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56화 (56/244)
  • 56- 끝장을 봅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환은 희경의 고성에 귀를 막았다.

    “야 임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경제관료 핵심인 사람한테 대놓고 그러면 어쩌냐?”

    “그거 정치권에서 연락받은 거죠?”

    “그래 이 녀석아!”

    희경은 재환이 백화점에 들어온 이영재 부총리에게 ‘계속 이러면 우리도 가만 안 있을 거다!’라는 엄포를 놨다는 말에 외쳤다.

    “지난번에 경제련 움직여서 간신히 봉합시킨 일인데 그러면 쓰냐? 이 녀석 어째 나보다 더 막 나가는 것 같아?”

    “에이~ 그건 아니에요!”

    재환도 그렇게 고분고분한 성격은 아니지만, 아버지랑 비교하자 ‘폭군’이란 별명을 가졌던 분이 무슨 비교를 하냐면서 웃어넘겼다.

    “웃을 일이 아니야. 이 녀석아!”

    “그렇다고 울 일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부총리 그 양반 벌써 몇 번째 우리를 때리는 거죠?”

    “그··· 그건 그렇지만!”

    재환의 말대로였다.

    안암대 동창회 이용해서 특정 라인의 관료들로 세무조사 위협을 하고, 경제련에서 일부 재벌들을 이용해 분열을 시도했던 핵심인물이 바로 이영재였다.

    그 뒤로 이영재는 문어발식 재벌 해체를 주장하면서 ‘아성은 건설만, 삼신은 전자만···’ 그리고 혜성그룹에게는 모욕적인 말일 수 있는 ‘애들 과자 팔던 회사는 과자에나 집중해라.’라는 말에 희경과 재환을 포함한 혜성가 사람들이 모두 분노했다.

    “기억하세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언론에서 ‘문맥을 무시한 인용한 건데 내가 왜 사과하냐?’고 말했죠?”

    “그래, 나도 그때 생각하면 진짜 패고 싶은 놈이지만··· 후우우, 그래도 상대가 부총리라고.”

    희경은 말하면서 울컥한 건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사람이 잘못하면 부총리가 아니라 총리라도 물러나야 합니다. 그 인간이 아무리 권력이 세다 해도 저렇게 실언을 하는데 저희가 나서서 해결해야 해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경제부총리가 경제관료 조직이랑 따로놀면 어떻게 될지 봐야죠.”

    “!?”

    ***

    다음날 재환은 경선호텔에서 60년대생 재벌가 2, 3세들끼리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야, 신재환이! 너 재경부 들이받았다며?”

    대현이 낄낄거리며 말하자 재환은 커피를 마시면서 반박했다.

    “경제관료 전체랑 싸울 생각 없어요.”

    “부총리랑 한 판 하는 거면 그게 그거지! 야, 하여튼 너 패기 하나는 인정한다. 이거다, 이거!”

    대현이 엄지를 올리면서 말했을 때, 정인 역시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물었다.

    “허어, 지난번에 창원의 대윤중공업 인수 이야기 도와준 건 좋은데, 자네 회사가 위기에 빠져서 어쩌나?”

    재환은 그 상황에서도 느긋했다.

    “이게 다~ 제가 언론에 노출이 많이 돼서 그런거겠죠.”

    실제로 그랬다.

    보통 재벌가 오너들이 언론에 오르내린다면 목소리도 안 들린 채,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면서 자동차에 타거나 어디 건물에 들어가는 모습만 나온다.

    아니면 사진만 인용돼서 언론사가 자막으로 의사를 표한 것을 보도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재환은 달랐다.

    그는 적극적으로 언론에 나와서 자신이 직접 인터뷰를 하거나, 기자회견을 자주 열어서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입사 이후 BQ시스템 도입’, ‘대구 선언’, ‘한국종묘 우리씨앗 지킴이’, ‘백화점 인수전’, ‘초고속인터넷 발표회’ 등 그룹 내의 굵직굵직한 사안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재환의 인지도는 상당한 편이었다.

    게다가 인터넷에서도 재환을 호의적으로 보는 여론이 많았다.

    “인기가 많으면, 안티도 많은 법이거든요.”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설마 또 아버지들 모여서 경제련에서 이 이야기 만들 거야?”

    현규의 물음에 재환은 잠시 생각했다.

    물론 그것을 염두해뒀었고, 경제련 움직이는게 좋은 방법이면서도 확실하게 실력행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쓴 계획에 대해 또 쓴다면 자칫하면 혜성이 곤란해질 수 있었다.

    ‘이를테면 혜성그룹 회장이 경제련을 방패막이 삼아서 악용한다고 생각한다거나.’

    물론 이번에도 사람들의 도움을 받겠지만, 이건 경제련의 공식 행동이 아니어야 했다.

    재환은 그것을 두고서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조직 대 조직의 싸움이라면 피해는 커도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높은데 말이죠....”

    “그래서 경제련 움직인다고? 나 참~ 동생 하나 잘 둬서 내가 또 움직이겠네.”

    대현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저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번 일은 경제련 공식으로 나오면 안 될거 같네요.”

    “뭐?!”

    모두가 재환을 바라볼 때 재환이 말했다.

    “이겨도 피해가 크다고했잖아요? 정권초 경제관료들과 벌써부터 척지는건 안될거 같아요.”

    “그럼 어떡하게?”

    “일단 도움이 필요합니다. 재경부 분열시키고, 이영재 부총리 하나만 잡을 계획으로요.”

    이미 그들 역시도 이영재에 대해서는 치가 떨렸다.

    KS같은 경우는 순환출자 안 고치면, 세무조사를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고, 삼신에 대해서는 자동차 사업은 대윤과 아성 이후 더는 개발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두성 역시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넘어가려고 협상 중인데, 꼬투리 하나 잡히면 어찌 될지 몰랐다.

    “내일부터 재미난 기사 하나씩 만들어주세요.”

    “!?”

    대현, 정인, 현규는 재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다음 소식입니다. 정부 주관으로 계열사 매각을 준비하던 대윤그룹이 암초를 만났습니다.]

    [삼신과 두성 컨소시엄은 한국중공업으로 공기업화된 대윤중공업의 인수 논의를 잠정 취소하기로 정했습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삼신과 대윤이었다.

    삼신과 손을 잡아 두성 컨소시엄이 단독 입찰로 들어가서 3076억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정부에 안겨주는 사업이었는데, 이걸 별안간 취소해버렸다.

    당장에 대한산업은행과 산업자원부는 그 일로 인해 난리가 났다.

    그리고 이 사태에 대해 나온 것은 삼신그룹 비서실장 이상학의 인터뷰였다.

    [현재 투자자문으로 있는 삼신증권과 논의해본 결과, 이 인수에 대해서 삼신은 재검토에 들어갔고, 두성그룹 역시도 그것에 동의했습니다.]

    이상학의 발언에 기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생방송 뉴스로 들렸고, 이상학은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현재 삼신의 주거래은행인 중앙상업은행과의 논의 끝에 금융조사 논의를 해결한 다음에 다시 인수를 진행하겠습니다.]

    삼신의 발표에 벌써 언론사들은 다급히 모셔온 전직 경제관료, 혹은 평론가들을 불렀다.

    하지만 아직 폭탄은 다 터지지 않았다.

    [다음 소식입니다. 두성-삼신 컨소시엄에 이어 KS그룹도 대윤섬유화학에 대한 인수를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나오는 것은 대현의 인터뷰였다.

    [최대현 KS그룹 회장: 정부의 주관으로 구 대윤그룹 산하의 계열사를 인수하는 데 참여했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KS는 인수대상인 대윤섬유화학에 대한 재무상태를 세밀히, 그리고 면밀히 분석한 다음 다시 진행할 것입니다.]

    KS까지 발을 빼자 재경부는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도 대한산업은행등의 국책은행들이 공공자금을 투입해서 대윤의 계열사들을 유지시키고 있는데, 이게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몰랐다.

    모든 것은 국민의 혈세로 부도난 대기업을 먹여 살리고 있는 형국이니 말이다.

    그리고 모두가 그것을 동의해준 것은 각자의 투자자문과 컨설팅 업체들의 계산이 끝이났다.

    ‘거래를 앞두고 이렇게 전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원래 대금보다 더 싸게 인수할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수하면서 일부 규제 해지도 논의할 수 있다.’

    거기에 재환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아버리는 기자회견 자리를 만들었다.

    [여러분, 이번에 혜성쇼핑은 금융권의 회사에서 수익성 융자를 받고 동양백화점과 태백프라자 인수를 진행했습니다.]

    재환은 거리낄 게 없으니 모든 것을 생방송 중 모두에게 털어놓았다.

    [사업계획서가 타당성을 받았고, 대구광역시청, 경상북도청, 경상남도청, 부산광역시청에서 인수 논의에 관해 이야기하고 전원 고용승계를 약속하여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투명성을 의심받아 저희는 새로 자금을 획책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잘못이 없다. 다 된 밥에 상을 엎으려고 하는 ‘어떤 분’에 대한 이야기를 에둘러 말하면서 재환은 진짜 큰 폭탄을 준비했다.

    [만약 이곳에 조금의 부정이 발견된다면 저희 혜성그룹은 사내 자금을 따로 마련해서 진행하겠습니다. 그것을 위해 일부 계열사를 팔고···]

    재환은 이것을 말하면서 몇 번이고 고민하고 그 리스크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큼 여론을 돌리기에는 엄청난 효과가 될 것이다.

    재환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발표했다.

    [그 계열사 중에서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의 명문팀 혜성 타이거즈를 매각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

    혜성이 자금 마련을 위해서 야구단을 팔 수도 있다는 말에 벌떡 일어나는 기자들이 있었다.

    ***

    서라벌호텔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온 뒤로 재환은 차에 올라타면서 숨을 골랐다.

    “후우~”

    옆에 앉아있던 희경은 아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야구팀 진짜로 팔면 내가 널 가만 안 둘 거다.”

    “그래서 언론에 말했잖아요? ‘팔 수도 있다.’라고.”

    재환은 이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처음 말했을 때 ‘야 이 미친놈아!’라는 외침과 걸쭉한 욕을 들었고, 다른 재벌가 친구들 역시도 놀라 되물었다.

    물론 재환에게도 이건 극약처방이었고 그 역시 알고 있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부총리가 아니라 재경부, 그리고 정권 차원에서도 지역구 민심으로 분명 이야기가 나올 수준이라는 걸 말이다.

    ***

    그리고 얼마후 재환의 집으로 찾아온 큰 손님이 있었다.

    “아, 신 회장! 왜 그랬어?”

    가정부들이 술상을 차려오고 희경과 같이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새정치당의 국회의원 한영옥이었다.

    VIP를 보좌해 ‘동교동계’의 거물 중 한 명이었고, 희경과는 각별한 사이였다.

    “형님, 저도 그럼 묻겠습니다. 저희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연일 재경부가 혜성을 때리려고 합니까?”

    “아, 그게 우리 의지가 아니라니까? 당내에서도 이영재 그 양반 너무 오버한다고 말 많아.”

    한영옥 의원은 소줏잔을 기울이며 희경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혜성그룹 보고 과자나 팔라는 그 말은 나도 가서 한 마디했네. 그 사람 상생이란 걸 몰라, 상생이란걸··· 끌끌.”

    “저 그때 진짜 뒤집어엎으려고 했어요!”

    “알아! 알아! 재경부 내에서도 이영재가 너무 심하게 나온다고, 밑에 사람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재환은 그 대화를 들으면서 방 안에서 담배를 태웠다.

    “아랫사람들에게도 신뢰 못 받는 헤드라면 게임 끝난거네?”

    혜성, 삼신, 경선, 두성이 움직여주니 국책은행으로 붙잡아놓고 대윤을 매각하려는 계획이 어긋나버렸다.

    여기에서 여당이 분열 위기이니 결론은 하나였다.

    경제부총리를 교체하거나, 혹은 여당이 단체행동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사람아, 지금 광주에서 우리 당 사람들 계란 맞을 위기야. 이번 감사건 넘어가면 야구팀 안 팔 거지?”

    “그거야 상황에 따라 다르죠.”

    “왜 이래~ 내가 여기까지 왔지 않나?”

    여당의 거물이 와서 혜성을 달래는 분위기가 되자 재환은 피식 웃었다.

    “생각 잘 해야겠지. 경제관료 한 명이 여당 이미지까지 나락으로 무너트릴 것 같으니.”

    그렇게 술자리에서 이야기하고, 한 의원이 돌아가려 할 때 재환은 밖으로 나와서 마중 인사는 했다.

    “이제 가십니까?”

    “아, 그래! 재환이가 요새 고생이 많겠구나!”

    한 의원은 재환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너랑 신 회장을 보면 혜성은 앞으로도 잘 성장할 거다. 그리고 이번 융자 문제도··· 그래, 지자체장들이 전부 검토해 준거니 큰일은 없겠지.”

    한영옥은 자신이 해결해주겠다는 뉘앙스로 돌아갔고, 가정부들이 술상을 정리하는 동안 희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이제 백화점 인수 문제에 대해서 딴소리는 안 나올 거다.”

    재경부 전체가 달려들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이 일을 봉합하기 위에 여당에 관료들도 일어난다고 하니 이영재는 끝이었다.

    ***

    그리고 얼마 후 대대적인 정부 인사 개편에 들어갔다.

    [먼저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새정치당의 한영옥 의원이 지명되었습니다.]

    지난 번 아버지와 소주 한잔 하던 양반이 비서실장으로 갔다.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정치권에서는 아주 웃긴 일이 벌어졌다.

    [네, 이영재 경제부총리가 사임 이후 오늘 오전 11시 40분,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 출두했습니다. 부인의 위장전입과 토지거래법 위반으로 인해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요.]

    기가 막히게도 그렇게 재벌 사냥꾼을 자처하면서 움직였던 끗발 있던 부총리가 위장전입 후 논밭 매입으로 인해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큭, 인생사··· 참.”

    [이영재 전 부총리는 이 일로 인해 국민께 송구스럽다는 말을 했습니다.]

    재환은 각별한 애처가로 보였던 양반이 아내의 부동산 위법 문제로 조사를 받는 것에 대해 실소가 나왔다.

    물론 저 사람에 대해 진짜 죄가 있는 건지, 아니면 상대파의 계략인지는 몰라도 일단 커리어가 박살 난건 확실했다.

    [한편 신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으로는 김상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인물평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후 신임 경제부총리는 경제련 회장인 희경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그리고 실업률 해결과 규제 법안 해지 논의를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혜성쇼핑에 대한 수익성 대출에 대한 타당성 조사는 [문제없음]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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