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54화 (54/244)
  • 54- 공격적으로

    재환이 찾아간 곳은 수성그룹 본사였다.

    이곳은 대구 향토기업 수성건설과 그 산하의 동양백화점을 소유하고 있었다.

    재환은 미리 약속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똑똑-

    “들어와요.”

    문이 열리고 회장실에 들어온 재환은 안에 있는 수성그룹 회장 이호중을 만났다.

    “어서오시죠.”

    “처음뵙겠습니다. 혜성그룹의 신재환이라고 합니다.”

    “네, 이쪽으로 앉으시죠.”

    이호중은 재환을 안내하고 커피를 비서에게 시켰다.

    건설업과 유통업으로 30년간 대구 일대에서 뼈를 묻어왔던 이호중 회장은 사람 좋은 인상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요새 TV에서 신 대표님의 활약은 잘 보고 있습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대구 선언 역시도 인상적이었어요. 광주 출신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쪽까지 오셔서 큰 사업을 하시는군요.”

    광주를 언급하자 재환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거기는 아버지 고향이고, 제가 태어난 곳은 서울입니다. 뭐, 크게 중요하진 않죠.”

    향토기업 경영인이라 그런지 타지 사람의 출신부터 신경 쓰는 것이 느껴졌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 볼까요? 저희는 수성그룹의 백화점 사업인 동양백화점을 인수하시고 싶습니다.”

    “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으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이호중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뭔가를 고심하고 있었다.

    ‘뭔가 걸리는 게 있나 보군.’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고 해서 왔는데, 인수대상자를 앞에 두고 고심하는 것이 딱 그 상황이었다.

    그리고 재환은 커피를 마시면서 천천히 기다렸다.

    “좋습니다. 어차피 매각하기로 했고, 저희 회사의 뿌리인 건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제가 결심을 해야 합니다.”

    고심 끝에 한 승낙, 하지만 석연치 않아 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혹시··· 백화점 재무제표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겁니까?”

    “저, 그것이···.”

    재환은 그게 무슨 말인가 생각했다가 혹시나 해서 물었다.

    “예를 들어 2금융권에 부채가 있는 상황이라던가? 신용도 문제가 있다던가.”

    “!”

    ‘맞구만.’

    지방 건설사가 자금난으로 계열사를 팔때는 이미 1금융권에서도 밀려나 급한대로 여기저기 자금을 융통하는 것일거다.

    그리고 여기 수성그룹 역시도 백화점 매각대금과 이후 충당해야 할 융자를 계산하면서 비상장회사이니 채권단에서 가치가 얼마로 정해질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재환은 그것을 알자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그 소식을 먼저 들었으면, 좀 더 이야기가 쉬웠을텐데요. 그 아주머니 이런 이야기도 안 해주고 짓궂네.”

    “!?”

    “이번 동양백화점 인수에서 부채 부분도 해결하겠습니다.”

    “아···.”

    그렇게 말하기 힘들었던 것을 한 번에 해결하기로 한 재환의 반응에 이호중은 백화점 매각을 혜성과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재환은 품 안에서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매각대금 논의는 천천히 진행하기로 하고, 이것도 한 번 봐 주시죠. 성서지구 계성대 일대에 9만 5천평 정도의 토지를 구매했는데, 주택용도로는 안 될 것 같고, 백화점과 마트 사업에 쓸 대규모 물류센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

    현재 2금융권에 막대한 부채가 있는 수성그룹에게 있어서는 본업으로 일할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이걸로 인해 다른 회사하고도 논의를 해보려고 하는데, 시공사에 대해서는 백화점 거래 기념으로 해 봤으면 좋겠네요.”

    “아, 알겠습니다! 즉시 검토해보겠습니다.”

    재환은 수성그룹 임원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기분좋게 자리를 나섰다.

    이후 재환이 떠난 곳은 대구 경북 일대의 유통업 넘버1인 달구벌프라자 본점이었다.

    재환은 대표이사 구정윤 사장을 만나서 자신의 계획을 아낌없이 털어놨다.

    “그러니까··· 혜성이 동양백화점을 인수하고 저희와 협력을 맺으시겠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상생이 중요한 법이니까요.”

    하지만 구정모의 얼굴에는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라는 표정이 가득했다.

    달구벌프라자 그룹은 이 일대에서 향토백화점으로 전국의 대기업 유통시장들을 막아냈고, 마트, 금융, 건설업까지 하면서 지역호랑이로 군림하는 강자였다.

    재환은 수성그룹에 냈던 것과 똑같은 사업계획을 전달해줬다.

    “현재 달구벌프라자가 120억을 투자해서 유통물류센터를 짓는다고 하시더군요. 그 돈 절약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재환은 수성그룹에도 말한 복합유통물류센터에 대해 달구벌 프라자 역시도 제안을 했다.

    “들리는 소문에는 대기업 대형쇼핑몰과 경영 제휴를 고려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저희 혜성이 같이 하고 싶군요.”

    “!”

    분명 그런 일이 있긴 했지만, 여기에서 혜성이 파고드니 뭔가 난처했다.

    재환은 거기에 대해서 한 가지 더 큰 떡밥을 내놓았다.

    “요새는 초고속인터넷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준비하는 대형 쇼핑업체가 많다죠? 그리고 저희가 초고속인터넷에 이어 사이트 유지보수 관리를 준비하는데 온라인 쇼핑몰 한 번 맡겨보시겠어요?”

    ‘준비를 많이 했군···.’

    막힘없이 자신들이 필요한 것에 대해 말하고, 거기에 대해서 독점이 아닌 상생 속의 경쟁을 주장하면서 같이 이끌자는 이야기.

    물론 재환이 말로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재환은 작은 가방을 두 개 꺼냈는데, 열어보니 한 곳은 대구경북 복합유통물류센터 사업계획서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곳에서는··· 재환이 사들인 달구벌프라자의 주식증서와 채권이 있었다.

    개인 자산으로 사들였다 하더라도 상당한 양이었다.

    구 사장은 그것을 보고서 차를 마시다가 결정했다.

    “···이사회를 열어서 결정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곧 협상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동양백화점에 이어 달구벌프라자 역시도 무난히 시작될 것 같았다.

    그리고 재환은 경북을 넘어 이제는 남쪽으로 향했다.

    ***

    [다음 소식입니다. 연일 굵직굵직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혜성그룹이 다섯 번째 백화점 인수에 나섰습니다. 부산에서 김경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뉴스에서는 대구에 이어 부산 서면에 위치한 태백프라자 인수에 대한 사인이 있었다.

    재환은 그 가운데에서 황금 만년필을 쓰면서 여유 있게 서명을 했다.

    [혜성그룹은 98년 6월 이후 부도선언을 했던 태백프라자에 172억원을 출자하고, 소유주 이정태 회장의 지분 80%와 소액주주의 지분 50%가 소각되고 혜성쇼핑이 63%의 지분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대구경북에 이어 부산의 백화점까지 혜성그룹의 소유로 넘어갔다.

    재환은 부산 일대의 기자들 앞에서 앞으로의 사업에 대해 조리 있게 대답했고, 앞으로 유통시장을 위해 영남권 공략을 선언했다.

    그리고 재환은 아직 멈출 생각이 없었다.

    [네, 태백프라자 인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부산 일대에 또 다른 대규모 인수합병이 이뤄졌습니다. 경남권 유통업 2위인 가람쇼핑이 오늘 혜성쇼핑에게 인수되었습니다.]

    부산,경남 대형마트 10개 지점과 슈퍼마켓 30개 지점을 가진 가람마트 역시도 넘어갔다.

    인수합병 문서를 서명한 뒤로 재환은 어깨를 두들기면서 한 잔 하기로 했다.

    재환은 기사와 김 과장을 각각의 스위트룸에서 쉬게 한 다음 부산 샤를로트 호텔 지하에 있는 바로 향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로얄 살루트 38년산으로요.”

    “알겠습니다.”

    재환은 위스키를 주문하고 샷으로 한 잔 마셨다.

    알싸한 기분이 들면서, 안주로 온 치즈와 하몽을 한 점 곁들여 먹은 재환은 언더락으로 한 잔 만들었다.

    그동안 인수합병 문제로 이곳저곳에서 종횡무진 다녔는데 앞으로도 더 많은 곳을 돌아볼 계획이었다.

    그때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왔다.

    전부 정장을 입고 기름을 발라 머리를 넘긴 단정한 모습은, 어디 조직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그 가운데 서 있는 인물은 큰 키에 정장 너머로 탄탄한 체구가 드러나 있었다.

    그는 재환을 발견하고 자신만만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음?”

    넉살 좋게 다가와 옆 자리에 앉은 이는 인사부터 했다.

    “신재환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저 아시겠습니까?”

    자세히 보니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삼신가의 사람이면서, 현규 결혼식때 만났던 그 사촌이었다.

    “아, 누구인가 했네. 정진용 이사를 여기서 다 보네요?”

    “하하하, 어떻게··· 혼자 드시는거면 같이 앉아서 마셔도 될까요?”

    “위스키 잘 해요?”

    “맘껏 먹습니다!”

    삼신그룹의 분가 신누리그룹의 기전실 상무 정진용을 만난 재환은 그에게 잔을 내밀었다.

    언더락으로 한 잔 만든 진용은 재환과 잔을 부딪치고 쭉 들이켰다.

    “크으, 역시 스카치 위스키는 좋단 말이죠.”

    “네, 가끔씩 마시기 좋아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저도 좋은 위스키를 대접하죠. 싱글몰트하고 퓨어 몰트 어느쪽이 더 취향이십니까?”

    “저는 다 먹는 편이에요. 단 최소 12년 이상으로.”

    정진용은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마신 술에 대한 예찬론을 했다.

    재환은 사설이 좀 긴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재밌게 여기면서 쭉 이야기를 들어줬다.

    “후- 오늘 뉴스를 보니까 마트 사업까지 하시더군요.”

    “네, SE마트하고 좋은 경쟁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샤를로트그룹과 같이 유통업 시장의 1인자를 두고 싸우는 신누리쇼핑이니 만큼 후발주자인 혜성이 지방 쇼핑몰부터 흡수하며 들어오는 모습이 좋게 보일리 없었다.

    하지만 재환은 개의치 않았다.

    “저를 찾아와서 할 말이 그거였군요.”

    “특히 대구쪽은 저희가 달구벌프라자와 경영 합의를 논의중이었는데, 유통단지 떡밥을 내놓으셨더군요.”

    “네, 그럼 하세요.”

    “···네?”

    “하세요.”

    잡음 같은 거는 없이 재환은 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위스키를 쭉 비우면서 말했다.

    “달구벌프라자가 저희 소유도 아니고, 유통물류센터와 온라인쇼핑몰을 놓고 제휴한다는건데, 제가 무슨 어깃장이라도 놀 것 같습니까?”

    후발주자와 기존 주자들의 사이에서 이런 잡음 같은 것을 재환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전 말이죠. 한 지역, 한 점포를 놓고서 독점하는 거 싫어합니다.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면 매출 10원 100원 차이로 서로 신경만 곤두서요.”

    “하, 하하··· 쿨하시네요?”

    “그런 거 신경 쓰는 성격이었다면, 아성이나 삼신하고 상생 같은 말도 안 했죠.”

    진용은 자기가 한 방 먹었다고 생각하며 재환을 바라봤다.

    그렇지 않아도 샤를로트 백화점에 비해 신누리백화점은 고급화 전략을 짜면서도 점포를 늘리는 것에 대해 소극적으로 임했는데, 후발주자인 혜성백화점은 그런 거 상관없이 어려운 일을 너무도 쉽게 처리했다.

    게다가 대윤그룹이 부도처리 되어 5대 그룹도 융자 잘못 쓰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가득한 시국에 말이다.

    ‘아니지··· 오히려 이 시국이니까 눈치싸움에서 공격적으로 나가는 건가?’

    진용이 재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자신과 현규와 동갑인 이 신재환이란 사람은 저 공격적인 행보가 어느 쪽으로든 엄청난 결과가 나올 거란 것을 말이다.

    재환은 술잔을 쭉 비우면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럼 저도 한 가지 물어도 됩니까?”

    “아, 네. 뭐죠?”

    “신누리쇼핑의 이름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눈여겨보는 지역이 있다는 거죠? 어딥니까?”

    “아··· 그거는···.”

    “동시에 한 번 말해볼까요? 전 바로 다음 타겟에 대해 말할 수 있는데요.”

    “!”

    먼저 접근한 재환의 말에 진용은 이것을 말해도 될지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어차피 저희 가문하고도 많은 사업 교류를 하시니 믿어보겠습니다.”

    “그럼 셋 세고 말해보죠, 하나··· 둘···.”

    재환은 입술을 우물거리며 진짜 말하려는 진용을 향해 자신도 다음 지점을 언급했다.

    “마산!”

    “마산입니다.”

    둘 다 동시에 말했는데, 그 지역이 공교롭게도 똑같았다.

    자신이 말하고도 놀란 진용을 보고 재환은 키득거리면서 술잔을 들어 올렸다.

    “이거 한 잔으로 기억만 하겠습니다.”

    “아, 예···. 오늘 정말로 좋은 인연을 만들었군요.”

    재환은 위스키 잔을 부딪치면서 쭉 들이켰다.

    그리고 다음 인수대상을 위해 공교롭게도 유통업에서 겹친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어차피 마산 진출하는 거 알고 있으니 크게 신경은 안 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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