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70화 (70/244)
  • 70- 실패한 프로젝트를 건져낸다는 것.

    재환은 태평로 집무실에서 이건호 회장과 직접 면담을 했다.

    “내가 이런 것을 원했던 게 아닌데?”

    이건호는 ‘삼신 쿠페’의 계획서가 맘에 들지 않는지 돋보기안경을 벗으면서 재환을 노려봤다.

    하지만 재환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서 차분하게 말했다.

    “회장님, 가장 이른 시일 내에 개발할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 삼신이 쓰레기통에서 뒤져온 계획서를 가져다 쓰란 말이오?”

    이건호 회장이 그렇게 불쾌해하는 것은 재환이 가져온 계획서가 타 회사에서 파기된 디자인팀을 영입한다는 것이었다.

    상윤자동차의 W쿠페.

    SUV와 버스 전문제작사였던 상윤자동차는 97년 서울모터쇼에서 기존의 고급 대형세단인 ‘상윤 체어퍼슨’시리즈와 부품을 공유하는 스포츠카 W쿠페를 준비했다.

    하지만 상윤자동차는 대윤에게 흡수되었고, 그 대윤자동차는 회장을 잃고서 대주주 JM모터스를 둔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재환이 별안간 삼신자동차 스포츠카 사업에 상윤 W 쿠페 디자인을 가져온 것이었다.

    “못 본 걸로 하겠소. 프로젝트 다시 해 오시오.”

    “회장님, 파묻혀있는 보석을 넘기시고 불확실한 창조에 집착하시는 겁니까?”

    “!”

    순간 이건호 회장의 표정은 저승사자를 방불케 했다.

    사람이 정말로 화가 나면 저런 얼굴을 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재환은 다시 한번 말했다.

    “회장님. 쌍륜... 아니, 상윤자동차는 뛰어난 기술력에 좋은 디자인의 차량을 가지고도 대윤에게 먹튀를 당했습니다.”

    “···.”

    “그 기술력을 가지고 대윤의 김우준이 한 짓거리가 뭐였습니까? 상윤을 인수하면 추가 국책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당긴 돈을 가지고 동남아로 도피해서 무너진 게 상윤입니다.”

    이건호는 화가 난 얼굴과 다르게 재환이 하는 말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재환은 여기가 승부수라 생각하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회장님은 저를 삼신자동차 임원으로 올리시기 전 물어보셨습니다. 르노어-니혼 자동차에 대한 독립을 생각하시며 새로운 자동차 프로젝트를 생각하신다고요. 하지만 그것은 몇 년이 걸릴지도, 얼마의 예산이 들지 모를 일입니다.”

    재환이 이렇게까지 말한다음 입을 꾹 다물었다.

    침묵의 대치 속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이건호 회장과 팽팽하게 부딪쳤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긴 1분의 시간이 지난 다음 이건호 회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말이 없는거요? 계속 말해보시오.”

    ‘됐어!’

    재환은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솔직히 많이 생각했습니다. 기존의 SSM-5를 베이스로 쿠페를 만들 생각도 했으나 디자인이 니혼 자동차의 자동차를 그대로 가져왔죠.”

    “으흠···.”

    “이미 니혼자동차로 만들어진 베이스로 만드는 것보다는 부패한 기업가의 탐욕으로 빛을 보지 못한 국내 프로젝트를 인수해서 부활시키는 것이 어떨까 했습니다.”

    재환은 이 사업에 대해 합리성을 언급하면서 사업기획서를 모두 읽은 이건호 회장을 설득했다.

    “삼신의 자본력과 브랜드 가치, 그리고 회장님의 의지라면 분명 세계 10대 자동차 기업에 오르는 것도 꿈이 아닌 현실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자동차 사업을 위해 투자를 했으니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재환의 말에 이건호는 조용히 생각하다가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종이를 꺼내서 재환에게 펜을 건넸다.

    “사인 하나 해 보겠소?”

    “무슨 사인입니까?”

    “이번 스포츠카 프로젝트 실패하면, 사임하겠다는 각서요.”

    “···.”

    이건호는 재환이 제안한 모든 것을 승낙해주기로 했다.

    단 조건으로 이번 일이 실패할 시 책임을 지고서 재환이 스스로 사임하라는 각서를 쓰게 한 것이다.

    이해는 갔다.

    삼신자동차 자체가 재환이 혜성그룹의 이름으로 투자를 해서 겨우 부활했다.

    그리고 상용차의 혜성과 승용차의 삼신으로 가기로 했는데, 이건호 회장이 직접 재환을 삼신 자동차로 영입해서 스포츠카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그런데 재환이 실패한다면, 오너 이건호 역시도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니 자진 사임이라는 보험을 걸어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의 투자로 숨통이 트였던 삼신자동차인데 이런 처사가 섭섭할 수도 있지만, 재환 역시도 타 회사의 폐기된 프로젝트를 끌어올려 차기 사업으로 구상했다고 하니 반반의 책임을 지고 움직이는 일이었다.

    “좋습니다. 단 사인은 제 펜으로 하겠습니다.”

    재환은 품 안에서 24k 몽레알 만년필을 꺼내 여유롭게 각서에 사인을 했다.

    이건호 회장은 재환의 사인이 포함된 그 각서를 돋보기를 꺼내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는 재환에게 넌지시 말했다.

    “신 이사. 혹시 담배 태우시오?”

    “네, 피웁니다.”

    “한 대 주시오.”

    재환은 이 회장이 담배를 요구하자 품 안에서 꺼내 한 대 드렸다.

    이건호는 그것을 받아 입에 물고 서랍에서 라이터와 재떨이를 꺼내 재환이 쓴 각서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

    프로젝트 실패하면 사임하는 각서를 쓰라고 했으면서 그것을 태우고 그걸로 불을 붙여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빤 이건호는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마음껏 해보시오. 이 일은 지금부터 내가 승낙한거요.”

    “네, 알겠습니다.”

    “내가 담배 끊은 지가 20년 가까이 됐는데, 작년부터 지금까지 딱 두 번 폈소.”

    “아, 그렇습니까?”

    “그게 다 신 이사 덕분이지.”

    “!”

    이건호는 딱 세 모금만 빤 다음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는 손으로 연기를 털며 말했다.

    “알았으니 그만 가 보시오. 다음에 부르겠소.”

    재환은 이 회장에게 인사하고 집무실을 나오면서 피식 웃었다.

    ‘일부러 떠본 거겠지. 100%야.’

    차라리 기획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결재 서류 사인을 안 하고 ‘기각’ 처리하면 될 것을 일부러 회장실까지 부른 다음에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각서 퍼포먼스까지 시켰다는 것은 이건호 회장의 길들이기 스타일일 것이다.

    만약 거기서 재환이 조금이라도 주저하거나, 기세에 눌렸으면 사임 각서는 불태운 게 아니라 정말 유효해서 자신의 목을 계속 졸랐을 것이다.

    재환이 그것을 생각하고 자동차 사업부로 돌아가던 중 금융과 전자 관련 임원들을 이끌고 지나가던 현규를 발견했다.

    “오~ 신 이사.”

    “안녕하세요, 전무님?”

    사석에서처럼 반말할 수는 없었지만, ‘~요’자를 쓰는 모습에 일부 임원들이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현규는 임원들을 향해 말했다.

    “먼저들 들어가 계세요.”

    “예, 전무님.”

    현규의 말에 따라 우루루 돌아간 임원들을 두고 재환은 라운지 쪽을 가리켰다.

    잠시 후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자리에서 현규가 말했다.

    “그 프로젝트 어떻게 됐어?”

    “성공했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래.”

    “정말? 그게 통과됐다니 대단하네.”

    현규 역시도 ‘상윤에서 디자인을 사 와서 그걸 베이스로 삼신 쿠페를 만든다’ 는 아이디어에 대해 의문을 품었지만, 이건호 회장의 승낙이 있었으니 자신도 수긍하기로 했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 주부터는 평택으로 출장 갈 거다.”

    “아, 그래.”

    “그렇지 않아도 평택에서 진용이랑 만나기로 했어. 대형마트 하나 짓는다고 협약식 맺는다고 하는데, 상윤자동차 공장도 거기에 있으니 협상하면서 주변 좀 둘러보려고.”

    “주변을 둘러본다면···.”

    “공장 새로 늘릴 곳을 찾느라고.”

    “아~”

    최근 일복이 터져서 이곳저곳에 공장을 짓는 혜성 그룹이었다.

    정부의 수도권 규제가 있어서 굳이 짓는다면 수원 아래쪽으로 둘러봐야 하는데 재환의 머릿속 1픽은 이미 평택으로 정해져 있었다.

    ***

    재환은 평택에 도착했을 때, 신누리쇼핑의 새 지점인 S마트의 착공식이 있었다.

    그룹 중역들이 커팅식을 할 때 불쑥 나타난 재환을 보고 진용이 반갑게 맞이했다. “오! 왔어?”

    “착공식 기념 떡 먹으러 왔다.”

    “어서 와. 안내할게.”

    재환은 진용의 초대를 받고 황량한 땅을 바라봤다.

    “여기가 이 동네 처음으로 들어온 대형마트일거다.”

    “위치 좋네.”

    논밭 한 가운데 마트를 지어놨지만, 여기서 200m만 내려가면 경부선 철길이 있었다.

    그리고 이 마트가 만들어지고 정확히 5년 뒤에 국철 1호선이 생기고, 훗날 고속철도역까지 생겨서 도시의 새로운 생활권이 된다.

    시대를 앞선 안목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조금만 따지면 미리 국토부 개발 계획을 알고 들어간 것이었다.

    “앞으로 경부선 타고 쭉 내려갈거다.”

    “좋은 방법이네. 열심히 해봐.”

    “유통업 라이벌인데 너무 넋놓고 말하는 거 아니야?”

    “너네가 경부선 타면, 우리는 호남선 타고, 또 너희가 동쪽가면 우리가 서쪽가면 될 거 아니냐?”

    재환은 그런 거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만약 1등, 2등 매출에 그렇게 집착했다면, 애초에 동년배 재벌가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았을 거다.

    재환은 확실히 목은 좋다고 생각하면서 진용과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도 일을 하러 떠났다.

    그때 여기저기서 지역민과 신누리그룹의 임원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정장차림의 중년 남성이 있었다.

    “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금배지를 달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인사를 하고 있는 그는 재환을 발견하고 황급히 달려왔다.

    “아이고, 혜성그룹 분도 오셨군요.”

    “아, 네. 안녕하십니까. 원 의원님.”

    지역구 2선 의원인 새정치당의 원기준 국회의원을 이때 보자 재환은 반갑게 인사했다.

    “하하하, 쇼핑업 회사들끼리 축하를 오신겁니까?”

    “아니요. 저도 평택에 사업 한 번 오려고 했습니다.”

    신누리에 이어서 혜성그룹도 자기 지역구에 관심을 보이자 원 의원의 눈이 번득였다.

    “아니 그런 계획이 있단 말입니까?”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나가는 식으로 말했다.

    “평택시가 ‘수도권 공장 총량규제’안만 잘 통과된단 말이죠.”

    “!”

    그 말을 들은 순간 원 의원의 눈이 흔들렸다.

    이 당시는 지역발전을 위해 경기도 일대에 대기업 공장을 짓는 것에 대해 규제가 심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평택은 경기도 끝자락에 있으면서 그 규제안에 들어있는 곳이었지만, 귀에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지자체와 지역구 의원들의 입김에 따라 조정이 가능했다.

    ‘이거 기회다! 그렇지 않아도 중앙정계 올라갈 건수가 필요했는데.’

    원 의원의 머리가 바쁘게 굴러갈 때, 재환은 웃으면서 자신의 명함을 전해주고 말했다.

    “일단은 그렇게만 알아주시지요. 저는 일이 바빠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네! 여기 제 명함도···.”

    보좌관을 시켜 자신의 사무실 명함을 건네준 원 의원과 악수하며 차에 올라탄 재환이었다.

    “후우- 공장부지 매입은 어떻게 되겠네. 삽 푸는게 시간 좀 걸려서 그렇지.”

    최소 3만평 이상은 지을 곳이니 지자체에서 가장 규제 덜하고 세금 지원 해주는 동네를 우선순위로 할 것이다.

    S마트 착공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상윤자동차 본사 공장에 도착한 재환은 예약했던 명함을 건네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SUV 차량을 생산하기 위해 공장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재환의 차가 본관에 멈추자 곧바로 기다리고 있는 임원들이 있었다.

    재환이 내리자 곧바로 달려온 상윤의 대표가 달려왔다.

    “어서오십시오! 이병태라고 합니다.”

    “혜··· 아니, 삼신자동차의 신재환 이사라고 합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삼신 일을 하고 있으니 삼신자동차의 명함을 건네줘야 했다.

    재환은 안내를 받으며 사장실로 향했고, 거기에서 제대로 된 협상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용 사장으로 왔다가 모기업이 붕 떠버려서 어떻게든 생존을 갈구하는 상윤의 상태였다.

    이병태 대표는 초조한 모습으로 돈이 될만한 건 모조리 팔아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삼신의 이름으로 재환이 연락하자 버선발로 달려와 뭐든 협상해야 했다.

    재환은 그 모습을 보고서 미소를 지었다.

    대표이사가 포커페이스도 유지 못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라는 게 딱 드러났다.

    “이번에 삼신자동차가 스포츠카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윤이 서울모터쇼에서 ‘체어퍼슨’세단을 베이스로 한 W쿠페 차량을 준비했죠?”

    “아, 예! 그렇습니다.”

    “거기 연구인력하고, 프로젝트 설계도를 구입하겠습니다.”

    “!”

    “인수대금을 조금 조율하겠지만, 연구원들까지 모두 동봉하는 것이니 합리적인 선에서 하지요.”

    이런 상황에서 가격을 후려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상도덕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 그거라면 곧바로 협상이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존 쿠페팀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그 사람들을 차기 세단이나 SUV사업으로 넘어가는 것을 준비해서···.”

    ‘어이구, 그런 것까지 술술 말해주네?’

    재환은 이번일은 엄청나게 쉽게 풀린다고 생각하며 웬만하면 전부 OK사인을 했다.

    어차피 대금 결제는 삼신이 해주는거고, 재환은 거기서 협상을 해와 개발을 해서 결과물만 보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실패할 것 같지 않다는 강한 자신감이 있었다.

    만들어진 베이스에 브랜드가 삼신이니 그것에 대한 반응은 긍정으로 절반을 먹고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제대로 협상 한 번 해볼까요?”

    그렇게 서로가 얼굴 붉힐 일 없는 훈훈한 협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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