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77화 (77/244)
  • 77- 사업설명회에서 한 방 터트렸다.

    1999년 12월 31일.

    혜성그룹 회장의 양재동 사옥은 고용인들을 모두 퇴근시키고 가족들만 남아 TV에 집중했다.

    [여러분 드디어 새천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이제 카운트 다운을 합니다.]

    “구!”

    “팔!”

    “칠!”

    재환의 집에서는 부모님을 포함해서 모두가 21세기 새천년인 2000년의 카운트다운을 TV를 보면서 세고 있었다.

    그리고 카운트 다운이 끝난 순간 여당 총재와 한국 예술협회장이자 대배우 최불한, 그리고 서울시장이 손을 모아 제야의 종을 울렸다.

    [데에에에에에엥-]

    [와아아아아아아아아!!!!]

    2000년을 알리는 제야의 종이 울리자 TV에서 환호하는 광화문 사람들의 외침이 울렸고 희경이나 명숙이나 둘 다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히야, 새천년이라는 게 진짜 와닿네.”

    “아들, 소원 빌었어? 새천년은 우리 가족 다들 건강했으면 좋겠다.”

    “네~ 저도 소원 빌었습니다.”

    “뭔데? 무슨 소원 빌었는지 말해봐.”

    명숙의 말에 재환은 웃으면서 부모님에게 말했다.

    “앞으로 혜성 그룹이 탑 5그룹에 들 수 있게요.”

    “!”

    “!?”

    지금보다 배 이상으로 성장하겠다는 재환의 말에 오히려 놀라서 바라봤다.

    하지만 재환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뭐에요? 안 될 것 같아요? 사업을 시작하면 그게 당연한 거지!”

    아버지이자 창업주인 희경보다도 더 위의 경지를 바라보는 재환의 말이었다.

    ***

    “여러분 잘들 쉬고 오셨습니까?”

    강남 사옥에 도착한 재환은 신년사를 위해 자신이 등기임원으로 올라간 계열사들을 방문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는 일일이 담은 신년인사 편지와 금일봉을 두둑히 챙겨서 돌릴 준비를 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신경 쓴 것을 혜성 트루넷이었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어요. 미국 자문사에서 OK 싸인 떨어지고, 상장이 바로 다음 달입니다.”

    새천년이 되고 2월에 상장 시작이 결정되어서 이제 D-카운트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재환은 직원들을 독려했다.

    “100만 가입자, 200만 가입자. 거기까지 노리고 해 봅시다.”

    “예, 대표님!!!”

    재환은 피터 앤 컴퍼니의 친구들과도 새해 인사를 한 뒤로 앞으로의 주가 상승을 생각하며 흡족한 상태였다.

    그 뒤로 혜성전자, 혜성쇼핑, 혜성시계, 혜성 타이거즈를 돌면서 각자의 목표에 대해 명쾌하게 결정했다.

    물론 단순 인사로만 끝날 리가 없었다.

    새천년이 된 뒤로 재환은 신사업으로 작년부터 공개입찰을 시작한 서울 민자역사에 제안서를 준비했다.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서울지방철도청, 훗날 코레일 서울본부라고 불리는 회현동 사옥에 도착한 재환은 차에서 내리고, 박만수 전무와 같이 움직였다.

    “사업계획서 잘 준비됐죠?”

    “물론입니다. 대표님.”

    박 전무는 재환이 일본에 있거나, 자금책을 마련하는 동안 민자역사 운용에 대한 계획을 자신이 만들었다.

    이번 계획서는 임원들이 만들었으니 재환은 그것을 가지고 입찰만 잘 하면 된다고 역할 분담을 했다.

    그리고 오늘 입찰서를 제출하려고 할 때, 재환은 철도청 직원들에게 안내를 받고 계획서를 지방철도청장에게 제출했다.

    “네, 혜성그룹의 입찰계획서 잘 받았습니다.”

    김창규 청장은 혜성의 참여를 기쁘게 맞이했다.

    그렇지 않아도 안팎으로 철도청을 공사화한다는 말이 많은데, 거기에 대해 앞으로도 자리를 차지하려면 이번 서울 민자역사 공사로 대기업의 자본을 받아들여 누적된 적자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샤를로트 다음엔 혜성··· 대화하고 아성하고 신누리까지 대기업 쇼핑업체들이 전부 다 오면 좋겠는데 말이야. 흐흐흐···’

    경쟁사가 많아질수록 입찰가는 비싸지고 그건 모두 철도청 자산으로 가니 아주 흡족한 상황이었다.

    “이상입니다. 사업설명회 때 뵙겠습니다.”

    “예, 혜성하고 인연이 계속됐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재환과 박 전무가 김 청장에게 인사하고 청장실로 나갔다.

    재환은 밖으로 나가면서 박 전무에게 물었다.

    “청량리, 서울역, 창동 세 곳 거점 잡으면 강북에서 장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현재 강북쪽은 샤를로트가 내년 개점하는 노원점, 그리고 아성백화점도 미아리에 점포를 내고 있습니다. 혜성이 지금 들어간다면 5년쯤 뒤가 될 겁니다.”

    “흐음.”

    “하지만 창동-청량리-서울역으로 벨트를 만들면 일단 역세권을 중심으로 확실히 수요는 있습니다. 게다가 창동역과 청량리, 서울역 모두 대규모 인파가 움직이는 곳 아닙니까?”

    “노숙자가 문제겠죠. 그 일대 싹 정리하려면요.”

    “주변 경비 병력을 늘리는 걸 고려해야 할 문제 같습니다.”

    재환은 박 전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을 때 그곳에서 다른 인물을 맞이했다.

    “아이고, 신 사장~”

    “아!”

    대화그룹이 움직였다.

    김승열 회장이 직접 철도청 서울지방청에 행차했다.

    살짝 벗겨진 머리에 고급 선글라스를 차고 웃으며 두 팔을 번쩍 벌리는 모습에 재환은 먼저 인사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김 회장님.”

    “아이고, 나야 별일 없지.”

    김승열은 그러면서 넌지시 재환에게 말했다.

    “사촌 동생이 조금 섭섭한 일이 있었다고 했는데 말이야. 나까지 섭섭하게 하진 말아 달라고.”

    “!”

    아마도 야구팀 문제 때문에 감정 상한게 아직도 뒤끝이 있었는지, 김승열이 기어이 재환에게 한마디 더 했다.

    하지만 재환은 김승열의 말을 대충 한 귀로 흘리면서 그 옆에 있는 인물을 유심히 살펴봤다.

    백발의 머리를 곱게 빗고 정장을 갖춰 입었지만, 사업하는 사람답지 않게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이상한 향초 냄새가 나는 것이 평범한 기업인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재환은 김승열 회장과 옆의 그 사람이 가는 것을 보면서 쓴웃음을 짓고는 차에 올라탔다.

    “슬슬 김 회장이 견제하려고 하네요.”

    “대화그룹이 샤를로트 그룹과 같이 손을 잡은게 사실이라면 가장 큰 상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 그럴 수도 있고요.”

    “네?”

    재환은 차 안에서도 철도청 건물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인물이 누구인지 생각했다.

    “아까 김 회장 옆에 있던 백발에 수염 기른 노인네, 평범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누구일까요?”

    “글쎄요. 아마 저런 타입이라면··· 무속인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무속인이요?”

    재환은 그 말에 잘 못 들었나 싶어 물었다.

    하지만 박 전무는 오래전부터 봐 오던 게 있어서 아는 대로 말했다.

    “그··· 왜 있지 않습니까? 보통 회장님들이 중대한 사항을 결정할 때는 꼭 신내림을 받은 무당에게 묻거나, 아니면 직원 영입을 하는데 관상가를 쓰는 거 말입니다.”

    “아~ 그걸 아직도 해요?”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철도청을 바라봤다.

    “5대 그룹이고, 10대 그룹이고 그러면 뭐하나? 21세기 오는데 아직도 저런 점쟁이를 다 쓰고.”

    ***

    한편 입찰에 참여하고 사업계획서를 쓴 김승열 회장은 옆에 있는 ‘이 선생’에게 물었다.“선생, 아까 그 친구 말이요. 어떻게 생각해요?”

    이 선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그 친구··· 정말 올해 나이 서른둘이 맞습니까?”

    “네? 어··· 서른둘인가 셋인가 그런데요. 아직 어린 녀석이죠.”

    “···아닌 것 같은데.”

    “음?”

    이 선생은 수많은 사람의 관상과 운명을 알아봤지만, 재환 같은 인물은 생전 처음 본다는 듯 손까지 떨리고 있었다.

    “속 안에 배 이상의 세월을 산 운명과 자질을 갖춘 자였소. 내 점밥 40년 세월에 저런 자는 처음 봤소.”

    “허허, 그래요? 겉보기는 어린애인데 속에 노인네라도 있다는 건가?”

    “모르겠소. 확실한 건 그 재능이 엄청난 청년이라는 것은 확실해요.”

    “흐음~”

    김승열은 재밌다고 생각하며 재환을 떠올렸다.

    하지만 점쟁이가 아무리 좋게 말해도 이번 일은 자신의 승리라고 확신했다.

    “자~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우리가 공사할 터나 한번 봅시다. 어떻게 지어야 풍수가 좋을지 말이에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김승열은 곧바로 차를 준비해서 민자역사 부지로 향했다.

    ***

    며칠 뒤 사업설명회가 시작되고 철도청은 세 부지인 창동, 청량리, 서울역에 대한 민자역사 사업에 관해 설명했다.

    [2004년 이후 고속철도가 개통되고 거기에 맞춰 신역사와 기존 역사의 증축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고속철도 시대를 열 서울역, 그리고 훗날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고속철도인 경강선의 거점이 될 청량리역의 이야기였다.

    물론 1호선과 4호선의 허브이자 향후 동두천까지 전철을 운용할 창동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왔다.

    총 세 곳에 대한 부지 설명에 들어가고 이제 각 기업의 프레젠테이션이 나왔다.

    [우리 갤럭시아는 강남의 명품관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프리미엄 매장이 있습니다. 또한, 한 나라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역에 복합 쇼핑몰과 명품관으로 인해 랜드마크를 만들 것을 약속드립니다.]

    ‘흐으음-’

    재환은 앉아서 대화가 시작한 프레젠테이션을 보면서 속으로는 비웃고 있었다.

    ‘힘들걸요?’

    서울역이 대한민국 내 수도 관문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곳에 명품관은 안 어울리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 이후 다음으로 나선 것은 샤를로트였다.

    단발에 도도한 모습으로 올라오는 샤를로트의 여성 임원은 마이크를 잡고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샤를로트 쇼핑의 영업본부장 유미현 전무라고 합니다.]

    재환은 그 모습을 보고 흠칫했다.

    ‘음? 저 아줌마 안 잘렸네?’

    재환과 강남에서 백화점 인수전을 했을 때, 크게 물을 먹어서 입찰 포기를 하고 물러났을 때 100% 잘렸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직도 전무 직함을 유지하면서 이번 민자역사 입찰에도 나타난 것이었다.

    샤를로트가 가늘고 길게 가면 공무원에 가깝게 사람 안 자른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먼저 저희 샤를로트 그룹은 대한민국 내 유통업 1위로 현재 대형마트와 백화점, 그리고 아울렛 사업에서 전국 곳곳에 진출해 있습니다.]

    압도적인 물량과 매출로 밀어붙이는 샤를로트의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저희는 세 역사의 복합쇼핑몰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같습니다. 다만, 저희가 생각하는 방식은 명품관보다는 아울렛 쇼핑몰 방식입니다.]

    그룹 내 대규모의 물량, 그리고 그것을 팔기 위해 역세권에 짓는 아울렛. 그리고 대형 할인점을 이용해 서민용 쇼핑센터를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대화와는 아예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보아 미리 합의가 된 것인지, 아니면 갈라선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상입니다.]

    유미현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서 인사를 하고 물러났을 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다음은 저희군요.”

    “대표님!”

    박 전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쳤고, 재환은 ppt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니 자신이 나서서 한번 해 보겠다고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혜성쇼핑의 대표 신재환이라고 합니다.]

    재환은 이번 혜성쇼핑에 대해서 민자역사 계획을 발표했다.

    [먼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각 역사의 수요에 대한 조사이후 합리적인 방식으로 운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삑-

    재환이 화면을 넘겼을 때 그가 내놓은 것은 복합문화센터였다.

    [현재 혜성쇼핑은 강남에서 첫 서울 진출 이후 복합문화센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단순 쇼핑몰을 넘어 문화 전체를 누릴 수 있는 자리.

    재환이 내놓은 것은 백화점과 그 안에 있는 영화관, 박물관, 게임센터 등의 사업을 준비했다.

    [저희는 문화 사업을 같이하면서 쇼핑까지 할 수 있는 하루 생활권의 시설을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철도청과 함께할 것입니다.]

    재환은 그 말을 마치고서 한 가지를 더 덧붙였다.

    [또한 안전문제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불편한 진실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세 역에서 가장 문제가 될 치안 문제. 그것에 대해서도 저희는 신경쓸 것입니다.]

    재환이 그것을 신경 쓰겠다고만 하면서 마지막으로 보인 화면은 샤를로트 백화점의 영등포 민자역사 주변의 노숙자, 그리고 대화그룹의 본사인 여의도 63타워 일대의 노숙자들의 모습이 있었다.

    “!”

    “!!!”

    순간적으로 샤를로트와 대화그룹 둘 다 불쾌해할 수 있는 역린을 건드렸다.

    [안전한 쇼핑과 문화센터를 위해 국가시설과 긴밀한 협의를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마지막에 어그로를 제대로 끈 재환이었고, 느긋하게 앉았을 때 대화와 샤를로트 임원들을 따가운 눈총이 있었다.

    하지만 재환은 사실을 건드리면서 아직 말하지 않은 ‘혜성은 그런 문제에서 벗어난다.’라는 이미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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