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81화 (81/244)
  • 81- 사업 따려고 돈 주는 취미 없어.

    도천상은 집 안에서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었다.

    호언장담을 하면서 민정수석과 경제수석에게 줄을 댔지만, ‘VIP의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라는 말만 나왔다.

    생각 같아서는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었지만, 결국 그 일에 대해서는 실패했다.

    도천상은 거기에 대해서 ‘플랜 B’를 실행하기로 했다.

    똑똑똑-

    “들어 와.”

    도천상이 말하자 염 사장이 들어왔고 조용히 주변을 살피면서 다가왔다.

    “어떻게 됐어?”

    “회장님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그 사람 정말 미래를 위한 욕심이 많더군요.”

    도천상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며 안도했다.

    “흐흐흐, 역시 그렇겠지. 그리고 그 친구는?”

    “다를 바 없습니다. 다른 쪽으로 욕심이 많아 보이지만 말입니다.”

    도천상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구워 삶을 녀석은 어디서든 나오는 법이지. 잘 구슬려 보라고.”

    “네, 회장님.”

    결국 인간은 음지건 양지건 돈을 찾게 된다.

    그리고 도천상은 양지에서 재벌들이 아무리 카드니 캐피탈이니 해도 원초적으로 당장의 현금을 원하는 ‘욕심쟁이’들이 아직도 넘쳐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럼 하던 대로 하게. 어차피 그쪽만 잡으면 끝난 게 아닌가?”

    도천상은 쉽게 가기로 했다.

    어차피 가장 큰 사업은 민자 역사이니 그쪽부터 잡은 다음에 휘하의 사장들도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천천히 만들어나가기로 말이다.

    ***

    [그때 그 시절- 사채에 대한 이야기.]

    “이거 재밌네요.”

    재환은 사무실에서 삼우일보의 전문 칼럼을 보고서 회장실이건 기전실이건 모두 돌렸다.

    이제는 남영동에 남아있던 회장님을 포함한 모든 임직원들이 내려온지라 재환의 활동반경은 짧으면서도 다양해졌다.

    수시로 계열사 이곳저곳을 돌면서 인사를 하거나, 음료수를 돌리고 지금같이 신문 한편 가지고 돌아다닐 수도 있었다.

    [이 시리즈 계속 올라 올 테니 삼우일보 매일 챙겨주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재환은 사채업에 대해서 낱낱이 해부하고 있는 삼우일보의 칼럼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좀 띄워주는 것 같긴 하면서도 그 당시의 거물들인 ‘명동 불곰’ ‘광화문 김노인’ ‘종로 대모님’등으로 후원자라는 개념으로 말했지만, 이후 그들의 패악에 대해서도 낱낱이 고했다.

    조금의 미화도, 그렇다고 악행을 과장하는 것도 아닌 이야기였다.

    그 뒤로 명동 사채시장에서는 그 반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재환은 그 뒤로 기전실 직원들을 이용해서 현재 철도청의 상황에 대해 살펴보기로 했다.

    사실 자금력 싸움을 한다고 하더라도, 정작 중요한 민자 역사 입찰에 대한 정보는 너무도 부족했다.

    재환은 당분간 명동 쩐주들과 민단을 긁는 것은 삼우일보에게 맡기고 자세한 것을 알기로 했다.

    ***

    한편 철도청장은 대전정부청사에서 부름을 받고 급히 평창동으로 올라왔다.

    평창동에서 가장 큰 한옥에 도착한 철도청장 허명국은 안내를 받고 들어왔다.

    “어서오시오.”

    “아, 안녕하십니까? 도 회장님.”

    퇴임이 3개월 남은 상태에서 조용히 지내려 했지만, 말년에 초대형 사업인 서울 3개역 민자 역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직생활 정리를 하던 중 이전부터 그 이름을 알았던 도천상의 초대를 받았다.

    그가 정, 관계에 바치는 후원금이 엄청나다는 것 역시도 말이다.

    “은퇴를 앞둔 사람을 이리 불러주시니 영광입니다. 회장님.”

    “허허허, 나라를 위해서 허 청장이 노력한 이야기는 모두가 알고 있지 않소?”

    도천상은 허 청장을 극진히 대접하면서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그 당시에 고속철도 개량 사업을 정부에서 할 때, 많은 자금이 들었지. 그래서 나에게도 손을 빌리는 건설사가 많았소.”

    “아,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철도라는 것이 원래 나라의 혈관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곳을 운영하신 허 청장님의 공이 커요.”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그러면서 웃음 속에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도천상은 조용히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들겼다.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조용히 다가오는 한복차림의 수하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과 세트를 상자에 담아왔는데, 그것을 허 청장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약소하지만 앞으로 더 큰일을 하시라는 뜻으로 드리는 작은 후원금이요.”

    “!”

    혹시나 해서 그 상자 안을 보니 겉에는 과자로 있지만, 그 밑에는 묵직한 현금다발이 가득했다.

    그것도 만원권이 아닌 미화 달러로 100달러짜리 지폐들이었다.

    “이, 이건!?”

    “은퇴 이후 이번 총선을 준비하신다는 이야기 들었소. 그 돈이면 충분히 좋은 자리 얻을 수 있을 것이오.”

    “회, 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도천상은 자신이 눈여겨본 기업가와 관료, 정치인들에게 상당한 양의 후원금을 건넸다.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로만 들었는데, 자신이 선택받은 것이었다.

    “정치자금이라는 게 말이오. 자기 금고에서 꺼내다 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거든.”

    도천상은 절대 탈이 나지 않을 것을 말하면서 자신의 서명이 담긴 종이를 건네줬다.

    “이것을 가지고 있다면 전국 어디에나 있는 우리 동지들이 필요할 때마다 정치자금을 바칠 것이오.”

    “···.”

    “아 물론 이건 첫 선물로 주는 것이니 그걸 가지고 입을 닦는다 해도 상관없소.”

    거절한다면 그것밖에 안 되는 자이니 굳이 자신이 후원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고, 저 정도의 돈이야 얼굴 한 번 보고 보시했다 쳐도 상관없을 금액이었다.

    “천천히 생각해 보시오. 오늘 이 자리에서 그대에게 준 것은 아주 작은 선물에 불과하니 말이오.”

    “···.”

    그리고 도천상은 한 마디 더 했다.

    “아, 그냥 가져가면 문제가 될 것 같으니 타고오신 차 트렁크에 넣어둘 수도 있소.”

    “잘···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그 말을 들은 도천상은 껄껄 웃으면서 새천년의 또 한 명이 자신의 돈으로 움직이는 정치인으로 키워졌다고 자신했다.

    ***

    얼마 후 재환은 아버지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삼우일보가 지금 정치인들에게 쪼인트 까인다는 이야기 들었어?”

    “네?”

    천하의 삼우일보를 누가 건드리나 싶어 재환이 물었을 때, 희경이 담배를 물고 말했다.

    “전국구 쩐주들에 대한 칼럼 연재한다고 정치인들이 더 노발대발한단다.”

    “허어~”

    “무슨 말인지 알지? 음지에 있는 그 영감을 캐낼수록 그때 검은 돈 먹은 녀석들이 더욱 날뛴다는 것을 말이야.”

    물론 혜성그룹 역시도 개인적으로 여러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많이 올렸다.

    하지만 기업가가 정치자금을 건네는 것보다 명동쩐주들에게 자금 받는 것은 국민들의 눈에도 안 좋게 보일 일이었다.

    “얼마나 먹길래 그래요?”

    “그 양반이 돈을 어떻게 먹이는 줄 알아?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돈을 눈앞에서 kg단위로 재서 준다는거다.”

    “워후~”

    “참고로 100kg가 10억원쯤 된다.”

    재환은 사과상자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아예 돈을 kg단위로 준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그 다음으로는 케이크 박스 있지? 그거에다가 달러돈을 잔뜩 쑤셔 넣어서 준다.”

    “뭐가 됐던 박스에 한가득 준다는 거네요.”

    재환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지금의 입찰사업에서 누구를 얼마나 구워삶고 있을지 손가락으로 세 봤다.

    “중구, 동대문구, 도봉구 구청장이나 지역구 의원들. 그리고···.”

    “철도청장.”

    재환은 그 이야기를 듣고 기전실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렇지 않아도 임창훈 실장이 말하기를 서울지방청 말고 대전청사에 있는 철도청장 허명국이 핵심일 거란 말을 들었지요.”

    “아마 그럴 거야. 민단이고 도천상이로 와이로 무지하게 줄 거다. 하긴 지금 벌어둬야겠지.”

    “무슨 말이에요?”

    “그 양반이 이후에 정치판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거든.”

    “!”

    재환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어쩌면 이야기가 좀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정말 좋은 정보 알려주셨네요.”

    “이번 사업건은 나도 아주 기대하고 있으니까. 혜성쇼핑이 아주 든든하다고.”

    뒤에서 아들을 전력으로 도와주고 있는 희경이었다.

    그리고 재환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한 가지 더 부탁했다.

    “이왕 알려주신 김에 저도 한 번 그 허명국이란 사람 들이받아야겠네요.”

    “어쩌게?”

    “이건 아버지 도움이 필요합니다.”

    “!”

    ***

    철도청장 허명국은 인적이 드문 고급 요릿집에서 초대를 받고 도착했다.

    “도 회장하고, 샤를로트에 이어 이번에는 혜성이란 말이지?”

    허명국은 말년에 재복이 생긴다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사실 아직은 현직 철도청장이라 검은 돈을 받는 것이 걸린다면 큰일 날 일이었지만, 그 배후에 두 거물이 도와준다고 하니 문제없었다.

    거기에 사적으로 쓴 것도 아니고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하니 걸리지만 않으면 적당히 넘어갈 일이었다.

    문이 열리면서 그가 안내받은 방에 들어오자 그 자리에는 재환이 있었다.

    “아, 오셨습니까?”

    “음?”

    허 청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재환이었다.

    혜성그룹 회장이나 비서팀이 아니라 회장 아들인 재환이 직접 왔다는 사실의 허명국은 일단 길게 숨을 쉬었다.

    “흐음.”

    그래도 신재환이라는 이름은 재벌 2.3세 중에서 유능하기로 소문난 인재라고 했으니 자신에게 뭘 준비했는지 기다리기로 했다.

    “앉으시지요.”

    “그러죠.”

    대접받는 분위기가 되어서 허명국은 먼저 물을 한잔 마시고 푸짐한 진수성찬을 음미했다.

    “맛이 좋군요.”

    “여의도에서 큰 일 하시는 분들도 자주 찾는 단골집입니다.”

    딱히 준비한 것은 없어보였다.

    재환은 식사를 하면서 서류봉투 사이즈로 줄인 민자역사의 기획서를 허 청장에게 건네줬다.

    허명국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일단 그것을 받기는 했다.

    ‘뭐야? 겨우 밥 한 끼에 자기네 기획서 봐 달라고 한 거야? 이거 아직 어린 친구구만.’

    명국은 돋보기를 꺼내 대충 보는 시늉은 했고, 재환은 정좌를 하면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는 슬슬 허명국의 표정이 바뀔 때를 기다렸다.

    ‘점점 지루하겠지. 뭐 있는 줄 알고 왔는데, 너무 진솔한 이미지로 다가오니 말이야.’

    만약 정말로 청렴한 관리였다면, ‘아! 역시 혜성의 기획서가 가장 좋소! 그대가 내 진심을 움직였소! 그러니 내 받은 돈 돌려주고 계약 같이 하겠소!’라고 하겠지만, 그런 드라마 속 장밋빛 미래 같은 일이 벌어질리 없었다.

    그 속에서 시간을 흘렀고, 대충은 다 훑어본 허 청장은 헛기침을 하며 방석 아래 기획서를 집어넣었다.

    “흠, 아주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입찰금액의 문제겠죠. 내 지켜는 볼게요.”

    그러면서 이 식사 끝나는 대로 바로 떠날 준비를 하려는 허명국이었다.

    그리고 재환은 손목에 찬 시계를 한 번 슬쩍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업을 하면서 검은 돈 같은 영역을 몰라서 말입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검은 돈이란 단어를 꺼내들자 순간적으로 허명국은 뜨끔하면서도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신 사장! 지금 나를 뭘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아주 큰 야망을 가지신 분으로 여기고서 말한 겁니다.”

    “뭐, 뭐야?”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둘의 식사자리에서 누가 문을 연 것인가 고개를 돌린 허명국의 눈이 점점 커졌다.

    “아이고, 철도청장님. 이거 오랜만에 뵙습니다.”

    “자, 장관님!”

    그는 새정치당의 3선 국회의원이자, 원내대표였으며, 작년 법무부장관을 마치고 정계로 복귀한 박수창이었다.

    허 청장 역시도 얼굴을 잘 알만큼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고, 그는 곧바로 일어나 인사했다.

    “장관님이 어떻게 이 자리에?”

    “이제는 장관이 아닙니다. 재선 기다리는 의원 후보죠.”

    박수창은 빙긋 웃으면서 허 청장과 악수했고, 그 뒤로 재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고~ 신 사장.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하, 그래요. 아버님은 건강하시죠?”

    재환은 박스 떼기로 돈을 주는 것은 도저히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신 생각한 것은 정계 진출을 위해 허 청장에게 로비자금 대신 작은 인맥을 이용하기로 했다.

    4월에 있을 총선에 공천 결정권을 가진 거물 정치인과 다이렉트로 식사할 기회를 말이다.

    “하, 하하.”

    허 청장은 재환을 보고서 멋쩍게 웃고는 얼굴을 긁적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옆에 앉은 박수창 의원을 연신 보면서 얼굴에 욕심과 초조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둘을 매칭시켜준 재환은 휴대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아버지의 급한 전화인데 나가서 받아도 되겠습니까?”

    “으, 으음? 아. 그래요! 천천히 기다리지요.”

    허 청장과 박 의원의 말을 들은 재환은 웃으면서 나가 휴대폰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금전거래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정치권의 거물은 옆방이 시끄러워서 그냥 우연히 문을 열었다가 철도청장을 만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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