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53화 (53/244)
  • 53- 제대로 움직여 주지.

    [네, 지금 막 들어온 속보입니다. 대윤그룹이 12개 계열사에 대해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야, 기어이 일이 저리 되네?”

    희경은 아들과 같이 뉴스를 보다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돌렸다.

    경제련에서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대한산업은행에서 추가 융자 논의를 했다고 해서 최소한 더 버틸 줄 알았는데, 역사가 바뀌었다.

    오랜만에 일찍 퇴근하고 TV를 보고 있던 찰나에 일어난 속보에 재환은 달력을 바라봤다.

    “원래보다 반년이나 더 빨랐네···.”

    원래 역사보다 빠른 대윤그룹의 몰락을 보고 있으니 재환은 머리를 빠르게 회전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구조조정은 국가에서 할 테고··· 은행대출로 회사 인수하는것에 몸들 사리겠지.’

    하지만 재환은 달랐다.

    ‘눈치싸움으로 이럴 때 먹어치워야 하는건데!’

    재환은 그것을 두고서 앞으로 어떤 계열사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했다.

    그리고 김우준 회장이 나와 상황에 대해 발표했다.

    [먼저··· 국민의 지지 속에서 42년 역사의 대윤이···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언제나 여유 넘치던 백발의 노신사는 얼굴이 반쪽이 되어 착잡한 심정으로 읊어나갔다.

    [지금 이 순간부터 대윤은 지주회사 주)대윤과, 대윤건설, 대윤상사, 대윤자동차로 나뉘게 됩니다.]

    재환은 그것을 보면서 넌지시 입을 열었다.

    “대윤자동차 하나만 남기겠다. 살려만 다오··· 라고 하겠지.”

    [대윤자동차를 빼고··· 나머지 사업부에 대해 구조조정을 할 것입니다.]

    “딱 나오네.”

    그때의 일은 눈감고도 아는지라 재환은 상황을 계속 지켜봤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희경이 서재로 불렀다.

    여기저기 통화를 마치고 온 희경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일 났군, 일 났어.”

    “무슨 이야기를 들으셨는데요?”

    재환이 묻자 희경은 담배를 뻐끔거리면서 상황에 대해 말했다.

    “정부에서 경제단을 만들어서 직접 매각한다고 한다. 그중에서 대윤건설과 대윤증권은 벌써 대한산업은행 밑으로 들어갔어.”

    “네, 예상했었어요.”

    “뭐? 진짜?”

    자신도 지금 정권의 실세들에게 들어온 이야기인데, 태연하게 말하는 아들을 보고서 눈매가 가늘어졌다.

    경제련 회장의 자리에서 이런 일은 기업가들끼리 논의해서 움직이려 했는데 정부가 끼었다.

    게다가 정부에서 기습적으로 대출을 막아버렸다는 것을 보면 몰락이 좀 더 가속화된 것이라 추정했다.

    “제가 봤을 때, 1년 안에 김우준은 분식회계로 조사받을 것 같네요.”

    “그렇게까지야 하겠어? 자동차 하나 겨우 살리면서 일단 숨은 붙어있을 것 같은데.”

    “그것도 썩은 동아줄이 될 거예요.” 정부 역시도 1년 차가 되었으니 본보기로 하나 잡을게 필요했고, 은행 빚과 국가 보증을 가장 많이 받은 대윤그룹은 터트려야 할 큰 고름이었다.

    “후우, 복잡하구만. 김우준 그 양반 그래도 호인이었는데.”

    희경은 과거 만났던 인연을 잠시 생각하면서 씁쓸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뭐, 우리도 재편 안 했으면 저렇게 됐을 뻔했지만 말이다.”

    재환이 합류한 이후 혜성그룹은 빠르게 사업을 재편해서 그룹을 살려낼 수 있었다.

    혜성의 폭군이라 불렸던 신희경 회장 역시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수 없다.’라는 교훈을 아들에게 배워서 성격이 많이 변했다.

    재환은 그런 아버지를 보고서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움직이기로 했다.

    “아버지.”

    “음?”

    “이제껏 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만, 한 가지 더 저에게 전권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재환은 이 자리에서 한 가지 더 폭탄을 준비했고, 희경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말해 봐.”

    ***

    다음날 재환의 직책은 하나 더 늘었다.

    “투표 결과 혜성쇼핑을 혜성유통에서 독립하는 안건이 가결처리 됐소.”

    이 역시 원사이드한 투표였고, 혜성푸드의 자체 식품을 팔기 위해 대형식자재 마트처럼 운영됐던 혜성백화점과 마트 사업은 이제 재환의 손에 들어가 지휘를 받게 되었다.

    재환은 혜성쇼핑의 사장으로 오른 뒤 박수세례를 받으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네, 감사합니다. 혜성쇼핑을 유통업계 넘버 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패기만만하게 외치는 재환의 선언에 모두가 기대가 가득한 눈이었다.

    혜성쇼핑 역시도 강남으로 이전했고, 그룹 내 인사이동으로 대규모 인력이 움직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네, 제가 픽했으니까 잘 해주셔야죠.”

    재환은 기전실 인물 중 일전에 BQ프로젝트에서 아이디어를 제일 많이 올렸던 김준호 과장으로 올려서 자신의 경영 활동에 보좌로 썼다.

    “저 따라다니려면 바쁠 겁니다. 물론 그만큼의 보답은 있을 거예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재환은 먼저 사무실 이전을 하면서 서류들을 정리했고, 그중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픽을 했다.

    그리고는 일전에 받았던 두툼한 수첩을 서랍 안에서 꺼냈다.

    “자, 그 아주머니가 주신걸 2년 만에 써 볼까?”

    그것은 과거 대구에서 동성시멘트 인수전 이후로 김미금 사장이 줬던 지방의 유망기업 리스트였다.

    사채를 써야 할 정도로 자금흐름이 좋지 못하지만, 그래도 지역민들에 대한 인프라가 좋은 곳들이기도 했다.

    재환은 그중에서 명단들을 추슬러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다.

    트루넷의 인프라를 마음껏 즐기면서 포털사이트로 하나하나 검색하는 순간, 재환은 김미금이 적어준 회사들의 정보를 한눈에 접했다.

    “야~ 숨만 붙어있는 수준이네.”

    재환은 그것들을 알고서 출장계를 준비했다. “김 대리.”

    “네, 대표님.”

    “출장계 쓰세요.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닐 겁니다.”

    “아, 예!”

    재환은 출장에 필요한 서류들 챙길 것을 명했고, 지금부터 지방 일대를 훑어갈 사업이 진행됐다.

    ***

    “아이고, 신 사장님. 오랜만에 뵙소!”

    대구에 도착해 동성시멘트와 동성레미콘을 돌고 온 재환은 오후에 예약했던 대구상호금고에 도착했다.

    재환은 차기 사업을 위해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융자 이야기를 꺼냈다.

    “요새 서울은 난리도 아니드만, 기어이 대윤이 무너졌네요.”

    “성장동력을 잃은 상태에서 몸집 불리기만 했으니까요.”

    “신 사장은 아직 성장동력이 있지요?”

    “물론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사장님이 주신 수첩 좀 써 보려고 합니다.”

    재환은 지난날 유망기업 리스트 중에서 지방 쇼핑몰들을 싹쓸이할 준비를 했다.

    “얼마나 필요한교?”

    “제 신용으로 얼마까지 가능한데요?”

    “!?”

    재환의 말에 김미금의 눈썹이 들썩였고, 뒤에서 듣고 있던 준호 역시도 깜짝 놀랐다.

    김미금은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와~ 제2의 김우준이 나올지도 모르겠네?”

    “저는 실패한 그분하고는 좀 많이 다를 겁니다. 저는 만기 연장 같은 짓으로 돈 안 갚고 미룰 사람이 아니니까요.”

    재환은 패기 있게 말하면서 만약 대출이 안 된다면 지역농협과 다른 은행을 찾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미금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사업계획서는 가지고 왔어요? 함 볼라고 합니다.”

    “김 과장. 꺼내요.”

    “네, 넷! 상무님.”

    준호는 자신이 준비한 사업계획서를 건네줬다.

    김미금은 그것을 받아들고서 돋보기를 끼고 찬찬히 둘러보다 말했다.

    “여기 얼마나 묵고 있을 생각이에요?”

    “결과 나올때까지요.”

    “그럼 이틀 뒤에 오이소. 내 그때 결정할게.”

    “알겠습니다.”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김미금은 재환은 보고서 빙긋 웃었다.

    “저런 패기 오랜만에 보네.”

    과거 7-80년대에 자신에게 손을 빌리던 재벌회장들을 떠올렸다.

    그들 중 일부는 지금도 이름난 기업가로 성공했고, 일부는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못해 알거지가 되어 한국을 떠났다.

    하지만 김미금은 재환을 보고 깊은 자신감을 가졌다.

    저 녀석은 반드시 맡긴 돈의 배 이상을 안겨줄 거물이라고 말이다.

    ***

    재환은 차 안에서 위치한 곳으로 향하게 했다.

    김 기사는 지도를 살펴보고 골목길을 돌았고, 재환은 네비게이션이 빨리 개발되기를 원했다.

    ‘딱 1년이면 이 고생도 끝이다.’

    재환은 그것을 생각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대표님, 저기가 바로 수성점입니다.”

    “네, 잘 봤어요.”

    재환이 돌아보고 있는 곳은 지역 백화점 중 하나인 ‘동양백화점’이었다.

    동양백화점은 대구경북의 향토기업 수성건설의 계열사였는데, 외환위기 이후 상당한 적자로 매각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재환은 그곳을 보고서 수성구, 중앙로, 칠곡에 있는 세 곳의 계열사를 둘러보고 매장 내에서 쇼핑 한 번 해보고 규모를 살펴봤다.

    백화점이라기보다는 지역민들을 위한 아울렛과 같았지만, 목이 좋은 곳들이라 수요는 있었다.

    “재정만 좋았어도 명품관이나 문화센터 입주시켜서 큰돈 벌 수 있는 곳인데···.”

    재환은 그것을 생각하면서 리스트에 담아 둔 다음 만년필을 꺼내 중요 표시를 했다.

    “자~ 오늘 수고했습니다. 먼저들 들어가세요.”

    재환은 호텔방 예약을 3개 대실한 뒤로 그 둘을 쉬게 했다.

    그리고는 홀로 따로 움직여 대구 성서에 있는 삼신상용차 공장으로 향했다.

    재환이 왔다는 말에 삼신상용차 대표이사 김한성이 황급히 달려왔다.

    “어, 어서오십시오. 신 대표님.”

    삼신과 협력 이후 대주주의 권한으로 현규와 동급의 대우를 해줄 것을 이건호 회장에게 명받았다.

    “트럭 잘 만들어지고 있죠?”

    “그, 그렇습니다.”

    자그마치 1년 반이나 출시를 연장한 일반 트럭사업이었다.

    그 이전에 미리 출시한 냉동탑차의 경우, 혜성유통에서 초기형 500대를 주문해서 첫 고객이 된 뒤로 잘 운용하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신형 트럭 YM-1000을 확인한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김 대표님. 바로 테스트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혜성시멘트 80포대 준비했습니다.”

    40kg짜리로 80포대라면 3톤이 넘는 무게였다.

    재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삼신상용차 직원들은 곧바로 YM-1000 트럭에 시멘트를 실었다.

    지난번 1톤을 갓 넘기자마자 프레임이 휘어버린 사건에 대해 수많은 노력을 했고, 2톤이 넘어갔을 때도 튼튼한 트럭의 뼈대였다.

    거기에 2.5톤까지 채웠을 때 재환이 손을 들었다.

    “제가 한 번 운전해 보겠습니다.”

    “네?”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당연히 만든 사람을 위해서 오너가 운전해봐야죠.”

    재환은 1종보통 면허증을 보여주면서 운전은 문제없다는 듯이 트럭에 올라탔다.

    푹신한 시트가 트럭치고는 승차감이 좋다는 것을 느낀 재환은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부릉-

    일단 차 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도 없었다.

    재환은 공장 내에 있는 트랙으로 조용히 액셀을 밟았다.

    차는 힘차게 나갔고, 백미러를 보면서 혹시라도 장축 부분에서 덜컹거리는 것이 없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그런 문제는 없었고, 여유있게 경제속도로 트랙 한 바퀴를 돈 재환은 주차까지 한 다음에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조마조마한 모습으로 보는 직원들에게 박수쳤다.

    “완벽한데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조만간 삼신 내에서도 이 지분을 행사할 수 있는 재환이었기에, 이 자리에서 신뢰를 확실히 얻어내야했다.

    물론 재환은 자신이 추진한 사업이 아주 훌륭히 진행된 것을 보고 이번 3분기에 나올 삼신혜성자동차와 그 트럭사업에 대해 기대를 크게 가졌다.

    트럭 다음은 대형 트레일러, 그 다음은 버스를 노린다음 승용차 사업을 00년 이후로 시작할 계획이었다.

    ‘어차피 아성도 기어도 삼신도 모두 알고 있는 거야. 장난질 칠 경쟁자도 없어.’

    재환은 그것을 알고서 1년 남은 새 천년에 대해 깊은 자신감을 보였다.

    ***

    얼마 뒤 대구상호금고에 도착한 재환은 사업서를 모두 읽은 김미금에게 제안을 받았다.

    “미금신용금고 이름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진행할게요. 5천억까지.”

    재환은 5천억이란 말에 미소를 지었다.

    ‘4천억 이하면 관계 끊고 나가려고 했는데, 역시 가닥이 있으시군.’

    재환은 첫 대출에서 5천억을 승낙받았다.

    “혹시 적어요?”

    “더 해주실 수 있다면 좋죠.”

    “그럼 수성신용금고로 2차 검토를 해보겠어요.”

    “일단은 5천억까지고 유익하게 사업한 다음 오겠습니다.”

    “이자는 기존 1금융권하고 똑같이 하지요. 조급해하지 말란 뜻이에요.”

    재환은 이 정도면 거저라고 생각하는 제안에 웃으면서 말했다.

    “네, 아예 기한 내에 원금회수를 못하면 사채식으로 이자를 받겠다는 조항을 쓰셔도 됩니다.”

    “그럴 일 없다는 거 알아요. 내 눈은 실패한 적이 없어!”

    돈을 빌리는 사람도, 빌려주는 사람도 강한 자신감을 가지면서 실패따위는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재환은 돈이 생겼으니 이제 움직여 보기로 했다.

    “계획서대로 이달 안으로 경상도 일대에 백화점 대여섯개 인수할 겁니다.”

    “화통하시네. 그것도 한 달?”

    “네, 여기는 물론이고 다른 지역까지 전부요.”

    재환이 그것을 선언한 뒤로 미금은 한가지 제안을 했다.

    “저기 그러고 보니 이번에 그 인터넷 말이죠. 하나통신 거는 영 느려서 회선 바꾸려고 하는데, 그쪽은 좀 어떻소?”

    재환은 트루넷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웃으며 대답했다.

    “네, 대구사업소에 바로 전화 넣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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