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60화 (60/244)
  • 60- 빤스랑 난닝구 삽니다. 있는 거 전부 다요.

    재환은 쌍령그룹 간부들의 안내를 받으며 본사로 향했다.

    이미 주변에는 현수막에 붉은 글씨로 쌍령 경영진을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 가득 쓰여 있었다.

    ‘난리도 아니군···.’

    예전 외환위기 이전에 동성시멘트때보다 더 지독한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한 재환은 부도 위기의 쌍령그룹에 손을 내밀러 걸어갔다.

    똑똑-

    “네! 들어와요!”

    문이 열리자 회장실에서 있던 오너는 재환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혜성의 신재환이라고 합니다.”

    “네, 이쪽으로 앉으시죠.”

    40대 전후로 보이는 남성은 멋진 수트핏과 대비되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으로 재환을 소파에 안내했다.

    “이원상이라고 합니다. 현재 쌍령그룹의 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원상 사장은 쌍령그룹 창업주 이봉철 회장의 아들로 부도 위기의 회사를 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혜성그룹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대단한 모습을 보여서 같은 경영자로써 존경스럽습니다.”

    “하하, 아니에요. 원래 호남의 창업은 전북의 쌍령, 전남의 혜성이 아니었습니까?”

    물론 지금의 위상은 천지차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재환은 적당히 분위기를 맞춰줬다.

    커피가 내왔을 때 서로의 분위기를 맞추는 이야기는 끝냈고 재환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 혜성이 쌍령의 의류업을 인수하려고 합니다.”

    “!”

    대놓고 직구를 던진 재환을 향해 이원상 사장은 빠르게 머리 회전을 했다.

    “속옷상회로 시작한 저희 기업인데··· 그 모기업을 인수하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혜성그룹 내의 결정입니까?”

    “지금 당장 결정권 받아 낼까요?”

    공격적으로 나오는 재환의 말에 이원상은 여유로운 미소가 사라지고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살기 위해선 뭐든지 해야 했다.

    “매각 인수대금은··· 상장 폐지가 되었는데 어떻게···.”

    “그 전에 재무제표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부채가 얼마나 되는지, 1금융권과 2금융권에 대한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이 사장은 재무팀에게 바로 가져오게 명했고, 재환은 잠시 전화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희경에게 먼저 전화를 해서 대략적인 상황을 말했다.

    [뭐 임마? 빤스랑 난닝구가 어쨌다고?]

    “지금 팬티랑 런닝셔츠랑 양말, 파자마 이런 거 몇백벌 샀는데, 트럭으로 보낼게요. 평생 써도 남을 겁니다.”

    [이게 돌았나. 그런걸 뭐 그리 많이 샀···]

    그 순간 희경은 뭔가를 직감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재환아. 너 설마 속옷회사 인수하려고 하냐?]

    “전주에 [쌍령내의] 인수 논의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혜성쇼핑 하고 기전실 직원들 좀 보내주세요.”

    [에효~ 하긴 거기도 꼴이 말이 아니긴 하지. 알았다. 오늘 바로 출장 보내마.]

    재환이 선별하는 회사들은 확실히 수익을 낼 수 있는 곳들이었고, 혜성쇼핑을 위해서 필요하긴 하니 바로 승낙했다.

    재환은 통화를 마친 다음 곧바로 친한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환이냐? 무슨 일이야?]

    KS그룹의 최대현이었다.

    “형님, 야구 좋아하십니까?”

    [난 농구가 좋다.]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재환은 웃으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 지금 전주에 있는데 여기서 한 잔 어떠세요? 좋은 회사가 많이 있습니다.”

    [뭐? 갑자기 무슨 전주야?]

    그리고는 시계를 보면서 앞으로의 상황을 계산하고 제안했다.

    “제가 봤을 때 지금 내려오시면, 저녁에 전주시장이다 도지사다 지역구 의원이다 죄다 만날 거 같습니다. 지역 경제 논의를 위해서요.”

    [···뭔 상황인줄 알겠구만.]

    전북의 중심이었던 쌍령그룹의 부도로 인해서 계열사 매각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왔다.

    [근데 별로 당기는 게 없는데?]

    “여기 계열사가 완전 종합백화점인데 쇼핑 한 번 해보시지 그러세요?”

    재환의 말에 대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전문경영인 아저씨 보낼게. 설득은 네 몫이다.]

    “역시 대현 형님! 감사합니다!”

    재환은 전화를 마치고서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 사장님.”

    “예, 신 사장님.”

    “판을 조금 키우죠? 지금 제가 본사에 연락한 뒤로 한 분을 더 불렀습니다.”

    “네?”

    이원상은 그 말을 듣고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기업이··· 또 오는 겁니까?”

    “KS그룹에서 경영진을 파견한다고 합니다. 괜찮은 매각대상이 있다면 인수를 고려해보겠다고 말입니다.”

    “겨, 경선이!”

    “KS로 이름 바뀌었잖아요.”

    재환은 정정해주면서 이원상이 왜 저러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현재 프로야구는 8개 구단 체제에서 호남에서 2개의 구단이 있었다.

    하나는 재환이 광주 내려가서 한 번 다잡고 온 혜성 타이거즈, 그리고 쌍령그룹이 전주에서 운용하는 쌍령 레인저스였다.

    모기업이 더는 운영을 할 수 없어 협회인 KBA가 위탁경영을 맡고 새 인수 기업을 찾던 중 KS에게 요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KS는··· 몇 번이나 거절했습니다. 아마도 저희가 포기해서 해체되면 그때 재창단을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래서 제가 설득을 해 보려고요.”

    “!”

    “그러니까 제가 며칠 묵으려고 합니다. 좋은 호텔 추천해 주실수 있죠?”

    이미 거기까지 계산한 재환의 제안에 이원상 사장은 급히 전화기를 들었다.

    “다, 당장 연락하겠습니다!”

    재환은 전화를 돌리는 쌍령그룹을 보고서 이야기를 나눴다.

    ***

    먼저 도착한 곳은 KS그룹의 임직원 들이었다.

    벤츠 S클래스 세단에서 내린 백발이 성성한 인물은 현재 KS그룹 대표이사를 맡은 손기성 부회장이었다.

    최성종 회장 사망 전 아직 최대현은 그룹 총수를 맡기에는 너무 젊다는 유언으로 실질적인 경영을 맡은 35년 차 KS맨이었다.

    “아, 신재환 사장!”

    손기성은 반갑게 재환에게 인사하며 악수했다.

    “최 회장님이 손 대표님을 보내주셨군요.”

    “전주에 좋은 사업 건이 있다고 해서 왔어요.”

    “네, 한 번 이야기 같이해 보시죠.”

    그 뒤로 경선의 임원진 다음 혜성그룹의 기전팀과 혜성쇼핑의 사람들이 왔다.

    “대표님. 좀 늦었습니다.”

    김준호 과장의 인사를 받은 재환은 곧바로 자신들도 움직일 준비를 했다.

    KS그룹과 혜성그룹.

    두 대기업은 쌍령그룹 본사에서 인수합병 논의를 하고 있었다.

    “먼저 우리가 인수할 대상은 의류업체 쌍령내의입니다.”

    속옷 시장으로 100만불 수출훈장을 받았던 쌍령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인데 혜성쇼핑과의 시너지 효과로 재무제표를 살펴봤다.

    “쌍령은 브랜드가치도 있어서 그대로 인수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에이, 그래도 쌍령 이름은 있으니까 다른 브랜드로 갈 겁니다.”

    재환의 말에 그들은 생각을 고치고서 다시 타당성을 조사했다.

    기전실과 혜성쇼핑의 직원들이 인수합병을 준비하고 있을 때, 재환은 같이 서류를 검토했다.

    몇 시간이 지나고 서류 넘기는 소리와 펜으로 적는 소리만 나고 있을 때, 재환은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마실거라도 사러 나갔다.

    그때 밖에서 신기성 부회장과 마주쳤다.

    “아, 신 사장님!”

    “지금 나오셨습니까? 인수 논의는 잘 돼요?”

    “인수? 쯧, 그놈의 야구팀이 뭐라고.”

    신 부회장은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야구협회가 떠넘기듯이 우리 KS에게 논의는 했는데, 저희는 150억이나 되는 비싼 돈으로 인수할 생각이 없어요.”

    딱 1년만 견디면 되는데, 굳이 야구팀을 운영한다 하더라도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재환은 거기에 대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전주라는 인프라가 문제이신겁니까? 야구단 운영의 의지는 있나요?”

    “쯧, 나는 별로 탐탁치 않은데 말이지. 그래도 회장님이 알아는 보라고 했습니다.”

    “연고지를 수도권으로 옮긴다면요?”

    “그거라면 조금 생각해 볼 만 하겠지만, 어디 괜찮은 동네가 있겠소? 서울이 두 개에 인천에 하나 있고, 그다음은···.”

    “인천이요.”

    “··· 거길 어떻게 가? 아성그룹이 잡고 있는데.”

    재환은 그 말을 듣고서 미래에 알고 있는 자신의 정보를 조금 할애해 줬다.

    “아성그룹이 인천에서 연고지 옮긴다는 거 아시나요? 임시로 수원에 간다음 3년 뒤에 서울로 올라간답니다.”

    “뭐요? 내가 야구협회에 갔을 땐 그런 말 없었는데?”

    “지금 연락해 보시면 바로 알려줄걸요?”

    재환은 슬슬 꼬드겨봤다.

    “그리고 지금 쌍령에서 KS가 원하는 사업체가 몇 개 있지 않습니까? 금융업을 키우신다고 하셨으니 쌍령상호금고를 인수하신다거나, 해운과 해양플랜트 사업을 하시는 KS가 무역업인 쌍령물산을 인수하시는것도 있고요.”

    “와~ 무슨 쌍령 채권단이에요? 그런 거를 본사 사람 대신 제안합니까?”

    “여기까지 오셨는데 헛걸음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재환의 말에 조금은 혹했는지, 손기성 부회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한 번 회장님께 논의 드려볼게요.”

    “네, 윈윈합시다.”

    재환은 그 뒤로 커피를 수량에 맞춰사서 다시 쌍령 본사로 들어갔다.

    인수합병 논의로 인해 쌍령의 주거래은행인 채권단 JB은행 역시도 참가하여 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현재 쌍령그룹은 무주에 있는 리조트와 익산에 있는 골프장, 골프용품업체 티그리스, 광고기획사인 쌍령기획을 남기려고 합니다.”

    JB은행의 영업부 이사 함영오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즉 관광, 레저 사업으로 그룹을 재편하고 나머지는 전부 매각대상이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게 저희 은행에서 쌍령에게 융자한 목록입니다.”

    서류를 받은 재환은 빠르게 읽은 다음 기전실 직원들에게 넘겼다.

    생각보다 비싼 값은 아니었지만, 타당성을 한 번 알아봐야 했다.

    ‘속옷 브랜드 1인자. 수출루트도 활발하고, 지역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침. 향후 혜성쇼핑이 유통업으로 전북에 진출할 시 전주, 익산, 군산등의 도시에서 반은 먹고 들어갈 수 있음.’

    재환은 그것을 생각하고서 다시 이원상 사장과 JB은행의 함영호 이사를 두고 이야기 했다.

    “현재 쌍령내의 협력사가 얼마나 됩니까?”

    “지금 전라북도에 봉제공장이 250곳 정도 있는데 그중 140여 개 업체가 쌍령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전부 부르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제가 준비해보겠습니다.”

    재환의 말에 혹시나 싶은 함 이사가 물었다.

    “혹시 하청업체들과 계약 재조정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인수 후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한다면 딱 그렇게 되겠지만, 그런다면 넘쳐나는 실업자들을 책임져야 했다.

    “일단 모두 불러주세요. 거기서 발표할 겁니다.”

    재환은 인수 문제를 두고서 일단 이 지역의 업체들과 부딪쳐 보기로 했다.

    ***

    이틀 뒤 전주실내체육관에는 500여명의 중소업체 사장 이하 임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대다수가 영세한 봉제공장들로 쌍령이 망하면 당장에 납품할 곳이 없어 길거리에 나앉게 생길 절박한 자들이었다.

    한숨도 못 자고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사장부터, 연신 줄담배만 태우면서 손을 떨고 있는 사장도 보였다.

    그리고 재환이 발표를 하기 전 댁기실에 찾아온 인물이 있었다.

    머리가 살짝 벗겨진 중년 남성은 재환을 보고 바로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재환 사장님.”

    “아, 누구십니까?”

    “인사드리겠습니다. 제가 전주시장 김연주라고 합니다.”

    민선시장이 직접 찾아와서 이번 일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얼마 후 재환을 찾아오는 또다른 정치인이 있었으니 전북도지사 류정근이었다.

    그는 뉴욕 주립대 빙햄튼 경제학 교수이자, 현 대통령의 경제고문, 그리고 민선 전북도지사까지 올라온 당내의 거물 중 하나였다.

    “신 대표님. 여러모로 부탁드립니다. 전북 일대의 봉제업이 모두 고사할 위기입니다.”

    “네, 공장 옮길 생각도 없고, 협상만 잘 되면 다들 안고 갈 겁니다.”

    그러자 두 지자체장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담겼다.

    재환은 무대에 올라와 마이크를 잡았다.

    [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혜성그룹의 신재환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리를 위해 광주점에서 맞춘 새로운 정장을 갖춰 입고, 단정한 차림으로 나왔다.

    [여기 계신 모든 분이 할 말이 많으시겠지만, 일단 제 이름을 걸고 말하겠습니다.]

    재환은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먼저 혜성그룹의 이름으로 쌍령내의를 인수합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직원들에 대한 고용승계가 끝난 뒤로 협력업체들과 계약을 논의하기 위해 혜성의 직원들을 파견하겠습니다.]

    계약이 어떻게 될지 숨죽여 기다리던 사람들 중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이들이 몇몇 있었지만, 일부는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했다.

    [저희 혜성그룹은 여러분들 모두 안고 가고 싶습니다.]

    “““!!!!!!”””

    모두가 놀란 모습 속에서 재환은 부연 설명을 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혜성의 직원들이 여러분들이 피땀 흘려 만든 공장을 돌면서 세 가지를 지키지 못한 분들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재환은 세 손가락을 펼쳤다.

    [하나! 어떤 공장이라도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곳과는 계약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노동의 대가를 무시하는 사람들하고는 일 안 합니다.]

    97년에 전면적으로 개편된 근로기준법에 대해 엄격히 지킬 것을 요구했다.

    [둘! 공장 상태가 불량하고, 위생이 좋지 않은 곳은 언제나 아웃입니다. 청결한 곳에서 좋은 제품이 나옵니다!]

    쌍령내의 역시도 BQ시스템을 도입할 것이고, 거기에 맞춰지지 않은 공장은 하청의 가치도 없는 곳이니 바로 쳐낼 것이다.

    [셋! 돈거래는 철저한 것이 좋습니다. 원가절감의 시대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도리는 지킬 것입니다. 대신 여러분 역시도 따라주셔야 하고, 봉투 찔러주시는 분들은 한 큐로 날아갑니다!]

    재환은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말하고서 크게 외쳤다.

    [이걸 모두 지켜주시는 분들은 혜성그룹과 동반 성장을 할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재환이 마이크를 끄고 크게 인사했다.

    그 순간 웅성거리는 분위기는 사라지고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짝···짝···짝···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

    박수소리는 점점 커지고 모두가 살았다는 듯이 얼싸안으면서 만세를 외쳤다.

    재환은 부디 모두가 그것을 지켜주길 바라며 꺼진 마이크를 번쩍 들어 올렸다.

    마치 이곳에 있는 관객들에게 환호를 요구하는 슈퍼스타의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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