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57화 (57/244)
  • 57- 일 잘하는 신 사장.

    혜성쇼핑은 계속해서 성장했다.

    거기에 본사가 백화점 옆이어서 수시로 확인하는 재환으로 인해 직원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혜성백화점 강남점에는 재환이 유통권 하나를 또 가져온 게 있었다.

    세계적인 게임회사 이치텐도(一天堂)··· 국제명으로는 ‘ITD 게임즈’는 최근 외환위기로 인해 한국 게임 시장에 진출한 뒤로 파트너를 바꾸게 되었다.

    1989년 대한민국 게임기 시장에 진출했던 ITD는 아성전자와 협력해서 자사 제품 ‘패밀리컴’을 ‘아성컴보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했다.

    그리고 92년 ‘슈퍼 아성컴보이’를 출시하여 삼신전자가 다른 일본업체의 게임기 ‘알리바바보이’와 경쟁했으나 세계시장 1위의 ITD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시장이 바뀌었다.

    아성전자는 게임기 산업에서 철수했고, ITD는 새로운 파트너를 찾거나 혹은 현지 법인을 만드는 것에 대해 고려했지만, 타이밍 적절하게 혜성전자가 협상대상자로 나왔고, 혜성쇼핑 대표 재환이 직접 PT를 발표해서 계약을 이끌었다.

    “すごい(멋져요), 이 정도의 규모라니···.”

    ITD 한국 담당의 사토 미나미는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재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제가 지난번 교토의 ITD 본사에 갔을 때 많은 걸 느꼈어요.”

    “네, 저희도 한국 헤이상··· 과 일하게 되어 기쁩니다.”

    자사의 게임기 유통과 한국 시장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 커리어 우먼을 향해 재환은 몇 가지 계약서에 있는 당부도 했다.

    “한글화 논의도 여러모로 협력을 하고 싶습니다. 특히 푸키먼에 대해서는요.”

    작년부터 TV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엄청난 히트를 한 ‘몬스터포켓’시리즈···. 애칭으로 푸키먼이라 불리던 게임에 대해서는 특히 한글화 작업을 신경 쓰게 했다.

    그 외에도 다른 게임에 대해서도 영문판과 일판에 대한 번역에 대해서 논하기로 하고, 지금 사토 팀장이 감탄한 혜성백화점 전자관의 게임기매장을 더욱 키울 생각이었다.

    ‘미래에는 소니아나 마이크로SW의 게임기 유통도 말이야.’

    재환은 사토 팀장과 인사한 뒤로 준호를 사장실로 불렀다.

    “이번에 아성전자에서 게임기 사업부 알아와 주신 것 수고했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대표님.”

    혜성쇼핑 비서로 두니까 제법 괜찮은 사업 아이템을 많이 가져온 준호였다.

    전자 게임기, 서점 입찰, 생활가전제품, 각종 디저트 음식점에서 적재적소의 업체를 이끌어온 그에게 재환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드르륵-

    재환은 서랍 안에 있는 노란 봉투를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놨다.

    툭-

    안에는 묵직한 현금다발이 들어있었다.

    “대, 대표님? 이게 뭡니까?”

    “금일봉입니다. 성과급하고는 또 다른 거니까 좋은 데 쓰세요.”

    재환은 과거 경영인 시절에도 손이 크기로 유명해서 성과를 낸 부하직원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카드로 회식을 보내주는 등으로 대우를 해줬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생각 안 하고 있다가 좋은 건수를 가져왔으니 이 정도도 약소한 수준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

    준호는 그 봉투를 받아들고 연신 인사하며 나갔다.

    재환은 그 모습을 본 뒤 담배를 꺼내 물고 한 대 태운 다음 출장 준비를 했다.

    ***

    혜성전자 화성공장에 온 재환은 곧바로 임원들을 소집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장 대표님. MP3 계약 건 잘 되고 있습니까?”

    “네, 협의가 잘 될 것 같습니다.”

    CD플레이어 이후 혜성전자는 98년 미래를 위한 사업계획에서 MP3 플레이어 개발을 준비했다.

    이기남 상무의 팀 내에 과거 MP3를 최초로 만든 벤처기업 출신의 직원이 있다는 말에 그를 과장으로 승진시키고 장진욱 대표에게 MP3 플레이어 제작에 대한 특허권 인수를 부탁했다.

    그로 인해 혜성은 해외 컨설팅 업체에게 타당성 조사를 끝내고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갔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에요. 우리가 만든 기술인데, 그게 왜 실리콘밸리에 팔렸는지···.”

    하지만 재환은 그러면서 옛날 과거가 떠올랐다.

    재환이 와튼스쿨 졸업 이후 혜성을 거부했던 이전의 삶에서는 실리콘밸리에서 했던 사업 중 하나가 바로 MP3 플레이어와 주변기기 악세사리 사업이었던 것이었다.

    ‘그때 생각나네, 그거 사업 성공시키고 스톡옵션으로 당시에 400만 불 정도 땡겼었고···.’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휴대폰, 포털 사이트, 온라인 쇼핑몰 등의 회사에 스카우트 받아서 영업과 재무 등의 임원을 두루두루 거치다가 삼신그룹이 위기일 때, 현규의 요청을 받고 돌아갔던 삶.

    아이러니하게 두 번째 삶에서도 그 MP3 플레이어 가지고 한국에 돌아와서 사업을 해야 했다.

    “그 외에 제가 주문했던 사업은 어떻게 되었죠?”

    “아, 무선카드리더기 말입니까?”

    이번에 신임 프로젝트팀장으로 올라온 황기범 이사는 재환이 제안한 ‘무선 카드리더기’를 연구 개발하고 있었다.

    사실 그런 건 기술력 좀 갖춘 벤처기업 정도라면 충분히 만들 수 있어서 혜성전자에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재환이 말하는 수량은 상당했다.

    ‘초도수량 100만대 이상 판매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매우 튼튼하고, 배터리가 오래가게 만들어라.’

    지금 전국에 신용카드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런 오더를 내린지 모르겠지만, 일단 재환의 명이니 개발은 계속 진행됐다.

    “아무튼, 다들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현재 혜성백화점에 저희 전자제품들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CD플레이어는 손익분기점 2배 이상을 넘었어요.”

    이미 그것으로 내년에 담당 개발팀에 대해 상당한 상여금이 지급될 것이고, 이기남은 전무로 승진할 것이다.

    그들 모두 회사가 나날이 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지금은 재환을 믿고 따라가기로 했다.

    ***

    그리고 재환은 안산 공장에 들어가 새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장님. 이건 수요 측정 오버 아닙니까? 기존의 4배 이상의 PC를 생산준비하라니요?”

    임용태 부사장은 갑자기 생산량을 그만큼 늘리라는 재환의 말에 황당해서 몇 번이나 되물었다.

    “네, 하십시오.”

    “잘못해서 이거 재고가 쌓이면 다음 영업분기때는 전부 적자로 돌아오게됩니다.”

    “하십시오.”

    “그리고··· 지금의 인력으로 그만큼 만든다고 하면 삼신전자에서 추가로 반도체 물량을 주문해야···.”

    “맘껏 하십시오.”

    완제품 컴퓨터가 한두 푼짜리도 아니고 100만원에 맞춰서 그만큼 만들어내라는 말에 임용태의 머리는 복잡했다.

    “저를 믿고 하시면 됩니다. 미래는 모두 계산하고 준비하는 거니까요.”

    “서, 설마··· 제가 모르는 수출 루트가 새로 생긴 겁니까?”

    “그러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닙니다.”

    그리고 재환은 임용태 부사장에게 말했다.

    “이건 모두 국내에서 팔아치울 겁니다.”

    “!”

    “아, 물론 50% 폭탄세일 이런 거 없이요.”

    “으으음···.”

    “이미 회장님에게 허가받은 일이고, 그냥 완제품만 많이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거기에 대한 직원들의 추가수당과 상여금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지고 챙겨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제 컴퓨터 개발 인생 모든 것을 걸고 다음 분기까지 그 수량 맞춰 보겠습니다.”

    재환은 이야기를 한 뒤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다음 이야기도 해 볼까요?”

    “네?”

    “혜성그룹 전체의 SI(시스템 통합) 사업을 좀 더 키우려고 합니다. 그동안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했는데 인터넷과 컴퓨터를 넘어 전산망 시스템 업체도 제대로 해 볼겁니다.”

    “대, 대표님. SI는 인력 수급이 중요하고, 또 그만한 인프라가···.”

    “타 회사를 인수하는 것 역시도 검토하겠습니다. 거기에 대해 좋은 인수대상이나 아이디어를 만들어주신다면 결제는 제가 바로 끝낼 것입니다.”

    “!”

    돈이야 넘치도록 있으니 결과만 보이라는 재환의 제안을 듣고서 임용태는 수십 년 IT 인생에서 정말 엄청난 일들을 한꺼번에 다 한다고 생각했다.

    ***

    재환은 이제껏 준비한 혜성그룹 전 계열사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희경에게 보였다.

    각 회사에 대해 미래사업에 대한 내용이었고 몇몇 개는 희경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었다.

    “혜성 타이거즈···.”

    “제가 야구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너무 방치했죠? 일단 프런트도 대대적으로 교체하고 구장 시설 개수 공사에 2군구장과 클럽하우스 새로 지으려고 합니다.”

    미우나고우나 야구계에서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제는 지역민심을 좀 달래야 했다.

    거기에 대한 재원은 모기업 중 혜성쇼핑에서 충당하고, 혜성백화점 광주점에 대한 증축공사를 해서 호남 지역 내 유통권에 대해서 논의해볼 셈이었다.

    “혜성제과의 이 사업은 뭐냐? 방송 제작지원?”

    “네, 한국방송에서 재미난 제안을 받아서요. 저희 제과 중에서 약과나 양갱, 전병 등의 제품에 대해서 사극으로 지원이요.”

    “뭔 드라마인데··· [고려 태조]?”

    “그거 외에도 아이돌 그룹을 위한 신제품 CF, 그리고 숙부님 학교에 식품공학과 쪽 하고 연계해서 제품 연구에 신경쓰겠습니다.”

    “흐으음.”

    “이제 일본산 과자 짝퉁 그만 만듭시다.”

    “그, 그거 짝퉁 아니야!”

    “좀더 고급스럽게 표현할까요? 카피캣 마케팅.”

    어차피 하는 사업이라면 좀 제대로 하자는 재환의 지론에 희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혜성백화점 6개 지점 중에서 앞으로 다른 지역에도 진출해야죠. 최종적으로 한 15개 지점 정도로 운영 하려고 합니다.”

    “허어-”

    “그리고 혜성유통은 대형마트, 슈퍼마켓, 백화점이 분리되었으니 대구에 구상한 ‘복합유통물류단지’와 현재 양평동에 있는 ‘제과물류단지’, 그리고 수도권과 중부권에도 유통물류단지를 만들어서 그것들을 모두 컨트롤 하게 할 것이고요.”

    하나하나를 아주 알차게 쓰고 있었다.

    재환은 그 뒤로 혜성바이오와 레슬리와의 사료공장 합작과 제 2공장에 대한 적절한 부지를 찾을 것을 요청했다.

    또한 아성그룹과 합작하는 KRT에 대해서는 ‘고속철도’ 사업 2004년 개통을 위해 프랑스에 연수를 보내 한국형 고속철도 사업에 대해 준비했다.

    이런저런 계열사들의 이야기 속에서 이제 가장 큰 떡밥은 역시 혜성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Big4였다.

    삼신과 진행하는 혜성자동차.

    재환이 공을 쓰는 혜성전자.

    주식 상장 준비하는 혜성트루넷.

    IT서비스까지 하는 혜성트로이카.

    이 사업에 대해서는 기존의 계획서보다 배 이상은 두꺼운 서류들로 준비되어 있었다.

    저거를 다 읽는다면 이틀 밤을 새도 모자랄 정도로 말이다.

    “전부 검토해 주실거죠?”

    재환의 말에 희경은 담배를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이 걸려도 내 다 읽어보마.”

    ***

    그날 밤 침실에서 희경은 어둠 속에서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옆에서 자려 아내를 향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여보···.”

    “으음, 무슨 일이에요?”

    남편이 부르자 눈을 부비는 명숙이었다.

    “나··· 이제 물러날 때가 됐나 봐.”

    “그게 무슨 말이세요?”

    회장실도 아닌 집안 침실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하는 희경의 고민.

    그는 2년 동안 재환을 지켜보면서 달라지는 혜성그룹을 떠올리면서 흐뭇함 속에서 쓸쓸함이 있었다.

    “내 시대는 이제 끝난 거 같아. 그동안 사업한다고 모은 오른팔이고 왼팔이고 이제는 재환이 그 녀석한테 안 돼.”

    희경은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 말에 명숙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전등을 켰다.

    “여보···.”

    그동안 폭군이다, 독선적이다 하는 말을 들었어도 묵묵히 따랐던 남편인데 지금 이 순간에는 2년이 아니라 20년은 늙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내년이면 이제 새천년이라지? 옛 사람은 물러날 때가 된 것 같아.”

    그날 밤 두 부부는 미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하는 재환은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는 어머니 명숙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야, 그냥 오늘따라 우리 아들이 더 대견해보여서.”

    재환은 그 말에 어머니를 안아주고 말했다.

    “이번 주중에 삼신에서 선물로 자동차 한 대 보내준대요.”

    SSM-530L이라고 기존의 제품 중 10대 한정판으로 리무진형을 만들어 삼신가 사모님들이 탄다는데, 혜성에도 한 대 보내준 것이었다.

    “집 안에만 있는 사람이 무슨 새 차야? 출장 많이 가니까 네가 써.”

    “아니요. 새 차니까 쇼핑이나 미술관 가실 때 타세요. 편하실거예요.”

    “그래, 고맙다. 우리 아들.”

    재환은 인사를 한 다음 희경과 같이 차에 탔다.

    오늘은 어째 분위기가 평소보다 부드러웠다.

    “가자.”

    “네.”

    차가 출발했고, 재환은 앞으로 계열사에 쓸 기획서들을 품 안에 담아뒀다.

    1999년의 남은 반년은 아주 스펙타클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