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이번 일은 별로 합치기 싫어요.
재환은 얼마 뒤에 닥터안 소프트웨어의 연락을 받고 그들을 본사로 초대했다.
혜성그룹 강남사옥에 직접 도착한 안현수 대표를 보고 재환은 반갑게 손을 내밀고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혜성의 신재환입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닥터안 소프트웨어의 대표 안현수입니다.”
큰 체구에 서글서글한 얼굴을 가진 안현수를 보고 재환이 미소를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프로그래머 안현수는 인정이지.’
“제 출장 중에 신 대표님께서 사무실을 방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건 불시에 찾아왔던 제 불찰이죠.”
“아닙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이제야 찾아뵙게 된 걸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나이도 재환보다 많지만 공손하게 나서는 안현수를 보고 재환은 준비한 서류부터 준비했다.
“일단 대략 고 부사장이란 분에게도 이야기했지만, 혜성쇼핑이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인터넷 백신 사업을 닥터안 소프트웨어에 맡기고 싶습니다.”
재환의 제안에 안현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를 검토했다.
“그렇다면 백신 프로그램과 보안 프로그램을 같이 준비해야 겠군요.”
“그렇습니다.”
“어떤 방식의 보안 시스템을 필요로 하시는지 자세히 알 수 있겠습니까?”
안현수는 재환을 클라이언트로 여기고서 어떤 방식의 프로그램을 정확히 원하는가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재환은 이 계약을 위해서 자신이 구상했던 것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자, 여기 브라우저로 들어가서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죠? 그러면 결제를 할 때 여기에 해킹 등의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실시간 보안 프로그램이 필요할 겁니다.”
“흐음, 네. 알겠습니다.”
“웬만하면 통합해서 한 프로그램으로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재환은 이 당시 인터넷 전자상거래의 아킬레스건을 정면으로 들이받아 보기로 했다.
“카드사 결제 프로그램을 새로 깔고, 인터넷 회사의 보안 프로그램을 추가로 깔고 거기에 이거저거 팝업 뜨는거 다 깔면 아주 주렁주렁 해질 게 아닙니까?”
“아, 분명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고객들은 불편함을 느끼죠. 그걸 위해서 최대 2개까지만 설치해도 알아서 인터넷 보안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세요.”
이 당시의 인터넷은 마이크로사의 ‘액티브X’ 중심으로 하는지라 보안프로그램이 그 규격에 맞춰 움직이려니 각종 악성코드에 노출이 심한 상태였다.
안현수는 경영자이자 프로그래머로써 재환이 제안하는 시스템 보안 프로그램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해도 이건 앞으로의 IT산업을 위해 꼭 해야 되는 일이었다.
“현재 저희 백신프로그램인 VA3 Neo를 좀 더 개량시키고, 보안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논의드리겠습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나요?”
“음... 이번에 정부에서 보안프로그램 시스템 의뢰를 맡아 보안 개발팀이 있는데, 곧 납품되는 대로 그 팀을 운용해서 인터넷 쇼핑몰 전용의 프로그램을 선보이겠습니다.”
“좋습니다. 기존에 개발 경험이 있는 팀이 있다면 확실히 빠르게 움직일수 있겠군요.”
재환은 안현수와 악수를 하면서 말했다.
“사실 미국 출장갔을 때, 해외 보안회사에 연락을 할까도 생각했는데, 그래도 국산 제품을 한 번 믿어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보안에 철저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답하겠습니다.”
해외에서도 보안 프로그램 회사를 여러곳 살펴봤지만, 아직 거기서 거기인 상황이라 굳이 비싼 달러 대면서 외주를 줄 필요를 못 느꼈었다.
일단 닥터안 소프트웨어와 외주 계약을 하고, 훗날 윈도우 OS가 바뀌면서 좀더 나은 프로그램이 나온다면 그때 바꿔도 상관은 없으니 일단은 이곳을 써볼 셈이었다.
***
그렇게 닥터안 소프트웨어와 계약을 체결하기로 한 재환은 곧바로 혜성쇼핑 임원들을 불러서 회의를 준비했다.
“닥터안 소프트웨어에 보안 프로그램 외주를 맡겼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온라인 쇼핑몰.
재환이 공들여서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 사업을 준비할 때, 몇몇 임원들은 백화점 마트에서 시작하던 출신들이라 거기에 대해 개념만 겨우 갖춘 셈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인터넷으로 물건을 판다.’라는 사업에 대해 ‘이게 정말 국내에서 될까?’라는 의구심도 많았다.
재환은 그들을 위해서 자료를 준비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1995년부터 인터넷 상거래 사이트가 나왔습니다.”
재환이 예시로 든 회사는 최초의 인터넷 경매 회사이자 오픈 마켓인 ‘E베이스닷컴’ 이었다.
그 회사의 역사와 시스템에 대한 자료를 임원들에게 돌리고, 한국에서도 이 사업을 시작할 의지를 보였다.
“대표님. 아직 온라인 마켓에 대해서는 시기상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재환이 인상을 쓰면서 바라본 인간은 홈쇼핑사업부 본부장인 곽정빈 상무였다.
현재 대형마트나 슈퍼마켓과 더불어 상당한 수익을 올리는 홈쇼핑사업부는 계열사의 제품들을 판매하면서 연일 타사 경쟁에서 승전보를 올리고 있었다.
‘홈쇼핑사업부가 신사업을 신경을 쓴 다라.’
저쪽 역시도 회사 내에서 ‘해외 홈쇼핑 사업 진출’ 등과 ‘혜성홈쇼핑의 PB상품 프로젝트’ 등의 사업을 논하는지라 그쪽도 분주할 때였다.
하지만 재환은 거기에 대해서 조금 타협을 하기로 했다.
“대표님. 일단 오픈마켓 시장을 준비하신다면 현재 이야기하신 이베이스닷컴이 국내 진출을 노린다는데 그때 같이 합작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재환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유심히 생각했다.
‘임원 중에 합작을 제안하는 이가 있다라··· 분명 이제껏은 그렇게 처리하긴 했지만···.’
재환은 일단 곽 상무의 제안에 대해 답했다.
“네, 홈쇼핑사업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업 진행을 위해 초기 예산은 지금 회의를 통해 준비할 겁니다.”
재환은 거기에 대해서는 따로 논하기로 하고, 일단 혜성의 오픈 마켓인 프로젝트 ‘코멧닷컴’에 대한 초기 예산 배정 준비를 했다.
이름을 코멧이라 정한 이유는 혜성을 영어로 한 ‘Comet.com’에 대한 뜻이었다.
재환이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려고 할 때 곽 상무는 뭔가 더 할말이 있는지 재환을 찾았다.
“대표님.”
“음?”
“···.”
여기서 할 말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젓는 곽 상무를 보고 재환은 옷을 고쳐입고 말했다.
“10분 뒤에 제 집무실에서 뵙죠.”
“알겠습니다.”
잠시 후 도착한 곽정빈 상무를 재환은 반갑게 맞이했다.
“앉으시죠. 곽 상무님.”
재환은 소파에 앉으면서 차를 준비하게 하고, 곽 상무는 자리에 앉은 다음 먼저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 임원회의에서의 반대 의사를 한 것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신경 안씁니다. 제가 독단적으로 밀어붙일 것도 아니니까요.”
임원이 오너의 차기 사업권에 대해 ‘신중론’을 들며 반대했던 일이니 그 일에 대해 사과하는 곽 상무였다.
하지만 재환은 쿨하게 넘기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베이스닷컴과 합작이 어떻냐고 말하셨죠?”
“그렇습니다.”
“그쪽에 연락받고 말하신 거죠?”
“···네, 그렇습니다.”
곽 상무는 품 안에서 봉투를 꺼내 올려놨다.
“공교롭게도 오늘 아침 사업 공동제안서라는 것을 보내고 대표님과 회담을 하고 싶다는 이베이스닷컴의 연락이 왔습니다.”
“허~ 타이밍 한 번 참···.”
만약 재환이 이베이스와의 합작을 고려했다면 모르겠지만,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걸 이사회에서 말하지 않고 따로 가져오신 이유는 뭡니까?”
그러자 곽 상무는 차분하게 말했다.
“대표님, 사실 저 역시도 오픈 마켓플레이스 사업에 대해서는 21세기의 미래 산업으로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네. 그런데요?”
“몇 번 이야기를 드렸지만, 역시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혜성쇼핑 물류센터 역시도 포화 상태이고, 광주에 물류센터 증축 공사 역시도 시일이 걸립니다.”
“흐음.”
“그 상황에서 오픈마켓의 물량까지 계산한다면 포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도 계산에 담고서 하는 것입니다.”
재환의 말에 곽 상무는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리고 홈쇼핑 사업의 중국과 러시아 진출에 대해서는 계속 진행할 것입니다. 곽 상무님께서는 지금처럼 기존 사업에 대해 힘써주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재환은 곽 상무를 보내고 이베이스의 팩스를 확인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뭐, 저런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지.”
임원 모두가 다 예스맨이 될 필요는 없고, 적당히 신중론을 해주는 사람은 조직 내에 필요하다고 느끼는 재환이었다.
거기에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현실적인 문제점도 지적해 주니 이 일에 대해서는 재환이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재환은 먼저 전화기를 들어 말했다.
“김 과장, 이베이스한테 연락해서 약속 하나 잡아주세요.”
[네, 대표님.]
재환은 준호에게 일을 시킨 다음에 이베이스에 대한 자료를 집무실 컴퓨터로 검색해봤다.
***
얼마 후 강남 테헤란로에 있는 빌딩에서 재환은 이베이스의 사람들과 회담을 나눴다.
“처음뵙겠습니다. 이베이스의 피터 최라고 합니다.”
“혜성의 신재환입니다.”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을 때, 피터 최는 미소를 지으면서 재환에게 말했다.
“공교롭게도 저도 신 대표님과 같은 대학을 나왔습니다.”
“오, 그런가요? Class of(졸업 연도)가 어떻게 되나요?”
“1988입니다.”
“하하하, 선배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요?”
한국 대학의 학번같이 미국에서는 졸업 연도로 선후배를 정했는데 재환이 학사 ‘Class of 1992’, 석사는 1994년이니 피터 최는 자신보다 한참 선배였다.
“학창시절에 풋볼 좋아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그게 유명하긴 하지만 저는 농구 쪽을 좋아했습니다. 근데 NCAA는 못 봤네요. 하핫.”
동문을 만나 반가운 이야기를 나눴고, 재환은 이베이스가 혜성과 만나면서 일부로 펜실베니아 대학 출신을 자신에게 붙인 것이란 걸 직감했다.
“자~ 학교 이야기는 이쯤 하죠. 저희 임원에게 이베이스가 연락을 보냈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아, 물론입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피터 최는 현재 이베이스에 대한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먼저 이베이스는 한국 법인을 만들고서 같이 협업을 할 수 있는 쇼핑회사를 찾고 있었습니다.”
“흐음, 네~”
“현재 혜성쇼핑은 1년 만에 큰 성장세를 보이고, 전자제품 판매사업과 홈쇼핑에 대해서도 저희 이베이스와 협력을 하신다면 21세기의 온라인시장(Online Marketplace) 사업에 대해서 가장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거기에 대한 지분 구조는 어떻게 됩니까?”
“현지 법인과 같이해서 혜성쇼핑이 45%의 지분을 가지게 됩니다.”
‘합작지분이 45%라···.’
처음부터 만들어진 인프라로 같이 시작하고 제법 큰 지분을 나눠주겠다는 이베이스의 제안에 재환은 잠시 생각했다.
“일단 저희가 이사회를 준비해서 한 번 고려해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부디 이베이스와 혜성에 대해 좋은 협력을 기대합니다.”
재환은 피터 최의 인사를 받으면서 이베이스 코리아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차에 올라탔을 때, 재환은 길게 한숨을 쉬면서 서류들을 둘러봤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재환은 혜성쇼핑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 희경과 이야기를 나눴다.
“해외에서 그 인터넷 쇼핑몰이라는 거 협력제안 왔다며.”
“네, 오늘 이야기를 해보고 서류도 검토해봤어요.”
“그래서, 할 거야?”
“안 합니다.”
“!”
단호하게 이베이스와의 협업은 없을거라고 재환이 선언한 것이다.
“뭐야, 그럼. 국내에서 직접 하려고?”
“네, 이번에는 스스로 해 보려고 합니다.”
그 말에 희경은 머리를 긁적였다.
“후우- 내가 그쪽 사업을 아무리 살펴봐도 우리나라 인프라로는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되겠어?”
“네, 어차피 지금 사업 시작해서 1세대로 참여하는게 중요하지만, 이후 분명히 지분문제로 싸우다 갈라질거 같아서요.”
재환은 그것 외에도 독자적으로 보안 프로그램과 사이트 작성, 물류창고 문제까지 해결하려고 했다.
“그동안 협력 많이 했는데, 하나 정도는 스스로 해결하고 싶습니다. 이건 확신이 있으니까요.”
재환의 자신감에 희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그렇게 알고 있으마.”
“네, 감사합니다. 믿고 맡겨 주세요.”
“아, 그리고 또 할 말이 있다.”
“네?”
희경은 담배를 꺼내 잦으려다가 텅 빈 갑을 보고서 집어 던지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골치 아프게 아성그룹의 싸움에 우리가 낄 것 같아.”
“네?”
재환은 아성그룹의 싸움이라는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뇌리를 스치고 있었다.
‘그거구나!’
왕자의 난.
1999년 아성그룹은 명예회장 정형주의 밑으로 정목헌 회장과 정목균 회장의 2인 대표이사 체제였는데 결국 분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KRT와 아성자동차에 대한 지분을 일부 소유하고 있는 재환, 공교롭게도 주주총회 내 유의미한 지분 행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게 참 난감한 일이야. 아무리 봐도 정목균과 정목헌 둘이 갈라설 것은 확실할 것 같은데.”
희경의 말에 재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쪽이 훗날 도움이 되는지는 알겠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한쪽에 대해 손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저라면 그냥 가진 지분들 가지고 주주총회에서 기권을 선언할 겁니다.”
“뭐?”
“그게 나아요. 어느 쪽에도 원망 안 들으려면요.”
“후우, 야 재환아. 둘 다 요청이 왔는데 두 제안을 모두 씹으면 그거 문제가 커질 거 아니냐?”
경제련 회장인 아버지에게는 더욱 문제가 될 일이었고, 향후 아성그룹과의 거래를 생각하면 큰일이었지만 재환은 확고했다.
“정 안되면 제가 두 회장님을 만나 의사를 밝히죠. 일단 우리는 주주총회에서 단 한주도 행사하지 않겠다고요.”
재환은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준비하기 전에 일가에 큰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