진 회사를 알아보고 있긴 하지. 해외에도 제법 쓸 만한 회사가 많았어. GSM방식으로 말이야.”

당시 2G시대에는 CDMA방식과 GSM의 방식으로 두 규격이 나뉘어 졌는데, 이것은 훗날 4G의 LTE와 와이브로 시대의 규격경쟁과 같았다.

CDMA시장은 삼신전자의 휴대폰이 독보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후발주자인 아성이나 GH, 대화 등이 참여했고, 통신사만 운용하던 경선은 KS로 이름을 바뀐뒤 늦은 타이밍에 움직였다.

“출발이 늦었을 때 빨리 경쟁하는 방법이 뭘까요?”

“신기술을 개발해서 남들 한걸음 때 열 걸음씩 뛴다거나, 아니면···.”

“앞서 뛰는 놈 잡아서 확 먹어치워야죠.”

여기까지 말하니 대현은 무슨 말을 할 건지 알아서 와인을 쭉 들이켰다.

“나더러 대화정보통신 인수하라고?”

“거기 광고는 번드르르 했는데, 단말기 점유율이 5% 정도라죠?”

“그리고··· 선발주자 제치려고 신기술은 잔뜩 가지고 있지만 공교롭게 입찰사업으로 사채까지 끌어 쓴 대화그룹이 뒤통수를 내밀었네?”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오니 대현은 신재환 저 녀석이 정말로 친한 동생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형님, 이참에 신기술 잔뜩 가진 대화정보통신 인수시도 하세요. 지금부터 KS증권 통해 주식만 사들이면 됩니다.”

“너, 우리나라 재벌가 사이에 말없이 적대적 인수 합병 시도하는 게 얼마나 경우 없는 짓인지 알고 하는 소리지?”

잘못하면 KS그룹이랑 대화그룹이랑 영원히 척을 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거야 뭐, 김승열 회장은 뒤끝이 없는 분이라 하셨으니···.”

재환은 아까 대현이 한 것처럼 손가락 두 개를 입가에 가져댔다.

“언제한번 경조사에 가서 한잔 탁! 하면 풀리시지 않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어도 한번 해 볼만 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유럽에서 비싼 돈 들여가며 가져오느니 국내에서 위기에 빠진 회사를 인수하고, 거기에 대해 휴대폰 시장에 제대로 경쟁을 시킬 일이라고 하고, 일이 잘못된다 하더라도 악업은 혜성이··· 아니 신재환이 가진다.

“좋아, 내 이사회에서 휴대폰 사업 확장 논의는 한 번 해 볼게.”

대현의 승낙에 재환은 미소를 지으며 김치에 수육을 싸서 한입 먹고 와인으로 입을 시쳤다.

그리고 이 건을 끝으로 아까 통화했던 ‘샤를로트’와 ‘민단’의 존재들도 슬슬 교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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