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76화 (76/244)
  • 76- 새천년을 기대하며!

    재환은 일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올 때, 양손에 선물을 한가득 들고 돌아왔다.

    어머니 입으시라고 한 벌 사 온 모피 코트와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신형 골프채.

    그 외에도 많은 제품을 사 들고서 공항에서 기다린 혜성그룹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온 재환은 어머니 명숙에게 한번 입어보시라고 코트를 드렸다.

    “호호호, 아주 딱 맞네?”

    “네, 내년 명절까지 입고 다니시기 좋을 거예요.”

    “고마워, 우리 아들.”

    재환은 골프채는 아버지의 서재에 포장해서 갖다 놓고 찌뿌둥한 몸을 풀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누워서 한숨 자려고 했던 재환은 다시 일어나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현재 사이트에 들어가서 니혼자동차의 주가를 확인했다.

    “주당 420엔··· 후우.”

    생각해보면 자금력으로 얼마든지 돈쭐을 내줄 수도 있는 회사였지만, 해외에 보호무역이 빡센 기업이다 보니 때릴 수도 없는 녀석들이었다.

    언젠가 삼신자동차가 궤도에 오르고 혜성 역시도 그 나름대로의 자동차 사업에 진출했을 때, 제대로 한 번 붙기로 다짐했다.

    그다음으로 프랑스에 있는 르노어에 주가를 살펴봤을 때, 현재 그곳은 49프랑 정도로 니혼자동차의 8배에서 9배 정도 됐다.

    “조만간 유로에도 투자해야 하는데.”

    유럽연합이 생기고 얼마 안 돼서 아직 유럽의 기축통화 유로가 가상화폐 단계로 이제 막 논의를 시작할 때였다.

    재환은 2002년쯤은 돼야 제대로 통용될 기축통화 가상화폐에 대해서 미리 투자를 계획했다.

    “시대를 앞서간 가상화폐 놀이 한번 해 보자고.”

    앞으로 유로화 시대를 생각하며 재환은 일단 유로존 일대에 3년 뒤쯤 행사할 수 있는 채권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재환이 방 안에서 새로운 화폐에 대한 채권을 둘러봤고, 이건 KS증권이나 삼신증권을 통해서 매수해야겠다고 하나하나 리스트를 적어나갔다.

    그렇게 방 안에서 돈이 벌리는 사업에 대한 것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이건 또 어디서 온 연락이야?”

    재환이 휴대폰 너머로 온 이름을 살폈을 때, 뜻밖의 인물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이고, 신 사장님! 오랜만에 뵙소.]

    “아, 김미금 사장님?”

    현재 재환의 사업에 큰 융자를 대주는 미금상호금고의 사장 김미금이었다.

    [요새 사업이 아주 잘 된다고 들었어요. 내가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하하하, 앞으로도 좋은 사업 생기면 거래 많이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이자랑 원금 착실히 갚아나가고 있는데 뭐 때문에 직접 연락을 했는지 궁금해지는 재환이었다.

    [내가 지금 서울에 올라왔는데, 잠깐 볼 수 있어요? 신 사장님이 아주 좋아하실 이야기인데 말이죠.]

    재환은 자신이 혹할 이야기라는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습니다. 이따 저녁에 뵙죠.”

    [호호호, 그래요. 이따가 차를 보내드릴게요.]

    ***

    재환은 김미금이 보내준 고급 세단에 올라타 종로에 있는 한정식집에 도착했다.

    한옥으로 된 요릿집의 문이 열리면서 지배인이 공손히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한복을 곱게 갖춰 입은 귀부인 풍의 지배인은 재환은 가장 안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는 옛날 임금님 수라상을 방불케 하는 푸짐한 상 앞에 앉아있는 김미금이 있었다.

    “아이고~ 신 사장님 오셨어요?”

    호들갑스럽게 달려들어 재환의 두 손을 잡은 김미금은 재환을 안으로 안내했다.

    재환이 자리에 앉자 종업원들이 정성껏 상차림을 해 줬고, 그곳에 앉았을 때, 은은한 가야금 연주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뵙네요.”

    “네, 최근에 대구에 들를 일이 없어서 못 뵀네요. 그래도 직원들이 융자는 갚아나갑니다.”

    “천천히 갚아도 돼요. 앞으로 수십 배는 더 버실 분이 말이야.”

    아직도 사투리가 많이 묻어나는 억양이었지만, 최대한 서울말로 대화하는 김미금을 보고 재환은 그래서 부른 이유가 뭔지 물었다.

    “어쩐 일로 서울까지 오신 겁니까? 영남권에서 지점 늘인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럴 사정이 있었지. 엄청 큰 건이 있다는 말을 들어서 말이요.”

    돈 냄새를 맡고 달려온 김미금을 두고 재환은 자신도 혹할 이야기라고 했으니 들어보기로 했다.

    “이번에 청량리 말이에요. 그 588 홍등가를 싹 밀어버리고 민자역사를 짓는다죠?”

    재환은 민자역사 입찰 이야기를 듣고서 그걸 알고서 이 사람이 왔나 싶어 생각했다.

    “거기에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혜성쇼핑도 입찰했나요?”

    “네, 그렇습니만.”

    “아이고, 잘됐네. 그럼 이야기가 더 빠를 것 같다카이.”

    재환은 혜성쇼핑 자체의 재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미금신용금고가 도운다고 하니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먼저 제안부터 하죠. 이번 일 저희도 참여하게 해 주면 융자 만기를 더 늘리고 이자를 줄일게요.”

    “허허, 숟가락만 하나 올릴 수 있는데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해요! 대신 민자역사에 우리 금고를 담게 해 주세요.”

    “네? 우리 금고요? 김 사장님 서울 진출하시려는 겁니까?”

    “맞아요.”

    재환이 묻자 김미금은 술잔을 기울이면서 상항을 설명했다.

    “내가 오늘 금융위의 관리들을 만났는데, 경상도 일대에서 한 지역에 지점을 만드는 것도 이제 한계가 있어서 서울 쪽에 진출한다고 선언했어요! 규제가 좀 걸리겠지만, 찬찬히 검토하겠다고 하더군요.”

    재환은 발 빠른 쩐주들이 합법적으로 금융권에 진출해서 각자의 금융그룹을 만들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김미금은 서울 진출을 위해서 재환의 손을 빌린 것이었다.

    “아, 물론 내가 그냥 껴 달라는 게 아니에요. 아주 좋은 정보를 신 사장님에게 주려고 합니다.”

    “하하, 좋은 정보라니 들어보죠.”

    “흐음, 신 사장님. 혹시 민단 사람들 만나본 적 있어요?”

    “네?”

    민단이란 일본 내에 있는 ‘재일교포 민단’을 말하는 것이었다.

    같은 한국계 일본인이라 해도, 북한 쪽을 따르는 조총련계, 그리고 대한민국을 따르는 민단계로 나뉜 게 재일교포였다.

    “딱히 그 사람들하고 사업해본 건 없는데 왜 그런 말씀을?”

    “이번에 샤를로트가 기존의 자기 소유였던 BS은행이 아니라, 민단계 자본을 끌고 입찰에 참여해요.”

    “!”

    재환은 그 말을 듣고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샤를로트의 신경호 회장이 재일교포였죠?”

    “잘 아시네요.”

    재환은 유통업계 1위이자 현금 쌓아놓고 장사하는 샤를로트가 거기에 재일교포 민단 자본까지 끼고 민자역사 입찰을 한다는 말에 머리가 복잡했다.

    ‘가만있자. 그러면 생각보다도 금액이 더 크겠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재환이 처음 예상했던 입찰가보다도 훨씬 큰 금액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대화 그룹은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겠네요. 샤를로트랑 같이 움직인다고 들었거든요.”

    재환이 슬쩍 던져보자 김미금은 그것 또한 잘 알고 있는지 바로 말했다.

    “맞아요. 하지만 자체적으로 보험을 하나 들어놓은 것 같더군요.”

    “보험이라 하면, 그쪽도 어딘가 쩐주를 물었다는 건가요?”

    “맞소! 대단한 인간을 물어왔어요. 혹시 도 회장이라고 들어봤어요?”

    “!”

    재환은 ‘도 회장’이라는 이름 석 자를 듣고서 쓴웃음을 짓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천상 회장 이야기··· 그거 증권가 찌라시 아니었어요?”

    “아이고, 신 사장이 국내 사업은 빠싹하게 꿴 줄 알았는데, 도 회장을 모르셨나보네요!”

    현금왕 도천상.

    명동 사채시장의 절반 이상을 붙잡고 있다고 하며, 전설적인 현금왕으로 전성기 때는 천하의 삼신그룹 창업주 이인철이나, 아성그룹의 정형주가 벌떡 일어나서 전화를 받는다는 인물이었다.

    이런 일화도 말이 안 됐지만, 그에 대한 소문은 하나같이 엄청난 것들이 많았다.

    80년대에 이미 하루 현금자금동원력이 3천억에 육박한다는 소문도 있으며, 삼신그룹 연간 영업이익이 200억이던 시절 혼자 이자놀이로 100억씩 받아먹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거기에 강남 테헤란로의 대규모 빌딩 중에서는 실소유주가 도천상 일가 소유라는 이야기가 퍼질 정도로 그 이름은 엄청났다.

    하지만 재환은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면서 그런 이야기에 대해 일축했다.

    아무리 당시 대한민국 지하경제가 엄청났다 했어도 양지의 회사를 집어삼킬 정도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재환도 김미금이라는 대형 쩐주와 같이 사업을 해봤지만, 그녀가 제공하는 자금은 1금융권의 농협이나 대한산업은행하고도 충분히 논할 자금력이었다.

    그런데 그런 김미금보다 몇 배는 엄청난 존재가 배후에 있다는 말에 재환은 머리를 긁적였다.

    “진짜 그런 지하경제의 거물이 꼈다면, 국책사업 공개 입찰 꼬라지 한 번 가관이겠군요.”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지 알겠어요? 난 이번에 도 회장하고 싸우려고 하는데, 신 사장이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 제 1의 사채왕, 그리고 그 휘하에 있는 거대한 지하경제의 황제.

    그런 거물과 싸운다는 말에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좋습니다. 어차피 지하자금이라는 거 별로 안 좋아하니, 이참에 완전 지하 밑으로 묻어버리죠.”

    “와~ 시원시원해서 좋네요!”

    재환은 김미금과 술 한잔을 나눈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

    서울시청 맞은편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서는 대화그룹 김승열 회장이 찾아온 손님을 극진히 맞이했다.

    “음식이 입에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아주 좋아요. 근래에 호텔요리 중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습니다.”

    김승열의 손님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디저트로 온 커피를 마셨다.

    백발이 성성하고, 검은 한복을 갖춰 입은 모습은 마치 독야청청 산속에서 지낸 조선 시대 선비와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는 절도 있는 식사예절을 지키면서 자신을 대우하는 김승열 회장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사업은 어떻게 잘 되실 것 같습니까?”

    그러자 김승열이 대답했다.

    “아, 네. 판이 좀 커졌습니다. 이건 단순히 청량리 하나로 끝날 문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흐으음, 그래요?”

    손님의 흰 눈썹이 꿈틀거리자, 김승열은 현 상황에 대해 말했다.

    “이번에 서울시와 철도청이 공동으로 준비하는 프로젝트는 청량리역 하나뿐만 아니라 총 3단계로 민자역사 사업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어디하고 어디입니까?”

    “청량리역을 시작으로, 창동역, 그리고··· 서울역에 신역사를 짓는다고 합니다.”

    “흐으음~ 고속철도 들어올 날이 4년 남았는데 새 역사 사업도 한데 묶으려나 봅니다?”

    티스푼으로 남은 커피에 각설탕을 넣고 휘휘 젓고 있는 손님은 쭉 마시고는 품 안에서 작은 공책을 꺼냈다.

    그것은 수표책이었다.

    “그럼 이번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적어 주세요.”

    김승열은 그 수표책을 보고서 만년필을 꺼내 일단 인수 자금에 필요한 금액을 적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액수를 확인한 손님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도 회장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김승열 회장이 올린 금액을 휴대폰으로 전화해 공손하게 말하자 플라자의 손님은 몇 마디를 나눈 뒤에 통화를 마쳤다.

    “김 회장님.”

    “예. 결제해 주시겠다고 하십니까?”

    “도 회장님의 전언입니다. ‘사업에서 아슬아슬한 자금은 자기 목숨도 아슬아슬하게 하는 법이요.’라고 전해달라 하십니다.”

    “!”

    손님은 주군의 뜻을 전달한 다음 수표의 앞자리 숫자 ‘1’을 지우고 ‘2’로 고쳐서 김 회장에게 건네줬다.

    “대금은 1주일 뒤에 찾으러 오시면 됩니다. 빳빳한 새 돈으로 준비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제가 아니라 회장님의 뜻입니다.”

    자신 역시도 10대 그룹 회장이었지만, 대리인을 통해서야 알 수 있는 그분은 자신뿐만 아니라 여럿의 회장들을 부를 수 있는 지하경제의 황제였다.

    현금왕 도천상의 사람과 거래를 마친 대화그룹은 서울 철도의 중심지를 모두 손에 넣어 그 인프라로 유통업을 석권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

    한편 재환은 새천년을 앞두고 육공회 멤버가 모여 망년회 파티를 하고 있었다.

    “자~ 새해에는 모두 사업 대박 납시다!”

    “사업 대박 납시다!”

    샴페인을 들고 모두가 건배하며 쭉 들이켰다. 재환이 샴페인을 먹었을 때, 그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두성그룹의 박정인이었다.

    “이번에 네 덕에 창원 일 쉽게 풀렸다. 드디어 우리도 중공업을 시작했어.”

    대윤의 지분이 섞여 있어 얼른 민영화로 혈세를 복구해야 했던 한국중공업은 삼신과 공동 컨소시엄으로 시작해 두성그룹의 손에 들어갔다.

    지분 8:2로 두성그룹이 운용을 하게 되었고, 두성중공업으로 개명되어 내년부터 터빈 사업을 시작한다.

    그 뒤로 대현은 최근 통신사 투자로 인해 입이 귀에 걸렸다.

    “으하하하! 얘들아. 40루타라는 이야기 들어봤냐? 이게 1년 만에 생긴 일이야.”

    통신사 KS텔레콤은 경이적인 수치로 성장하여서 엄청난 수익으로 경쟁사들까지 인수하고, 하나통신의 대주주로 올라있었다.

    “내년 트루넷 상장할 때 보자. 내가 이번에 IT에 제대로 투자할 거거든.”

    “네, 그래요. 대현이형.”

    그 뒤로 삼신가의 진용과 현규 역시도 각자의 사업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이 계속됐다.

    재환은 그들을 보면서 밝게 웃고는 역시 양지에서의 모임이 좋긴 좋다고 생각했다.

    “재환이 넌 내년에 큰 사업 준비하는 거 있어?”

    진용이 장난스럽게 묻자 재환은 샴페인을 새로 따르며 말했다.

    “있지.”

    “오~ 어디야? 하나둘 셋 하면 같이 말할까?”

    이번에도 창원때처럼 관심을 가졌지만, 재환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했다.

    “그냥 말하지 뭐, 우리 이번에 민자역사 들어간다. 서울에서 세 곳.”

    “!”

    재환은 그것을 터트린 다음 주먹을 모았다.

    “그러니 내가 입찰 잘할 수 있게 기를 불어넣어다오. 형제들이여!”

    재환의 말에 용진이 크게 웃으면서 주먹을 모았고, 옆에 있던 현규도, 재밌어 보인다며 큰 주먹을 올린 대현도, 마지막으로 정인 역시 손을 모아 육공회 멤버들의 기를 받은 재환이 선언했다.

    “자~ 혜성역사 프로젝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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