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59화 (59/244)
  • 59- 남행열차.

    재환은 일요일날 광주로 내려와 야구장에서 저녁 경기를 관람했다.

    딱-

    [쳤습니다! 좌중간! 좌중간! 좌중간!! 넘어갑니다! 혜성의 홍우현! 시즌 16홈런입니다.]

    “와우~”

    VIP석에서 혜성타이거즈와 GH트윈스와의 경기는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홈런 3방을 날려서 11:4로 승리를 거뒀다.

    외국인 타자 샘즈, 올해 트레이드로 온 삼신 출신의 양혁준, 그리고 호타준족 2루수 홍우현의 클린업 트리오는 올해 리그를 방망이로 제패하고 있었다.

    물론 투수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긴 했지만, 그만큼 점수를 내서 이기는 방식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로 재환은 원정팀 라커룸으로 향했다.

    무등구장은 상당히 낡아 있고, 여기저기서 지린내가 가득했다.

    “어우~ 이런 데서 어떻게 2010년대까지 버텼냐?”

    조금만 걸어도 악취로 어질어질하고, 팬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도 사방에 널려있어서 경기가 끝난 다음에는 구단에서 고용한 청소부 수십 명이 청소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재환이 손수건으로 코를 가리면서 내려갔을 때 안에서부터 북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따 우현이 너 올해 30홈런 치겠다잉?”

    “아이고~ 지는 아직 멀었어라.”

    재환은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노크하고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땀내 가득하고 우락부락한 야구선수들은 정장 차림의 재환을 보고 그 자리에 굳었다.

    “아, 사장님!”

    김영룡 감독이 황급히 다가와 재환에게 인사했다.

    “뭣들 하냐? 혜성쇼핑 신재환 사장님이시다. 인사드려!”

    “아, 안녕하십니까!”

    우렁찬 함성과 함께 일제히 인사하는 선수단을 향해 재환은 품 안에서 금일봉을 꺼냈다.

    “오늘 경기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맛있는 회식 하시라고 조금 넣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김영룡 감독은 재환의 금일봉을 받고 고개를 숙였다.

    그때 재환은 김 감독에게 넌지시 말했다.

    “금일봉은 수석코치님 드리고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습니까?”

    “?”

    ***

    재환은 무등야구장에서 떨어진 호텔 귀빈실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꺼냈다.

    삼신 라이온즈의 스카웃 이야기를 들은 김영룡 감독은 큰 덩치를 움직이면서 고심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이벌 팀으로 가신다는 게요.”

    “허허허, 이것 참 뭐라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고민되십니까?”

    재환이 안 된다면 현규에겐 미안해도 대충 둘러대려고 했는데, 김영룡 감독은 뜻밖의 말을 했다.

    “어~ 동현이도 없고~ 종만이도 없고···.”

    그 유명한 명대사 투수 선동현과 유격수 이종만이 없다는 말을 실제로 듣게 되자 재환은 순간 뿜을 뻔했다.

    “사실 제가 이번 시즌을 끝내고 사표를 내려 했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이리저리 지치기도 했고, 이제는 조금 쉬려고 했습니다. 이제 늙은이는 물러나고 젊은 피가 일어나야죠.”

    오히려 자신이 그만두려고 했다는 말에 재환은 뺨을 긁적였다.

    사임 후 삼신으로 간다면 모양새는 나쁘지 않겠지만, 김영룡 감독이 욕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것 역시도 예상했다는 듯 재환에게 말했다.

    “그래도 가는 길은 깔끔하게 해야겠지요. 시즌이 끝나면 딱 1년만 쉬고서 삼신으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감독님이 모든 비난을···.”

    “차라리 그렇게 한다면 기자들이 좀 갈겨대긴 해도, 혜성이 큰 욕을 먹는 일은 없을 겁니다.”

    “···.”

    “허허허, 올해 우승은 못 해도 코치 될 제자들을 좀 열심히 가르쳐야겠습니다?”

    재환은 이런 감독이 또 있나 싶었다.

    그룹의 윗선에서 야구팀 우승을 위해서 감독을 요구한다고 하니, 모기업을 위해서 자진 사임을 하고 자유계약 동안 자신이 삼신으로 계약하는 방향으로 악역을 맡는다고 해서 혜성의 리스크를 줄인 것이었다.

    거기에 혜성 타이거즈의 미래를 위해 고참들에게 지도자 수업도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제가 없어도 타이거즈는 잘 나갈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혜성 타이거즈의 2군구장과 클럽하우스를 함평군에 지을 계획을 했는데, 삼신이 공사를 맡겠다고 합니다.”

    “허어~ 더욱 다행이군요. 앞으로 미래의 유망주가 그곳에서 자랄 게 아닙니까?”

    재환은 김 감독에게 감사를 표하고, 현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고, 2001년부터 김영룡 감독이 삼신에 간다는 것은 그쪽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감독님. 저쪽에서 지금 연봉의 2배를 제안했군요. 앞으로 자세한 협상은 시즌 후에 하자고 합니다.”

    “늘그막에 돈 쓸 일도 없는데, 그렇게 되었군요.”

    재환은 대승적으로 움직인 김 감독에게 감사를 표하고 약소하지만, 선물로 혜성백화점 상품권을 건네줬다.

    대화를 마친 재환은 곧바로 혜성백화점 광주점으로 향했다.

    충장로에 있는 혜성백화점은 혜성그룹 최초의 백화점 사업으로 만들어진 역사에 비해 상당히 초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는 이름만 백화점이었지, 사실상 지역민들의 공판장이나 다를바 없는 규모였기 때문이다.

    “인수합병만 했지, 정작 있는 매장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했어.”

    재환은 그것을 보면서 자신이라도 조금 매출을 올려줘야겠다며, 정장을 몇 벌 구매했다.

    물론 그 상황은 곧바로 수뇌부에게 들어갔고, 지점장 포함 간부들이 황급히 달려왔다.

    “대, 대표님! 사전 연락도 없이 어떻게···.”

    “아, 야구 경기 보러왔다가 잠깐 들렸어요.”

    “제,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혜성백화점 광주점장 양민국 이사는 황급히 재환을 모셨다.

    재환은 집무실에서 서류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도 적자가 안 난다는 건 참 고무적입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지금 여기 지점에서 가장 잘 나가는 상품은 뭡니까?”

    재환의 물음에 양 이사가 대답했다.

    “가장 잘 나가는 상품은 역시 식품코너가 매출이 가장 높습니다. 하지만 쇼핑보다는 디저트 카페와 문화센터가 큰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 역할은 해주는 것 같았다.

    “이번에 본사에서 게임기 시장 계약한 거 아시죠? 추가로 컴퓨터 역시도 생산량을 늘렸습니다.”

    “네, 그곳의 규모를 좀 늘리겠습니다.”

    “일단 증축 공사를 한 번 검토해보겠습니다. 경쟁상대가 최근에 완공된 샤를로트 광주점인데 굴러온 돌한테 당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알겠습니다.”

    재환은 광주점에도 게임기와 컴퓨터, 그리고 의류매장에 대한 규모를 좀 더 늘여서 투자할 것을 약속했다.

    “증축공사에 대해서는 이곳 향토건설사하고 협력하는 게 좋겠죠? 마이다스 건설 어떻습니까?”

    “아, 거기 대표하고는 어느 정도 교류를 했습니다. 증축안에 대해서 대화가 잘 될 것 같습니다.”

    “네. 내친김에 그분하고 오늘 저녁에 뵙죠.”

    재환은 휴대폰을 꺼내 마이다스 대표에게 연락했다.

    ***

    “신 사장! 오늘 경기는 끝났는데 워째 야구장으로 사람을 불렀소?”

    오랜만에 만난 오현우와 인사한 재환은 야간에 남아있는 혜성 타이거즈 직원들을 불러서 안내하게 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 단장과 사장은 절대 오지 말 것을 명했다.

    “이런 건 직접 확인해야 고치지. 손전등 하나 주세요.”

    각각 손전등 하나씩을 가지고 불을 비춰봤을 때, 날벌레들이 가득했고 괴상한 소리도 들렸다.

    찍- 찍-

    “쥐새끼가 있네잉.”

    오현우는 소리가 나는 곳에 발길질하면서 쫓아냈다.

    재환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제가 9회 우승 명문 팀 시설이 이게 뭐예요, 시즌 중이어도 손댈 건 대야겠어요.”

    낡아빠진 라커룸, 파상풍 안 걸릴까 두려운 녹슨 캐비닛, 도색이 벗겨지고 균열이 보이는 벽이 있었다.

    “이거 싹 다 고쳐야 하는데 마이다스가 해주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무등구장 개보수를 하라고요? 뭐, 까짓거 그럽시다! 나도 타이거즈 팬이니께!”

    재환은 그 승낙을 받은 뒤로 관리원에게 말했다.

    “체력단련실이 어딥니까? 거기 좀 보죠.”

    “아, 예!”

    관리원이 안내하고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띵- 띵띵- 띵!

    깜빡거리다가 불이 켜지자 그 안에 있는 시설을 보고 재환은 순간적으로 욕이 나왔다.

    “미친···.”

    “와따! 저거 철봉에 쎄멘 발라서 역기를 만든거여?”

    서울 동네 헬스장만도 못 한 곳을 체력단련실이라고 놨다.

    “기가 막히네! 진짜, 이러고서 우승했던 게 기적이다.”

    재환은 이건 도저히 못 넘기겠다며 오현우 사장에게 물었다.

    “사장님 아는 체육사 있으십니까?”

    “엉?”

    “광주에 있는 전용 트레이닝 기구 싹 긁어서 갈아치우라고 할 겁니다.”

    “아, 내 전화 한 번 돌려봐야것소.”

    재환은 곧바로 연락을 돌리게 해서 내일 바로 도착하게 전부 결제했다.

    다음날은 월요일이어서 경기가 없는 날이었고, 훈련을 온 선수들은 하룻밤 새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눈이 커졌다.

    “웜메? 저게 다 뭐시당가?”

    혜성 타이거즈의 주장 이강석은 트럭으로 온 운동기구들을 발견했다.

    “아, 다들 오셨어요?”

    재환과 그 뒤에서 전전긍긍하는 단장과 사장을 보고서 선수들은 일제히 달려가 90도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군대식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혜성 타이거즈 선수들을 보고서 재환은 그 인사를 받고 체력단련실을 가리켰다.

    “안에 쓰레기들 치우고 제대로 된 운동기구로 채우는 중입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철봉에 시멘트를 끼운 가라 역기 말고 제대로 된 역기와 스쿼트 머신, 레그프레스 머신, 펙덱 머신, 짐볼 등의 기구들이 들어왔다.

    “웜메, 운동기구 새삥으로 다 들어왔네?”

    “운동 제대로 되겠다잉?”

    선수들은 그룹 오너일가가 오니 하루만에 바뀌는 훈련실을 보고 연신 감탄했다.

    재환은 그것들을 설치한 뒤로 마음껏 쓰라는 말을 선수들에게 해줬다.

    그리고 회의실로 가서 단장과 사장, 그리고 김영룡 두고 이야기를 했다.

    “마이다스 건설이 무등구장 개보수 공사를 할 겁니다. 시즌 중이니 공사 끝날 때까지는 관중 받지 말아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구단 내에 전문 트레이너와 물리치료사 등을 고용하세요. 어떻게 프로선수들이 저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합니까?”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문과 뉴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구타랑 집합 가혹 행위 같은 거 없애세요. 지금부터 손 잘못 놀리는 코치나 선수 나오면 레전드고 뭐고 야구밥 못 먹게 한다고 전하세요.”

    삭막했던 90년대의 체육계 똥군기에 대해서 제대로 경고한 말에 김영룡 감독도 흠칫했지만, 오너의 명이니 따르기로 했다.

    “제가 말한 거 전부 지켜주세요. 그리고 제대로 된 리빌딩을 해 봅시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재환은 야구단에 대해 개혁을 선언하면서, 2군 구장 계획과 팬서비스 강화, 굿즈 상품 개발 등에 대해도 맡겼다.

    ***

    “이만 가보겠습니다. 혜성백화점 증축에 대해서는 도면 나오는대로 바로 공사 들어가주시면 됩니다.”

    “나만 믿으쇼잉. 아주 삐까번쩍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재환은 오현우 사장과 악수를 하고 다음에 돌아올때는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하고 논의해서 공장 몇 개를 호남 쪽으로 만들 생각을 했다.

    “후우-”

    어찌어찌 광주 문제는 해결된 것 같고, 가는 김에 혜성에게 있어 가깝고도 먼 전북 지역을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처음으로 향한 곳은 전주였다.

    전북 제 1의 도시이자, 호남 2의 도시인 전주시는 아직 외환위기의 충격에 벗어나지 못하고 향토업체들이 줄도산하고 있었다.

    특히 재환의 눈에 띈 것은 이 일대에서 가장 컸던 기업집단인 쌍령그룹의 속옷 세일이 있었다.

    “여러분! 쌍령에서 만든 속옷입니다!”

    “팬티가 3장에 5천원! 여성용 브래지어도 있습니다!”

    재환은 차 안에서 담배를 태우다 그 모습을 보고 씁쓸하게 바라봤다.

    가판대 위에서 자신들이 만든 속옷을 쌓아두고 눈물의 땡처리를 하는 상황인데 재환은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차에서 내린 재환은 곧바로 그곳으로 다가가 속옷들을 살펴봤다.

    “어서오세요! 남성용 속옷 3장에 5천원! 양말은 한 다발 4천원에 드립니다.”

    재환은 사각 트렁크 팬티를 한 번 당겨보고, 양말의 탄성을 확인해 본다음 쓸만한 내구성이라 생각하고 말했다.

    “다 주세요.”

    “네?”

    가판대의 쌍령의류 직원은 놀란 눈으로 물었다.

    “남성용 속옷이랑 양말, 잠옷 전부 다 주세요. 여기 있는 거 다 사겠습니다.”

    “자, 잠시만요!”

    “잠시만은 무슨! 돈부터 받아요!”

    재환은 지갑에서 백만원짜리 수표들을 꺼내 가판대에 올려놨다.

    호기심에 지나가다 보는 전주시민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쌍령의 높으신 분이 달려왔다.

    “시, 실례합니다. 저희 제품을 전부 사주신다고요?”

    “예, 근데 여기 사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좀 만나보려고 하는데요.”

    재환은 전주에 올라온 김에 쌍령그룹에 대해서 한 번 만나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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