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78화 (78/244)
  • 78- 20세기의 사채왕 VS 21세기의 CEO

    재환은 사업 설명회를 끝내고서 샤를로트와 대화그룹 관계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도 백화점으로 붙게 되었네요?”

    “···이번에는 좀 다를 겁니다.”

    유미현 전무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이번 민자역사 입찰에서는 샤를로트가 물러나는 일이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

    반면 대화그룹의 경우에는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형식상의 악수만 받으며 재환에게 싸늘한 시선으로 돌아갔다.

    “아이고~ 제대로 삐지셨나 보네.”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본사로 돌아온 재환은 현재 민자역사 개발을 위한 플랜을 준비했다.

    그리고는 재단을 준비하면서 하나하나 움직이기로 했다.

    그 와중에 혜성쇼핑과 같이 움직이는 ‘시네박스’는 점점 매장을 늘려가면서 복합상영관 사업이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재환이 말한 대로 문화센터 설립을 위해 게임센터부터 강남 본점과 부산 서면점, 대구 수성점, 광주점 등에도 오더를 내렸다.

    이제는 뒷골목 불량배들과 담배연기 가득한 오락실이 아니라 백화점 내에 각종 게임이 가득한 데이트 코스로 주목받게 될 것이다.

    재환은 그것을 위해 새 사업을 시작했다.

    “게임 회사?”

    “일단은 게임센터에 만들 대형 오락기 OEM부터 시작해 볼 겁니다. 거기에 스티커 사진기, 농구 게임기, 펀칭 머신, 인형 뽑기 게임기까지 할 겁니다.”

    “흐으음.”

    게임 회사라고 해서 애들 장난 같은 것을 생각했지만, 제법 체계적으로 정한 것을 두고서 희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런 거구나. 놀이공원에 있는 게임장 같은 거 말이야.”

    “네, 그리고 앞으로 새 백화점이 나오는 곳마다 준비할 겁니다. 물론 자체 게임도 개발하고요.”

    아직 IT 버블이 있을 때, 만들기로 한 사업이었고, 초기 자금 100억원으로 승낙이 떨어졌다.

    그렇게 재환의 신사업 ‘혜성 게임즈’는 혜성전자와 혜성 트로이카, 혜성쇼핑의 지원을 받아서 만들어졌고, 초대 사장은 재환이 맡게 되었다.

    “게임 사업! 드디어 우리가 이것도 하는구나!”

    이 사업에 대해 가장 좋아했던 것은 기환이었다.

    어떻게서든 자신을 그곳으로 보내달라고 재환에게 요청했고, 어차피 앞으로 일본 게임사 유통도 그쪽으로 보낼 것이니 쿨하게 승낙해줬다.

    그 뒤로 삼우일보 미디어팀과 협상을 하여 차기 민자역사 사업에 대해 복합영화관 입점 논의로 인해 협력하기로 했다.

    “자~ 준비는 천천히 진행되고, 문제는 입찰대금인데 말이야.”

    그것에 대해 재환은 얼마 정도가 될지 고민에 빠졌다.

    대화나 샤를로트가 얼마를 부르는지를 모르니 투자은행을 통해 적당한 가치를 알아내고, 거기에 따라 오버슈팅 없이 적절한 금액을 써야 한다.

    재환이 그것을 위해서 삼신증권과 긴밀한 이야기를 했다.

    “20년 임대로 생각하신다면, 서울역은 2100억원, 청량리역은 1200억, 창동역은 760억원 정도로 집계됐습니다.”

    “휘유~”

    서울의 핵심 상권들이니 예상은 했지만, 4060억원 가량이었다.

    “20년이 지난다고 해도 매년 임대료로 2,300억은 내야겠군요.”

    물론 그때쯤 되면 역사 매출 하나당 1500억원 이상은 우습게 뽑아낼 수 있으니 큰 건이긴 했지만, 그만큼 비쌌다.

    ‘일단 혜성 쇼핑 내에서만 3천억까지는 마련할 수 있는데 말이지.’

    사실 청량리역 민자역사 사업만이었다면, 충분히 자체 자금으로 돌릴 수 있었지만, 판이 커졌으니 확실히 자금이 더 필요했다.

    ‘문제는 샤를로트나 대화 역시도 저 정도 가치는 생각할 거란 말이지.’

    재환은 그것을 생각하면서 자문사인 삼신증권을 나왔다.

    그때 삼신 증권 앞에서 재환을 기다리고 있는 인원들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21세기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어서 시대극에서 나온 사람들같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신 대표님.”

    “누구십니까?”

    한복을 입은 4인방을 보고서 재환은 의문을 가졌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저희는 명동의 도 회장님이 보내서 온 사람들입니다.”

    도 회장이라는 말에 재환은 ‘도천상’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요? 도 회장이 나를 보자고 합니까?”

    “그렇습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재환은 ‘보려면 그쪽이 오라고 해라!’라고 말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지하경제의 거물이라고 하니 한 번쯤은 얼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차 안내해 주시죠. 저희 차로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눈 덮인 북한산이 멋스럽게 보이는 경치의 평창동.

    재환은 그곳까지 온 다음 도천상의 자택에 도착했다.

    조선 시대 대갓집을 연상케 하는 으리으리한 한옥이었다.

    한복을 갖춰 입은 임원들은 조용히 문을 두들겼고, 안에서 사람들이 빗장을 풀었다.

    끼이이이익-

    문이 열리고 안에 있는 한복 차림의 여성들이 손님을 공손하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재환은 안내를 받으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역시도 휘황찬란 이라는 단어 그 자체인 곳이었다.

    값비싼 도자기와, 산수화, 그리고 각종 장식품이 넘쳐났다.

    복도를 쭉 걸어서 끝에 있는 방에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문이 열린 순간 고용인들이 90도로 인사를 했고, 재환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묵직한 인상에 금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두 눈은 재환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그에 대해 알아갔다.

    재환 역시도 음지의 돈황제라고 불리는 도천상을 보고 생각했다.

    ‘생각보다는 평범하군, 한복에 명품을 치렁치렁 두를 줄 알았는데, 양복 차림이고.’

    도천상은 재환의 스캔을 끝내고 자손을 내밀었다.

    “앉으시오.”

    재환이 다가와 책상 앞에 있는 소파에 앉자 고용인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어떤 것을 드시겠습니까?”

    “홍차, 다즐링으로요.”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먹던대로 주게.”

    “알겠습니다. 회장님.”

    잠시 후 차가 나오자 재환의 서양식 찻잔에 담긴 홍차와 도자기로 빚어진 전통 찻잔에 담긴 도천상의 차가 도착했다.

    도천상은 뚜껑을 열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그 맛을 음미했다.

    “차라는 게 말이오. 끓이면 끓일수록 깊게 우러나서 진정한 맛이 나는 법이지.”

    “그렇군요.”

    “돈이라는 것도 그렇다오.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쌓이면 쌓일수록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는 법이오.”

    도천상이 돈에 대한 자신의 지론을 말하자 재환은 찻잔으로 다즐링 홍차 한 모금을 마시고 말했다.

    “저는 쌓는 것에 대해 관심 없습니다. 그저 자유롭게 방임하고 알아서 돌아오게 하지요.”

    “흐음-”

    “그게 제 지론입니다. 돈에도 발을 달아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오.”

    “허허허! 젊은 사장님께서 깊은 생각을 지니셨소. 목숨과 같은 돈에게 자유를 준다니 말이오.”

    “10원짜리 동전 한 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에 일희일비하는 건 부자의 품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에 집착할수록 돈이 사람을 옹졸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

    어떻게 들으면 대놓고 조롱하는 말투로도 들릴 수 있었지만, 도천상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이지 내 직원들이 제대로 본 것 같군. 뛰어난 왕의 자질을 갖춘 자요.”

    재환은 도천상의 칭찬에도 묵묵히 차만 마셨다.

    그리고 이제 도천상이 본론을 말했다.

    “김미금이하고 같이 사업을 한다지?”

    “음지 쩐주 생활 청산하고, 양지에서 합법적인 금융회사 사장님이 되셨거든요.”

    “덕분에 큰 재미는 못 볼 녀석이지.”

    “그 재미가 불법적인 일도 포함됩니까?”

    “하하하, 너무 까탈스럽게 나오지 마시오. 우리는 어디까지나 나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암암리에 움직이는 것이니까.”

    도천상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랍 안에서 낡은 장부를 하나 꺼냈다.

    “1970년 삼신그룹 전자산업, 같은 해 아성건설의 당재터널 공사, 이후 1975년 대윤건설의 해외 진출, 그리고 1980년 혜성중공업.”

    마지막에 혜성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일부러 말한 것 같았다.

    “나라와 기업의 굵직굵직한 사업을 위해 그들이 나에게 모두 손을 빌렸소. 그리고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지.”

    “그래서 하실 말씀이 뭐죠?”

    “이번 민자역사 사업에서 물러나시오. 그렇게 해준다면, 내 좋은 자리에 공사가 날 때 기꺼이 손을 써드리지.”

    “거절합니다.”

    “!”

    도천상은 자신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제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제껏 수많은 대기업 회장들을 만나봤지만, 감히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재환이 처음이었다.

    “내가 이제 늙은 건가? 거절을 당하다니 말이야.”

    “네, 많이 연로하셨습니다. 사업 방식도 금고 속의 돈도 말이죠.”

    “하하하하하!”

    도천상은 크게 웃으면서 파이프를 입에 물고 뻐끔거렸다.

    “그래서 정말로 혜성이 그 큰 단지 세 개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2년 전에 집안 살림 다 팔아서 겨우 기사회생한 기업이?”

    “왜 못할거라 생각하시죠?”

    “돈으로 안 될 거니까.”

    도천상의 말에 재환은 남은 차를 비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잘 마셨습니다. 지하경제의 황제라고 하셔서 한 번쯤 얼굴을 뵙고 싶긴 했지만, 역시 한 번 뵀으니 이제 됐습니다.”

    재환이 일어나서 움직이려고 하자 도천상이 제안했다.

    “1조원!”

    “?”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을 믿고 무이자로 융자해 줄 수 있소. 내가 이런 제안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오?”

    2000년에 현금 1조를 그 자리에서 혜성그룹을 향해 융자해준다는 말에 보통의 회장들이라면 혹했겠지만, 재환은 고개를 저었다.

    “먹고 탈 날 것 같은 일은 안 하는 편입니다.”

    “허허, 배포는 좋은데 큰 그림은 못 보는 것 같소?”

    “큰 그림 따라가다가 동남아로 튄 어떤 늙은이가 생각나서 말이죠.”

    “!”

    “아~ 대윤그룹에도 융자해주셨다고 하셨죠? 원금 회수는 하셨습니까?”

    그 순간 언제나 허허실실하던 도천상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파이프로 책상을 탕탕 쳤다.

    곧바로 한복을 갖춰 입은 고용인들이 나오자 도천상은 노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손님 가신다! 배웅해드려라!”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평창동 도천상의 자택을 나왔다.

    차에 올라탄 재환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음지 쩐주질이야, 지금이 아직도 쌍팔년도인 줄 아나.” 생각 같아선 투서라도 써서 확 찔러버리고 싶었지만, 저 정도의 거물이라면 국세청 고위간부들에게 폴더인사를 받을 테니 소용없을 것이다.

    “대표님. 어디로 모실까요?”

    “본사로 갑시다. 아버지 좀 뵈야겠어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재환은 생각할수록 열 받는지 담배를 꺼내물고 창문을 열었다.

    ***

    “도천상을 들이받았어? 그 돈귀신 영감을?”

    “돈귀신은 맞는 거 같고, 저희한테 이번 사업 빠지면 1조 정도 자금 융통해주겠다더군요.”

    “세, 세상에!”

    희경은 도천상을 만난 이야기를 듣자 뒷목을 잡으면서 주저앉았다.

    “아니 세상 두려울 거 없으신 분이 왜 그러세요?”

    “그 영감은 절대 건드려선 안 돼! 내가 혜성 키우던 시절에도 사채쟁이 영감이라고 무시했다가 골로 간 놈 여럿 봤다.”

    “아버지. 지금 새천년이에요. 군부정권 시절 요릿집에서 한복 입고 고상 빼는 착한 후원자 같은 건 시대극에나 나와야죠.”

    “하지만 그 영감탱이 돈은 무시 못 한다고! 나도 예전에 잘못 걸렸다가 그놈을 혜성제과 대주주 앉힐 뻔한 적 있었다.”

    “그 돈귀신 영감은 제가 상대할 테니 아버지는 이사 준비 빨리하세요. 남영동 사옥 비운다고 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여기 계시는 겁니까?”

    이미 거래 대금에도 준비하고 있으니 재환은 빨리 강남사옥으로 오시라며, 아버지를 재촉했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 남영동 혜성그룹은 회장실과 그룹 내 몇 개 계열사를 제외하고는 전부 빠져서 강남으로 옮긴 상태였다.

    재환은 그 폭군 아버지가 확실히 늙긴 했다면서 이번 입찰에 대해서 확실하게 승리해 쩐주건 민단 자본이건 음지는 양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모두에게 각인시킬 셈이었다.

    재환은 소파에 앉아서 사업계획을 준비했고, 그때 갑자기 회장실로 온 전화를 희경이 받았다.

    그리고 차분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냈다.

    쾅!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

    재환은 갑자기 화를 내는 아버지를 보고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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