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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69화 (69/244)
  • 69- 좋은 관계를 맺으면 반드시 돌아온다.

    어제 현규랑 거나하게 마시고 온 뒤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일어난 재환은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 자리를 가졌다.

    집안의 가정부들은 재환이 술을 많이 마시고 왔단 말에 북어국과 정갈한 반찬들을 만들어 상 위에 올렸다.

    재환은 식사를 하면서 아버지 희경에게 물었다.

    “기환이가 오늘 아침에 온다고요?”

    “그래, 9시쯤 강남사무실로 가라고 했어.”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국을 떴다.

    식사를 마친 뒤 희경이 먼저 남영동으로 출근했고, 재환 역시 강남 사옥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래도 사촌동생인데, 재환이 네가 잘 좀 봐 줘.”

    명숙의 말에 재환은 어머니를 한 번 안아주고 떠났다.

    “잘 다녀올게요.”

    ***

    재환은 출근하자마자 사촌동생 기환이 기다린다는 말에 대표실로 불렀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형, 거기에 여기저기서 눈치를 많이 봐서인지 여러모로 위축된 모습이었다.

    “어서 와.”

    재환은 소파에 앉히면서 기환에게 차를 대접했다.

    “혀, 형. 아니, 대표님이라고 불러야 하지?”

    “회사에서는 그렇게 불러. 공과 사는 가려야 하니까.”

    재환은 그러면서 오랜만에 만난 사촌 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네가 올해 몇 살이더라?”

    “스, 스물 다섯이요.”

    “우리끼리 있을 땐 말 편하게 해도 돼.”

    “아, 고마워 형.”

    “군대는 어떻게 됐어?”

    “저···체중 면···제.”

    재벌가 사람이 저체중으로 면제됐다는 말에 집에서 밥 못 먹었냐는 말이 주변에 나오겠지만, 실제로 왜소한 체형인지라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 학교는 어떻게 됐어?”

    “2학년 휴학했어. 경영학과··· 도저히 적성에 안 맞아서.”

    어찌 보면 재환은 그나마 학업이라도 마치고 기반이 있어서 갈라섰던 과거였지만, 기환은 부모님의 등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달리다가 파국을 맞이했다.

    그런 삶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재환은 조금 뒤처진다고 해도 저 녀석을 안고 갈 셈이었다.

    어차피 사촌 한 명 끌고 가는 건 재환이 혜성가 내에서 충분한 권한과 위상을 갖췄으니 신경 쓸 것도 없었다.

    “자~ 그럼 천천히 이야기해보자.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

    “아르바이트라도 해본 적 있어?”

    “아, 아니.”

    “서류 작업 같은 건 할 수 있겠나?”

    “형, 내가 엑셀 같은 걸 못해서··· 그래도 복사랑 팩스 같은 건 할 수 있어.”

    “···그건 여기 있는 직원 모두가 다 할 수 있어.”

    “...미안.”

    “운전은 할 수 있지?”

    “아직 면허를 못 따서··· 금방 배울게.”

    이력서로 봤다면 볼 것도 없이 커트를 시켜버렸을 것이다.

    재환은 갑자기 젊었을 때 본 드라마인 ‘미생’이 생각나서 한마디 했다.

    “흐음~ 이 녀석을 어떻게 현역으로 키워야 할까?”

    재환은 잠시 생각하다가 김준호 과장을 불렀다.

    “김 과장, 오늘부터 이 친구 데리고 계열사 한번 돌게 해줘요.”

    “예, 알겠습니다.”

    재환은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 중에서 기환이 관심을 가지는 쪽으로 한번 찾아보라고 보냈다.

    그러면서 준호에게 넌지시 귀띔했다.

    “저 녀석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자기가 혜성가 사람이라고 행패 부리면 즉시 연락하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재환은 기환에게 현장체험을 보낸 뒤로 자신도 오늘 점심에 있을 약속을 위해 나갈 준비를 했다.

    본사 건물에서 나왔을 때, 옆에 있는 혜성백화점은 속옷 세일 이벤트를 벌이고 있었다.

    [자~ 어머님들. 남편분 내의부터 자녀분들 패션 속옷까지 모두 있습니다!]

    쌍령내의를 인수한 혜성 패션사업부는 마트와 백화점에서 상당한 수익을 올려주고 있었다.

    거기에 싼값에 재질도 좋아서 세일 한번 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두 몰려와서 싹 쓸어가기로 유명했다.

    재환은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고서 다음 홈쇼핑 때 속옷 상품을 전시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모델들 딱! 올려서 인지도 더 끌어올린 다음 젊은 남녀배우 써서 한국의 C클라인 같은 브랜드를 만드는 거야.”

    속옷 언더웨어 시장부터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로 성장한 미국의 C클라인 같은 곳을 못 만들 이유도 없었다.

    재환은 거기에 대한 계획을 담아두고 출발하게 했다.

    반포동에 있는 아성호텔에 도착한 재환은 차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다듬은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재환의 방문에 준비한 아성호텔 관계자들은 곧바로 나와 정중하게 인사하고, 스카이라운지의 커피숍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정몽균 회장이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 모셔왔습니다.”

    “아, 그래!”

    정몽균이 일어나서 재환을 맞이했다.

    “어서오게.”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그래, 그래. 여기 앉으라고. 음료는 뭐로 하겠나?”

    “카페라떼로 하겠습니다.”

    “라떼 맛나게 만들어오게.”

    “예, 회장님.”

    스카이라운지에 앉은 재환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서초, 강남 일대의 아파트 단지를 둘러봤다.

    20년 뒤 상전벽해로 바뀔 구)반포 주공아파트와 신)반포 한성아파트단지가 보였다.

    “아파트에 관심 있나? 그쪽을 유심히 보네?”

    “하하, 저희는 건설사도 안 가진 회사인데요.”

    “그래도 그때 부지는 엄청나게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 은평, 판교, 수서 일대라지?”

    당시에는 그다지 부각 받지 않았던 세 단지였으나 수만 평 단위로 소유하고 있어 언제든지 국토부 규제만 풀리면 혜성그룹은 순식간에 땅부자가 될 것이다.

    “아직은 미래입니다. 아직은···.”

    “뭐, 그래. 오늘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를 알겠나?”

    “새 그룹의 총수가 되신 것을 축하하는 자리입니까?”

    “하하하, 이 사람이!”

    아성그룹의 ‘왕자의 난’은 결국 정목헌 회장의 승리로 돌아갔다.

    아성그룹의 중심인 아성건설에서 무게추가 급격하게 기운 이유였다.

    그 배경에는 명예회장 정형주가 법정관리를 받고 있던 아성건설 회장의 자리에서 거액의 퇴직금을 수령해 그 돈을 모두 5남 목헌의 지원금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대노한 정목균은 아예 독립을 선언하고, 아성자동차, 기어모터스, 기어중공업, 아성정공, 아성제철, KRT의 지분을 가지고 독립을 선언해 ‘아성기어자동차그룹’을 만들고 초대 회장에 오른다.

    “이미 정리는 됐네. 내년에 사옥으로 쓸 곳도 정했고 말이야.”

    “농협 빌딩이요?”

    “···그거 어떻게 알았어?”

    ‘미래를 이미 한 번 살았던 몸이라서요.’

    재환은 그것에 대한 이야기 뒤로 이제 본격적으로 정목균 회장에 대한 의사를 들었다.

    “이번에 목헌이가 신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 거절했다는 이야기 들었어.”

    “네, 제가 중립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나은 일이었어.”

    지난번 딸인 정성희 이사와는 달리 차라리 혜성이 아성의 지분을 소유해도 그것에 대해 누구 편도 들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정목균은 오히려 그것에 대해 만족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부터 완성차를 만드는데 혜성의 도움이 필요하네.”

    “네, 저희가 아성자동차와 기어모터스에 무엇을 도우면 될까요?”

    “자네들이 잘 하는 거 있잖아? 오디오 사업.”

    재환은 그 말을 듣고서 흠칫해서 되물었다.

    “회장님, 제가 다시 한번 그 말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하하하하! 이 사람이 뭘 그렇게 빼고 있어?”

    그러자 정목균은 크게 웃으면서 재환이 원한대로 해줬다.

    “앞으로 아성자동차와 기어모터스의 카오디오 부품은 모두 혜성전자 제품으로 쓰겠네! 5년 동안 말이지.”

    엄청난 사업이었다.

    중립을 지키고 정몽균과 아성자동차가 독립하면서 이제 같은 집안의 아성전자와 아성카오디오에 결별을 선언하고 혜성전자와 같이 협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식으로 팩스를 보내지. 해주겠는가?”

    “물론입니다. 회장님.”

    이것으로 삼신자동차와 아성자동차, 기어모터스 모두가 혜성제 카오디오를 쓰게 되었고, 재환은 곧바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

    [네, 아성자동차그룹은 혜성전자와 정식으로 계약서를 나누고 앞으로 5년간 카오디오 공급에 두 대표가 싸인을 했습니다.]

    [이것으로 아성그룹과 아성기어자동차그룹은 완전히 결별을 선언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현재 혜성전자는 아성기어자동차 그룹과의 대규모 계약으로 인한 호재로 주가가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컴퓨터와 초고속인터넷 등이 부각되면서 혜성전자 자체에 대해서는 MP3플레이어와 네비게이션 개발을 제외하고 굵직한 사업이 없었는데 재환의 협상으로 인해 엄청난 건을 가지게 되었다.

    거기에 맞춰 재환은 화성시와 협력하여 혜성전자의 제3공장 건립을 명했고, 그 수요를 맞추기 위해 주변 협력사들 역시도 다시 찾아 나갔다.

    “하하하! 5년 동안 국내 자동차 절반 이상이 혜성제 카오디오를 쓰면 그게 돈이 얼마야?!”

    희경의 입이 귀에 걸려있었고, 제대로 돈을 벌어온 아들 재환을 와락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오늘 회식하자! 호텔에 자리 하나 마련하자고! 크하하하!”

    모두가 축배를 들었고, 재환은 인간관계는 역시 좋게좋게 유지하면 그 결실은 반드시 온다는 교훈을 또다시 상기했다.

    ***

    “그래, 한 번 돌아보니 어때?”

    재환은 자신이 맡고 있는 계열사들을 모두 방문하고 온 동생 기환을 보고서 웃으며 물었다.

    큰 건 하나를 잡아서 여유가 넘치는 재환이었고, 지금이라면 뭐든 들어줄 수 있었다.

    “계열사들 정말 대단하더라. 어마어마한 규모들이었어.”

    “그렇지? 앞으로 더 커질 거다.”

    재환이 답을 했을 때 기환은 가방에서 파일철로 된 서류를 건넸다.

    “이게 뭐야?”

    “개인적으로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형이 한 번 봐달라고.”

    재환은 기특하게 서류까지 준비했냐면서 일단 펼쳐봤다.

    그런데 그 안에 있는 것은 게임 일러스트와 그 밑에 있는 번역본이었다.

    [니쿠세->닉시(Nixie)]

    [에루후->엘프(Elf)]

    [물어->모노가타리(ものがたり)는 ‘이야기’라는 단어로 번역 가능.]

    [론(lon)-> 아이온(I-on)]

    재환은 그것을 다 본다음 기환을 바라봤다.

    “형, ITD 게임들 정식발매 한거 있잖아. 그거 한글화 팀 봤는데, 게임 제대로 아는 사람 거의 없더라. 그냥 일본식으로 음차한걸 그대로 번역해서 썼어.”

    “···그래서 이걸 다 일일이 원래 뜻으로 번역한 거야?”

    “어, 어! 그나마 아는 분야여서.”

    “생각 못 했던 건데, 이러면 한글화 서비스했던 의미가 없었네.”

    재환은 그것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파일철을 돌려줬다.

    “좋아. 너 게임유통팀으로 들어가라.”

    “응?”

    “직책은 과장 대우로 할게. 현재 푸키먼 이후로 계속 ITD에 들여오는 게임들이 많은데, 대다수는 북미판 영어번역만 쓰고 있어. 근데 일본어 게임 번역이 저리 형편없으면··· 그건 네가 맡아서 고쳐줘라.”

    기환은 자신이 가장 알고 있는 분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활짝 웃었다.

    “고마워. 정말 잘할게!”

    재환은 곧바로 인사이동을 처리하기로 하고, 사촌동생을 혜성쇼핑 게임유통부 쪽으로 보내줬다.

    그래도 할 줄 아는 게 하나 정도는 있으니 그쪽으로 밀어줘서 게임사업부 쪽은 계속 유지 시키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곧바로 서류가 하나 날아왔다.

    게임유통부에서 보낸 내용이었는데, 현재 번역이 안 된 게임들은 패키지로 대사본을 만들어 동봉하자는 아이디어였다.

    “하~ 이걸 하루만에 보냈어?”

    얼마 들지 않는 소규모 예산으로 시행할 수 있는 거라 재환은 곧바로 승낙 사인을 해서 보내줬다.

    그날 하루 일을 마친 재환은 컴퓨터로 내일은 삼신자동차 출근을 준비하며 ‘스포츠카 사업’에 대해서도 준비했던 자료들을 모아놓고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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